대공가의 소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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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렛
작품등록일 :
2024.07.19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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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0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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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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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보금자리 9

DUMMY

새벽이 밝았다.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일어난 리안은 가장 먼저 마구간을 향했다.


그곳에는 낯이 익은 한 남자가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브레일 가문에서 제일 아침이 빠른 휴고는 늘 그랬듯 일찍 일어나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오, 리안 님!”


“좋은 아침이야, 휴고.”


“오늘도 그 녀석을 보러 오신 겁니까?”


“응.”


휴고와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리안은 어느 한 곳에 섰다. 다른 말들보다 훨씬 큰 우리 안에는 부드러운 건초더미 위에 온통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말 한 마리가 퍼질러 자고 있었다. 팔자 좋게 눈을 감고 늘어져있던 흑마는, 리안이 코앞에 멈춰서자 기척을 느끼고 비척비척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크.”


푸륵.


“지크프리트.”


푸르륵.


아침 댓바람부터 왜 지랄이야.


그렇게 말하는 듯한 눈빛을 하고선 흑마는 다가왔다. 리안의 입가에 절로 쓴웃음이 걸렸다. 지크프리트는 리안이 눈앞의 흑마를 자신의 말로 고르고 며칠이 지나 지어준 이름이었다.


슈르, 피네, 밤비.


귀여운 이름 후보들이 많았지만 결국 낙점된 것은 딱딱하기 짝이 없는 지크프리트였다. 녀석은 리안이 제안하는 이름마다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말을 알아들은 것마냥 고개를 휙 돌렸는데, 유일하게 반응한 이름이 바로 지크프리트 하나였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작명 센스는 구리기 짝이 없지만, 그 정도라면 받아줄 수도 있지. 누가 주인인지 모를 태도를 취한 지크는 다행스럽게도 리안의 말을 꽤나 잘 따랐다. 아무래도 첫날에 제대로 기강을 잡은 것이 효과가 있었다고 리안은 생각했다. 그도 그럴게 이놈은 그 천하의 케이드도 길들이려다 실패한 놈이었으니까.


“아이고. 내가 갔을때는 아는 체도 안하던 놈이....”


“.......”


“그래도 주인이라고 발소리를 기가막히게 알아듣나 봅니다.”


“밥은 먹었나요?”


“말도 마세요. 어제도 귀리를 한무더기 먹였습니다.”


히히힝.


지크가 정확히 휴고를 바라보며 투레질을 했다.


“어이쿠, 고놈 참 성격 하고는. 무서워서 살 수가 없네 아주.”


“하하....”


리안은 다시금 쓰게 웃었다.


“그래도 리안님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몇년동안 주인도 안 고르고, 밥만 축내는 놈이라 어떻게 처리해야 될지 고민이었는데.”


“혹시 남는 당근 있나요?”


“아, 있죠.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휴고가 하던 일을 멈추고 당근이 담긴 통을 가져왔다.


“여기 있습니다.”


“고마워요.”


리안은 당근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녀석에게 친절하게 하나 하나 먹여주었다. 통이 전부 비워질때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잠깐 나갔다 올게요.”


통을 옆으로 치우고 울타리의 입구를 연 리안이 말했다.


“산책입니까?”


“네.”


“너무 멀리 가시지는 마십시오. 마님께서 걱정하십니다.”


“알겠어요. 조언 명심할게요, 휴고.”


지크에게 고삐를 물리고 안장은 얹은 리안은 조심스럽게 저택을 빠져나왔다.


새벽 공기가 차가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저 멀리 동쪽에서부터 떠오른 해가 도시를 비췄다. 따스한 온기가 피부 곳곳에 스며들었다. 서문 근처에는 밖으로 빠져나가려는 사람들이 리안과 마찬가지로 열리는 성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시를 빠져나오자 너른 들판이 펼쳐졌다.


“가자.”


가볍게 안장 위에 올라탄 리안이 고삐를 잡아당겼다.


저 멀리, 광활하게 펼쳐진 능선을 향해.


***


“삼촌, 지금 내가 하는 말 듣고 있지?”


“.......”


“무시하지 말고! 선물 준비한 거 맞냐니까?”


“뭐라고?”


“오늘이 리안 생일이잖아!”


브레일 백작가의 저택은 평소보다 어수선했다. 그도 그럴것이 오늘이 바로 리안의 생일이었기 때문이다.


“겨우 그놈 생일가지고 이리 호들갑은....”


자신을 쏘아붙이는 세레나의 말에 케이드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저택의 1층 홀은 사용인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준비하기 바빴다.


“대충 밥이나 좀 먹고 축하한다고 인사나 건네면 되는 일 아니야. 뭔놈의 난리를 이렇게....”


“뭐?”


세레나가 게슴츠레 뜬 눈으로 케이드를 노려보았다.


리안의 생일 파티.


가장 먼저 제안한 것은 다름아닌 이 눈앞의 말괄량이 아가씨였다. 리안이 가문에 들어온 지 다섯달이 다 되어가니, 이왕 생일 축하도 할 겸 크게 파티를 열자 한 것이다.


그 얘기를 들은 케이드는 피식 웃어넘겼다. 생일파티는 뭔놈의 생일 파티인가. 대충 넘기면 될 것을.


매년 자신의 생일에도 평소보다 조금 더 화려한 식사를 하고 의례적인 인사를 받았다. 선물같은 거추장스러운 것들은 오히려 케이드의 쪽에서 사양했다. 어차피 가지고 싶은 것들은 이미 다 가진 데다가 원하는 물건이라 해봤자 오래된 와인 한병이면 족했다.


그러니 종자인 리안도 비슷하게 해주면 되겠지.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했다.


—생일 기념 파티? 나쁘지 않겠구나.


그것이 자신 혼자만의 생각이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가장 먼저 세레나의 의견에 찬성표를 던진 것은 바로 안주인인 카를린이었다.


심지어 적극적으로 세레나와 파티 준비를 추진했다. 케이드로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이에 대해 자신의 친형인 브레일 백작에게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형수인 카를린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괜찮겠지. 그 아이도 이제 엄연히 가문의 일원이니, 성대하게 축하 파티를 하는 정도는 상관없지 않느냐.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 뺀다더니, 그 말이 이런 말이었나.


케이드는 2층 난간에 기대어 거대한 저택의 홀을 내려다보았다. 세심하게 조각된 샹들리에 아래 분주하게 사용인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싫은 티 하나 없었다. 되려 적극적이었다. 손수 준비를 할 수 있어 기쁜 것처럼.


하긴, 기억을 되짚어보니 리안은 가문의 사용인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 보라색 눈동자의 소년은 그 누구에게도 친절했다. 거기에 뛰어난 실력과 수려한 외모가 더해지니 싫어할래야 싫어할 수가 없었다. 더 황당한 건, 어린 하녀들이 리안을 졸졸 따라다니며 몰래 훔쳐본다는 것이었다.


“진짜 아무것도 준비 안 했어?”


보다못한 세레나가 케이드를 닦달했다. 케이드는 돌아보지도 않고 대꾸했다.


“돈이나 넉넉하게 쥐어주면 되겠지. 어설프게 맞지도 않는 선물을 안겨줄바에야 서로 곤란하기만 하니까.”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나름 진지하게 답변한 건데 세레나는 여전히 뾰로통해 보였다.


“네가 아직 잘 모르나 본데, 원래 어른의 세계에서는 돈이 최고다.”


“.......”


“주는 사람의 정성이니 뭐니 하지만 결국 다 돈주고 살 수 있는 것들이지. 거기다가 나랑 그 꼬맹이의 사인데 어지간한 선물로 성에 차겠냐? 별철제 검이 아닌 이상에야.”


작게 실소를 흘린 케이드가 덧붙였다.


“아니면, 술이나 한 병 건네줄까? 원래 성실한 놈일수록 술에 환장하는 법인데, 그놈도 일단 술맛을 한번 알기만 하면....”


세레나가 빛살처럼 케이드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악!”


“헛소리 하지 말고 뭐라도 준비해, 빨리!”


케이드가 억울한 표정으로 항변했다.


“너 뭐 잘못 먹었냐? 지금 시간이 몇시인데, 이제와서 뭘 어떻게 준비해?”


“시간이라면 충분하니까 걱정하지 마. 일부러 리안한테 이것저것 쓸데없는 심부름을 시켰으니까. 자, 자. 빨리.”


세레나가 계단 밑으로 케이드의 등을 밀었다.


“환장하겠네, 진짜....”


마지막 케이드의 투덜거림은 저택에서의 소란에 묻혀 사라졌다.


***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리안은 페리아로 돌아왔다.


돌이켜보면 지크프리트를 고른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지크프리트는 다른 말들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를 자랑했다. 어찌나 힘이 센지 처음 산책을 나섰을 때 미친듯이 내달리는 녀석에게 맞추느라 리안은 꽤나 진땀을 빼야 했다. 게다가 체력까지 좋아서 한번 외출을 하면 한나절은 실컷 뛰고 나서야 돌아올 수 있었다.


“먹는 것도 엄청 먹고 말이지....”


푸르륵.


항변하듯 투레질하는 녀석의 갈기를 쓸어내린 리안이 길게 늘어진 줄을 유유히 가로질렀다. 검문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불만을 표시하려다 리안이 타고 있는 말과 허리춤의 검을 보고선 입을 다물었다.


“리안 님. 귀환하십니까?”


성문 앞까지 다가가자 병사 한 명이 지크를 탄 리안을 보고서 아는 체를 했다. 리안은 부드러운 어조로 화답했다.


“네. 지금 돌아가는 길입니다.”


“오늘은 좀 일찍 돌아오셨네요. 요즘 날씨가 참 좋아서리, 저도 마음같아서는 다 때려치고 놀러나 가고싶....”


빠악!


언제 다가왔는지 경비대장이 재잘거리던 병사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정신 똑바로 안차려?”


“아니, 대장님! 그냥 농담 좀 한거 가지고....”


“하하....”


리안이 쓰게 웃었다. 몇번이고 병사를 나무란 경비대장이 면목없다는듯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리안 님. 못볼꼴을 보여드렸군요.”


“아닙니다. 저분도 반가운 마음에 그랬을 테니 너무 그러지 마세요.”


“참고하겠습니다. 그보다....”


이후 몇마디를 더 나눈 리안은 좌우로 길을 열어주는 병사들 사이를 지나 도시 안으로 들어섰다. 지크의 위에서 내려 고삐를 잡고 걸어가는 동안에도 리안을 알아보는 사람들은 많았다.


“리안 님! 어디 가십니까?”


“오늘도 아주 멋있으십니다. 불편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쇼.”


“아침에 들어온 사과가 아주 맛있는데....”


“서비스야. 너무 많이 만들어서 그런데, 하나 먹고 가.”


순찰하는 병사들, 장사하는 상인들. 리안은 그들에게 하나하나 인사해주었다. 귀찮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소소하지만 그렇기에 더 소중한 것들이 있다. 가문이 망하고 나서 그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은 리안이었기에 될 수 있는 한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 노력했다. 본채의 사람들 뿐만 아니라 병영의 기사들과 도시 시민들까지.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군것질거리를 몇개 얻어먹은 리안은 어젯밤 자신에게 신신당부하던 한 소녀의 얼굴을 떠올리며 심부름을 꼼꼼히 마쳤다. 어느새 리안은 양 옆으로 드리운 수목을 지나 익숙한 저택의 현관에 서 있었다.


지크는 마구간에 들러 휴고에게 먹이를 많이 챙겨달라고 부탁한 뒤 나왔으니 해야 할 일은 모두 마친 상태였다. 현관문을 밀어젖히려던 리안은 문득 떠오른 한 가지에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내 생일이었던가....”


예전에 자신의 생일을 딱 한 번 흘러가듯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상당히 예전의 일이었다. 마리가 죽은 뒤부터 리안은 생일을 모르고 살았다.


자그마한 미련을 떨쳐낸 리안은 넓은 1층의 홀 안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곧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따스한 온기와 샹들리에의 불빛으로 빛나고 있어야 할 내부는 생기를 잃어버린 듯 텅 비어 있었다.


“.......”


유리창 너머로 짙은 노을빛이 비스듬히 들어왔다. 있을 수 없는 이변에 반사적으로 칼자루에 손을 가져간 리안은 멀지 않은 곳에서 작은 표시 하나를 발견했다. 마치 따라오라는 듯 길게 이어진 표시는 어느 한 곳에서 끝났다.


그 장소는 한 번도 들어가본 적 없는 식당 입구였다. 첫날에 케이드에게 소개받은 이후로 늘 따로 식사를 했던 리안이었기에 사용할 일이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저택은 이리 조용하고 표시는 식당 입구에서 끝나는 건지.


의문과 함께 리안이 커다란 문을 연 순간이었다.


“왔다!”


누군가의 외침을 시작으로 불꽃이 터졌다.


파파팡!


빨강, 파랑, 노랑, 초록. 형형색색의 다채로운 빛깔들이 시야를 어지럽혔다. 리안이 멍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쩐지 쥐 죽은 듯 저택이 조용하더라니 온갖 사용인들이 식당에 몰려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마법으로 만들어진 장난감이 들려 있었다.


“기다리느라 죽는 줄 알았잖아!”


“이제 왔냐?”


긴 식탁 위로 익숙한 얼굴들이 앉아 있었다. 브레일 백작가의 사람들이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멍청하게 서 있자니, 세레나가 리안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자, 빨리 와. 네 자리는 여기야.”


“아....”


식탁 위에는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끝도 없이 놓여 있었다. 평소보다 더 힘을 준듯한 이 음식들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불보듯 뻔했다.


생일. 그 누구도 아닌 리안의 생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리안이 고개를 푹 숙였다. 가까스로 시선를 들어올리니 모두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미안하구나, 아가. 미리 말하고 싶었는데, 깜짝 놀래키고 싶었단다.”


익숙하지 않은 낯뜨거운 감각에 리안은 입술만 연신 달싹거렸다. 부드럽게 미소짓는 카를린의 얼굴은 변함없이 따스했다.


“내가 봐도 좀 과하긴 해. 뭐 이렇게까지....”


“케이드. 너도 좋다고 하지 않았느냐?”


“아니, 꼬맹이가 부담스러워 할까봐 걱정되서 그런 거지. 어, 지금 우냐? 얼굴이 아주 가관인데. 너무 감동이라도 했나.”


케이드가 짓궃게 리안을 놀렸다. 어쩐지 그런 태도마저 기꺼워 리안은 피식 웃어버렸다. 이어진 식사 중간에 세레나는 자신의 선물을 꺼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손이 다치지 말라고 준비한 반장갑, 기사들이 어깨에 걸친다는 긴 망토.


손수 만든 요리와 피로회복에 도움이 되는 마도구. 그리고 50년 된 고급 포도주까지.


“아, 맞다.”


마지막 선물은 누가봐도 케이드의 것이었다. 이제 13살이 되었으니 마개를 따는 것은 2년은 더 걸리겠다고 생각할 즈음, 세레나가 입을 열었다.


“너무 많이 먹지는 마.”


한창 선물을 정리하던 리안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죠?”


리안이 반문하자 세레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이따가 2차 가야 되거든. 지금쯤 병영에서도 다들 기다리고 있을 걸?”


“.......”


리안은 꿀 먹은 벙어리마냥 입을 떡 벌렸다.


저녁에 잠은 다 잤군, 속으로 한탄하면서.


***


봄이 지난다. 날이 점점 더워진다. 매미의 울음 소리가 들린다.


페리아에는 여름이 찾아왔지만 리안의 일상은 항상 일정했다. 이른 아침에 지크와 산책을 나가고, 검을 휘두르고. 이따금 시간이 남을 때면 에반, 핀, 덩크, 세레나와 다섯이서 시내를 돌아다녔다.


그럼에도 그 일정한 균형을 무너뜨리는 악당들은 있었다. 난데없이 들어온 호출에 리안은 아침 일찍부터 케이드의 집무실을 찾았다.


그리고.


“짐 싸라.”


“...예?”


대뜸 날아든 첫마디에 리안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짐을 싸라니. 어제까지만 해도 툴툴거리면서 검술 교습을 해준 케이드가 갑자기 왜 저런 말을 하는지 리안은 알 수 없었다.


“못 들었어? 당장 방으로 돌아가서 짐 싸라고.”


“아....”


“시간 없으니까 빨리 해라.”


리안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막 쥐구멍에 볕이 들었는데 느닷없이 비가 쏟아지는 기분이었다.


“알겠어요, 케이드. 이유는 묻지 않을게요. 그동안 받은것만 해도 차고 넘치니까. 고마웠어요, 전부 다.”


리안이 어깨가 축 쳐졌다. 시든 목소리로 대답한 리안은 터덜터덜 걸음을 옮겨 문고리를 쥐었다.


“야, 야야야!”


막 집무실을 나서려는 찰나 케이드의 높은 음성이 리안을 붙잡았다.


“너 지금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


“짐 싸서 나가라는 소리가 아니라 조만간 나랑 형님이랑 같이 갈 데가 있으니까 준비하라는 얘기다. 가문에서 쫓아내는 게 아니야.”


축 늘어졌던 리안의 어깨가 다시 올라왔다. 그리고 그 위로 자리잡은 것은 생생한 분노였다.


“뭐야, 화났냐?”


“화 안 났어요.”


“그래? 그럼 그런걸로 알고 어서 가 봐. 나도 죽을 것 같이 바쁘니까.”


리안이 몸을 돌렸다. 그러다가 떠오른 의문에 고개만 돌려 질문했다.


“근데, 갈 데라는 곳이 어디에요?”


“엘리시온.”


케이드의 단답에 리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린 칼로스 왕국의 수도로 간다. 내일 동이 트자마자 출발할 거니까 준비 단단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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