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없으면 죽는 북부공녀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동수곰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7.30 19:32
최근연재일 :
2024.09.08 18:56
연재수 :
40 회
조회수 :
1,831
추천수 :
81
글자수 :
281,637

작성
24.08.04 19:05
조회
65
추천
3
글자
18쪽

5화. 언더커버 for 공녀

DUMMY

5화


“절대!! 그대로 놔둬선!! 안 됩니다!!”


알현실이 떠나가도록 라셀이 소리쳤다.


“대공전하의 검을 받아낼 정도의 남자입니다! 그런 자를 아무런 제약도 없이 돌아다니게 한다니... 불가합니다!”

“레오닐. 너도 그렇게 생각하느냐.”

“송구하지만 그렇습니다.”


금색 갈기를 쓰다듬던 레오닐이 무겁게 끄덕였다.


대공이 어떤 사람인가. 대륙에 얼마 없는 소드마스터이며, 그 다음 경지를 넘보는 강자다.


병사들 사이에선 벌써 대공의 검을 막아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자칫하다간 대공의 힘이 약해지고 있다는 소문으로 변질될 수 있었다.


이것은 썩은 귀족들이 사용하기 좋은 구실이 될 것이다.


‘북부에서 대공이란 존재는 압도적인 강자여야 한다.’


척박한 환경에 몇 백 년 전부터 강해지기 시작한 사령왕의 사기. 게다가 마족령에 인접해 있는 곳이 북부.


그런 곳을 통합하기 위해선 위에선 자 역시 모두가 인정하는 무력과 카리스마를 가져야 한다.


거기서 대공의 검을 받아낸 카벨은 무척 골치 아픈 존재였다.


북부인도 귀족도 아니고 병사도 아닌 자. 소속이 없다는 말은 어디에 회유될지 모른다는 뜻이니까.


그때 고요를 뚫고 병사의 보고가 들려왔다.


“전하. 공녀님과의 혼인을 원하는 자들의 명단이 도착했습니다! 양이 많아 직접 확인하심이...”


병사의 말에 대공이 조건반사처럼 옆에 있던 대검을 들었다. 그러자 라셀이 황급히 나섰다.


“전하!! 검 내려놓으십시오!! 저번에 검을 받아내라며 제국의 1 황자를 반죽음으로 만드신 걸 잊었습니까?! 하마터면 전쟁이 일어날 뻔했습니다!!”

“으음...”

“또 후보들에게 전하의 검을 받아내라는 말도 안 되는 조건을 거실 거라면, 차라리 저와 라셀의 목을 쳐주십시오.”


레오닐 원수까지 부복하자 대공은 혀를 찼다.


‘으음?’


그때 대공의 머릿속에 묘안이 스쳤다.


녀석의 자유로운 조사를 영인하면서, 잡아둘 수 있는 방법. 게다가 딸 주위에 꼬인 벌레를 손 안 대고 퇴치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마음에 안 들지만,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내 검을 몇 번이고 받아낸 놈이다. 그런 놈이라면...’


대공은 품 안을 뒤지며 사나운 웃음을 지었다.


“그래. 좋다. 너희의 목을 벨 순 없으니...”

[대공전하!]


손쉽게 고집을 꺾자 둘에게 화색이 돌았다. 하지만 뒤이어진 발언에 이마가 찌푸려졌다.


“나 브리든 실버리데는 약속대로 녀석이 자유롭게 북부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직책을 수여한다.”


대공의 명에 라셀의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이 한 올 떨어졌다.


“저, 전하!! 전하의 검을 받아냈다고 한들 출신도 모르는 자입니다! 어찌 외부인에게 직책을...”


그때 왕좌에서 무언가 날아와 떨어졌다.


은으로 된 바탕에 최고급 마석으로 세공한 푸른 검 세공이 새겨진 호패였다.


그것을 본 둘의 반응은 범상치 않았다. 그럴수록 대공의 웃음은 짙어졌다.


“녀석을 ‘대공의 검을 받아낸 자’를 뜻하는 명예직인 ‘서리의 검’으로 임명하고 증표를 하사하지.”

[.....!]

“그리고 내 딸을 데려가는 조건 중 하나인 ‘내 일격을 멀쩡히 받아낼 것’이라는 항목은...”


대공이 이빨까지 만개하며 정말 즐겁게 웃었다.


“반려후보 선정이 시작되고 한 달 뒤, 그 패를 가지고 있는 자인 것으로 변경하도록.”

“저, 전하!”

“그리고 녀석에게 전해라. 자유로운 행동의 권리는 그 패를 가지고 있을 때만 유효하다고.”


낮은 웃음이 알현실을 조용히 울렸다. 대공의 계획에 담긴 검은 뜻을 안 라셀이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대공은 귀를 닫고 즐겁게 무기만 손질할 뿐이었다.


+ +


“완전히 엮이고 말았네...”


그날 밤 카스토르 성의 객실. 카벨은 침대에 늘어져 마법으로 귀속된 패를 째려봤다.


증표 쟁탈전의 첫 번째 주자라니... 반려후보들에게 합법적인 살인 허가증을 준거나 마찬가지였다.


확실히 북부에서 대공의 검을 받아냈다는 증표는 상당한 영향력을 가졌다.


불모지를 국가구실 할 수 있도록 휘어잡은 카리스마와 무력을 가진 자의 인정. 귀찮은 의무 없이 어딜 가도 프리패스일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뒤이어진 조건과 대공의 계략.


카벨은 목구멍까지 욕이 치밀어 오른 걸 겨우 참아냈다.


‘자유로운 활동을 위한 책임 없는 명예는 주었으니, 그걸 지키는 건 알아서 하라는 건가.’


연무장에서 쳐 죽이지 못한 앙금이 여실히 느껴진다.


말만 구혼자들 간의 대결이었다. 석 달 뒤 목걸이를 가진 자를 뽑는 이상, 구혼자들이 노릴 상대는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것만으로 충분히 입안이 썼다.


하지만 더욱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공녀님이 아니라 대공을 꼬실 줄이야... 상상도 못 했어.-

-공녀님 제끼고 바로 정상에 들이받은 거잖아? 어떻게 보면 영리한 건지도...-

-대공을 꼬신 자!-


“빌어먹을.”


방문 앞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의 수군거림에 카벨이 앓는 소리를 냈다. 병사들이 이야기할 정도면 소문은 이미 쫙 퍼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제야 연무장에서 말을 바로잡지 못한 것이 떠올랐다. ‘이빨수집가’부터 ‘대공을 꼬신 자’라니... 달갑지 않은 두 이명에 시름이 깊어졌다.


끼이익-


그때, 문이 열리며 하녀가 나타났다.


“공녀님이 부르십니다.”


마음이 꺾이기 직전 카벨은 공녀에게로 향했다. 중간중간 하녀가 ‘전 응원해요.’라고 중얼거린 게 신경 쓰였다. 뒤에 덧붙여진 대공과의 설정도.


물밑에서 2차 창작이 진행 중인 듯 보였다.


또 그 미친개가 불경죄라면서 쳐 죽이려는 건 아닐까? 목줄도 없이 날뛰는 대공이 마음만 먹으며 막을 사람은 없을 텐데...


‘잠깐... 목줄?’


대공이 미친개라서 말이 통하지 않으면... 미친개의 목줄을 잡고 있는 사람과 제대로 된 거래하면 되지 않을까?


퍼뜩 드는 생각에 대공의 관계도를 생각 했다.


이 나라의 정점에 선, 소드마스터 대공을 잡을 수 있는 사람.


잠시 후 대공의 딸에 대한 애정과 과보호가 떠올랐다. 연무장에서도 공녀의 말에 꼼짝하지 못했었지.


‘그래. 공녀야!’


대공이 미친개라면 목줄을 잡고 있는 자와 거래하면 된다.


목줄을 쥔 자는 두말 할 것 없이 공녀였다.


+


덜컹-


새하얀 문을 열자, 우윳빛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방위에 사람의 형상을 한 달이 떠 있었다.


두 번이나 봤는데도 볼 때마다 새로운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유레하 공녀였다. 모든 감각기관이 통제를 벗어나 약속한 것처럼 그녀에게 향했다.


사기의 축척으로 병색이 완연한 모습조차 청초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이건...’


공녀가 방금까지 만들고 있던 것으로 보이는 기괴한 형상의 마물 뼈 장식물. 게다가 방안 곳곳에 장식된 기괴한 수제 장식들이 보였다.


공녀의 미적 감각이 정상은 아니군... 카벨은 순식간에 심장의 고동이 가라앉는 걸 느꼈다.


‘그래도 대륙 제일의 미녀 중 하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네...’


유레하는 카벨의 방문에 기침과 함께 정중한 어투로 고개를 숙였다.


“콜록. 아버님을 대신해서 사죄하겠어요.”


평민에게 존댓말을 하고 고개를 숙이다니... 카벨은 솔직히 놀랐다.


연무장에서도 대공을 막을 때부터 느꼈지만, 처한 상황에 비해 그녀는 올곧았다.


유레하 공녀는 앉길 권유하며 말했다.


“아버님께 말씀드려 증표에 대한 조건은 철회하도록 말씀 드리겠습니다.”

“확실히 철회할 수 있으십니까?”

“.....”


없군. 카벨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방엔 공녀밖에 없었다.


그녀 개인으로도 5서클 마법사에 오러까지 쓸 수 있으니, 불필요한 사병은 두지 않는 주의인가?


‘차라리 잘됐어.’


공녀와 단둘이 있는 상황. 재해의 저울이 공증한 지켜야 할 사람. 그리고 사기를 푼 사실을 숨긴 공녀. 대공이 자유로운 행동을 위해 내건 조건.


공녀와 거래하기 위한 패는 얼추 마련된 상황이었다.


“그 작은 하녀에게 제가 사기를 풀 수 있다는 사실을 숨기라 명하신 것은 공녀님이시죠?”


정곡을 찔린 듯 무표정한 얼굴에 파문이 일었다.


“공국에 이익이 될 제 능력을 왜 숨기신겁니까?”

“...알려지길 꺼리는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카벨은 두 번째로 놀랐다. 엔야에게 이야기를 들었다고 쳐도 그간의 행동만으로 거기까지 유추할 수 있는 건가?


‘솔직히 이건 공녀에게 감사해야겠군. ’


만약 알현실에서 사기를 풀 수 있다는 것을 밝혔다면, 병사들의 입을 타고 날파리가 꼬일 수 있었다. 공녀는 그 부분을 배려한 것이었다.


혹은 그래야 할 이유가 있다든지.


유레하는 고통스러운 잔기침을 하면서도 날카로움을 잃지 않은 시선을 카벨에게 보냈다.


“그것과는 별개로 당신을 부른 건 개인적인 요청을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뭡니까?”

“아버님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제가 원할 때 저의 사기를 풀어주시겠어요?”

“.....”

“약속해 주신다면... 그에 합당한 보상을 드리겠습니다.”


카벨은 냉정하게 그녀의 말을 파악했다.


레나가 말한 대로라면 북부에서 마력을 사용하는 자는 사기도 함께 몸에 쌓게 된다. 일정 이상의 사기가 쌓이면 되돌릴 수 없이 침식되어 버린다.


그런데 마치 치료 약처럼 바로 뭉친 사기를 해소할 수 있다? 그건 제한 없이 마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유레하는 숨을 색색거리면서도 고집스레 말했다.


“저는 북부를 위해 전장에 나가야 합니다. 멈춰있을 시간이 없어요. 그러기 위해선... 당신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개인적인 이유도...”


옳지. 드디어 나왔나.


카벨은 깨끗할 것 같은 사람에게서 자신과 같은 얼룩을 발견하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 개인적인 이유가 변복하고 전장에 나와 있던 것과 관련 있는 겁니까?”

“.....”


유레하의 입가가 살짝 흔들렸다.


확실히 그녀는 무언가 숨기고 있었다. 확신할 수 없지만 그것이 아이븐의 멸망과 관련된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최선은 그녀의 곁에 있는 구실을 얻고, 비밀을 확인 할 수 있는 명분을 얻는 것이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유레하는 얼굴을 굳히며 말을 돌렸다.


“제가 가진 사유 품은 공국의 것. 저의 생명 또한 공국의 것입니다. 제가 당신에게 드릴 수 있는 건, 저의 인생뿐입니다.”

“.....”

“만약 힘을 보태주신다고 하면... 짧을지 몰라도 제 인생을 드리겠어요.”


유레하에게서 이빨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지간히도 싫은 모양이었다.


왜 난 아무것도 안 했는데 차였지?


카벨은 괜히 더 볼멘소리로 받아쳤다.


“아. 필요 없습니다. 그런 거.”


유레하의 뺨이 무안함에 달아올랐다. 큰 결심을 하고 말한 것을 헛소리라도 들은 것처럼 딱 잘라 쳐내다니...


하지만 곧 카벨이 아버지에게 했던 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확실히. 남색가에게 전 보상이 될 수 없겠네요.”

“아니 무슨 개같...! 그건 검을 다루는 자로써 교류를 요청했을 뿐이지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그녀의 동요가 어디서 오는지 카벨은 납득했다.


확실히 그녀에게 있어선 가장 큰 제안일 것이다. 지금까지 뭇 남자들이 그토록 원했던 것을 보아왔을 테니까.


소유물도 생명도 자신의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고지식하고 성실한 그녀였다. 인생은 자신의 의지로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 여겼을 것이었다.


그만큼 이 부탁이 공녀에게 있어서 일생을 걸 정도로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망할. 아까워 죽겠네.’


하지만 확실한 목적이 있는 이상 카벨은 당장의 욕망에 휩쓸려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것보단 지금은 그녀에게 신뢰를 얻고, 자연스레 지킬 수 있는 관계를 쌓는 것이 필요했다.


다만 아직 공녀를 지켜야 한다고 밝히는 것은 좋지 않았다. 확실한 신뢰가 없으면 오히려 경계할 가능성이 크니까.


“전 북부에서 이뤄야 할 목적이 있습니다.”


카벨은 목걸이를 만지며 말했다. 다행히 유레하는 빠르게 의미를 납득했다. 동시에 절망했다.


“그렇다면 제가 더 이상 드릴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제 목적을 위해 힘을 보태주시는 겁니다. 겸사겸사 이름 좀 들먹이게 해주시고요.”


쳐졌던 은색 늑대 귀가 뒤이어 든 의문에 살짝 들렸다.


“아버님께서 이미 약조하시지 않으셨나요?”

“네. 공녀님의 반려후보자들에게 저에 대한 살인 허가증을 발급해 주시면서 말이죠.”


자신이 한 것도 아님에도 유레하는 미안함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귀족과 귀족의 대결이라면 목숨을 빼앗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귀족과 평민이라면? 대륙 최고의 미인 중 하나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면?

갖은 퍼포먼스까지 부리며 도축 하겠지.


카벨은 헛기침으로 분위기를 환기했다. 이제 슬슬 목적을 밝힐 차례였으니까.


“대공전하나 귀족들이 또 다른 올가미를 씌우려 할 때, 막을 수 있는 건 공녀님뿐이지 않습니까?”


그제야 유레하는 조금이나마 앞에 있는 남자가 바라는 것이 보였다.


북부 한정으로 대공의 꿍꿍이와 여러 불필요한 상황을 막아줄 방패를 얻고 싶은 것이다.


아버님의 검을 받아낸 자. 사기를 풀 수 있는 기술. 그 이점을 노리고 귀족들이 귀찮게 할 가능성은 농후했다.


아버님이 약속한 것은 자유로운 조사와 지원이지, 그들의 간섭을 쳐내는 것까지 포함된 건 아니었다.


게다가 가장 큰 문제인 아버지. 그 사람의 폭주를 막을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었다.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하지만... 정식 반려후보가 정해지면, 저는 이후 북부를 떠나야 합니다.”

“떠나고 싶으십니까?”


지금까지 무표정한 모습이 거짓말처럼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하늘색 눈동자가 단단하게 제련된 미스릴 검처럼 굳게 카벨을 바라봤다.


다행히 카벨에겐 그 검을 북부에 묶어둘 훌륭한 검집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방법 말인가요?”

“네. 그러려면 먼저 공녀님께서 저를 직접 반려후보로 내세워 주셔야 합니다.”


어이가 없었다. 큰 결심을 하고 인생을 준다고 했을 땐 흙발로 걷어차더니 반려후보라니... 수치심에 유레하의 은색 늑대귀가 파르르 떨렸다.


아차 싶은 카벨이 허겁지겁 말을 덧붙였다.


“겨, 결혼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공녀님이 북부를 떠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편이 도움받아야 할 입장인 제게도 중요하니까요!”

“결혼은 필요 없다 하셨으면서, 반려후보가 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죠?”

“공녀님이 직접 내세운 반려후보라면 치사한 암수를 피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건 무슨 말인가요?”


진짜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이 요만큼도 없는 건가...


“무려 공녀님이 직접 지정한 사람입니다. 반려후보들은 저보다 낫다는 것을 공녀님께 증명하려 하지 않겠습니까?”

“아...!”

“아마, 치사한 짓으로 점수 깎일 짓은 안 하겠죠.”


유레하는 그제야 납득이 갔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전 공녀님을 위해 반려후보 결정전 동안 증표를 빼앗기지 않겠습니다.”


단단한 호언. 자신에게 어지간한 자신이 없으면 뱉을 수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아직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었다.


“하지만 목걸이를 지켜낸다면 당신이 제 정식 반려후보가 됩니다. 그 점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답은 준비되어 있었다.


“마지막 날 공녀님이 결투를 신청하시고 증표를 가져가시면 됩니다.”

“......!”


유레하의 하늘색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그 반응으로 카벨은 공녀의 곁에 있을 이유와, 신뢰를 얻으려면 이 방법이 최선이라 확신했다.


“제 조건을 책임지고 지켜 주신다면 말씀하신 제안을 수락하겠습니다. 어찌하시겠습니까?”


유레하는 잠시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


“하나...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뭡니까?”

“...왜 제가 살길 바란다고 하셨나요.”


처음 만났을 때 그건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기에 카벨은 바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유레하를 보고 튀어나오려던 말을 억눌렀다.


대들보가 빠진 집처럼 위태롭게 흔들리는 눈빛. 그녀가 이 질문에서 듣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입에 발린 이유가 아닌 것 같았다.


이곳으로 오면서 보고 들었던 은색늑대에 대한 이미지. 두 번이나 감행된 암살 계획.


그녀는 가장 안전해야 할 고향인 북부에서 안팎으로 몰리고 있었다.


공녀의 눈은 죽어있었다. 희망도 없는 가시밭길에 올곧음이란 무기는 이미 닮아 버린 것처럼.


카벨은 절박하게 느껴질 정도로 이유를 바라는 유레하에게 조금의 진심을 담아 말했다.


“소중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당신이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 거고.”


유레하의 늑대 귀가 가볍게 떨렸다. 의심과 혼란이 한 프레임 안에 혼재되어 피어올랐다.


의문투성이의 답변이었지만, 카벨의 절박함만큼은 의심을 넘어 마음에 닿았다.


툭-


고민하던 유레하는 은빛 머리카락을 잘라내, 정교한 마법을 불어넣었다


마력의 맹세.


서로의 마력에 대고 언령을 거는 마법. 지키지 않으면 평생 마력을 쓰지 못하거나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는 계약이었다.


아이븐에서 나름 9년 짬밥이 있는 카벨 역시 저 마법이 무엇인진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공녀는 마법이 깃든 은색 머리카락으로 매듭을 묶어 내밀었다.


“저는 당신을 아직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만 더 맹세한다면 믿고 제 증표를 드리겠어요.”

“무엇을 말입니까?”

“당신이 하는 일이 북부에 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카벨은 쓰게 웃었다. 그러곤 공녀가 내민 머리카락 매듭을 잡았다. 잔기침을 하던 공녀도 그제야 안심하고 작은 미소를 틔웠다.


카벨은 하마터면 그냥 인생을 줄 수 있냐고 말할 뻔한 것을 꾹 참았다.


북부에 도착한 지 이틀째. 신분도 목적도 다른 두 사람의 비밀스러운 협력관계가 시작되었다. 모든 게 순탄했다.


고오오오-


반쯤 열린 문 사이로 살의를 뿜는 대공과 눈을 마주치기 전까지.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나 없으면 죽는 북부공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 10화. 이방인이 아니라 카벨. 24.08.09 48 2 17쪽
10 9화. 주문하신 천벌. 직접 수령하실게요~ 24.08.08 56 2 16쪽
9 8화. 미드 문 김에 바텀 감 24.08.07 59 2 18쪽
8 7화. 치킨레이스 24.08.06 58 2 13쪽
7 6화. 금고아 24.08.05 58 3 17쪽
» 5화. 언더커버 for 공녀 24.08.04 66 3 18쪽
5 4화. 원하는 건 대공. 24.08.03 70 4 15쪽
4 3화. 죽일 명분 24.08.02 77 4 19쪽
3 2화. 꾸르륵 24.08.01 78 5 16쪽
2 1화. 금니네 24.07.31 124 6 16쪽
1 프롤로그 - 캐치볼 24.07.30 264 7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