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권력급 파일럿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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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귀

DUMMY

자신의 거처가 된 아파트. 귀환자들에게 배정된 숙소에 도착한 유화는 오늘 받아온 물건들을 간단하게 테스트하기 시작했다.

약물 종류를 제외하고 일단 받기는 했다. 쓸모없어 보이기도 했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또 자기 주려고 구해왔다는 검사관의 말을 들으니 막상 거부하기도 조금 그랬다.


대부분은 검사관이 설명한 그대로의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허리띠, 안경, 페이스 마스크.

고질적인 마나 중독을 해결할 정도로 많은 양의 마나를 빨아들이지는 못했다. 강재구가 부관을 통해 전달해준 홀로폰으로 검색해보니 실제 헌터들이 사용하는 물건은 마나의 효율과 관련된 부분에서 상당히 공을 들인 게 그 까닭인 듯했다.


‘그 와중에 이건···.’


마나 코어. 이놈은 물건이었다.

홀로폰으로 검색해봐도 아직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기사만 나왔다. 학자들은 만들 수만 있다면 지상의 전쟁의 판도가 뒤바뀔 거라나.

그러면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이 물건은 대체 뭘까. 프로토타입? 아니면 완성이 되었는데 아직 공개만 안 했을 뿐인 완제품?


‘그 검사관은 대체 뭐지?’


신세를 졌다고 하는데 전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녀가 자신의 얼굴을 알면 모를까 어제는 파일럿을 잘 모른다고 하지 않았던가.


‘속초랑 동해?’


너무 많이 오간 곳이라 정확히 언제쯤 그런 일이 있었을지 짐작하는 것도 어려웠다.

강원도 해안가로 향한 건 횟수로만 따져도 수십 번이다. 거수가 낙하하면서, 혹은 거수를 죽이는 것과 동시에 게이트가 열리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니 유화가 메카에 탑승해 있을 때 헌터들은 지상에서 게이트를 닫았다.


그 지상의 헌터들 중 한 명이었을까.

전쟁 초기에는 각성의 징후만 보여도 나라에서 징집해 갔으니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지금은 나이나 부상 같은 이유로 은퇴하고 이곳에서 일하는 것이리라.


‘군인만큼 많이 갈려 나갔었지.’


사람 목숨이 중요하지 않은 시대였다. 그것을 몸으로 겪은 유화는 수석검사관에게서 약간의 동병상련을 느꼈다.

어쩌면 이 마나 코어를 넘겨준 것도 검사관이 자신이 느낀 것과 비슷한 감정을 느낀 까닭일 수도 있고.

완전히 충전되어 번쩍거리는 붉은 빛을 뿜어내는 마나 코어를 잠시 내려다보던 유화는 이내 그것을 주머니에 집어 넣고 숙소로 들어가기 위해 발을 옮겼다.


-쿠웅.


그때 귓가와 발밑을 울리는 거대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 진동의 출처는 다름 아닌 유화가 들어가려던 귀환자들의 숙소였다.

이건 또 뭐야. 유화는 아파트 현관을 넘으려던 발걸음을 뒤로 물리고 진동이 그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진동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커졌다. 가까워지는 진동을 느낀 유화의 손이 페이스 마스크 쪽으로 향했다.


“흠···?”


경계심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시선에 들어온 것은 광택을 내며 번쩍이는 새카만 인간 형상의 기계였다. 특이한 점은 커다란 후드티를 입고 있다는 걸까.

키가 거의 3m에 달하는 거대 안드로이드는 유화를 마주치자 사람 같은 침음성을 내면서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모니터를 돌렸다.

이윽고 모니터에서 반달 모양의 불빛이 떠올랐다.


“못 보던 얼굴인데, 새 입주자인가?”

“···414호. 어제 들어왔는데.”

“앞집 이웃이었군. 413호의 GB-11 박성호다. 잘 부탁하지.”

“지···뭐?”

“GB-11. 게이트 브레이커 11형 모델이라는 뜻이다.”


전신이 기계로 이루어진 사람도 본 적 있다. 검사관의 말이 스치듯 떠올랐다.

사람. 살점 하나 없는 쇳덩이였지만 눈앞에 있는 건 분명 사람이었다.


“내 모습이 신기해 보이는 모양이군.”

“···조금.”

“이해한다. 특이한 모습이지. 나는 게이트를 넘어가며 원래 몸을 잃고 이 기계 몸에서 의식을 되찾았다.”

“그 기계 몸이 게이트 브레이커 11형···그 모델인가?”

“정확하다. 내가 넘어간 세계는 문명의 지배자들의 궂은 일을 기계들이 도맡아 하는 곳이었다. GB-11은 게이트를 파괴하고 차단하기 위한 전투형 기체다.”


게이트. 다른 세계와 지구를 잇는 문.

울산 앞바다에 나타난 그래비티혼이 유화의 손에 쓰러지며 생성된 게이트가 1000개가 넘었다. 그렇게나 많은 게이트가 모두 하나의 세계로 이어질 리 없었다.

만약 모든 게이트가 같은 세계로 이어졌다면 유화는 누나를 찾을 수 있었을 테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을 게이트 너머의 세계에서 마주쳤겠지.

단 한 번도 지구 출신의 사람을 마주친 적이 없다는 것에서 게이트가 각기 다른 수많은 세계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기술이 많이 발전된 세계였나 보네.”

“그만큼 삭막한 세계였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이름을 듣지 못했군. 귀인의 이름은 무엇인가?”


전혀 적의가 느껴지지 않는 말투에 유화는 경계심을 풀었다.

GB-11 그 모델명 뒤에 붙어 있었던 이름 박성호. 게이트를 넘어가기 전까지 사용했을 이름이 아닐까.

그가 사람임을 확신한 유화는 부드러운 어조로 대답했다.


“천유화.”

“천유화.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실례가 아니라면 검색해봐도 되겠나? 분명 어디선가 들어봤는데···흠.”

“조금 유명했지. 오래되서 검색 결과가 나올지는 모르겠는데.”

“음. ‘딥 블루’라는 닉네임을 쓰는 프로게이머였군. 뉴스에서 본 적 있다.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 금메달리스트?”

“그거 나 맞아. 옛날 일이지만.”

“마지막 활동이 20년 전이군. 하긴, 전쟁이 발발하고 게임은 사치 활동이 되었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지.”


박성호의 말에 유화가 쓴웃음을 지었다.

유화가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던 게임은 미국의 본사가 거수의 침공으로 쑥대밭이 되면서 하루아침에 서비스가 종료되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전쟁 초기에 게임을 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귀인 역시 게이트에 휘말린 모양이군. 그런데 어제 돌아왔다고?”

“입주한 건 어제, 귀환은 그제.”

“3일 차라고는 믿을 수 없는 적응력이군. 외관부터 멀쩡해 보여서 나는 위기관리부나 국세청에서 찾아온 줄 알았다. 아무튼, 기왕 이웃이 되었으니 앞으로 잘 지내면 좋겠군. 어떻게 부르든 상관없지만 개인적으로는 박성호라고 불러주었으면 한다.”


八(^□^*)


생전 처음 보는 텍스트로 된 이모티콘 같은 표정이 모니터에 떠올랐다.

무슨 뜻이지? 혼란스러워하던 유화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은 채 그를 잠시 응시했다.

다시 원래대로 표정을 되돌린 박성호가 머쓱한 듯 후드티를 입은 채로 뒤통수를 긁적였다.


“음. 아무래도 어색한가 보군. 예전엔 이런 것도 많이 썼는데.”

“···어. 조금 당황스럽네. 아무튼 호칭은···박성호 씨, 이렇게 부르면 될까?”

“귀인이 편한 대로 불러라. 놓는 것이 편하다면 놓고 필요하다면 내가 귀인에게 존칭을 사용하지.”

“왜? 나쁜 뜻이 아니고 나보다 나이, 아니 연식, 아무튼. 나보다 나이는 더 많아보이는데.”

“방금 내 시스템이 귀인을 분석하며 최소한 수백 년은 살아온 존재라고 말했다. 오류일 가능성도 있지만 나는 내 분석 시스템을 신뢰한다. 원래 나이와 가동 연수를 합쳐도 귀인만큼은 되지 않을 것 같아서 한 제안이다.”

“······.”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그를 향해 모니터를 갸우뚱 기울인 박성호가 말했다.


“나는 이제 곧 위기관리부에서 진행하는 게이트 파괴 작전에 참여해야 한다. 작전이 끝나고 시간이 생기면 귀인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내가 먼저 찾아가도 되겠나?”

“별로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닌데. 그래도 괜찮으면.”

“내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지 않았나? 나도 그런 류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한밤중만 아니면.”

“동의의 뜻으로 받아들이지. 즐거운 대화였다. 천유화.”




#




“장관님! 방금 막 탑에서 온 소식입니다!”


특별 위기 대책 관리부, 통칭 위기관리부의 장관 심주현은 집무실에서 사색에 잠겨 있었다.

고요한 사색을 깨뜨리는 급박한 목소리에도 그는 눈을 감은 채 최대한 흐트러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물었다.


“죄, 죄송합니다. 그, 연락이 안 닿아서, 급한 건이라···.”

“뭔가?”


장관이 사색을 즐긴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그를 향해 부드럽게 미소 지은 장관이 묻자, 그는 자신의 홀로폰에 홀로그램을 띄워 장관의 홀로폰으로 전송했다.


“탑 2차 수색대, 전멸입니다.”

“······전멸?”

“예. 입탑 7시간 후 일괄적으로 생체 신호가 끊겼습니다. 확인하지 못했지만 실종, 혹은 사망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7시간···미국에서 10층에 달할 때쯤이 7시간이었지?”

“예. 그런데 이번 탑은 1차 수색대의 증언처럼 층의 구분이 없고 평지에 가까운 지형인 까닭에···.”

“그건 됐어. 통상적인 탑이라고 가정해서, 10층에서 전멸을 했다? 2차 수색대 편성이 어떻게 됐지? 알파 셋에.”

“베타 여섯, 감마 열둘 그리고 델타 셋과 지원팀 서른 명이었습니다.”


사색을 위해서 감았던 눈을 뜬 깊은 장관이 한숨과 함께 말했다.


“알파 셋이면 게이트에 들어가서 떡을 치고도 남는데, 그 정도 전력이 전멸을 했다. 그것도 한꺼번에.”

“···예.”

“심상치 않은 곳이군. 일단, 언론 발표는 미루고 유족들에게 전달부터 하지. 이건 밖에 있는 내 비서한테 전달해주고···그 전에 차후 대책을 좀 강구해 보자고. 일이 이렇게 됐다고 탑을 방치하면 죽어서 그 친구들 볼 낯이 없고 유족들한테 할 말도 없지. 공략을 하든, 아니면 최소한 시신 수습까지는 해야 하는데···.”


알파 등급 셋을 중심으로 한 최정예 팀이 한꺼번에 전멸했다. 원인도 제대로 모르고 탑 내부 구조의 수색도 실패했다. 그런데 시신을 수습하자고 사람을 들여보내면, 시신만 늘어날 가능성이 높았다.


“마땅히 뾰족한 수가 떠오르질 않는군.”

“저, 장관님. 그···탑에서 나온 귀환자가 한 명 있습니다. 이 친구가 정신 상태도 멀쩡하고 말도 잘 통하고 박성호 아시지 않습니까? 그 친구 같은 경우입니다. 또, 실종 이전에 저희처럼 공무원하던 친구인데···1차 수색대를 구한 귀환자가 이 친구입니다.”

“공무원? 어떤?”

“우주군 파일럿이었습니다. 천유화라고. 닥터라는 콜사인을 썼다고 합니다.”

“닥터면 10년 전인가? 그래···그 친구 알지. 그 친구가 살아 나왔다고? 탑에서?”

“네. 그저께 발생한 귀환자입니다.”

“아, 그 귀환자. 그런데 상세 내용은 처음 듣는데 왜 보고가 누락 됐지?”

“그, 귀환 관련 건은 법령 때문에 절차대로 보고를 올려야 하는데 차관이 지금 2차 수색 작전 때문에···.”


정신없이 바빴겠군. 횡설수설하는 남자의 말을 일축한 장관이 다리를 꼬아 앉으며 물었다.


“어쨌든, 그럼 그 친구는 탑을 공략했거나, 최소한 탑 구조는 안다는 소리군.”


1차 수색대를 구원하고 탑에서 걸어 나왔다면, 최소한 알파급 헌터 세 명을 합친 것 이상이라는 뜻이 아닌가.

탑의 공략은 둘째 치더라도 영입을 해와야 하는 인재이기도 했다.


“그 친구 데려오게. 어떤 조건을 걸어도 좋고 어떤 수단을 써도 좋아. 자네 선에서 보장 못하는 것도 내 선에서 해결해 줄 수 있으니 과감하게 걸어보고. 그 친구 데려와.”

“예. 알겠습니다. 장관님.”

“그래. 그래서 그 친구 지금 어디 있나?”

“귀환자 관리 본부에 있습니다.”

“그래? 그럼 뭐하나? 지금 가서 안 데려오고.”

“아, 예! 알겠습니다, 장관님!”


들어왔을 때와 똑같이 헐레벌떡 방을 나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심주현은 자신이 군 소속 헌터로 전장에서 구를 때를 떠올렸다.


닥터.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던 전장에 승리를 가져오고.

죽기 직전까지 내몰렸던 그와 팀을 구했던 은인.


승리의 이름.


설령 그가 제안을 거부하더라도 한 번은 그를 만나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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