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권력급 파일럿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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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3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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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30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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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 천유화

DUMMY

“네. 기본적인 질문은 여기까지 할게요. 이 정도면 매우 정상적이세요. 바로 사회로 돌아가셔도 되겠는데요?”


자신을 귀환자 대책 본부의 정신건강검진관이라고 소개한 여자가 밝은 얼굴로 종이를 넘겼다.

종이는 간단한 질문들이 적힌 설문지였다.


이름을 한글로 쓸 수 있는가. 한 번 써보라고 해서 기억나는 대로 썼다. 삐뚤빼뚤하지만 철자가 틀리진 않았다.

혼자서 제거하는 게 불가능했던 파일럿 슈트에 한글이 적혀 있어서 아예 다 까먹지는 않았다.


자신이 몇 년에 게이트에 휘말렸는지,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는가. 그것도 기억나는 대로 썼다.


“이걸 비정상적으로 대답하는 인간들도 있습니까?”


그 외에, 다른 설문들의 내용은 심상치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을 죽이고 싶은가? 당연히 아니오라고 썼다.

지금 당장 무언갈 부수고 싶은 충동이 듭니까? 이것 역시 아니오라고 썼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다르게 이런 질문들이 그다지 비정상적인 것이 아닌 듯 직원이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다른 종이를 꺼내 나를 향해 내민 직원이 말했다.


“천 귀환자님 생각과 다르게 과격한 답변이 꽤 많아요. 답변 이전에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고요. 귀환자 분들은 생존에 집중해와서···비교적 덜 사회적인 분들이 계시거든요. 그 종이에는 인적사항을 기억나는 대로 써주시겠어요? 그걸 토대로 신원 조회가 들어갈 거에요.”


이름. 가족. 친인척. 지인. 주민번호. 주소지. 출신 학교 등등을 적는 칸이 있었다.

이름은 천유화. 가족은 누나 한 명뿐. 친인척은 없다. 사실 있는데, 얼굴 한 번 본적 없다.


지인은 기억나는 친구 이름들을 적었다. 주민번호는 뒷자리를 잊었고, 살던 동네의 모습은 떠오르지만 주소의 형태로는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학창시절 다녔던 초중고는 없어진 지 오래기에 마지막으로 내가 졸업한 학교를 적었다.


우주군 사관학교.


“다 작성했습니다.”


종이를 돌려주자 직원이 조심스럽게 받아 노트북에 옮겨적기 시작했다.

이내 직원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혹시, 천유화 선생님?”

“예.”

“수배가 되어 있으신데···혹시 알고 계셨나요?”

“어떤 수배 말입니까?”

“···군법 위반으로요.”


직원이 한 손으로 노트북을 돌리며 다른 한 손을 책상 밑으로 가져갔다.

작은 딸깍 소리. 유화는 직원의 얼굴을 잠시 응시하다가 노트북으로 시선을 옮겼다.

1급 기밀. 혐의는 명령 불복종과 반란 모의. 화면의 붉은 경고창 때문에 수배 이력을 제외하고는 다른 신원을 조회하는 게 불가능한 모양이었다.


“그것도 군법···관련이라서, 이게, 저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그래서 문제가 뭡니까?”

“잠시만···요. 책임자분을 불러올게요.”


얼굴이 굳어진 직원이 자리에 일어나 뒷걸음질로 방을 나갔다.

군법을 위반해서 수배된 데다가, 명령 불복종에 반란 모의.

누가 이런 짓을 벌였는지 짐작이 갔다.

되지도 않는 짓거리를. 유화는 짜증이 확 치솟는 것을 느끼며 책임자라는 사람을 기다렸다.


“천유화 씨?”

“예.”


정장을 입은 중년 남성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뒤에는 방금 그 검진관이 겁먹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꿀꺽.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를 내며 다가온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6급 강주현 팀장입니다.”

“예.”

“······.”

“아.”


악수. 손을 내민 채 가만히 굳어 있는 남자를 보고 그 손의 의미를 깨달은 유화는 그와 악수를 나누었다.


“그렇죠. 악수를 했었죠. 원래 사람은.”

“아닙니다. 귀환자시니까요.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정신건강관리팀 6급 강유현 팀장입니다.”

“반갑습니다. 천유화입니다.”

“예. 천유화 귀환자님? 다름이 아니라 아주 특이한 케이스라고···저희 직원에게 전달받았습니다. 혹시 잠시 말씀을 나눌 수 있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이고서 웃는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팀장이라는 이 남자 역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귀환자들 중에는 미친 또라이들이 많다고 하지 않았는가. 심지어 유화는 군법 위반으로 수배되어 있었다.


오해는 천천히 풀어야지.


“커피 좋아하십니까?”

“예전엔 많이 마셨는데···지금은 좀. 물 있습니까?”

“있습니다. 예나 씨? 물이랑 커피 좀 부탁해. 다과도 있으면 좋고.”

“네···!”


검진관을 내보낸 강 팀장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먼저 천유화 씨께서 무사히 귀환하셔서 다행입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혹시나 숨기고 있는 사실이 있으면 사실대로 말씀해주십시오.”

“사실대로?”

“이미 들으셨겠지만 천유화 씨는 군법 위반으로 수배가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수배 이력을 가진 귀환자가 없는 건 아니지만 군법은 없었고···무엇보다 신원 조회가 불가능한 1급 기밀로 분류된 경우는 처음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만약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에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정말 게이트에 휘말린 게 맞고 오늘 귀환한 게 맞는지 등등의 사항을 가능한 자세히 말씀해주십시오. 그래야 저희가 천유진 씨를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하. 기가 차서 헛웃음만 나왔다.

유화의 반응을 거절로 생각한 것인지 강 팀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예. 알겠습니다. 저희 선에서는 더 이상 도와드릴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곧 군에서 관계자가 올 겁니다.”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물과 과자를 가지고 들어온 직원과 마주쳤다.

그녀는 팀장과 무언가 눈빛을 주고 받더니 냉큼 물과 과자만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그를 뒤따라 방에서 나갔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방 안에서 유화는 과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게 아직도 있네.”


익숙한 은색 포장지를 뜯자 은은한 버터향이 올라왔다.

연한 갈색의 비스킷 위에서 반짝이는 설탕 가루. 어릴 때 많이 먹은 과자였다.


“과자가 생산될 정도로 복구가 진행됐나.”


놀라운 일이었다. 유화가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까지 과자는 대부분 생산이 중단됐으니까.

인조 고기. 인공 작물. 그리고 감자를 제외하면 먹을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그나마 전쟁 8년차부터 조금씩 복구가 시작되긴 했다.


“으음.”


와작. 입안에서 비스킷이 부서졌다.

그 향과 맛을 음미하던 그는 테이블 위의 물이 담긴 페트병을 보고 아까의 결정을 후회했다.


커피로 할걸.


그래도 멀쩡한 물을 마실 수 있는 게 어딘가. 그것도 꽤 시원하기까지 했다.

비스킷 말고도 다양한 종류의 과자가 있었다. 과거의 향수를 느끼면서 유화는 그 과자들을 하나씩 집어먹기 시작했다.

초콜릿으로 코팅된 길쭉한 마시멜로 케이크를 먹고 있을 때 문이 벌컥 열렸다.


“합참 법무실에서 나왔습니다. 천유화 예비역 대위, 맞습니까?”


비스킷 위의 설탕가루처럼 반짝이는 무궁화 두 개가 부착된 베레모를 쓴 남자 한 명. 그리고 다이아몬드 세 개를 달고 있는 여자 한 명이었다.

남자는 초록색이 섞인 육군 군복. 여자는 푸른색이 섞인 해군 군복. 흘끗 인상착의를 살핀 유화는 그들을 무시하고 마저 과자를 씹었다.


“천유화 대위, 맞습니까?”


중령의 목소리가 커졌다. 나는 과자를 꼭꼭 씹어 삼키고 물을 들이켰다.

어느새 내용물이 반 이상 사라진 페트병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나서 입을 열었다.


“그러는 그쪽은?”

“···뭐?”

“그쪽은 누구냐고. 그쪽 소개가 먼저 아닌가?”


손가락을 비벼 설탕 가루를 털어내고 마주 본 남자의 얼굴은 아주 험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못생긴 얼굴이라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나는 시선을 옮겨 그의 오른쪽 가슴의 명찰 부분을 보았다.


최석민.


명찰 위의 병과 마크는···너무 오랜만이라서 기억이 안 난다. 주민번호도 까먹었는데 병과 마크를 어떻게 기억할까.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면 딱 하나다. 전쟁 중에 아무런 활약도 하지 않은 이들. 비전투 병과, 그중에서도 전쟁과 전혀 연관이 없는 이들이었다.


“법무실이면 법무 장굔가? 아니면 군사 경찰? 앵무새야, 아니면 개새끼야? 누가 보내서 왔냐?”

“···뭐, 뭐라고?”

“누가 보내서 왔냐고. 내 신상이 군사 기밀이고 내가 군법 위반자라는데, 그럴 사람은 한 명 밖에 없거든.”


떠올리기만 했는데 이가 갈렸다.

10년. 유화가 게이트에 들어가 있는 동안 흐른 현실의 시간. 10년이면 아직 그놈은 현역일 것이다. 일본 훗카이도가 박살 났을 때 대한민국은 영토를 온전히 보존했고, 그 중심엔 우주군의 활약이 있었으니까.

그놈은 그 초기 우주군의 장성이었고, 그 시절 그 공로를 몽땅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놨으니.


“이봐 천유화. 네가 실종된 기간을 포함해도 내가 나이도 더 많고 너보다 군번도 빨라. 그런데 태도가 그게···.”

“사관학교 출신은 아닌 것 같은데, 합참에서 나온 거면 법무 장교. 변호사 시험 간신히 합격하고 검사나 판사는 고사하고 로펌 들어갈 머리도 안 돼서 입대한, 돈도 없고 빽도 없고 공부도 못하는 앵무새.”


전쟁 이후 엘리트 검사 변호사들이 징집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지만 유화보다 군번이 빠르면 전쟁 이전에 임관했다는 뜻이었다.

어중이떠중이였다. 법무 장교라면 군 내부에서는 위상이 높고, 합참이면 나름 능력도 있겠지만 애초에 유화는 법무 장교니 군사 경찰이니 하는 치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런 놈이, 하다못해 우주군 출신도 아닌데 나한테 왜 상관 대접을 바라지? 그리고 나이대접도 바라지 마. 내가 저기서 몇 년을 썩었는데.”


천유화는 고개를 돌려 여자 쪽을 보았다.

중령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대위 쪽은 아니었다. 마나를 다룰 줄 아는 헌터.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 않고 유화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하. 참. 어이가 없군. 이봐, 천유화. 네가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 같은데 내가 너 감옥에서 평생 썩게 만들어 줄 수 있어! 지금이라도 사실대로 말하면···.”

“군에서 나랑 얘기를 할 생각이었으면 최소한 나를 아는 사람을 데려와야지. 합참? 우주군은 CDA 소속 아닌가? 댁이 날 감옥에 넣을 순 있고?”


유화는 테이블 위 과자를 다시 가져와 포장을 뜯었다.


“댁들한테 일 시킨 사람 데려와. 아니면 내가 아는 사람 데려오던가.”

“뭐?! 너 이 새끼 지금 뭐라고···!”

“꺼지라고.”


거의 들릴 듯 말 듯 한 작은 소리로 대위가 최석민을 향해 뭐라고 속삭였다.

분을 삭이는 듯 주먹을 쥐고 이상한 소리를 내는 최석민을 뒤로 하고 여자가 입을 열었다.


“참모차장님께서 저희를 보내셨습니다. 천유화 대위 당신의 그간 행적을 조사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할 말 없는데.”

“천유화 대위 당신은 지금껏 어디에 있다가···.”


유화는 반만 남은 비스킷 쪼가리를 집어던졌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날아간 비스킷이 벽에 금을 남기고 부서졌다.

최석민이 뻣뻣하게 고개를 돌리더니 후두둑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과자 부스러기들을 멍한 표정으로 보았다.


“미친 새끼가···.”

“강재구 데려와.”


본체는 최석민이 아닌 대위 쪽인 듯 했다. 유화는 그녀를 향해 말했다.


“아니면 이서진이나. 아, 유소은도 있고 김태원도 있어. 걔들 다 현역이지?”

“······.”

“아니면 얘기 안 해.”

“말은 해보겠습니다. 부장님, 잠깐 진정하고 다시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대위의 말에 최석민이 멍청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밖으로 나갈 때까지 최석민의 시선은 유화가 비스킷을 던졌던 벽에 고정되어 있었다.




#




“씨발 웬 미친 새끼가···.”


밖으로 나온 최석민이 베레모를 벗어던지며 욕을 씹어뱉었다.


미친 새끼. 또라이 새끼.

천유화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그런 반응을 보인 참모차장님의 반응이 이해가 되었다. 최석민도 그의 반응에 백 번 공감할 수 있었다.

심지어 10분 남짓 본 자신과 다르게 참모차장님은 한때 그를 부하로 두지 않았던가. 심지어 미친개로 이름을 날리던 파일럿 시절에 말이다.

최석민은 몸서리를 치며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뭐 좀 알아낸 게 있나?”

“···없습니다.”

“없다니, 넌 또 씨발 무슨.”

“감지되는 게 없습니다. 과거 기록을 보면 비각성자라고 하는데···.”

“뭐?”


최석민은 괜히 화를 풀기 시작했다.


“씨발 방금 그거 못 봤어? 비각성자라고? 무슨···뭐, 뭐라고?”

“하지만 마나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과자를 집어 던져서 벽을 부쉈다고! 금 간 거 똑똑히 봤잖아! 근데 뭐, 비각성자라고?”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본 것만을 다시 이야기할 뿐이었다.


“네. 느껴지는 게 없습니다. 과자를 던졌을 때도요. 그는 비각성자입니다. 실종을 가장하고 몸을 숨겼을 가능성은 전무합니다. 그는 귀환자가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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