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권력급 파일럿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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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 천유화

DUMMY

서예나가 음료수를 주문해 가지고 오는 사이에 유화의 시선은 줄곧 꼬마가 가진 장난감으로 향해 있었다.


불의 거인, 땅의 거인, 나무 거인 그리고 바다 거인.

메카닉. 타이탄. 슈퍼 엑소슈트. 기동형 2족 장갑 병기 등등. 현재의 ‘메카’가 온갖 명칭으로 불렸을 시절의 초기 프로젝트. 미국으로부터 기술을 공유받아 만든 1.5세대 메카닉.


37회.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도 까먹은 유화가 기억하는, 바다 거인을 탑승하고 출격한 횟수.


‘장난감이네.’


파일럿의 신분은 기밀이었지만 전고만 50m가 넘는 거인까지 기밀이긴 힘들었다.

하지만 쌀도 구하기 어려워서 감자나 먹던 전쟁 이전엔, 메카가 아무리 유명하더라도 장난감으로 만드는 건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장난감.’


하지만 유화의 시선 끝엔 자신이 탑승했던 메카의 장난감이 있었다. 팔과 다리의 관절이 움직이고 머리도 돌아가는, 꽤 잘 만들어진 장난감.

카페의 테이블 위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꼬마는 포장 주문한 음료수를 든 모친의 손을 잡고 카페 밖으로 향했다.

그들이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고 나서야 유화는 트레이에 음료 두 잔을 받아 들고 오는 서예나를 볼 수 있었다.


“진짜 괜찮, 으시죠?”

“···예.”

“혹시 안 좋은 생각이 들거나 하시면 바로 말씀해주셔야 해요. 저는 담당 겸 선생님 검진관이니까요. 아시겠죠?”

“알겠습니다.”

“네. 그럼 여기 주문하신 딸기 스무디에요. 차가우니까 조심해서 드세요.”


말없이 빨대를 꽂아 냉기가 흐르는 스무디를 한 모금 마시자 머리에 살짝 두통이 일어났다.

차가운 걸 먹는 게 얼마 만인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까마득한 옛날 일이라는 것만 기억할 뿐.


‘세상이 달라졌네.’


그제야 유화의 눈에 풍경이 들어왔다.

매연과 화재 때문에 스모그로 가득 찬 하늘이 아니었고, 상한 음식물처럼 거무칙칙한 보랏빛 하늘도 아니었다. 하늘의 한구석에서 달이 은은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을 정도로 세상이 푸르렀다.

동기화 때문에 복용한 모르핀의 부작용에 시달릴 필요도, 언제 어디서 누가 목숨을 노려올지 몰라 두려움에 떨어야 할 필요도 없었다.


‘전쟁 이전처럼.’


달 전선과 궤도 전선이 무너졌다는 강재구의 말이 떠올랐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 이 풍경도 전쟁이 긑나서 찾아온 평화가 아니라 시간이 지나서 복구가 된 결과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유화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 중 하나는.


‘전쟁이 끝나긴 할까.’


강재구의 말이 떠올랐다. 달 전선과 궤도 전선이 무너졌다고.

전쟁의 승리를 위한 초석이자 최소한의 방어를 위한 마지노선. 전쟁 초기의, 머리 위에서 언제 거수가 떨어질지 몰라 불안에 떨어야 했던 전황이 뒤바뀐 것이 달을 되찾은 이후였다.

목숨 걸고 사소해도 모자랄 전선이 무너진 채 둔다는 건, 굳이 달에 전선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거수가 지구에 떨어졌을 때 실보다 득이 더 많다.’


고층 빌딩을 상회하는 높이에 수천 톤이 나가는 거수들은 존재 자체가 위협적이다. 놈들이 바다에서 활개칠 때는 미해군의 함대가 남아나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거수의 존재는 동시에 축복이기도 했다. 코어는 원자력을 뛰어넘는 에너지원이었고, 피에 담긴 양분은 오염된 바다를 살려냈다. 가죽은 신소재로, 내장은 의약품이 되었다. 핵폭탄이나 토마호크를 쏟아붓는 대신 메카를 운용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선생님?”

“···예?”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민트 프라페에 초콜릿과 휘핑크림이 잔뜩 올라간 음료수를 마시던 서예나가 유화를 향해 물었다.

잠시 그녀와 눈을 마주보던 유화가 물었다.


“혹시 나이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네? 어···저 올해 잠깐, 제가 올해 몇 살이죠? 스물다섯···?”

“······.”

“그, 그렇게 보지 마세요. 선생님도 자기 나이 모르시잖아요···자, 잠깐 헷갈린 거에요. 제가 47년에 열네 살이었으니까 지금···.”

“스물다섯이겠네요.”

“아, 앗. 네. 맞아요. 스물다섯. 그런데 나이는 왜···?”


유화가 게이트에 들어간 건 전쟁 발발 11년차였다. 그때 열네 살이었다면 전쟁 직전에 태어난 아이라는 뜻이 아닌가.

아까 장난감을 들고 있었던 그 꼬마보다 더 어린 나이.


“그냥, 궁금해서요.”

“네···?”

“제가 머무를 때는 이렇게 평화롭진 않았거든요. 언제부터 그렇게 됐는지 궁금해서요. 검진관님이 혹시 전쟁 후에 태어났으면 모르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물어봤습니다.”

“어···아, 어. 아.”

“왜 그러십니까?”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 그···선생님이 실종되신 게 47년이죠? 그때쯤부터 조금씩 나아졌던 것 같아요.”


얼굴이 붉어진 서예나는 시선을 피하면서 빨대로 음료수를 휘적거렸다.

왜 저러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유화는 딸기 라떼를 홀짝이며 귀를 기울였다.


“그 전에는 되게 힘들었잖아요? 저 초등학교 때 일주일에 한 번씩 우유가 나왔는데 전쟁 전에는 그게 매일 나오는 거였대요. 급식에도 맨날 감자 섞어서 주고···저 중학생 때부터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해서 고등학교 때는 괜찮아졌던 것 같아요.”

“특별한 이유 같은 게 있었습니까?”

“아뇨? 그런 건 없었고 그냥 천천히 나아졌어요. 그래도 한국은 전쟁 전에 잘사는 나라였으니까 금방 복구했고 가난했던 나라는 아직도 가난하고. 아, 뉴스에서 봤는데 전세계적으로 거수랑 마수로 인한 피해가 줄면서 복구에 가속도가 붙었다고 하긴 했어요. 인류가 유리해지기 시작했다고 다들 막 그랬거든요. 극지방만 아니면 게이트도 거의 다 실시간으로 관리하고 있고요.”


메카와 파일럿들은 능숙하게 거수를 토벌하고, 헌터들은 마수를 사냥한다.

전쟁으로 보는 이득이 피해를 넘어섰을 때부터 유리하다고 판단했으리라.

이제 세상은 더 많은 거수가 지상에 떨어지는 것이 이득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 같은 전쟁꾼은···환영받진 못하겠지.’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부터 그랬는데 지금은 더더욱 그렇겠지.

유화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얼음이 녹아 밍밍해지기 시작한 딸기 스무디를 한 모금 삼켰다.


“저도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괜찮을까요?”

“예.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선생님은 그···전쟁 전에 군인이셨잖아요? 그것도 우주군 파일럿이요. 선생님이 겪으신 전쟁은 어떤···거였나요?”

“······.”

“저희 부모님은 춥고 힘든 시절이라고 하셨어요. 저는, 음 배가 고팠는데···선생님은 어떠셨는지, 궁금해서요.”

“힘들었습니다. 조금 많이.”

“···아.”


프라페를 휘적거리던 서예나가 입을 다문 유화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혹시···끝, 이에요?”

“우울한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아서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우울한 얘기 밖에 없네요.”

“아···밝은 얘기는 없을, 까요?”

“굳이 말을 하자면 음···제가 현역 시절에 울릉도 기지에 있었거든요. 폭풍이 많이 쳤습니다. 파도도 많이 치고.”

“앗, 네! 네, 그래서요?”

“하루는 기지 밖으로 나왔는데 뭐에 뺨을 맞아서 보니까 물고기 한 마리가 퍼덕거리고 있었습니다.”

“진짜요?”

“예. 아프더라고요. 얼굴에 비늘 묻어서 비린내도 심했고.”

“그게 뭐에요···.”


서예나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작은 웃음이 이내 커지기 시작했다. 소리를 내면서 웃다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그녀는 입을 가리고 한동안 끅끅거렸다.


“진짠데. 그걸로 매운탕도 끓여 먹었습니다.”

“못 믿겠다는 게 아니라 너무 어이없게 웃겨서···무슨, 무슨, 물고기한테···. 아니 매운탕은 또 뭐고요···.”


한참을 실실거리며 웃던 서예나는 살짝 흘러나온 눈물을 손가락으로 훔치고는 손을 배로 가져갔다.

너무 많이 웃어서 배가 아프다고 중얼거린 그녀가 얼마 남지 않은 프라페를 마무리 지었다.


“다행이에요.”

“매운탕 끓여 먹은 게 말입니까?”

“아뇨. 매운탕 말고요···. 선생님한테 안 좋은 기억만 있는 게 아니라서요.”

“······.”

“귀환자는 기본적으로 게이트에 휘말렸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들이잖아요? 그 사람들 중에는 제 발로 게이트 안에 들어갔던 사람도 있어요. 세상이 미워서···안 좋은 기억 밖에 없어서 차라리 게이트 너머가 낫겠다고.”


내용물이 남지 않은 프라페 잔을 빨대로 휘적거리던 서예나가 유화의 표정을 슬쩍 살폈다.


“그런 사람들은 이계에서 얻은 힘을 안 좋은 생각을 가지고 쓰는 경우도 있어요. 차차 말씀드리겠지만···선생님은 그럴 분은 아닌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그렇게 봐주시니 고맙네요.”

“그냥 하는 말 아니에요. 정말로. 제가 봤던 귀환자들 중엔 선생님이 제일 괜찮으신 분 같아요. 오늘 하루 밖에 못 보긴 했지만···. 다, 드셨어요?”

“예.”

“저희 이제 슬슬 돌아가야 하거든요. 잔 저 주세요. 반납하고 올게요.”

“제가 반납하고 오겠습니다.”

“엇···그, 러셔도 되겠어요?”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요.”


유화는 트레이를 들어 카운터를 향해 가져갔다. 설거지를 하던 직원이 손을 털고 다가와 트레이를 받아가며 밝은 목소리로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를 외쳤다.

밖으로 나가기 위해 몸을 돌리자 서예나가 조금 걱정 섞인 시선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멀쩡히 문밖으로 나오니 안심이 되었는지 작게 한숨을 지었다.


“해가 거의 다 졌네요.”


노을이 지고 있는 풍경. 오랜만에 돌아온 세상은 썩 나쁘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지만, 전쟁이 끝났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현역은 무슨 현역이야.’


그 풍경을 보면서 걷다 보니 복귀에 대한 마음이 반대쪽으로 확 기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파일럿은 아니다. 복귀는 아니었다.

이런 세상에, 유화 자신은 필요하지 않으리라.

그리고 전쟁 이전에 가까워진 세상에선 나름 자신의 삶을 되찾고 싶다는 욕심도 들었다.


‘다시 게임이나 할까.’


아니.

무슨 일이든 새로 도전해도 되겠지.

그렇게 노을이 지는 것을 보며 걷다보니 옆에서 서예나가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초과근무.”

“예?”

“아, 아니에요. 혼잣말이에요. 규정상 외출은 해가 지기 전에 돌아와야 해요. 그···제가 말씀드린 그 사례 때문에요. 다음에 만약 저 없이 외출하게 되시면 이 점 꼭 숙지하셔야 해요.”

“알겠습니다.”

“돌아가면 숙소로 안내해드릴게요. 음, 그리구 내일은 정밀 검진이 있을 예정이에요. 제가 내일 아침에 숙소로 갈 테니까 미리 준비하고 계시면 될 것 같아요.”

“정밀 검진, 말입니까?”


자기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싶어서 유화가 되물었다.


“네. 선생님 인체에 있을 이상 여부 같은 걸 확인하는 거에요.”

“그럼 어제 한 건 뭡니까?”


탑에서 귀환자 관리 본부로 오자마자 온갖 검사를 받았다. 한밤중에 시작해서 새벽까지 이어졌고 그 뒤로 곧장 아침부터 정신 검진을 받기 시작해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 검사들은 대체 뭐였지. 유화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쿡쿡 소리를 내며 웃은 서예나가 말했다.


“아마 기초적인 검사일 거에요. 혹시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지는 않나, 하루라도 빨리 조치해야 할 병이 있지는 않나 하는 거요.”

“···그게 기초적인 거면 정밀 검사는 얼마나 걸립니까?”

“그렇게 오래는 안 걸릴 거에요. 기초 검사는 어려운 검사도 많고 결과가 빨리 나와야 하니까 그런 건데 내일 받을 검사는 종류는 많아도 그렇게 어려운 것들은 없거든요. 아, 그리고 내일 면회 있으세요.”

“면회요? 누가 말입니까?”

“우주군 사령부···에서 김기태 소령이라는 분이 신청을 하셨는데, 혹시 아는 분이세요?”


김기태? 모르는 사람이다.

유화가 고개를 젓자 눈을 가느다랗게 뜬 서예나가 말했다.


“면회는 거부하실 수 있는데, 모르시는 분이면 거부하실래요?”

“아뇨. 만나보겠습니다.”


우주군 사령부에서 왔다면 강재구가 보낸 사람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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