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으로 모험 격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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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서로
작품등록일 :
2024.07.23 03:00
최근연재일 :
2024.09.01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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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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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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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5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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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석벽 미로 (3)

DUMMY

빰빰!


[ 공적, 무수한 모험가를 잡아먹은 함정을 깨트렸다. ]

+모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1은화 78동화를 얻었습니다.


길목 전체가 함정이던 거대한 기관 장치들의 향연이 여기저기 박살 나 있었다.


그걸 뒤로하고 정도운은 입 밖으로 감탄을 토해냈다.


“맙소사.”


그가 본격적으로 석벽 미로를 누비며 공략을 이어나간 지 수 시간이 지났다.


【모험가 정도운의 성장치】

【육체 0.06】

【생명 0.08】

【속성 0.08】

【능력 0.08】


그리고, 또 능력치가 올랐다.

벌써 두 번째.


‘어마어마한 성장 속도로군······.’


카가각!


시범 삼아 검을 휘둘러보자 살벌한 소리와 함께 벽면에 검의 궤적이 파여나갔다.


‘모험가라는 건··· 어느 정도까지 강해지는 거지?’


불쑥 의문이 들었으나 지금 답을 찾을 수 있는 질문은 아니었다.


더구나 지금 상태도 주화는 아직 투자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오로지 순수한 모험 경험치.


즉 모험의 서에 누적된 모험기(冒險記)의 양으로 강해진 것이었다.


그만큼 석벽 미로에서 주는 보상은, 하나부터 열까지 지금까지의 모험이 주는 보상을 가볍게 상회했다.

마치 이제부터가 진짜이고, 본무대라는 것처럼.


‘위험해진 만큼 돌아오는 보상은 확실하네.’


미로는 워낙 넓고, 이제까지 중 활동하는 모험가의 수도 비교 불가로 가장 많다.


그는 가능하면 불필요한 충돌은 원하지 않았기에, 인기척을 이리저리 피해 가며 아귀 무리 사냥, 함정 파훼, 미로 탐사에 주안점을 두고 움직였다.


“히이익! 야, 약탈자!”


한 번은 약탈자를 무찌른 현장을 목격한 모험가가 그를 약탈자로 취급하며 도망간 적이 있었는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뭐 누군가를 죽이는 모습을 보면 오해할 수 있겠지··· 요즘 이 미로가 워낙 흉흉하니까.’


살짝 시무룩한 사건이기는 했다.


여하튼 정도운은 유물까진 아니어도 나름 쓸만한 장신구나 무구가 숨겨진 포인트를 종종 발견했다.


‘유물은 진짜 보기 드문 거였구나.’


깨달음을 얻으며 물건들을 주섬주섬 챙겼다.


[ 전리품이 배낭에 저장됩니다. ]

+모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습득물은 무조건 다다익선.

나중에 상점에 되팔 수도 있고, 몇몇은 유물만큼은 아니어도 일부 흡수할 수도 있다.


게다가 습득 자체로 경험치도 주니 모험에서 얻는 건 모두 쓰임새가 많았다.


‘어제는 몰랐는데, 이 미로는 정말 노다지가 따로 없어.’


알렝그 녀석. 이렇게 널린 게 보물인데 굳이 그런 길을 걸었어야만 했나.


공략을 이어나가길 얼마나 지났을까.


정도운은 어느 벽면에 걸린 석판 앞에 섰다.


마치 교내 게시판처럼 사람 눈높이 정도에 붙은 작은 석판이었다.


[ 후대에 이곳을 방문할 모험가들에게 충고한다. ]

[ 작은 녹귀(綠鬼)들이 이곳에 쳐들어와 그녀의 자식을 강탈해간바, 미궁을 탐험하면서 재액을 피하고 싶다면 부디 그녀의 오해를 사지 말라. ]

[ 이 층의 깊숙한 보금자리에 똬리를 튼 그녀는 미궁의 지배자 중에서는 그나마 공명정대한 심판자에 속하니···. ]


“으음.”


여러모로 의미심장한 문구였다.


정도운은 나침반 기능으로 언어와 문자를 읽고 이해할 수 있었기에 내용을 알아보는 데 문제는 없었다.


‘모험 패턴에 단서를 주는 힌트인가? 녹귀는 고블린··· 아니 아귀 녀석들을 가리키는 것일 테고, 그녀? 그녀의 자식?’


그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뭔가 사람이 아닌 것을 사람처럼 지칭한 듯한 느낌이 나는군. 근거는 없고 감이지만.’


집중해서 살펴보다 보니 문득 피로가 몰려온다.


“뭐 어쨌든 얻은 것도 많고, 오늘은 슬슬 이만하고 돌아갈까.”


무리해가면서 탐사한다고 좋을 게 없으니, 슬슬 탈출구를 찾을 요량이었다.

그는 소거법을 통해 짐작 가는 후보지를 몇 군데 정해놓고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얼마 후.


우뚝 멈춰 섰다.


타닥, 타닥···


모닥불이 조용히 불타고 있었다.


그리고 모닥불 주변에, 웬 청년이 앉아 있었다.

정체불명의 청년은 태평하게 꼬챙이 위에서 구워지는 고기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


문득 눈이 마주쳤다.


‘모험가··· 인가?’


당연히 그렇겠지.


약탈자는 아닌 것 같았다.


그보다 저 모닥불, 위험한 것이 아니었나.


어색한 정적이 흐르고.

청년은 멀뚱히 있는 그를 보며 갸웃하더니 합석을 권했다.


“배고프세요? 안 그래도 혼자 있기 적적했는데, 괜찮으시면 앉으시죠. 보다시피 약탈자는 아닙니다.”

“···.”

“어라, 혹시 장애가 있어 말을 못 하는 분이신가?”


정도운은 눈을 가늘게 떴다.


“아닌데요.”

“아, 아니시군요. 그럼 같이 드실래요?”

“그건··· 아뇨.”

“그래요? 아쉽군요.”

“···?”

“시선이 따갑네요. 왜 그러시죠? 제가 뭔가 말실수라도···.”

“아니, 아닙니다. 괜찮아요.”


정도운은 그와의 시답잖은 대화 내용보다, 모닥불을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애초에 이건······ 첫날 보았던 모닥불처럼 왠지 모를 두려움이나 오한이 들지도 않았다.


무슨 차이지?


‘두 번째 모닥불도 그렇긴 했지만, 그때는 무언가가 이미 한바탕하고 지나갔기에 그런 느낌이었고······.’


이 모닥불은 그저 평범하다.

그냥 그렇게 보였다.


‘그러고 보니 종소리도 들리지 않았군.’


종소리와 이게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후로 모든 이상 현상이 시작되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정도운은 그래도 섣불리 앉지는 못하고 주변을 서성이다 맞은편 빈자리에 앉았다.


‘오···.’


청년은 가까이서 보니 더욱 훤칠한 외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생긴 것도 시원시원하고, 몸도 마치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감탄이 나올 정도로 균형 잡힌 근육질 몸매였다.


‘마치 몸 좋은 아이돌 같네. 저 정도면 밸런스도 타고났고···.’


정도운은 노릇하게 구워져 가는 정체불명의 고기를 보며 물었다.


“···이건 뭡니까?”

“예? 아 이거요, 보다시피 아귀 팔뚝 살입니다. 아주 별미라고 소문이 자자해서요.”

“···?”

“···?”

“아뇨, 그거 말고 이 모닥불 말이에요.”

“아 모닥불이요. 모닥불은··· 모닥불이죠.”

“···.”


이 사람. 아까의 발언도 그렇고 지나치게 순수··· 아니 선입견이 없다.

이 표현이 맞나?

···어쨌든.


‘뭐지 이 마실 나온 도련님 같은 느낌은.’


정도운의 반응 따윈 궁금하지 않다는 듯, 청년은 고기만 보며 군침을 흘렸다.


“이야, 마침 딱 좋게 익어가는군요. 이거 기대되네요. 아, 모험가이신가요?”

“그렇죠. 그쪽은요?”

“저는 알렉스라고 합니다. 서부지구 청룡문의··· 어이쿠, 이건 비밀이었지. 아무튼 요즘 이 미로가 핫하다는 소문이 돌아서요. 무가의 건아로서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고자 들어왔죠. 물론 말로만 듣던 아귀 고기도 궁금하긴 했지만요.”


무언가 정보량이 많은 대답이었다.


“네··· 저는 정도운이라고 합니다. 소문의 진상이라니, 정확히 무슨 얘긴지?”

“아, 그거요. 전대 모험가의 유산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얼마 전부터 이 미로에 대단한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소문이 돌아서요. 뭐 대부분 출처 없는 헛소문이라고 보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 욕심이란 게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최근 밖에서 이미 졸업한 모험가들도 많이 돌아오죠? 그게 다 그 소문 때문이거든요.”

“······그렇군요.”


뭔가 얘기가 많은데, 정보가 부족해서 내용을 따라가기 힘들다.

알렉스는 그제야 시선을 돌려 멀뚱거리는 그를 슥 보더니 눈빛에 이채를 띠었다.


“오호, 이거. 초심자이신 것 같은데 그 탄탄한 균형감, 단련을 열심히 하셨네요.”

“예? 예 뭐···.”


갑작스런 칭찬이라니, 정도운은 조금 쑥스러워졌다.


“오호! 게다가 아직 인지 전인데도 그 정도··· 훌륭하시네요. 조만간 고유 능력을 사용하시겠어요. 아니, 이미 사용하고 있으신가?”

“···?”

“모르면 흘려들어도 좋습니다. 결국 시간문제니까요. 아무튼 단련을 위해 열심히 흘리는 땀은 언제나 보답을 받는 법이죠. 훌륭합니다.”


무슨 말이지.

뭔가 나쁜 사람 같지는 않은데, 정도운은 일단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예,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알렉스가 고기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말했다.


“가시게요? 안 그래도 약탈자들이 성행해서 들어와서는 말동무 구하기가 어려웠는데, 짧은 시간이지만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약탈자들이 좀 많긴 하죠.”


엉거주춤 대꾸한다.


그러고 보니 연막탄 뿌리고 도망친 녀석은 어떻게 됐을까.


정도운은 문득 달아난 약탈자 하나가 동료들을 이끌고 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이미 놓친 걸 고민해봐야 어쩔 수가 없기에 계획대로 탈출구를 찾는 데만 집중하기로 했다.


“저도 즐거웠습니다. 그럼···.”

“꺄아악!”

“?”

“?”


정도운과 알렉스, 두 사내는 비명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분홍빛 양 갈래머리의 여자가 지팡이를 품에 안은 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그녀는 모닥불 주위에 옹기종기 앉은 두 사람을 보며 무언가를 가리켰다.


“오, 선천적인 마술사. 누가 시작의 미궁 아니랄까 봐 소문처럼 좋은 재능이 많네요. 가문에선 왜 이런 곳을 뒤지지 않는지 몰라.”


알렉스가 살짝 놀란 기색을 흘렸고, 정도운은 그녀를 향해 손사래를 쳤다.


“저기,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저희는 약탈자 같은 게 아니에요.”

“거, 거기!”

“예?”

“거기 뭔가 들어갔어요! 천장에서 모닥불로, 뭔가 희끄무레한 유령 같은 게!”

“유령이요?”


그 순간이었다.


오싹!


모닥불에서 시선이 느껴진다. 정도운은 분명, 그렇게 느꼈다. 기분 나쁜 시선이 그 주위에 둘러앉은 두 남자를 ‘보고’ 있었다.


스스스···


마치 맹수가 잠에서 깨고 사정거리 안의 먹잇감들을 살피듯이.


그 기분 나쁜 시선을 그만 느낀 게 아닌 듯, 알렉스도 흥미로운 탄성을 토해냈다.


“오, 이게 말로만 듣던 미궁의.”


쑤우욱.


그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눈앞의 모닥불로부터, 가느다란 허연 밧줄 같은 투명한 줄기들이 우수수 뿜어지며 두 사람을 덮쳤기 때문이었다.


정도운과 알렉스는 거의 동시에 반응했다.


파밧!


두 사람의 신형이 각자 반대편으로 빠르게 튕겨져 나간다.


희끄무레한 촉수 다발은 그들이 있던 자리를 거미줄처럼 메웠다. 그러고도 모닥불 밑에서부터 계속해서 줄기가 뿜어져 나와 그 일대를 허옇고 투명한 줄기로 잠식해가기 시작했다.


사사사삭!


본의 아니게 모닥불을 중심으로, 미로의 길목 하나가 통째로 틀어막힌다.


정도운은 겸사겸사 경고해주었던 마술사 여자를 낚아채 같이 물러났다.


그녀가 있던 자리까지 허연 줄기들이 듬성듬성 뻗어와 자리를 메꾸고 있었다.


정도운은 안전한 거리에서 그녀를 놓아주었다.


“가,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스가각!


모닥불 저 너머, 반대편에서 날붙이로 무언가를 가르는 소리가 났다.

알렉스였다.

몇 번 시도해보던 그는 오히려 성난 하얀 줄기들의 공격 대상이 되며 그걸 피하려고 펄쩍펄쩍 뛰었다.


그러다 지쳤는지 곧 울상이 되었다.


“괜찮습니까?”


정도운이 소리쳤다.

반대편에서 대답이 들려온다.


“안 괜찮네요. 아니 저것 때문에 내 고기가······.”

“아니 지금 그게 문젠가요. 이분 덕분에 목숨을 건졌는데 가기 전에 감사 인사나 하시죠.”

“···쩝. 그렇긴 하죠. 그쪽 분 고맙습니다. 또 볼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만나면 답례하죠.”

“아, 아닙니다.”


갈래머리 여자가 우물쭈물 대답했다.


알렉스는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중심부의 모닥불에 꽂힌 아귀 고기를 보며 울상을 지었지만 별수 없었다.


한동안 이 길은 빼곡한 거미줄로 막혀있을 것 같았다.


“여하튼, 이렇게 됐으니 각자 반대편 길로 가야겠네요. 뭐 인연이 되면 또 나중에 봅시다. 무운을 빌어요 도운 씨.”

“그쪽도 무운을 빌어요.”

“역시 모험은 재밌어. 하하하하···.”

“?”


알렉스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멀어진다.


저 사람, 진짜 마실 나온 사람 같다.


그와 간단히 작별 인사 후, 여자에게 말했다.


“미리 경고해줘서 고마워요.”

“예···.”


끄덕.


“아무튼 저는 이제 탈출구를 찾아 나갈 작정인데. 계속 미로를 탐험하시나요?”

“탈출구요? 어! 저 오는 길에 봤어요. 그리고, 저도 이제 나가려고요.”


그녀는 아까는 아귀들이 있어서 못 들어갔다고 알려주었다.

정도운은 어깨를 으쓱였다.


“아, 그래요? 잘됐네요. 지금은 어떤지 한 번 가보죠.”


얼결에 동행이 된 두 남녀가 석벽 미로를 거닐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대로 탈출구는 정말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이미 모험가들이 지나갔는지, 근처에 아귀 사체가 몇 구 누워있다.


두 사람은 빛의 문 앞에 섰다.


“저는 무루냐예요.”

“예?”

“제 이름이요. 발음이 어려우면 그냥 무루라고 불러주세요.”


특이한 이름이네.


“아, 저는 정도운입니다.”

“구해주셔서 고마워요.”

“에이, 먼저 구해주셨잖아요. 그러고 보면 우리는 서로 도왔으니 서로 구한 셈이네요.”

“서로 구하다···! 네. 그렇네요.”


그 말이 되게 감명 깊었는지, 무루는 마술 지팡이를 꼭 안은 채 다소 홍조를 띄웠다.


“그럼, 나중에 연이 되면 또 보죠. 저는 이만···.”

“네, 안녕히 가세요!”


그녀가 손을 흔들면서 배웅한다. 그 모습을 뒤로한 채 정도운은 먼저 탈출구로 나갔고.


[ 석벽 미로를 탈출합니다. ]

[ 금일의 공략이 정산되어 지급됩니다. ]

[ 석벽 미로의 모험기(冒險記)가 모험의 서에 기록됩니다. ]

[ 수련을 증명하였습니다. ]

[ 생존을 증명하였습니다. ]

[ 집필자의 석벽 미로 공략률 28% ]

[ ······ ]

[ 정산 결과 ]

+대량의 모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4은화 95동화를 얻었습니다.

+능력치 전반이 상승합니다.

+전리품이 배낭에 저장됩니다.


“······오우.”


엄청난 보상과 함께 방으로 귀환했다.



***



석벽 미로의 어느 길 한복판.


두 남자가 먼 길을 가로질러 그곳에 당도했다. 조금 전까지 정도운이 머무르던 길목이었다.


남의인은 뒤에 뻘쭘하게 서 있는 울리를 돌아보았다.


“이 근처인가? 놈이 발견됐다는 게”

“예, 예··· 아마도···.”

“흐음.”


한참을 살피던 그는 곧 고개를 저었다.


“최초 발견 지점부터 갈 만한 곳은 모두 체크하면서 좁혀왔건만, 상당히 활발한 놈이라 그런지 성가시구나. 이만큼 이동했으면 벌써 탈출했을 수도 있겠어.”

“그, 그럼 어떻게···?”

“뭘 어떡해? 못 잡았으면 장기전으로 가야지.”

“그, 그렇습니까? 그렇죠.”

“흐음.”


남의인은 생각했다.

어차피 제이슨이 이끄는 약탈군 본대는 며칠간 주변 청소 및 길을 다져놓는 작업에 열중할 터. 애먼 한 놈을 추격할 여유는 충분했다.


둘은 더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허옇고 투명한 거미줄이 가득한 공간에 이르렀다.


마치 통로 하나가 통째로 틀어막힌 모습.


“···.”


그 광경을 보고 지레 겁을 먹은 울리가 딸꾹질을 시작했다.


남의인은 그를 신경도 쓰지 않고 거미줄의 바깥 부분이 군데군데 잘려 나간 흔적을 유심히 보았다.


“······오호 이건.”

“이건 대체 뭔가요 나리.”


울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건··· 일설에 의하면 모험에 잡아먹힌 모험가가 망령이 된 것이라고들 하지. 내가 보기엔 공신력이 없는 허튼 소문이지만.”

“히, 히익!”

“장난이다. 넌 무슨 놈의 모험가가 이렇게 겁이 많냐?”

“아, 장난이셨군요.”


딸꾹.


남의인이 혀를 차며 덧붙였다.


“이건 단지 괴물의 일종이다.”

“괴물이요?”

“그래, 다만 조금 특이한 괴물이지. 모험은 우리 생각보다 복잡한 차원과 공간에 얽혀있어서, 이렇게 모험과 모험 사이를 자유롭게 이동하며 모험가들을 홀리고, 잡아먹도록 진화한 놈들도 더러 존재한다.”

“홀리고 잡아먹는다고요?!”

“그래, 특히 이놈은 그중에서도 본체가 겉보기에는 영체에 가깝고, 위장할 때도 모험가들의 쉼터로 위장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뭣 모르는 초반 모험가들에겐 더더욱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지곤 하지. 뭐 진짜 위험한 것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딸꾹!”


남의인은 여상하게 말했으나, 실은 꽤 사안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었다. 아니, 위기감이라고 해야 할까.


‘문제는··· 이건 이야기의 중후반을 넘어서 이야기의 흐름이 급격해지고 경계가 불균형해질 때나 간혹 경계를 뚫고 등장하는 놈들이라는 건데. 어제도 그렇고 모험의 진행이 너무 빠르다.’


석벽 미로의 모험은 어제 한 번 초기화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야기 후반부에나 확률적으로 나올 법한 녀석들이 이렇게 빨리 등장할 이유가 없던 것이다.


남의인은 그가 느낀 위기감의 근원을 떠올렸다.


‘어쩌면··· 이대로 가다 모험의 경계가 약해지고, ‘기상 현상’이 일어나는 틈을 타서 무시무시한 외부 존재들이 이 미로에 흘러들어올 수도 있겠어.’


물론 가능성은 아주 낮았다.


“무언가 복잡하네요. 그런 건 처음 들었습니다.”


울리가 눈치를 보며 말했다.


“모르겠으면 지금은 어차피 알 거 없다. 자, 놈의 행동반경으로 유추되는 곳은 전부 훑은 것 같으니, 조금만 더 돌아보고 우리도 나가도록 하자. 뭐 받는 것도 없는데 적당히 시늉하면 퇴근해야지.”

“예, 예이.”


두 사람은 그렇게 다음을 기약하며 현장을 떠났다.


잠시 후.


그들이 떠난 모닥불을 주위로 퍼진 희끄무레한 줄기들이 하나둘 회수되더니, 어느 순간 쪼로록 흡수되어 다시금 평범한 모닥불의 형태로 돌아갔다.


뒤이어 흐릿한 영체가 모닥불의 불꽃을 통해 천장으로 스며든다.


이히히히히···


잠시 후, 미로의 벽 너머에서 어느 존재의 귀곡성 같은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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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던전 공략 24.09.01 17 1 17쪽
11 등잔 밑이 어둡다 24.08.10 18 1 14쪽
10 밖으로 24.08.07 29 1 15쪽
9 영웅과 악당 24.08.04 42 1 19쪽
8 석벽 미로 (7) 24.08.02 43 1 16쪽
7 석벽 미로 (6) 24.07.31 71 3 13쪽
6 석벽 미로 (5) +2 24.07.29 50 4 14쪽
5 석벽 미로 (4) 24.07.28 53 4 21쪽
» 석벽 미로 (3) 24.07.25 88 4 18쪽
3 석벽 미로 (2) 24.07.24 61 3 21쪽
2 석벽 미로 (1) 24.07.23 76 4 15쪽
1 모험의 시작 24.07.23 94 3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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