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조상신이 도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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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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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3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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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7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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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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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우진이가 달라졌어요

DUMMY

박스에 짐을 싸는 백도현 교수.

오랫동안 정들었던 연구실을 떠나는 정도라면 괜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에서야 거취가 분명해졌으니 더는 미련도 없었다.


‘차우진. 그 개새끼.’


이를 바득 갈 정도로 분노가 치밀어오르지만 화풀이할 곳도 없었다.

최악의 상황에서 이렇게 되리라 생각은 했지만.

해도 너무했다.


본관의 결정은 확고했다.

그래도 김 교수와 임동규 교수가 나서서 변호했기에 망정이었다.

1년 안식년을 억지로 받으며 해외에 나가 있으라 한 것.

조금 조용해지면 돌아오라고.


어쨌든 교수직에서 물러나는 최악의 상황만큼은 피했다.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야 안식년이 되어 해외로 나간다고 생각만 할 뿐이지.

대학교 관계자나 연관된 사람은 모두 유배 가는 것 정도는 다 알고 있었다.


사실상 문제는 1년 후에 돌아와도 이 여론이 딱히 변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결국 백도현 교수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린 것이다.

봉사활동도 많이 하고, 그간 있었던 일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소송도 잘 마무리한다면 재기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국대에서 연명 정도는 할 수 있을 듯했다.


지금 백도현 교수에게 가장 큰 문제는 차우진이 쏘아 올린 작은 공론화로 이어진 미투 물결 때문이었다.

여대생을 성추행하고 노래방에서 여대생을 끼고 논다는 온갖 죄목으로 소송 문제에 휘말렸다.


이걸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안식년이 끝난다고 해도.

그의 자리는 없을 예정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차우진이 더 악바리처럼 달려들어 그를 물고 늘어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가 소송이라도 하는 날에는 정말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질 테니까.

속이 타고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지만 더는 차우진과 엮여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똑똑.


“들어와요.”

“이보게, 백 교수.”

“임동규 교수님.”


임동규 교수는 어수선한 연구실을 둘러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나마 이 정도라 다행이라 생각하며.


“이게 최선이었네.”

“예, 이해합니다. 그래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닐세. 똥 밟았다 생각해. 여론이야 곧 잠잠해질 거고. 안식년 다녀오면 모든 게 정상화될 걸세.”

“예. 모쪼록 도와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1년 뒤에 뵙겠습니다.”


도와주긴 개뿔.

백도현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가장 먼저 손절 친 사람이 임동규 교수였다.


딴에는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백도현 교수를 구제하려 노력했다고 생색내지만.

결국 본인은 슬쩍 빠져서 제삼자가 되겠다는 의중이었다.


사회적으로 가장 물의를 일으킨 사건은 노래방에서 여대생을 끼고 놀았다는 정황이었다.

대학생을 가르치는 교수가 노래방에서 도우미로 여대생을 불렀다고?

그 어느 누가 자기 자식을 믿고 맡길 수 있겠는가.


그런데 차우진은 그 사건에서 왜인지 모르겠지만 백도현만 언급했다.

그 자리에는 분명 임동규 교수와 김 교수도 함께였는데.


다 같이 죽자판이 아니라면 백도현 교수도 물귀신 작전을 쓸 필요는 없었다.

없는 도움이라도 받아야 할 판이었으니까.

덕분에 김 교수도 못 이기는 척 대학교를 설득해 중징계는 피하게 했다.


“그래. 몸조리 잘하고. 건강하게 다시 보자고.”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정들었던 문학관을 나오자 전미영이 기다리고 있었다.


“짐은 다 챙겼어요?”

“그래.”

“다음 달 비행기로 예약했어요.”

“미국 숙소는? 짐은 다 쌌고?”

“···.”

“왜 말이 없어?”


극심한 스트레스로 더 강압적으로 변한 백도현.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할 수 없으니 전미영에게라도 해야 했다.


“그건 다음 주부터 차근차근하시면 되잖아요.”

“내가? 집에서 살림이나 하는 주제에 그것도 못 했다고?”

“··· 저 애도 키우고.”

“애가 대수야? 양가 부모님 오셔서 돌봐주시잖아? 돌보미도 고용했고. 하는 것도 없으면서 남편 뒷바라지도 못 하겠어?”


백도현은 얼굴이 시뻘게지면서까지 호통을 쳤다.

그것도 대학교 안에서.

주변을 거닐던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게 느껴졌다.


원래 이런 상황일수록 더 조심해야 하는 법이지만.

사람이란 게 원래 회생 불가능한 타격을 입으면 자포자기하기 쉬워지는 법이다.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진 이미지 더 떨어질 게 있겠냐는 식으로 아랑곳하지 않고 더 크게 소리쳤다.


“밥만 축내는 여자 교수 마누라 시켜줬더니. 이젠 뒷바라지도 내가 해라?”

“그런 뜻이 아니라···.”

“전미영. 네 전남편 때문에 이게 뭐야? 그놈 교육을 어떻게 시켰길래 그딴 미친 짓을 하냐고! 어?!”

“그 얘기가 여기서 왜 나와요? 제가 차우진 부모도 아니었는데!”

“잘 가르쳤어야지. 감히 하늘 같은 스승님한테 대들지 못하게! 엉? 그놈 원래 그런 놈이 아니었어. 이게 다 너랑 살면서 물들었던 거야. 그래. 이제야 알겠네.”

“제발 더 추하게 굴지 마요!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품격 떨어지게 왜 이래요?”

“품격? 품격이라고 했냐, 이 씨발년아!”


넘어선 안 될 선까지 넘어버린 백도현 교수.

막말에 이어 쌍욕까지 내뱉었다.

세상 사람들에게 내뱉지 못하기에 절대로 자기를 배신하지 않으리라 생각한 전미영에게 내뱉은 것이다.


어차피 저 불쌍한 여자는 자기 말고는 기댈 곳도 없다.

전남편까지 버리고 와서 재혼했다.

애까지 낳았고.

또 이혼한다고?

그럼 한국 사회에서는 그냥 생매장이나 다름없다.

경력은 이미 단절되었으니 일터로 돌아가지도 못할 텐데.

꼼짝없이 자기와 살아야 한다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조용히 좀 해주시겠어요, 백도현 교수님?”


그때, 차분하지만 싱그러운 과일처럼 상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소라면 기분이 좋아지겠지만 활활 타오르는 활화산보다 더 폭발한 백도현 교수에게는 화만 더 돋우는 결과만 초래했다.


“당신이 무슨 상관··· 정시은 교수?”


백도현 교수 앞에는 정시은 교수가 서 있었다.

사실상 이 년이 오고 나서부터 모든 게 틀어지기 시작했다.


“당신은···.”


전미영도 화가 나긴 마찬가지였다.

차우진의 새로운 여자.

한국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정시은.


그저 나락으로 떨어져 빌빌거리면서 인생을 한탄하기만 해야 했던 차우진을 나락에서 끌어 올려 준 인물.

저 여자만 아니었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도, 이혼 후에 후회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결혼의 참담함부터 보여줄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

“끄으.”

“제발 참아요, 도현 씨.”


분노가 치밀어올랐지만 뭐라 할 말이 없었다.

특히 정시은 교수는 절대로 건드리지 말라는 김 교수의 신신당부가 있었다.


김 교수까지 등을 돌린다면 정말 답은 없었다.

그러니 말을 들어야 하는 수밖에.


“백도현 교수님. 고작 안식년으로 도망치듯 가시면서 세상 다 살았다는 표정으로 계시지 마세요. 마음 찢어지게.”

“···.”

“돌아오면 모든 게 끝나 있을 거 같죠?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교수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잘 준비해 놓을 테니까요. 돌아올 자리는 아마 없을 거예요. 설사 돌아온다고 해도. 괜히 돌아왔다고 생각할 정도로 지옥이 될 테구요.”

“저! 개 같은···.”

“도현 씨. 참아요!”

“우진 씨에게 새겨진 상처의 조금도 안 되겠지만. 우진 씨 근처에 얼씬거리면 제가 모든 걸 동원해서라도 똑같은 상처, 아니 그보다 더 아프게 만들 거야.”

“이봐요, 정시은 씨.”


참다못한 전미영이 나섰다.

이대로 가다간 백도현 교수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본인에게 쌍욕하는 건 괜찮다.


하지만 정시은에게 그러기라도 한다면.

일이 더 커질 확률이 높았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로 우진 오빠한테 붙어있는진 모르겠지만.”

“···.”“적당히 하세요. 순진한 우진 오빠 꼬드겨서 가지고 놀지 말라는 겁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죠?”

“당신 같은 사람이 우진 오빠를 좋아할 리가 없잖아요.”

“재밌네요. 그래도 전남편인데. 당신이 선택했던 남자를 까 내리면 기분이 조금 나아지나요?”

“하루에만 당첨되지 않은 버려진 복권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요? 우진 오빠는 그저 꽝이었을 뿐이야.”

“그럼. 지금 뽑은 복권은··· 당첨인가요?”


붉으락푸르락 모나게도 씩씩대며 잔뜩 인상을 찡그린 백도현 교수를 응시하며 말하는 정시은.

그 말에 전미영의 얼굴도 함께 붉어졌다.


“적어도 전. 제가 선택한 남자에 대한 자부심은 있어요. 전미영 씨. 당신은 예전에도, 그리고 현재도 아닌 거 같지만. 아! 학생 면담이 있어서요. 전 그럼 이만.”


정시은은 유유히 사라졌다.

철저히 밟힌 전미영과 백도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울분만 삭일 뿐이었다.

그런데 원래 인생은 엎치면 덮쳐지기 마련이다.


“여기서 뭣들 하고 계십니까?”


절대로 이 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사람이 등장했다.

차우진.

그는 순진한 표정으로 문학관 앞에 섰다.


아까 한 얘기를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차우진이 이 자리에 있다는 게 중요했다.

지금 처참하게 짓밟힌 쓰라린 상처에 소금을 붓는 격이었다.


“우진 오빠?”

“차우진. 네가 여긴 무슨 일이냐?”

“아. 뭐 딱히 숨길 이유는 없겠네요. 저 다시 학교 다니려고요.”


백도현과 차우진 사이에.

전미영은 덩그러니 서 있었다.


한 명은 도무지 미래가 보이지 않아 버렸던 난파된 배.

다른 한 명은 그녀의 오랜 꿈이었던 교수 아내를 이뤄줄 구명보트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상황은 어째 반대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한국대 교수로 승승장구할 것만 같았던 백도현 교수는 좌천당하다 못해 거의 내쫓기듯이 안식년으로 미국으로 간다.

돌아와도 거취를 장담하지 못한 채로 말이다.


반면에 나락의 구렁텅이에서 한동안 허우적거리기만 할 것만 같던 차우진은.

이혼 후 이상하리만치 일이 잘 풀리기 시작했다.

전미영은 모른 척하긴 했지만 차우진에게 일어나는 일은 스토커처럼 쫓아다녔다.

인터넷에 유명해진 강사 사건부터 시작해서 정시은과 좋은 관계까지.


그리고 절정에 다다라서는.

한국대로 돌아온단다.

한국대를 떠나는 백도현 교수 앞에 당당히 서서.


“오빠. 집에 빚도 많잖아. 학교는 어떻게 다니려고?”

“빚은 갚으면 돼. 사정이 좀 좋아졌거든. 여전히 힘들긴 하지만. 내 꿈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오빠의··· 꿈?”

“대학교수.”


머리에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토록 바랄 때는 빚에 허덕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쓰레기였던 주제에.

자기가 떠나고 나니까 갑자기 꿈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전미영은 모르고 있었다.

차우진을 옥죄던 건 빚이나 불운한 상황이 아니었음을.

그녀 자체가 차우진의 족쇄였던 걸 모르고 있었다.


“아참! 백도현 교수님.”

“뭐, 뭐? 뭔데?”

“안식년 받아서 미국 가신다고 들었습니다.”


차우진이 저런 소리를 하니 백도현은 잔뜩 쫄렸다.

혹시라도 걸고넘어지면 정말 골치 아프니까.


“돌아와서 재기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마세요.”

“뭐?”

“저 더 나쁜 놈으로 만들지 마세요.”


그 어떤 설명을 하지 않아도 숨이 턱턱- 막히는 협박이었다.

백도현 교수는 기도가 막힌 사람처럼 켁켁대며 호흡 못 할 정도로 당황했다.


“돌아오면 국어국문학과에 저도 있을 거예요.”


석사를 다시 하겠다는 건.

결국 백도현 교수가 1년 뒤에 돌아오면 차우진 또한 석사생 혹은 졸업했다면 박사생으로 있다는 뜻이었다.


“나한테 왜 이래? 이럴 거면 지금 내쳐야지! 1년 유예기간이라도 준다고? 자비라도 베푸는 거냐?”

“푸핫.”


백도현 교수의 절규에 차우진은 웃음을 터트렸다.


“교수님. 저 예전의 차우진 아닙니다. 아시잖아요. 호되게 당하셨으면서. 찐따 호구 착한 척하는 차우진 아니라고요.”

“그래서 뭐? 어쩌라고!”

“교수님 당장 잘리시면. 티오가 나버리잖아요. 저 박사 졸업하고 한국대에 지원할 때까지는 버티고 계셔야죠.”


전미영은 이런 상황에서도 정말 우스꽝스럽게도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 이름이 생각났다.

우리 우진이가 달라졌어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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