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으로 모험 격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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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서로
작품등록일 :
2024.07.23 03:00
최근연재일 :
2024.09.01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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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4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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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석벽 미로 (2)

DUMMY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이제는 익숙해진, 그가 안전 가옥, 혹은 안전 구역으로도 부르는 곳에서 모험이 끝난 후의 일과가 시작된다.


정도운은 책상에 앉아, 펜을 들고 무언가를 메모지에 사각사각 적었다. 그 옆에는 미로의 지도가 아주 일부만 밝혀진 채 놓여 있었다.


“아귀, 함정, 모험가, 유물, 마지막의 기이한 이상 현상과 거대 괴수로 추정되는 무언가까지.”


정도운은 바로 대책 회의에 들어갔다. 물론 대책 회의라고 해도, 이 방에는 그 외에 다른 존재는 없었기에 자문자답으로 답을 도출하는 방식이었다.


‘마지막까지 보스방에 따라온 그건 뭐였지?’


미로를 가로지르는 지나치리만큼 거대한 무언가.


생물체이긴 한 걸까?


아무리 침착하려 해도 그런 게 다가오면 질겁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괴수 같은 거라고 봐야겠지.’


맵의 보스랑은 별개의 재앙 같은데, 그 또한 지금까지의 맵에서는 없던 것이다.


‘갑자기 미로에 비가 내리지를 않나, 수상한 모닥불이 나타나질 않나.’


그렇잖아도 이 석벽 미로에는 처음 겪는 것들이 많은데 골칫덩이도 여러 가지였다.

정도운은 문득 메모하던 손을 멈추고 모험가 1일 차가 된 날, 즉 한 달 전의 기분을 떠올렸다.


‘···첫날 생각나게 만드네.’


이제는 이 생활이 좀 익숙해졌다 싶었는데.


석벽 미로는 시작부터 미스터리가 한가득이다.


‘미로의 패턴도 처음부터 다시 익혀야겠고··· 뭐 이건 원래 하려던 거지만.’


마지막 괴수까지가 미로라는 연극의, 모험의 흐름의 일부인 걸까?


좌우간 이제까지가 느긋한 솔로 생존 라이프였다면, 갑자기 나타난 미로부터는 난도가 확 뛰어서 느긋한 모험계에 긴장감을 선사하는 판국이었다.


그는 눈을 감고, 내면에 동화된 모험의 서를 떠올렸다.


지이잉.


어둠 속에서 양피지 한 장이 부상한다.


【모험의 서】

서장

1장 - 수련의 증명 (4/8)

▲초원, 삼림, 동굴, 고원 마을

2장 - 생존의 증명 (1/8)

△석벽 미로

3장 - ???의 증명 (1/8)

???의 ??? (0/1)

진행 중···

(목차 진행 시 진행판 압축)


모험의 서.

정도운이 이 방에 떨어진 이후, 그와 연결된 모험의 길라잡이.

모험을 진행하는 현황판 정도로 볼 수 있었다.


2장 석벽 미로 칸에는 일부분만 밝혀진 미로의 지도가 축소되어 보였다. 저걸 추출해서 사본을 현실로 꺼낸 게 지금 책상에 있는 양피지 지도였다.


“···.”


그는 모험의 서 중 물음표로 가려진 부분을 주시했다.


[ 집필자의 진행도가 부족합니다. ]


역시.

물음표로 가려진 부분은 아직 진행이 덜 되어 막혀있다.


‘그나저나 뭐 때문에 이렇게 갑자기 달라진 걸까?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는 수련에 관한 모험이었지.’


초원, 삼림, 동굴, 고원 마을.


지금까지 정도운이 졸업한 네 개의 모험들이다. 수련의 증명 모험들이었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된 게 석벽 미로.


모험의 서 2장, 생존의 증명을 개시하는 모험이다.


‘솔직히, 나는 지금까지가 말만 수련이지 생존 장르인 줄 알았는데······.’


이제야 알았다.


이 석벽 미로에 비하면, 지금까지의 모험들은 잔잔한 힐링 모험물이었다는 것을.


지금까지는 주로 낯선 장소에 떨어져 어떻게 헤쳐나가는지가 주요 공략 요건이었으니, 위협적인 괴물은 그 개체 수가 많지 않고, 간혹 다른 모험가들을 만나도 군 복무 중 만난 타 부대 아저씨들처럼 데면데면하게 지나가곤 했다.


그러니 그곳에 서식하는 일부 괴물들, 낯선 생태계의 위험만 조심하면, 탐사를 마치고 졸업할 수 있던 것이다.


그에 반해 명실상부 생존 파트좌, 석벽 미로부터는···


정도운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같은 모험가가 위험해진 게 크네.’


모두가 경쟁자, 잠재적 위협이다.


알렝그와의 혈투가 떠올랐다.


- 이대로 놔두면 밖에서 볼 가능성도 있겠네요. 당신을 죽일 이유가 하나 늘었어요.


‘밖’의 존재.

소문으로만 듣던 이야기를 알렝그가 입에 담았다.


‘모험가가 일정 수준에 오르면, 방 밖으로 나가 도시나 마을을 이용한다는 얘기는 초심자들 사이에서도 공공연히 돌았지.’


운신의 폭이 넓어진다.


그 자체는 희소식이지만, 밖에서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모험가들끼리 파티를 구성해 몰려다닐 수 있다는 말도 되었다.


당연히 약탈자들도 말이다.


더구나 석벽 미로에는 멀쩡한 사람도 약탈자가 될 만한 유혹이 충분했다.


습격을 당했든, 습격을 가했든, 한 번이라도 모험가를 죽여본 사람은 그때부터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조금 큰 황금 고블린 정도로 보이리라.


‘······대비해야겠군. 다음에 조우할 때는 약탈자들이 무리를 짓고 있을 수도 있겠어.’


눈을 뜨고, 현실의 나침반을 조작하여 모험의 서를 눈앞에 띄웠다.

목차에서 한 장을 더 넘긴다.


스륵.


【모험가 정도운의 성장치】

【육체 0.03】

【생명 0.05】

【속성 0.05】

【능력 0.05】


다음 장에는 인체 비례도를 연상케 하는 깔끔한 삽화가 수록되어 있었다.


정도운은 그걸 곰곰이 보다가 결정을 내렸다.


“상황이 달라졌어. 느긋하게 모험 주화를 저축할 때가 아니다.”


- 현재 소지금

- 5은화 37동화


소지금에 쌓인 주화들.

모험가의 돈은, 이런 식으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촤르르.


돈주머니를 털어 지금까지 모은 은화, 동화가 책상 위로 쏟아졌다.

그걸 능력치 칸을 펼쳐둔 모험의 서 옆에 조심스레 쌓아둔다.

그리고 정도운은, 쌓인 주화들을 하나씩 들어 능력치별로 고루 투입했다.

지면에 닿은 주화들은 스륵 빨려 들어가며 그 값어치만큼 삽화의 능력치에 점수를 더해 향상시켜 주었다.


동화는 자잘한 성장.

은화는 굵직한 성장을.


그러자 얼마 후.


【모험가 정도운의 성장치】

【육체 0.04】

【생명 0.06】

【속성 0.06】

【능력 0.06】


주화가 모두 투입되고 능력치가 각자 0.01씩 상승했다.


수치상 큰 변화로 느껴지진 않지만, 직후에 몸이 놀랄 정도로 가벼웠다.


정도운은 몸을 풀며 수련실로 들어섰다.


다행히 훈련할 시간은 많았다. 오늘은 모험이 일찍 끝난 덕분이었다.



***



다음날.

정도운은 모험가 생활 32일 차를 맞이한 날이 되었다.


[ 석벽 미로에 입장하였습니다. ]

[ 모험을 공략하십시오. ]


빛이 번쩍한 순간, 정도운은 여느 때처럼 모험 구역에 들어와 있었다. 그는 하룻밤 사이 만전이 된 몸 상태로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진입 장소엔 아무도 없었다.

전후로 휑할 정도로 텅 빈 미로가 그를 반겨준다. 그는 저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조용하네.’


어제의 그 난리가 거짓말처럼 아무런 불길한 징후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평소의 석벽 미로였다.

통로를 타고 어제와 같은 미풍이 불어와 잠시 움찔했지만, 곧 긴장을 풀고 걸음을 옮겼다.


‘이상 없고··· 그러고 보니 여긴 어제 탐색해둔 길이 아니구나. 처음 보는 길이야.’


언뜻 봐서는 그 길이 그 길 같지만, 지난 모험들에서 터득한 눈썰미로 그는 오늘의 입장 장소가 어제 경험하지 않은 길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오히려 잘된 셈이었다.

모험에서 처음 보는 공간을 탐사하는 건, 지도를 밝혀 빠르게 공략률을 올릴 수 있는 방편이었다.


정도운의 목적은 단순했다.


신속하게 모험을 마치고 맵을 졸업하는 것.

물론 무사히 말이다.


‘이제까지와 기본은 다르지 않아. 충분한 공략률을 쌓으면 보스에 도전해보자.’


보스는 좋은 공략률 수급원이다.

정도운은 어딘가에 있을 함정을 조심하며 더듬더듬 미로를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무언가 쑥 들어가는 바닥을 밟는 순간.


후우웅.

채앵―!


그대로 버튼을 누른 것처럼, 그 힘에 의해 정면의 바닥이 원판처럼 돌아가며 정도운의 얼굴을 향해 창날을 들이밀었다.


“···.”


일찌감치 물러난 정도운은 새삼 그 흉물스러운 함정을 바라보았다. 뭔가 피 냄새가 난다 싶더니, 아귀 한 마리가 함정에 걸려 꼬치구이가 되어 있었다.


명복을···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 잡아먹는 아귀한테는 빌어주지 않는다.


“······어제의 나, 용케도 이런 곳을 달려서 탈출했네.”


새삼 운이 좋았던 걸 체감했다.

함정을 피해 다시금 이동을 재개했다.

오래지 않아 대부분의 모험가도 미로 곳곳에 투입이 시작됐는지, 적막하던 구역 곳곳에서 갖가지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무언가 폭죽처럼 터지는 소리, 아귀인지 모험가인지 모를 울음소리, 함정이 작동하며 벽면의 기관이 흔들리며 움직이는 소리···


그리고 무리를 지은 모험가들의 웅성거림까지.


정도운은 벽에 찰싹 붙었다.


‘모험가들은···.’


웬만하면 마주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일까.


첫 코너를 도는 순간, 정도운은 모험가 세 명이 무리를 짓고 다른 사람 하나를 약탈하는 현장을 목격했다.


저 멀리서 말이다.


“끄으으, 사, 살려주시오···.”


모험가는 피투성이로 목숨을 구걸하고 있었고, 약탈자인 듯한 삼인조는 그런 모험가를 보며 한껏 비웃어대고 있었다.


‘약탈자들도 뭐, 모험가지만···.’


인간의 도의를 저버린 자들 아닌가. 정도운은 그냥 약탈자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나저나 어제 그런 일들이 있었는데 누군가를 약탈할 정신이 있다니, 참 태평한 놈들이군.’


아니면, 이게 고인 물들의 여유인가.


다행히 전방으로 거리가 꽤 있으니, 이대로 다른 길을 찾아 우회하면 저들과 직접적으로 부딪힐 일은 없을 터였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부스럭.


“응?”


그런데 약탈자 중 하나가 귀를 쫑긋하더니, 그 먼 거리를 격하고 정도운의 인기척을 알아차렸다.


“오, 칼른, 칼른.”

“응? 왜 그래.”

“저쪽에 새로운 먹잇감 발견.”

“뭐, 또? 이야~ 이렇게 혼자 돌아다니는 사람이 많다니. 호재인데?”


푸욱!


눈매가 사나운 약탈자 하나가 모험가를 마무리하더니 물었다.


“그 꼬맹이인가?”

“알렝··· 뭐시기? 아닌 것 같아. 우릴 보고는 벽 뒤로 얌전히 숨어있는데.”

“겁쟁이구나.”

“킬킬, 그런 셈이지.”

“흐음······ 그런데 이쪽은 그 꼬맹이 녀석의 구역이 아니었던가? 우리가 제 영역을 침범한 셈인데, 생각보다 너무 잠잠하군.”

“우리가 잡으러 온 걸 눈치채고 꽁무니를 뺀 게 아닐까?”

“아니 아니, 그 꼬맹이 녀석은 애초에 노다지를 혼자 먹을 깜냥이 아니었던 거야. 그저 조금 날쌔고 성가실 뿐이라니까.”

“그렇지, 그마저도 우리 두목에게 걸리면 별거 없을 테고 말이야.”

“어디 혼자 가서 죽은 거 아니야?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걸 보면, 킬킬.”


놈들이 조롱기 섞인 대화를 주고받는다.

그들은 몰랐지만, 정도운은 귀가 밝아 역으로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는 중이었다.


‘두목?’


인근에 약탈자들 무리의 본진이 있는 모양.


약탈자들끼리도 네 편 내 편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고 있는데, 놈들이 이쪽으로 오는 게 느껴졌다.


정도운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 아공간 배낭에서 검을 꺼냈다.


어차피 싸울 거라면,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스릉···


정도운이 모습을 드러내자 놈들은 휘파람을 불었다.


“오, 나타났다. 이봐, 혼잔데 싸우려고?”

“패기는 방금 녀석보다 훨씬 나은데? 킬킬킬.”

“어이, 이쪽으로 온다.”


정도운은 처음엔 천천히, 그들의 무장을 살피며 거리를 좁히다가, 어느 순간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흠칫.


갑작스러운 약진은 예상치 못했는지, 약탈자들의 반응이 저마다 엇갈린다.


‘지팡이를 든 마술사가 하나, 근접 도끼 전사가 하나, 나머지 한 놈은······ 단검에 품속에는 투척 무기를 숨기고 있군. 견제 타입인가.’


타닷.


그가 순식간에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자, 양쪽에 선 약탈자들이 각자의 무기를 휘둘렀다.


“어딜!”


정도운의 검이 빠르게 움직였다.

가벼운 단검은 흘려내고, 묵직한 도끼는 막으며 밀쳐낸다.


카강!


이 대 일.


정도운의 눈이 기민하게 움직인다.


정도운은 자신이 일부러 멈칫한 연출을 한 걸 보고, 좌우의 전위들이 그에게 결정적인 일격을 먹이기 위해 동작을 크게 가져가는 걸 보았다. 엇박자로 박차며 그대로 그 틈새를 파고들었다. 현란하게 쏟아지는 날붙이를 걷어낸 신형이 두 사람이 만든 포위망을 돌파했다.


파밧.


앞의 두 놈의 저지선을 돌파하자, 지팡이를 들고 있는 놈이 무언가 기술을 준비하고 있는 게 보였다.

그런 마술사의 눈이 당혹으로 물든다.


“···! 야, 그걸 뚫리면 어떡······!”


정도운이 마술사를 보는 건 두 번째였다.

직접 싸우는 건 처음.

하지만 걸릴 것은 없었다.


서걱!


반응하기 전에 검날이 마술사의 목을 갈랐다. 완전히는 아니고 어림잡아 반절 정도. 그러나 무력화시키기엔 충분했다. 애꿎은 도끼와 단검이 그가 지나간 자리를 허우적댄다.


“미, 밀리!”


그들이 갑작스럽게 당해버린 동료를 부르짖었다.

능력치가 상승한 덕일까. 정도운은 예상보다 호흡에 여유가 있음을 느끼며, 멈추지 않고 그대로 다음 행동을 이어나갔다.


‘기세를 이어가고 싶은데, 그래, 지형지물을 이용하자.’


찰나, 정도운은 피를 흩뿌리며 쓰러지는 마술사의 가슴을 발판처럼 박찼다. 그리곤 백텀블링하듯 회전하여 그대로 배후의 두 약탈자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어찌나 세게 찼는지, 가격당한 마술사의 가슴이 움푹 함몰되는 느낌과 함께 저 멀리 우당탕 날려지는 게 느껴진다.


푸욱―!


그걸 뒤로하고, 어느새 휘둥그레진 눈을 치켜뜬 도끼 전사에게 낙하하며 그대로 그의 심장을 정도운은 검으로 꿰뚫었다.


이렇게 공격해오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도끼 전사는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는 정도운의 공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끄륵···.”


쿠웅―!


옆에서 후속 공격이 날아들기 전에, 재빨리 검을 뽑고 목뼈를 발로 지르밟아 확실하게 확인 사살한다.


으드득!


“흐히익!”


단검을 든 마지막 놈이 괴상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가 기상천외한 몸놀림으로 동료들의 목숨을 앗아가자 완전히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반면, 정도운은 조금 의외인 기색으로 검에 묻은 피를 한 번 털어냈다.


‘뭐지? 그냥 기습의 효과를 살리려고 한 것뿐인데 단번에 성공했어?’


뭐지, 이 정교함, 정확성은.

···설마.


‘유물?’


유물, 정돈된 공격.


그걸 흡수한 기억이 났다.


유물을 먹고 감각이 한층 또렷해진 느낌은 들었지만, 설마하니 실전에 들어와서 이렇게나 효과가 좋을 줄이야.


‘아무튼 마지막 한 놈도 처리를······.’


그때였다.


푸쉬이이― 무언가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주변에 회색 연기가 자욱하게 차오른다.


타다닷.


들린다.

연막탄을 뿌린 놈이 망설임 없이 도주하고 있는 소리가.


‘빠르다.’


가벼운 단검을 사용하는 것도 그렇고, 날렵한 체구답게 상대적으로 앞선 둘과는 남다른 민첩성을 보유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우물쭈물하지 않는 판단력. 적이지만 그 순발력 있는 판단엔 살짝 놀랐다.


“후···.”


이건 놓쳤음을 깨달은 정도운은 눈앞에서 연기를 뿜어내는 탄을 뻥 차버렸다.


빰빰.


[ 공적, 약탈자들을 물리쳤다. ]

+모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2은화 25동화를 얻었습니다.


언뜻 구체 형태의 푸른 에너지의 집약체와, 근육 세포들의 투영이 환영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 또다. 뭐지? 이 현상.’


알렝그를 쓰러트릴 때와 같은 현상이었다.

아무래도 모험가를 죽이면 보게 되는 환영인 모양인데, 관자놀이를 지그시 문질러보아도 방금 본 것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다.


잠시 후.


정도운은 들어온 주화를 모두 능력치 성장에 투자했다.

잠시간의 재정비 후 그는 다시금 길을 나섰다.



***



석벽 미로의 한구석에 있는, 어느 넓게 트인 구릉지대.


정도운이 보았다면 미로에 이렇게 넓은 공간이 있냐고 한 번 놀라고, 도심지 공연장처럼 느껴지는 구조에서 또 한 번 향수를 느꼈을, 얕은 계단식으로 올라가는 고지대 단상 위에는 일단의 무리가 진을 치고 있었다.


그 단상의 중심부.


“울리, 울리.”


거구의 근육질에 모피 코트를 걸친 사내가 제 수하를 나긋하게 부른다.


달달달.


“내가 어려운 걸 시켰나?”

“아, 아닙니다.”


사내의 앞에서 떨고 있는 수하는 조금 전, 정도운에게서 도망친 약탈자였다.

울리는 이곳에 모인 약탈자들의 대장, 제이슨을 감히 정면으로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이상하군. 내가 어려운 걸 시킨 게 아니면, 왜 세 명이 가서 이름이 알려진 놈도 아니고, 아무런 정보도 없는 놈한테 가서 당한데다가 한 놈만 살아서 돌아온 거지?”

“그, 그건······.”

“아~ 알겠다. 너희가 무능하다는 말이구나? 으하하, 그렇지?”


와하하하―!


주변이 한바탕 웃음바다가 된다.


“죄, 죄송합니다 두목···.”


울리는 오늘따라 평소에 어울리던 약탈자들의 눈길이 그를 공개 처형대 위에 올려놓는 군중의 그것처럼 느껴져서 불안에 떨었다.


제이슨이 찬찬히 거구를 일으킨다. 그는 울리의 주변을 천천히 맴돌았다.


“안 되지 안 돼. 무능은 전염된다. 그리고 그런 놈은 아무짝에 쓸모가 없지. 안 그래도 어제 미로의 청소부가 대뜸 움직이는 바람에 우리 쪽 본진의 피해가 아주 크단 말이다. 응?”


흠칫.

제이슨의 손이 울리의 어깨에 올려졌다. 울리는 순간 그의 투박한 손을 보고 기함할 뻔했으나 겨우 참아냈다.


“심지어 별 해괴한 이상 현상도 일어났지. 덕분에 진지에 방어선을 구축하느라 작전도 지체되었고 또······하여튼.”

“······예.”

“울리, 울리.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는 건 이렇게 너무 슬픈 일이야.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에게 또 그런 슬픈 일이 있어선 안 되겠지?”

“그, 그렇습니다.”

“그래. 착하지. 다음부터 안 그럴 거라 믿는다. 나는 또 유능한 부하를 잃고 싶지 않구나, 울리.”

“물론···입니다.”


제이슨은 잔뜩 겁먹은 울리의 귓가에 다가가 속삭였다.


“자, 그럼 마지막 기회를 주지··· 곧 있을 대업을 시작도 전에 그르칠 순 없는 법이니···.”

“다, 다시 인원을 붙여만 주시면, 속히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오겠습니다!”

“그래그래··· 그럼 지금부터 너는, 우리 우수한 무사님을 한 분 붙여줄 테니 그분과 함께 네가 담당했던 그 구역으로 다시 돌아가는 거다. 그리고 이번엔 꼭 책임지고 맡은바 구역 청소를 완수하고 돌아오도록 해라. 알겠나?”

“예! 만회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툭툭, 울리의 어깨를 다독여준 제이슨은 한쪽 구석에 앉아있던 남의인(藍衣人)에게 눈짓을 주었다.


시선을 받은 남의인은 고개를 삐딱하게 세우며 뭐, 어쩌라고 라는 표정을 내비쳤다.


그 태도를 본 제이슨은 순간 욱했지만 가까스로 참고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일어난 김에 남의인에게 다가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렇게 되었소. 어떻게, 힘을 좀 빌려주시겠소?”

“응? 그렇게 되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이보시오. 우리는 이미 한배를 탄 동맹 관계가 아니요?”

“그랬지. 그래서?”


남의인이 다리를 꼬고 껄렁하게 대꾸한다.

제이슨의 눈매가 미약하게 꿈틀했다.


“······아무래도 내 부하들이 일대를 정찰하는 중에 골칫덩이가 나타난 모양이니, 그대도 놀고만 있지 말고 힘을 좀 빌려주셨으면 좋겠다는 뜻이오.”

“얘기가 다르군. 애당초 우리의 약조에 이런 잡무까지 포함되어 있던가?”


빠직.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소? 만에 하나 본 파의 대업을 그르치면, 그대가 원하는 정보 공유에도 지장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올시다. 그 불안 요소를 제거하는 건 그대 입장에서도 나쁠 것 없는 얘기겠지.”

“흐음.”

“···다음부터는 꼭!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리다. 그러니 이번 한 번만 부탁드리겠소.”


제이슨이 실핏줄이 터질 듯한 붉은 얼굴로 간곡히 요청했다.


이 자리에 모인 수십의 약탈자들은 바깥에서 온 그가 완력으로 규합한, 언제든 버릴 수 있는 버림패에 불과했지만, 눈앞의 이 남의인만큼은 달랐다.


그와 똑같이, 아니 그보다 높은 구역에서 흘러들어온 자이기에 제이슨도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젠장, 여기까지 와서 고고한 바깥 놈의 비위 따위를 맞춰줘야 할 줄이야······ 하지만 본 파의 대업이 완성되기만 하면! 그 건방진 태도도 끝이다. 그때는 네놈도 ‘그’의 산 제물로 바쳐주마.’


제이슨이 이를 갈며 무슨 생각을 하던, 겉으로는 그 간곡한 요청이 일리가 있다고 느꼈을까.


“흐음.”


남의인도 더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가타부타하지 않고 검집을 챙겨 일어났다.


“어디로 가면 되지? 안내해라.”

“다, 다른 지원은 없습니까?”


울리는 무시무시한 정도운의 위용을 떠올리며 더듬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원이 더 필요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곧 제이슨의 살벌한 눈초리를 받고 입을 다물었다.


“···안내하겠습니다.”


도망친 약탈자 울리.

그리고 바깥에서 온 남의인.


두 사람이 정도운이 발견된 구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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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석벽 미로 (7) 24.08.02 43 1 16쪽
7 석벽 미로 (6) 24.07.31 70 3 13쪽
6 석벽 미로 (5) +2 24.07.29 49 4 14쪽
5 석벽 미로 (4) 24.07.28 53 4 21쪽
4 석벽 미로 (3) 24.07.25 87 4 18쪽
» 석벽 미로 (2) 24.07.24 61 3 21쪽
2 석벽 미로 (1) 24.07.23 75 4 15쪽
1 모험의 시작 24.07.23 92 3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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