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없으면 죽는 북부공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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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수곰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7.30 19:32
최근연재일 :
2024.09.08 18:56
연재수 :
4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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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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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9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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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10화. 이방인이 아니라 카벨.

DUMMY

10화


“젠장! 젠장!!”


뻐드렁니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병사들을 밀치며 달렸다. 뒤쪽에서 비명과 화살이 박히는 소리가 났지만, 관계없는 것으로 치부하며 달렸다.


“저 두 놈은 뭐야?! 게다가 하난 공국의 기사라니! 일이 커지기 전에 어서 남작님께 알려야...!”


그는 뒤뚱거리면서도 착실하게 말이 있는 쪽을 향해 달려갔다. 돌아간다면 발데크 남작에게 문책을 당하겠지만 차라리 그게 나았다.


이전에 비슷한 사건에서 아무 정보도 전하지 못하고 죽은 병사의 가족들이, 있지도 않은 죄로 사형당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다른 가족들을 아무렇지 않게 착취하면서 자기 가족의 안전은 무엇보다 중요한 이기적인 인간.


뻐드렁니는 좋은 갑옷과 무기를 장비하고 있었지만, 그 안의 인간은 무엇보다 작고 초라했다.


“이 이상은 못 지나갑니다!”


그 앞을 작은 소년이 막아섰다. 아셀 글리포드. 아직 15살밖에 안 되는 작은 소년은, 초라한 나무막대기를 들고 숨을 헐떡였다.


장애물로 치기도 힘은 어린 소년을 보자 뻐드렁니는 헛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점점 가까워지는 비명에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망할! 이봐 도련님! 어서 비키라고!! 죽고 싶지 않으면!!”

“그럴 수 없습니다! 비키길 원한다면, 당장 레나씨에게 사과하세요!!”

“씨발 그딴 년 누군지도 모른다고!!”

“당신이 때린 여성입니다!”


덜덜 떨리면서도 아셀은 당찬 목소리를 냈다. 그럴수록 뻐드렁니의 얼굴은 일그러져 갔다.


“젠장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데!! 어차피 뒤진 것으로 처리된 마력도 못 쓰는 쓰레기들이잖냐!!”


아셀의 이빨이 으스러져라 갈렸다.


귀족으로 태어났지만, 아버지처럼 항상 낮은 곳을 살피며 검소함을 미덕으로 여기며 살았다.


하지만 침식 때문에 밑바닥에 떨어져 본 광경은 전혀 달랐다. 처음 느껴본 불합리함과 불평등을 뼈대로 위태롭게 존재하는 곳이었다.


그 속에서 배우고 익혔던 모든 것들이 무너져 15살짜리 어린아이로 돌아갔을 때, 메마른 손이 내밀어졌다.


모든 빛이 피해 간 것 같은 소녀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있으면서도 모르는 자를 위해 따뜻하게 데운 마음을 나눠주었다.


“...쓰레기라고요?!”


아셀은 나눠 받은 마음이 데인 것처럼 뜨겁게 욱신거리는 것을 느꼈다. 사회가 죽였음에도 처음으로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말 취소하십시오! 그들도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어린아이를 구타하고 고작 그런 말밖에 못 하는 겁니까?!!”

“귀찮은 애송이 같으니라고! 그냥 뒤져라!!”

“윽...!”


텅-!!


엉겁결에 휘두른 아셀의 막대기가 건틀릿에 막혀 튕겨 나왔다. 일부지만 갑옷을 입은 자를 막대기로 상대하는 건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덜덜 떨리는 봉을, 이를 악물고 붙잡았다. 까끌까끌한 막대기 재질에 손이 쓸려나가는 것이 느껴졌지만 상관없었다.


스캇-!


하지만 뻐드렁니의 참격에 막대기는 손쉽게 두 동강 나 버렸다. 아셀은 얼굴을 와락 구겼다. 그나마 있던 거리의 이점이 순식간에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숙련되지 않은 자가 노릴 곳은 하체다. 쓰러뜨리면 최고지만 달라붙는 것만으로 이득이지.-


최소한의 교양으로 검술 훈련을 받을 때 아버지가 해주었던 훈수가 떠 올랐다.


그때 머리 위로 그림자가 졌다. 위를 올려보자 시퍼런 검날이 치켜 올라 있었다.


“...!!”


그 광경이 구타당한 레나를 앞에 두고도, 뽑혀진 검에 굳어있던 때와 겹쳐 보였다.


불과 몇 분 전의 일이었다. 아무리 용기를 내 그녀 대신 왔더라도 달라질 건 없었다.


-내 친구를 놔, 놔줘...!-


오늘 처음 만났지만, 누구보다 따스하게 다가왔던 여자아이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몸이 덜덜 떨려왔지만, 아셀은 괴성을 지르며 억지로 발을 내디뎠다. 죽은 자로서 절망해 켜켜이 마음속에 쌓인 검은 재에 불꽃을 붙였다.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마음가짐만 제외하면.


“우와아아!!!”


쿵-!! 푹!!


“으윽!!”


아셀은 괴성을 지르며 뻐드렁니의 흉갑으로 뛰어들었다. 뻐드렁니의 종베기와 빗나가며, 검의 폼멜(손잡이 머리)이 소년의 등에서 쩍 소리를 냈다.


베이진 않았지만 등이 반으로 갈라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하지만 뻐드렁니도 성치 못했다. 그가 쥐고 있던 베인 막대기 끝이 뻐드렁니의 옆구리에 파고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초심자의 행운이었다.


“끄아아악!!”


뻐드렁니는 검을 휘두르고 무너진 자세와, 옆구리의 통증에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이, 이 새끼가!!”


쿵-!! 촤악!!

“끄으윽!!”


두 사람은 육중한 소리와 함께 뒤엉켜 넘어졌다. 그 와중에 휘둘러진 뻐드렁니의 검이 아셀의 허리를 베고 지나갔다.


“떨어져!! 떨어지란 말이다!!”


쿵- 쿵!!


녀석은 당황하며 폼멜로 연이어 아셀의 등을 내리쳤다. 그가 너무 작기도 했고, 너무 딱 달라붙어 있어 검을 제대로 휘두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판금 흉갑을 믿고 휘두르면 해결될 일이었다. 뻐드렁니에게 일반 병사만큼의 용기가 녀석에게 있다면 말이다.


“부, 분명...!”


충격이 가해질 때마다 아셀의 이빨 사이와 베인 허리에서 핏물이 튀었다. 그럼에도 필사적으로 판금 위를 더듬었다. 원하던 것을 찾은 순간...


쿵-!!

삐이잉-!


머리를 강타한 쇳덩이에 정신이 몽롱해졌다.


-아셀. 이걸 가져가렴... 어딜 가도 넌 우리 아들이고 가문의 자랑스러운 일원이란다.-


울며 매달리던 동생들과 어머니가 떠 올랐다. 동시에 몸의 어디에 힘이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몽롱한 감각이 들었다.


하지만 분노한 손은 필사적으로 가족이 남긴 흔적을 쫓고 있었다. 그리고...


푸욱-!!


“쿨럭...!”


뻐드렁니가 눈을 부릅뜨며 피를 울컥 토해냈다. 믿기지 않는 시선으로 가슴을 보자, 아셀의 손에 들린 단검이 보였다.


글리포드 가문의 저울 문장이 수놓아진 단검. 그것이 카벨이 냈던 흉갑 틈새를 파고들어 가슴에 깊이 박혀있었다.


“쿨럭! 말도 안 돼...”


뻐드렁니의 눈이 빛을 잃고 하늘을 향해 멈췄다. 아셀은 엉망이 된 몰골로 단검을 소중하게 빼 들고 옆으로 엎어졌다.


비로소 격통과 함께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감정이 올라왔다.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두려움. 누군가를 위해 불합리함과 싸워 이겼다는 희열


복합적인 감정에 아셀은 부들부들 떨며 피가 섞인 기침을 쿨럭였다.


-주문하신 천벌. 직접 수령하실 게요 고객님.-


레나와 자신을 구해준 정체불명의 남자가 한 말이 떠올랐다. 공용어지만 묘하게 이곳에서 쓰지 않는 것 같은 말.


허울만 남은 후작가 장남은, 세상에 던져지고 나서야 처음으로 자신이 내뱉은 말에 끝맺음이 지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쿨럭! 천벌... 내린다고 했잖아요...”


아셀의 시야로 피 칠갑을 한 악마가 끼어들었다.


“한 대 쥐어박으려 왔는데, 꽤 그럴 싸 한 걸 보여주네. 상이다.”


쪼르륵-


미지근한 물약이 몸에 뿌려지는 감각에 아셀은 통증이 점점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 +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팡이를 짚고 온 아셀은, 시체에서 장비를 벗기는 카벨에게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아직 몸 여기저기가 아파왔지만, 그가 중급 물약으로 조치를 해줬기에 그나마 움직일 수 있었다.


그가 쓴 물약의 가치를 아는 아셀은 더욱 깊이 고개를 숙였다. 카벨은 냉담하게 툴툴댔지만.


“쯧. 기껏 쓴 물약 아깝게 왜 돌아다니고 있어. 애들은 잘 시간이다.”

“아닙니다! 중급 물약이 얼마나 비싼 건데... 꼭 감사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도울게 있으면 뭐든 말씀해주세요!”


그는 흘낏 시선을 보내곤 일 없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잠시 그를 치켜보던 아셀은 안타까운 탄식을 냈다.


“아... 그 부위는 버클이 이중으로 잠겨 있어서 제대로 풀어야 합니다. 부서지면 가치가 떨어집니다.”

“그렇게 잘 알면 와서 해보던가.”

“그래도 됩니까?”

“...어?”


아셀은 눈을 빛내며 카벨과 마주 앉았다. 그러곤 솜씨 좋게 장비들을 벗기기 시작했다.


아직 완벽하게 낫지 않아 가끔 앓는 소릴 냈지만 손놀림은 무척 능숙했다.


카벨은 장비에 떡처럼 달라붙은 피에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놀리는 아셀을 보며 당황했다.


‘도대체 이 녀석은 뭐지?’


아직 앳된 티가 나는 소년은 보물이라도 다루듯 눈을 빛내고 있었다. 싸우느라 피와 흙탕물이 튀어 있는 옷 위로 거뭇한 검댕이들이 덧입혀졌다.


생긴 걸 보니 꽤 있는 집 자식 같은데... 카벨은 헛웃음이 나왔다.


“더럽지 않냐?”

“어떤 게 말씀이죠?”

“그... 손이랑 옷에...”

“씻으면 되지 않습니까?”


속이 뻥 뚫리는 쿨함에 그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효율과 실용성을 추구하는 카벨의 마음에 쏙 드는 대답이었다.


“죽은 자들은 안타깝지만, 산자를 위해 쓸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게 맞습니다.”

“죽은 자를 위해 병사에게 대들고... 귀족답지 않네.”

“자주 듣습니다. 저희 집안에선 최고의 칭찬이기도 하고요. 아! 그 도검류는 칼집과 짝을 맞춰야 가치가 있습니다.”


어느새 소년은 카벨에게 갑옷 벗기는 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도와주러 다가온 주민들에게도 하나하나 세세하게 지시하며 어느새 그룹을 통솔하고 있었다.


주민들이 카벨에게 호의적인 건 당연했다. 하지만 신기한 것은 소년에게도 적지 않은 호감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저도 묻는 걸 돕겠습니다!”


어느새 쓸 만한 장구류들의 구분을 마친 소년은, 스스럼없이 시체를 옮기는 것을 도왔다.


모든 것을 끝내곤 더러운 마을 주민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고개를 숙였다.


성격은 달랐지만 카벨은 어렸을 적 자신을 보는 것 같아 그리운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레나를 위해 나섰다는 것을 알고 난 뒤 기특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성격이나 행실도, 능력적인 부분까지 꽤 괜찮아. 담력도.’


그때 레나에게 응급처치를 하러 자리를 비웠던 벨티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아셀 도련님!!”


지금까지 흐트러진 적 없던 벨티오가 헐레벌떡 달려와 아셀의 앞에 부복했다. 아셀은 당황하며 그를 일으키려 애썼다.


아무래도 둘이 잘 아는 사이인 듯 보였다. 꽉 막힌 FM기사와 실리적인 귀족 도련님. 카벨은 왠지 어디서 통했는지 알 것 같았다.


“제가 미리 알아 뵙지 못하고...! 다치신 곳은 괜찮습니까?! 죽을 뻔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따라갔어야 했는데...!”

“베, 벨티오씨!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저는 이제 죽은 자입니다! 신분도 무엇도 없으니...!”

‘그러고 보니 레나가 예전에 말했었지. 사기에 침식된 자는 죽은 것으로 처리된다고.’


카벨은 무구를 분류하곤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뭐야. 둘이 아는 사이였어?”

“이놈!! 이분은 대공전하의 왼팔이자 재무장관이신 라셀 후작님의 아드님, 아셀 글리포드시다! 어딜 말버릇 없...”

“죽은 자잖아요. 명예도 직위도 없는. 틀립니까?”

“그, 그건...!”

“하하... 맞습니다. 편하게 하세요. 벨티오씨도 일어나시고.”


벨티오는 아셀과 카벨을 번갈아 보곤 떨떠름하게 일어섰다. 역시 FM기사에겐 정론이 최고로 잘 먹혔다.


“그런데 두 분은 이곳엔 어떤 일로 온 건가요? 저희를 구하러 온 것은 아닐 테고...”

“저도 잘 모릅니다. 이 외부인의 호위로 따라왔을 뿐인지라...”


두 사람이 답을 구하듯 카벨에게 고개를 돌렸다.


카벨은 잠시 고심했다. 정말 생각하는 게 맞는지, 이걸로 확실히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지를 계산했다.


잠시 후 카벨은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확신을 담아 말했다.


이름 가져다 써도 된다고 했으니까 이 기회에 팍팍 쓰자고.


“저는 공녀님의 부탁을 받아 여러분의 침식을 풀어 드리기 위해 왔습니다.”

[!!!!!]


시간이 멈춘 듯 모두가 굳어버렸다. 벨티오와 아셀도 입을 벙긋대며 토끼 눈이 되어 있었다.


북부에서 오래도록 풀지 못했던 사기의 침식을 풀 수 있다는 것도 충격적인데, 공녀님의 부탁...?


특히 은색늑대수인인 공녀의 부탁이라는 것이 마을사람들에겐 충격이었다.


북부에서 공녀가 가지는 상징성은 좋은 것보다 부정적인 게 많았으니까. 특히 사기가 침식된 이 마을에선 더더욱.


비로소 정신을 차린 벨티오가 카벨의 멱살을 잡았다.


“공녀님의 부탁이라니! 무슨 망발이냐! 거기다 하필 이 사람들 앞에서 침식을 풀 수 있다는 거짓말을!! 공녀님을 음해할 생각인가?!”

“둘 다 정말입니다. 공녀님에게 확인해 보던가요.”


혹시라도 가면 잘 부탁해 방패.


“마땅히 옳은 일에서 눈을 돌리지 않겠다 약속했던 것을 잊었나!! 공녀님의 이름을 사칭해 헛된 희망을 품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 생각하는가!!”

“그러니까 하려는 것 아닙니까.”


카벨이 굳은 시선을 보냈다. 그러자 그는 검... 바프라고 부르는 것을 빼 들어 겨누었다.


아셀이 다급히 막으려 했지만, 머리끝까지 화가 난 벨티오의 검 끝은 흔들리지 않았다.


“만약 거짓이면...!”

“죽이려고요? 호위 대상인데?”

“걱정 마라. 나도 명을 어긴 죄로 기꺼이 같이 죽어 줄 테니!”

“미쳤습니까? 남자랑 손잡고 저승길 놀러 가게. 됐으니까 거기서 딱 보십쇼.”


카벨은 주변을 살펴봤다. 처음 풀어준다면 무조건 레나부터 라고 생각했었는데, 기절했으니 풀어도 사람들이 모르겠지.


결국 차선책을 찾기 시작했다. 침식이 풀린 것을 공증해 줄 정도의 인망을 가진 사람.


그러던 중 아셀이 눈에 들어왔다. 감각 스킬을 집중하자 그의 가슴 부분에 엉켜있는 침식된 사기 덩어리가 보였다.


‘공녀 때는 무척 컸는데... 이게 표준사이즈인가?’


몸에 느껴지는 마력의 잔재를 보아하니, 마력을 주로 다루는 자는 아닌 것 같았다.


스릉-


카벨의 황금색 검이 뽑혀 나오자 벨티오의 인상이 구겨졌다. 진정시키기 위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아셀이라고 했지? 지금부터 네 침식을 풀 거야. 하지만 다른 사람의 사기를 푸는 건 이게 두 번째라 잘 될지는 미지수다. 괜찮겠어?”


아셀은 주변을 돌아봤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향해 있었다. 곧 자신을 지목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명망 있는 후작가의 자제였다는 사실. 사기가 풀려 그것을 공증해 주는 덴 이 방법이 효과적이었다.


고민하던 아셀은 마음을 다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습니다!”


소년의 시선이 술렁이는 죽은 자들에게 향했다.


침식으로 인해 잘라내진 많은 인재. 아버지는 항상 그것을 안타깝게 생각했었다.


어차피 이곳에 왔을 때 죽음은 각오했다. 잘못되더라도 이들에게 가능성을 줄 수 있다면...


“대신 약속해 주십시오. 정말 당신이 공녀님의 부탁으로 사기를 풀러 왔다면... 제가 잘못되더라도 저들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레나씨도.”


각오했음에도 떨리는 소년의 눈빛.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도 사람들을 위하는 성정에 카벨의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특히 레나를 언급했다는 게 고득점이었다.


“약속하지.”


카벨은 감각스킬로 오러를 조율해 사기가 엉켜 침식된 부분에 흘려보냈다. 그러자 침식이 조금씩 일렁이기 시작했다.


카벨은 진땀을 흘리며 황금색 검신을 조심스레 움직였다. 침식의 중심이 요동칠 때마다 오러의 질을 실시간으로 변화시켰다.


마침내 일렁이는 침식 사이로 얽힌 중심이 보인 순간, 카벨은 심혈을 기울여 조정한 오러가 담긴 검 끝을 밀어 넣었다. 그러곤 검을 비틀었다.


투확-!


그 순간 엉킨 사기가 풀어지며 불길한 바람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깜짝 놀러 물러서는 동시에 아셀이 주저앉았다.


“아, 아셀 도련님!!”


벨티오는 다급히 아셀을 부축하며 이변을 알아챌 수 있었다. 핏기 없이 창백했던 아셀의 얼굴에 조금이나마 천천히 혈색이 돌아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슥-


아셀은 가슴을 매만졌다. 사기가 침식되어 엉켜있던 부분이 확실하게 풀어져 있었다.


아직 마력에 섞인 사기가 느껴졌지만, 이건 시간을 들여 충분히 풀어낼 수 있는 정도다.


이내 굵은 눈물이 바닥에 뚝뚝 흘러내렸다.


“치, 침식이...! 사라졌어...!”

[오오오오!!!]


무엇보다 진심담긴 소년의 울음에 잘라내기 마을의 주민들은 흥분해 열광했다. 여기저기서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는 자들도 있었다.


[이빨수집가!! 이빨수집가!!]

[공녀저하!! 공녀저하!!]


괴상한 이명과 그것보다 작게 공녀가 선창되는 와중. 벨티오가 크게 뜬 눈으로 카벨을 바라봤다.


카벨은 대답 대신 식은땀을 닦아내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외부인 네놈...!”

“말했잖습니까. 그쪽이랑 저승길까지 같이 갈 생각 없다고.”

“...하.”

“그리고 이방인이 아니라 카벨입니다. 그쪽이 임시 등록 했잖아요? 이름 못 외우는 건 아니죠?”


벨티오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허탈하게 벌려진 입가엔 처음으로 웃음기가 스며들어있었다.


‘고, 공녀님에게 알려야 해!’


열기에 휩싸인 광장. 사람들은 흥분에 취해 작은 여성이 자리를 벗어나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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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화. 이방인이 아니라 카벨. 24.08.09 49 2 17쪽
10 9화. 주문하신 천벌. 직접 수령하실게요~ 24.08.08 56 2 16쪽
9 8화. 미드 문 김에 바텀 감 24.08.07 59 2 18쪽
8 7화. 치킨레이스 24.08.06 58 2 13쪽
7 6화. 금고아 24.08.05 58 3 17쪽
6 5화. 언더커버 for 공녀 24.08.04 66 3 18쪽
5 4화. 원하는 건 대공. 24.08.03 71 4 15쪽
4 3화. 죽일 명분 24.08.02 77 4 19쪽
3 2화. 꾸르륵 24.08.01 78 5 16쪽
2 1화. 금니네 24.07.31 124 6 16쪽
1 프롤로그 - 캐치볼 24.07.30 264 7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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