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화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제33화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정주임, 나랑 이야기 좀 하자.”
“저요? 차장님과 할 말 없는데요.”
김차장이 아침부터 날 잡아끌다시피 회의실로 데리고 가더니 문을 잠궜다.
나 겁주려고? 아님 둘이 므흣하게 할 이야기라도 있어? 왜 문을 잠그고 그러시는지.
그런데 김차장 표정이 영 좋지 않다.
티를 내지 않으려 하지만, 얼굴엔 안절부절 불안한 모습이 역력했다.
테이블에 몸을 걸친 뒤 한 숨을 깊이 내쉬던 김차장이 날 빤히 보며 물었다.
“본점에서 정주임 몇 시에 들어오래?”
“다섯시요.”
김차장이 내게 물은 건··· 감사팀과의 인터뷰 시간이다.
쳇, 이제야 쫄리기 시작한 건가?
말투가 전과 다르게 나긋나긋해졌네.
너 원래 그런 애 아니었잖아?
바로 어제, 영업 끝날즈음 갑자기 감사부서 직원들이 점포로 들이닥쳤다.
그리곤 부정대출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대출과 관련 서류, 김차장이 쓰던 컴퓨터 단말기까지 모두 수거해갔다.
감사 혐의는 RTI 임의 조정을 통한 부당초과대출에 관한 건.
RTI란 임대업 이자상환비율을 말하는데, 쉽게 말해 은행에 내야 할 이자에 대한 임대소득의 비율을 말한다.
예를 들어 은행에 내야하는 연간 대출 이자비용이 1억이라 가정하면 주거용도는 1.25억, 비주거용도는 1.5억 이상의 임대소득이 있어야 대출이 나온다.
즉, 이자 낼 돈보단 많이 벌어야한다는 뜻.
그런데 지안상가의 경우 코로나 시기라 임대도 잘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기존 임차인들에겐 할아버지가 임대료를 깎아주셨던 터였다.
이에 은행에 내야 할 이자가 임대소득보다 많았기에 대출이 나오기 힘든 상황이 된 것이다.
아마 그걸 알게 된 양아들은 상가를 팔려고 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외진 상가가 코로나 시기에 팔릴 리가 있나?
그리고 이때 어떻게든 돈을 마련하려했던 그 양아들이 우리 본부장과 컨택되어 은행을 찾아왔을 것이다.
그렇게 모인 나쁜 사람들.
할아버지 양아들과 우리 본부장, 그리고 김차장이 짝짝궁해서 지안상가의 계약서와 현금흐름 자료들을 고쳐 임대수익, 그러니까 RTI가 높게 나오는 것처럼 꾸민 다음 대출이 가능해지도록 위조한 것이다.
그리고 이 대출을 성대리보고 기안하라고 시킨 뒤, 지점장에게 빨리 결재하라고 채근한 정황에 대한 감사가 시작되었다.
그나저나 참 얼굴들도 두꺼워.
얼마나 강심장이어야 이런 서류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조작하는 거야?
안 걸릴 거라 확신했나? 아님 믿는 구석이라도?
그러다 막상 들통나니 덜컥 겁이 난거지?
특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제보자가 된 내가 감사팀에게 어떻게 이야기할지 궁금하기도 할 것이고.
그래서 날 아침부터 찾은 거야?
쫄아서?
“정주임도 잘 알겠지만 어디까지나 난 우리 지점 실적을 올리려 최선을 다해왔잖아?”
뭐?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아님 니가 아침부터 뭘 잘못 쳐먹은 거니?
니가 지점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미안한데, 난 정말 몰랐어.
난 네가 그냥 너 혼자 잘 먹고 잘 살자고 나쁜 짓 했다고 보거든.
“정주임은 입행한 지 얼마 안 돼서 잘 모를 텐데···”
하··· 또 시작된 넌 몰라 화법. 이번엔 뭘 모른다고 협박하려 이딴 밑밥을 까는 건지.
“내가 인사팀에도 있었고 지점 감사하는 것도 여러 번 봤지만 감사팀에 이야기할 때는 아주 조심해야 해.”
“뭘 조심해요?”
“아무 증거없이 감으로 ‘그럴 것 같다~’, ‘’아마도 그런 것이다.’라고 무책임하게 던지잖아? 그러면 나중에 그 말에 대한 책임을 고스란히 정주임 본인이 다 져야 하거든.”
하··· 이 새끼 뭐라는 거야?
확실한 증거를 가진 게 아니면 입도 벙긋 하지 말라는 말이잖아?
그러니까···지금 나 협박하는 거지?
“전, 제가 아는 것만 말할 거라서 차장님이 그런 걱정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도 알지, 정 주임이 똑똑한 거. 본인에게 불똥이 튈만큼 무모하게 하지 않으리란 거 알아. 하지만, 자네가 눈으로 직접 보지 않은 건 별다른 증거 효력이 없으니까···”
“제가 눈으로 보지 않은 증거요? 전 분명히 지점장 결재만 남은 부정 대출 서류를 봤고, 그 서류의 목적이 소유주인 할아버지의 뜻과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래, 그런 걸 정주임이 봤다고 우길 순 있을 거야.”
우겨? 뭘 우겨? 정확히 증거들이 있고, 난 두 눈으로 똑똑히 봤구만.
“그런데 그거 알아? 실제로 대출은 일어나지 않았어. 게다가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오해가 생겨서 설정된 대출이라···”
하··· 이 새끼 봐라···
지금 날, 가스라이팅 하는 거야?
“그리고, 정주임 말처럼 하나하나 법적으로 따져도 이 일로 인해서 진짜 피해보는 건 내가 아냐.”
“네?”
“봐봐~ 솔직히 내가 오리발 내밀면 어떻게 할 거야? 그 대출서류에 내 사인이 있어, 뭐가 있어? 내가 올린 게 아니잖아.”
와~ 염치없는 놈인 건 알았지만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이젠 성대리에게 떠넘기기까지.
“만약 내가 시켰다고 하더라도 감사에선 직접 꼼꼼히 확인하지 않은 성대리가 제일 큰 잘못이 있다고 할 거야. 그래, 내가 어떻게 하냐에 따라서 성대리가 혼자 뒤집어 쓸 수 있는 문제란 말이야.”
진짜 철면피같은 인간.
자기가 성대리 시켜놓고 결재라인에서 일부러 쏙 빠진 거면서.
“정주임은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사건들이 있었고, 그 때 결론난 걸 보면 그냥 가벼운 징계를 받거나 확인서 정도 쓰고 끝나. 그런데 분란을 일으킨 정주임은? 앞으로 오해를 받고 쭈욱~ 직장생활을 해야 해.”
“오해요? 무슨 오해요?”
“세상 물정 잘 모르고 문제만 일으키는 직원이란 오해. 그러니까···”
순간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됐습니다. 감사에서 물어보면 솔직히 아는 거만 말할 테니 그만 나가보겠습니다.”
그런데··· 그때 들려온 김차장의 마음 소리.
[그러니까 니가 아는 게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냐고!]
어? 어디까지라니?
그 말인즉, 내가 알고있는 것 말고도 또 있다는 건가?
이번에 나온 건 할아버지의 지안 상가 가치를 부풀려 부정대출을 하려했던 건데··· 그것 말고 또 있어?
그렇다면··· 김차장의 개인 비리? 아님··· 혹시 본부장?
생각해보니 김차장의 마음 소리를 들을 때마다 본부장이란 단어가 툭툭 튀어나왔다.
하지만, 아직까지 둘이 어떻게 짬짬이를 했는지 명백하게 밝혀진 건 없잖아?
만약 본부장이 엮여있다면 김차장도 가만히 있을 위인은 아니다.
본부장을 팔아넘기던가 아니면 어떻게든 발목을 잡고 물귀신처럼 끌고 들어갈 인간인데, 본부장 직함조차 꺼내지 않는걸 보니 관련이 진짜 없는 건가 싶기도 하고···
아니, 그냥 실무자인 성대리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겨버리기로 본부장과 짠 건 아닌가?
도대체 본부장하고 무슨 커넥션이 있는 걸까?
다시 한 번 찔러 봐?
흠···
난 표정을 가다듬고 김차장을 보며 물었다.
“차장님, 본부장님에겐 따로 보고를 드려···”
“본부장님? 본부장님이 왜? 내가 이미 말했잖아. 본부장님은 이 일과 상관없으시다고.”
갑자기 윽박지르는 김차장.
본부장에게 따로 보고했는지 물어보려 했는데··· 왜 저렇게 오바질이야?
분명 이상하다.
생각해보면 김차장 본인이 빠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본부장님이 소개 시켜준 고객이고, 본부장이 이렇게 하라고 했어요라고 떠넘기는 것일 텐데 오히려 감싸? 왜?
“본부장님이 소개시켜준 고객이시니 차장님이 혹시나 억울하실 부분이 있을까 싶어 그랬죠.”
“아냐, 그런거 없어. 본부장실에는 워낙 여기 저기 고객들이 모여들잖아. 그러니 본부장실에선 고객 매칭차 소개만 시켜주신 거고 고객과 커뮤니케이션 오해가 있었던 거니까.”
대화를 하는 도중, 녀석이 처음으로 내 눈을 피했다.
그리고 이번엔 본부장이라고도 하지 않고, 본부장실이라 했다.
본부장 개인으로 화살이 향하는 걸 극히 꺼려하는 뉘앙스.
진짜로 뭔가 있는 게 확실해.
“네, 알겠습니다. 차장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저는 본 것, 있는 사실만 말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 덜컥.
그 말과 동시에 난 회의실 문을 박차고 나왔다.
뒤에서 날 다시 부르는 말이 들렸지만 못들은 척 해버렸다.
그리고 자리에 앉았을 때, 저 건너편에 앉아있는 성대리가 보였다.
성대리 역시 이번 사건의 주요 참고인으로 본점에 불려가기로 한 상황.
그도 그럴 것이 실제 그 대출건의 기안자가 성대리거든.
성대리도 아침부터 꽤나 긴장한 듯 손톱을 깨물고 있었다.
평소 자유로운 영혼처럼 직설적인 말들을 내뱉던 모습은 어디가고 지금은 그저 도축장에 끌려갈 시간만 기다리는 소같은 모습이랄까?
그런 성대리가 옆을 힐끗하며 날 보더니 키보드 자판을 쳤다.
– 띠릭
그때 내 모니터에 메신저가 깜빡였다.
(정주임, 나랑 잠깐만, 옥상으로.)
옥상으로 오라고?
난 하던 일을 멈추고, 주변 눈치를 보면서 건물 옥상에 올랐다.
“대리님, 부르셨어요?”
“어, 정주임··· 왔어?”
평소엔 한쪽 다리를 올려 꼬고 의자에 앉아 날 지그시 보며 인생 철학, 직장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던 사람이 이젠 등을 새우처럼 구부리곤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성대리님, 괜찮으세요?”
“정주임은 안 떨려? 심란하지 않아? 다른 사람이 보면 이런 일 몇 번 겪어본 사람인 줄 알겠어.”
이 사람아··· 내가 이런 일을 언제 겪어봤겠나?
하지만, 한 번 죽을 뻔 했던 때를 떠올려보면 이깟 일이 뭐 대수라고.
게다가 난 잘못한 것도 없는데.
“누구나 떨리죠. 하지만 잘못한 게 없으니까요.”
“그치, 정주임은 잘못한 게 없지.”
“대리님도 이번에 가시면 명확히 말씀하세요. 김차장님이 시켰다고.”
“응, 그럴 거야. 솔직히 난 김차장님이 가져다주신 서류와 자료들에다 기안자 이름만 나로 올린 거야. 물론 상사가 지시했다고 해서 왜 체크하지 않고 무조건 따랐냐? 상사에게 왜 따지지 않았냐고 징계를 준다면 그건 뭐··· 나오는 대로 받지 뭐.”
그래, 성대리야, 잘못한 게 있음 징계 받으면 되지.
그런데 말과는 달리 왜 이렇게 떨어?
평소 밉상 캐릭터였지만 이런 모습을 보니 좀 안쓰러울 정도네?
“아무리 원칙을 중시하는 감사팀이지만 보수적인 우리 은행문화에서 상사가 지시하는데 따지기 쉽습니까? 대리님께서도 그냥 김차장님 지시라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하시면···”
“정주임, 사실 내가 걱정하는 건 그게 아냐.”
“네? 그럼 뭐···”
“아··· 사실은 나도 내가 본 게 맞는지 모르겠는데··· 그게···”
계속 내게 뭔가 하려다 망설이곤 다시 입을 닫는 성대리.
그때 성대리의 마음 소리가 들려왔다.
[김차장에게서 우연히 우리 본부장 관련 수백억대 불법대출 내용을 보고 들었다는 말을 하는게 맞아? 아님 그냥 모르는 척 하는 게 맞아?]
“네? 뭐, 뭐라고요? 수백억대 불법대출요?”
성대리 마음 소리를 듣고 순간 너무 놀라는 바람에 내 입으로 말이 뱉어졌다.
와 씨~
그리고··· 성대리 역시 그런 날 보며 깜짝 놀랐다.
“어···? 뭐···? 뭔 대출?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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