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가의 소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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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렛
작품등록일 :
2024.07.19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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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0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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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사냥 1

DUMMY

겨울 사냥.


브레일 백작가에 있어서 그 단어가 가지는 의미는 특별했다. 반세기가 넘도록 이어져온 엘도르 기사단의 의무이자 이제는 하나의 연례 행사가 된 의식. 매년 겨울마다 엘도르 기사단장이 직접 기사단을 이끌고 몬스터 토벌에 나선다. 상당수의 맹수와 몬스터들은 동면에 들어가지만 이따금 그렇지 않은 개체들이 인근 마을이나 도시에 큰 피해를 입히기 때문이다.


전대 엘도르 기사단장이 농민들의 신고로 처음 시작한 이 관례는 어느덧 하나의 전통이 되어 있었다. 현 엘도르 기사단장인 케이드 브레일 역시 이 의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단순히 백작령의 치안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다. 시민들의 지지와 기사들의 사기를 위해서라도 겨울 사냥은 몹시 중요한 엘도르 기사단만의 의식이었다.


그런 겨울사냥이 최초로 실패한 게 6년 전이다.


리안이 죽어가던, 그리고 붉은 머리의 기사와 처음 만났던 그 새하얀 겨울날. 마법을 사용하던 몬스터의 변종이 나타났던 날.


“단장님, 거짓말하는거 아니죠? 겨울 사냥이라고요? 저희가?”


에반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재차 물었다. 케이드가 무심하게 대꾸했다.


“그래. 그럼 여기에 니들 말고 누가 있냐?”


“정말이에요? 저희도 겨울 사냥에 참가한다는 거?”


핀이 에반의 말을 받아 되물었다. 케이드는 한결같이 지루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몇번을 물어보는 거냐. 니들 네명 전부 다 빠짐없이 참가다. 이미 명단에도 들어가 있어.”


케이드가 손에 쥔 명단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듣고있던 덩크가 딴지를 걸었다.


“단장님.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거 아닌가.”


“뭐?”


“작년까지만 해도 안된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된다고 하니 이상하다.”


케이드가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때랑 지금이랑 같냐? 작년에는 견습 기사였고, 올해는 정식 기사고. 때마침 실전 경험도 쌓아야 하니 좋은 기회지. 연무장에서 안전하게 검만 휘두르는 것과 목숨을 건 싸움은 경험 자체가 다르니까. 애당초 니들 서임을 형님이 공짜로 해준 줄 아냐?”


밥값은 하란 말이야, 밥값은.


투덜거리는 케이드의 목소리에 네 소년은 서로의 얼굴만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작년에는 겨울 사냥에 참가하고 싶다고 해도 넣어주지 않았던 케이드다. 재작년에도 그랬고, 재재작년에도 그랬다. 엘도르 기사단의 의무인 겨울 사냥은 정식 기사들에게만 부과되는 책무였다. 견습 기사를 명단에 넣어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올해는 상황이 달라졌다. 에반과 핀, 덩크는 이제 어엿한 정식 기사다. 물론 실전 경험이라고는 일절 없는 말단중의 말단이었지만 그렇기에 겨울 사냥만큼 적합한 기회는 없었다.


“원래 니들 실력으로는 서임받기 턱도 없는 거 알지?”


케이드의 말에 세 소년은 반박하지 못했다.


“최소조건인 마나의 각성만 충족했으니까. 다른 가문의 기사라면 몰라도 엘도르 기사단원이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력이지.”


그럼에도 서임식을 치룬 건 에반, 핀, 덩크 모두 스물이 넘기 전에 마나를 각성할 정도로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재능있는 견습 기사의 서임식을 빨리 앞당겨 기사로서의 경험을 일찍 쌓게 하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었다.


“케이드, 난 아직 서임을 안 받았잖아요.”


유일하게 정식 기사가 아닌 리안이 말했다.


“근데도 참가해요?”


“넌 예외다. 이유는 네가 가장 잘 알겠지.”


“아니, 단장님. 기사단의 규율이라는 게 이렇게 제멋대로 왔다갔다 해도 되는 거예요? 겨울 사냥은 분명 엘도르 기사단의 정식 기사만....”


“에반. 지금 서임 받았다고 말대꾸하는 거냐?”


“아니 그러니까 규율이....”


호기롭던 에반의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갔다.


“리안 저 꼬맹이는 당장 실전에 투입해도 어지간한 엘도르 정예기사만큼 싸울 수 있어. 니들 셋을 전부 합친다고 해서 저 꼬맹이 절반이나 될 것 같아?”


케이드가 단호하게 내뱉었다. 리안이 용병 출신이라는 건 이미 한참 전에 알려진 얘기였다. 브레일 백작가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니 실전 경험은 차고 넘친다고 봐도 무방했다.


“흠... 그건 사실이군. 리안은 아주 강하다. 아군이라면 그토록 든든할 수가 없다.”


“그럼 저희는 리안이랑 같이 움직이는 건가요?”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아마도.”


“.......”


“아무튼 올해는 너희 넷도 겨울 사냥에 참가한다. 미리 경고하겠는데, 정식 기사가 되었으니 발뺌할 생각은 하지도 마라. 서임도 받았고, 검도 있고, 자기 말까지 있으니까.”


경험만 없다 뿐이지 세 사람은 이미 검까지 하사받고 자신만의 말까지 가지고 있었다. 이따금 지크를 탄 리안과 함께 성밖을 나갔다 올때도 있으니 더이상의 반론은 무의미했다.


“이의 있는 사람?”


케이드가 네 소년을 지그시 응시했다. 리안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말해.”


“정확한 날짜가 언제예요? 그러니까 출정 날짜요.”


“12월 1일에 바로 나간다. 지금이 11월 중순이니까, 대충 2주쯤 남았지.”


“마음 단단히 먹고 준비라는 건 무슨 뜻이죠?”


“말 그대로 준비하라는 소리다. 첫 출정의 긴장을 풀라는 것도 있고, 하루이틀에 끝나는 일이 아니니까 짐을 싸라는 것도 있고.”


케이드가 책상 아래에서 주머니를 하나 꺼내 던졌다. 안을 확인한 리안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가서 필요한 거 있으면 금액 상관없이 전부 사라.”


“우리 네명 다요?”


“그래. 궁금한 게 있으면 다른 놈들한테 물어봐. 겨울 사냥 경험은 많은 놈들이니까 친절하지는 않아도 꼭 필요한 것들은 알려줄 거다.”


케이드가 귀찮은듯 손을 휘휘 저었다.


네 명의 소년은 그렇게 소리없는 축객령에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


“그래서, 필요한 건 전부 샀니?”


“아니요, 아직....”


“날이 추우니까 옷은 최대한 따듯하게 입고 가야 될 거야. 먹을 음식도 그렇고. 이 계절에 야영은 힘든 일이란다. 물은 냇가나 눈을 녹이면 된다지만 건량은 얼어버리면 먹기가 힘드니까. 매번 스튜로 만들어 먹을 수는 없잖니.”


“네, 명심할게요.”


옷매무새를 다듬는 카를린의 손길을 가만히 받아들이던 리안은 묵묵히 카를린의 조언을 들었다.


“자, 됐다.”


한발짝 물러선 카를린이 자신의 방 한복판에 선 리안을 바라보았다.


“아주 근사하구나. 이제 어디가서 당당히 기사라고 해도 되겠어.”


카를린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걸렸다. 겨울 사냥에 입고갈 복장을 미리 입은 리안은 카를린의 말대로 누가 봐도 한명의 기사처럼 보였다.


편안한 움직임과 기동성을 중심으로 한 얇은 칠흑색 가죽 갑옷. 무릎까지 내려오는 망토 역시 갑옷과 마찬가지로 새까만 검은색이다. 리안은 제 손을 내려다보며 가볍게 손을 쥐었다 폈다. 손가락 부분이 뚫려있는 반장갑은 손이 시릴 거라며 반대하던 카를린의 고집을 꺾고 리안이 직접 고른 것이었다.


예전에 한번 장갑과 망토를 생일 선물로 받은 적이 있지만 키가 훌쩍 크면서 다시 맞추게 되었다. 장갑을 제외한 나머지 복장의 재질이나 디자인은 카를린이 직접 골라 맞춰주었다. 거기에 허리춤에 걸린 검 겨울까지.


“좋구나. 오랜만에 힘을 쓴 보람이 있어. 그런데... 그 장갑만 어떻게 안 되겠니?”


“죄송해요.”


몇번째인지 모를 제안에 리안이 쓰게 웃었다.


“아가. 네 고집도 세레나 못지 않구나. 도저히 이길 수가 없어.”


“하하....”


“건틀릿까진 아니어도 일반적인 가죽 장갑이라도 낄 수 있잖니. 겨울인데.”


“검을 쥘 때 손가락이 무언가에 덮여 있으면 감각이 흐려져서요. 검로가 미세하게 틀어진다고 할까....”


“내숭만 잔뜩 늘어서는.”


카를린이 한숨과 함께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나 두 눈에는 숨길 수 없는 애정이 묻어나왔다.


“못 말리겠구나 정말로.”


아이는 금방 자랐다. 처음 만났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성인이 되어 겨울 사냥에 참가하게 되었다. 백작가의 온기가 마음에 든 건지, 마음을 연 건지. 한껏 날을 세운 고슴도치같은 아이는 이제 카를린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답잖은 농담을 먼저 던질 수 있을 정도였다.


“겨울 사냥은 기니까. 기합이 잔뜩 들어간 것도 좋지만 첫날에 너무 힘을 빼지 마렴. 결국 마지막에는 체력 싸움이야.”


천천히 리안 주위를 빙빙 돌던 카를린이 무언가 마음에 안 들기라도 했는지 리안의 복장을 다시 여기저기 만지기 시작했다.


“겨울 사냥이 그렇게 긴가요?”


“그럼. 아주 길지. 무엇보다 겨울날에 움직이는 거니까.”


“하지만 작년이랑 재작년에는....”


“일찍 끝났지. 하지만 올해도 그럴거라 단정할 수는 없단다. 일반적으로 짧으면 일주일. 길면 이주가 넘으니까. 용병이 아닌 기사로서 올해 정식으로 참가한 첫 겨울 사냥이, 운이 나빠서 예기치 않게 길어질 수도 있잖니?”


“아, 그렇네요.”


“방심하지 마렴. 6년 전 그 일도 있고 하니 케이드 그 애가 어련히 신경쓰겠지만 이변이라는 건 항상 예상 밖에서 일어나니까.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네가 에반, 핀, 덩크 그 아이들을 지켜주렴. 그렇다고 해도 절대 목숨을 걸만한 위험한 짓은 하지 말고.”


툭툭.


리안의 어깨를 두어번 두드린 카를린이 마지막으로 검은색 머리칼을 매만졌다.


“흐음....”


세레나와 똑 닮은 푸른색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저기....”


“아가. 혹시 머리를 길러볼 생각은 없니?”


“네?”


리안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카를린이 어린 아이처럼 쿡쿡 웃었다.


“머리를요?”


“응. 어깨까지만 길러보는 건 어떠니. 케이드처럼. 뒷머리를 살짝 묶으면 아주 멋있을 거야. 여차하면 장발도 잘 어울릴 것 같은데....”


“그건 좀....”


명목상으로라고는 하나 일단 자신이 모시는 붉은 머리의 기사를 떠올린 리안이 떨떠름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그런 리안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카를린이 말을 이어나갔다.


“싫다면 하지 않아도 돼. 강요하는 게 아니란다.”


“죄송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장발은....”


“그래? 아가 네 뜻이 그렇다면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구나. 그래도 키가 커서 다행이라고 할지.”


카를린보다 눈높이가 낮았던 아이가 벌써 자신의 키를 훌쩍 넘었다. 18살이 되었으니 슬슬 성장이 멈출때도 되었건만, 그 예상을 배신하듯 리안은 어째 매년 크는 것만 같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케이드보다 살짝 작은 수준이었는데, 올해는 겉으로 보기에도 엇비슷해졌어. 내년이면 케이드를 넘을지도 모르겠구나.”


“저, 카를린 님. 그래서 말인데....”


상체를 약간 숙인 리안이 카를린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검술 교습? 오늘도 밤에도?”


“네. 안 될까요?”


“안될 거 없지. 아가 네가 이렇게 부탁하는데.”


가주인 에릭 브레일도 모르는 두 사람만의 비밀.


리안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마치 깜짝 선물을 받은 순진무구한 아이같은 얼굴이었다.


***


겨울이 온다.


12월을 하루 앞둔 날, 첫 눈이 내렸다.


월동 준비를 마친 백작가는 온통 흰 세상처럼 보였다. 비단 백작가 뿐만이 아니었다. 페리아의 까마득히 높은 웅장한 성벽도, 활기가 넘치는 거리도. 전부 순백색이었다. 도시 전체가 겨울에 잠긴 듯했다.


그동안 리안은 평소와 같은 일상을 보내면서 첫 겨울 사냥에 대한 준비를 했다. 사실 야영 준비나 식량을 챙기는 것 말고는 따로 준비랄 것도 없었다. 에반, 핀, 덩크라면 모를까 어렸을때부터 용병으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리안은 저 세명과 달리 긴장도 하지 않았다.


단지 색다른 감정을 느꼈다.


브레일 백작가에 오고 나서 맞이하는 여섯 번째 겨울.


용병으로서 참가한 겨울 사냥과 기사로서 참가하는 겨울 사냥은 다를까. 그때는 죽기 직전까지 몰렸지만, 18살이 된 나는 다를까.


얼마간은 자신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표면상으로는 견습 기사지만 백작가에서 리안의 실력을 모르는 이는 없다. 케이드가 리안을 명단에 넣은 것도, 그것에 별다른 반발이 없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마지막으로 실전을 겪은 지도 6년이 지났으니 슬슬 무뎌진 칼날을 벼릴 때였다. 브레일 가문에서의 나날들은 확실히 데릭과의 만남 이후 제대로 된 훈련을 받은 적이 없던 리안에게 천금과 같은 귀한 것이었지만 반대로 실전 감각은 둔해지게 만들었다. 새로운 별철제 검도 얻었으니 리안은 매일 겨울 사냥이 시작될 12월의 첫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다들 모였냐?”


겨울 사냥 하루 전날. 첫눈이 내린 직후 케이드는 엘도르 기사단원 전원을 연무장 앞으로 집결시켰다. 막 기사가 된 에반, 핀, 덩크도 포함이었다. 정식으로 서임받지 않은 기사는 리안이 유일했다.


“단장님! 눈깔이 왜 그럽니까? 어제 잠 못 잤어요?”


“썩은 생선 눈깔마냥 퀭한게, 설마 술 마신 거 아닙니까?”


“이거이거 내일이 출정인데 빠져가지고....”


“뭐?”


케이드가 눈을 치켜떴다. 저들끼리 농담을 주고받은 엘도르 기사단원들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10년 전의 전쟁을 포함한 겨울 사냥을 여러번 경험한 그들의 얼굴에는 긴장을 비롯한 근심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조용, 조용!”


단상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케이드가 소리쳤다.


“어으, 왜이리 춥냐. 저번주보다 더 추운 것 같네.”


구석에 서 있던 에반이 제 팔뚝을 연신 비볐다.


“춥다니. 나는 따듯하다.”


“그래. 덩크 너는 따듯해서 좋겠네....”


“흠. 춥다면 옷을 껴입어라. 그럼 따듯해진다. 아니면, 어제 잠을 못 잤나? 그러면 안 된다 에반. 내일이 출정인데 자기 관리는 기본이다.”


에반이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덩크를 빤히 쳐다보았다. 분명 하는 말은 정론인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빴다.


“아니야, 덩크. 어제 일찍 자겠다고 제일 먼저 방으로 들어갔는걸.”


“흠. 그게 사실인가, 핀?”


“응. 아마 첫 겨울 사냥이라 긴장한 게 아닐까?”


두 소년이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에반이 떨떠름한 눈빛으로 둘을 응시했다. 긴장하긴 누가 긴장을 해.


“산만하니까 가만히 있어. 바보도 아니고. 진짜 긴장했어?”


리안이 무심코 툭 던진 한마디에 에반이 발작하듯 외쳤다.


“뭣... 긴장을 하긴 누가 긴장을 해! 그리고 나보고 바보라고?”


“거기, 조용!”


근처의 기사 한명이 에반에게 경고를 주었다.


“에반. 조용히 해라. 시끄럽다.”


“그래, 에반. 긴장한 건 알겠는데 큰소리로 떠들면 안 되지.”


에반의 얼굴이 억울함으로 일그러졌다.


“자, 자. 집중해! 이번 겨울 사냥에 참가할 인원은 총 32명이다. 각각 4명씩 조를 지어 8조로 활동한다. ”


“.......”


때마침 이목을 집중시킨 케이드가 손에 종이 한 장을 들고 말을 이어나갔다.


“사정이 있어 참가하지 못하는 사람, 몸이 아프거나 이상이 있는 사람은 제외했다. 그 외에도 페리아를 지킬 몇명도 출정 명단에서 제외이니, 이상 있는 사람은 나중에 다 끝난 뒤에 따로 내 집무실로 찾아와라. 그럼 1조부터 발표하겠다.”


연무장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케이드의 낮은 음성이 잔잔하게 울렸다.


“1조는 존, 라이언, 니콜라, 레빈.”


“.......”


“조장은 라이언이다.”


“좋았스!”


“2조는....”


케이드가 담담하게 종이의 명단을 읽어나갔다. 여기저기서 희비가 갈렸다.


원하는 사람과 조를 맺지 못한 사람, 임시 조장이 되지 못한 사람.


아예 처음부터 명단에서 빠진 사람. 그리고 막 기사가 된 풋내기의 세 소년들.


“.......”


초조하게 상황을 지켜보던 에반 역시 두 손을 꾹 말아쥐고선 언제 자신의 이름이 나오나 기다렸다. 3조, 4조, 5조, 6조. 명단이 거의 끝날 때까지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지 않자 괜시리 손에 땀이 났다. 에반은 축축한 손바닥을 세 소년 몰래 바지단에 닦았다.


괜찮아, 문제없어.


애초에 케이드도 그랬잖아. 우리 네명은 같이 움직인다고.


아직까지 호명되지 않은 걸 보면 아마 8조일거야.


그런데 조장은 누구지?


리안... 은 솔직히 정식으로 서임받지 않았잖아. 실력은 둘째치고 견습 기사가 정식 기사들의 조장이 되는 건 좀 아니지.


덩크는 좀 덜렁거리고 핀은 우유부단한 면이 있고.


그럼... 나밖에 없지 않나?


혹시...?


초조함이 기대감으로 바뀌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이윽고 기다리던 순간이 왔다.


“8조. 에반, 핀, 덩크, 리안.”


“잘 됐다. 같이 움직일 수 있겠네.”


“흠. 당연한 결과다. 한명이라도 떨어졌다면 내가 단장님한테 가서 따졌을 거다 음.”


“그리고....”


연무장의 시선이 한곳에 쏠렸다. 에반은 목이 바싹 타는 것을 느꼈다.


제발, 제발.


“조장은.....”


제발...!


“리안.”


아.


“이상이다. 문제 있으면 내 집무실로 찾아와라.”


에반의 세상이 무너졌다.


“해산!”


케이드가 처음 단상에 섰을 때와 마찬가지로 미련없이 등을 돌려 떠났다. 그럼 그렇지. 네 소년이 있는 구석을 힐끗한 기사들이 서서히 연무장을 떴다.


정식 기사인 에반이 아닌, 견습 기사인 리안이 8조의 조장을 맡았지만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애초에 브레일 백작가에서도 딱 한 자루만 대대로 내려오던 별철제 검을 종자의 신분으로 하사받은 리안이다. 12살때 자신의 말을 골라 능숙하게 타고 다녔다. 어찌보면 잔인할 정도로 당연한 결과였다.


“돌아가서 짐부터 챙긴다. 나는 에반처럼 덜렁이가 아니다. 음.”


덩크가 말했다.


“시간도 남았겠다, 다같이 말타고 바깥이나 한바퀴 돌고오는 건 어때?”


핀이 제안했다.


“열심히 하자, 에반.”


리안이 에반의 지척까지 다가와 어깨를 두드렸다. 사람 좋은 얼굴로 빙그레 웃고 있는데, 순간 에반은 리안에게 질투한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래, 뭐. 다같이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한 거니까....”


“근데 조장인 내 말은 들어야지?”


리안의 미소가 장난기 어린 조소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얼굴 좀 펴고. 벌써 하극상이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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