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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break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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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조선 외교 TF팀, 그런데 나 혼자인 (3)

DUMMY

비교(比較).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유야 많지만, ‘당하는’ 쪽의 자존감이 바닥을 치기 때문.


그러한 이유로 반대쪽은 상대의 기분을 흡수해 기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지금 사용하기에 아주 좋은 방식이다.


“강화에 불란서 이양선이 출몰해 선물을 내려놓고 갈 것이다?”

“예, 영감.”

“조정에서 금하고 있으나 이양선이 닻을 내리면 목선을 타고 인근 백성들이 교류하는 것은 늘 있는 일이었는데, 어찌 이를 불란서가 우리 조선을 우대한다며 어전에 아뢰겠나?”

“영길리가 일본의 살마(薩摩, 사쓰마)를 공격한 것에 비하면 후의(厚意)하는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일본과 영길리가 전쟁이라도 한다는 말인가?”

“일본과의 전쟁이 아닙니다. 살마국과의 싸움이지요. 게다가 이는 처음이 아닙니다. 당장 지난달에만 해도 아메리가와 불란서가 장주(長州)를 공격해 적간관(赤間關)을 불태웠으니 말입니다.”


유럽 제국들은 중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누구 패고 뜯을 때는 또 똘똘 뭉쳐서 깨부숴 놓는다.


얼마나 동양 국가를 무시하는지 일개 외교관이 ‘버스터 콜’을 불렀기 때문.


다행히 우리 조선은 청도 뼈가 박살 나고 일본도 코피가 터지는 마당에 정말 무사하다.


왜? 우리가 국제 정세로 아주 중요하니까. 제멋대로 착각이기는 해도 듣기 좋은 소리다.


“대청과 일본이 모두 공격을 당하는 동안 선물을 받았으니 성과이지요.”

“···자네는 어찌 그리 먼 곳의 정보를 조정 대신들보다 먼저 알고는 하는지 궁금하군.”

“대개 상인은 물품이 중한 줄 알지만, 실제로 가장 필요한 것은 소식이지요.”

“이번에도 동래에서 바다를 멋대로 건너다니는 잠상에게 들었나?”

“소인의 명줄과도 같은 연줄이오니 어찌 밝히겠습니까. 다만 양어에 밝아 들을 수 있는 것이 넓다고만 하겠습니다.”

“자네가 들을 줄 안다는 양어는 나도 좀 듣고 싶은데 가능하겠나.”

“하문하시면 조속히 올리겠습니다.”

“바로 적어 올리게. 내일 상참(常參)에 올리려 하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럴 줄 알고 이미 정리해 뒀다. 건의하고 보고서를 만드는 건 하수 중의 하수.


보고서를 만들면서 건의가 이뤄져야지 괜히 중간 수정이나 노선 변경 등, 일을 두 번 안 할 수 있다.


박규수는 내게 내려진 유연근무제(자율 출근 포함)를 당장이라도 폐지하고 옆에 앉혀서 문서를 토하는 노비로 부리고 싶은 눈빛이지만, 어림도 없다.


대화 끝에 ‘그러면 저는 또다시 조정에 도움이 될 정보 들으러 가 볼게요.’ 하고 못을 박아 놨으니 불가능하다.


고정 출근 절대 안 해. 그랬으면 강화도에 떨어진 보급 중에 커피 원두만 중간에서 챙기고 전달하는 일 따위는 절대 하지 못한다.


요즘 들어 음료 사업 2년 차에 접어들자 각종 열화 카피들이 생겨나고 있어서 심란하니, 더욱 커피 독점 사업에는 열과 성을 다해야만 했다.


밖으로 나오자 일도 바쁜데 꼭 등청할 때마다 말고삐를 직접 잡고 오가는 김 씨가 보였다.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도련님. 여기 당락 한 잔 쭈욱 하시지요.”

“노고랄 것이 뭐가 있겠는가. 영감께 행한 바 고하고 계책을 상신드릴 뿐인 것을.”

“관직에 나아가 힘쓰시는 노고야 저 같은 양민(良民)은 알 도리가 없지요.”

“해 봐야 매년 멀리까지 나가 고생하는 자네만 하겠는가? 자, 가세. 안 그래도 요새 시전에 멋대로 흑두차와 당락을 따라 하는 무도한 자들이 많아 골머리를 앓는 마당이니. 이리 관복도 입은 김에 한번 들러 잡다한 자들을 정리하게 가게로 가지.”

“알겠습니다. 바로 모시겠습니다. 어허, 물러서거라.”


요즘 내가 종종 출근하기 시작하니 나를 보는 김 씨의 눈빛이 뭔가 뿌듯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설마 내가 여태까지 방구석에서 돈만 쓰는 백수라고 생각했다가 이렇게 관복 입고 관청에 들락거려서인 건가?


대기업 취직한 아들을 보는 표정을 짓는 것 정도야 나도 즐겁지만, 정말 그런 생각이라면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허어, 백년대계의 큰일 하는 외교관의 고충은 대체 누가 알아준다는 말인가.


“도련님.”

“왜 그런가?”

“그러면 이제 슬슬 매파들에게 일러 혼처도 알아보면 되겠습니까?”

“혼처를? 자네가 알아보겠다고?”

“아이고, 혹시 벌써 얘기가 오는 집안이 있는 모양입니다. 양반가의 혼례라고 함은 처가(妻家) 될 곳에서 미리 사위의 총명함을 알아보고 하는 것인데 이놈이 마음이 과해 헛소리했습니다. 송구합니다.”


아니, 그런 곳 없어요.

아마 당분간도 앞으로도 없지 않을까?


한양 양반 인트라넷에 접속하지 않으면 그런 일은 본래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게다가 내가 관복을 입고 좁쌀만 한 권력과 위세를 대놓고 휘두르지도 않으니 더욱.


혼례라··· 언젠가 가정을 가지겠지만, 평균 초혼 연령 30대 중반인 시대를 살았던 내게 지금은 좀 너무 이른 감이 있었다.


아니라고 말해도 김 씨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고삐를 잡고 희희낙락하고 있었다.


허어··· 일단 혼례는 나중에 생각해도 늦지 않았다. 원래 능력이 있으면 다 알아서 가게 되어 있으니까.


아마도. 아마······


* * *


민안청을 중심으로 시행된 계책의 중심에는 환곡이 자리하고 있었다.


환곡은 단순한 구휼곡이 아닌 유학 정치를 현실에 구현한다는 대의를 띈 조선의 국시(國是).


게다가, 군영의 혁파가 중앙 정계의 폭풍이라면, 환곡 파환과 사창제의 실시는 지방 세력의 지각 변동이었다.


“전하, 사창법을 속히 시행하시어 환곡의 폐단을 바르게 하시옵소서.”

“백성이 봄에 고생하지 않으며 가을에 기쁨을 누리는 것은 조종에서 대대로 이어진 임금의 책무이니, 사창법의 혜택이 그와 같다면 실행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대로 실시하라.”

“하오나 사창제는 이미 성종 대왕 시절에 그 원곡이 20년 만에 상해 철폐한 전례가 있나이다.”

“안 된다. 못 한다. 전례가 없다. 그런 말밖에 못 하는 것이오?”


단순히 사창제 자체는 중앙 세족에게 있어서 곡식으로 대표되는 권력을 지방에 넘겨주는 꼴.


그러니 중앙의 관료들이 반대하는 것도 당연한 이치. 특히나 얼마 전, 휘경원 천봉을 간언하였다가 막힌 영의정 김좌근에게는 더욱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사창법이 전례가 없는 것이 아니옵나이다. 주자(朱子)가 사창법(社倉法)에 이르길 ‘여름에 곡식을 받아 겨울이 되면 이자를 더하여 쌀을 갚도록 하되, 흉년에는 이자의 반을 면해 주고 큰 기근이 들면 모두 면제하도록 하며, 오직 백성들이 맡으면 아전들이 농간을 부릴 수가 없어 백성들이 모두 편하게 여긴다.’라고 하였나이다.”

“백성에게 맡긴다고 하여 폐단이 없을 것이라 주장한 것은 사실이나 아국의 실정이 그렇지 않았나이다, 전하.”

“그렇다면, 민안청에서 올린 사창법이 주자가 말하는 것과 같은가?”

“그렇사옵니다.”

“나는 지사(知事) 김경용(景用, 김병국의 호)에게 물었소. 답해 보시오. 지사.”

“···신이 민안청에 있지 않아 자세히는 부족하나 아는 바만 소상히 아뢰자면, 창(倉)을 두는 것은 같지만 경영하는 방식의 다르옵니다.

민안청에서는 이르길. 백성의 관리하는 만큼 백성들 사이에서 갑(甲), 수(首), 사수(社首)를 가려 뽑아 이들을 조정에서 감독하게 해야 한다고 했나이다.”

“율(律)도, 도(道)도, 의(義), 인(仁)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백성들이 어찌 진휼하는 창고를 관리한다는 말입니까! 이는 그저 눈속임하려는 것에 불과하옵나이다!”


그러나 김씨 안에서도 임금을 중심으로 한 정국이 굳혀지자. 아예 노선을 바꾼 이도 등장했다.


바로 김좌근으로 대표되는 근(根) 항렬의 바로 아래 병(炳) 항렬. 특히나 이에는 사창에 찬성하는 전 호조판서 김병국이 있었다.


“신 역시 호판 시절 환곡의 문란함을 알고 이를 타파하고자 하였으나 지방의 실정을 알지 못해 상언하지 못했나이다.”

“또 누가 지사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가?”

“마찬가지로 전 호판인 김성존(聖存, 김병기의 호)이옵나이다.”

“소신 역시도 김 지사와 같은 생각이옵나이다. 전하, 부디 사창법을 널리 실시하여 환곡의 폐단을 정리하시옵소서!”


김병국이 겸빙기를 거론하고, 그의 형인 김병학(金炳學) 역시 이에 동조하면서 조정의 여론이 흔들렸다.


민안청에서 올린 사창제는 구휼제도 자체를 지방과 민에 일임하자는 안건은 아니었다.


오히려 중앙에서 간관을 파견에 일거에 관리 감독할 수 있으니 나쁠 일도 없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게다가, 관리자를 가려 뽑겠다고 하지만, 이는 얼마나 창고에 구휼곡을 채워 넣는지에 따라 달라질 터.


지방의 아전과 사족의 재물을 조정이 감권(監權)을 쥔 채로 한데에 묶어 둘 수 있었다.


즉, 혹여나 다른 마음을 먹는다면 언제든지 사창의 구휼곡을 압수하여 징벌할 수 있다. 홀몸이야 도망가겠지만, 곡식까지 그럴 수는 없는 일.


설사 창고에 구휼곡을 넣지 않아도 좋다. 그렇게 된다면 사족의 권위가 그 지역에서 바닥을 칠 테니까.


이러한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 덕에 다소 과격한 바가 있기는 했지만, 박규수는 이회신이 올린 계책의 뼈대는 그대로 둔 채로 가감(加減)하여 상언한 것이었다.


“경들은 어찌 생각하는가?”

“······ 전하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사창법을 반포하라. 단, 경들의 걱정 역시 당연한바. 지난번 파환귀결법의 실수를 교훈 삼아. 민안청의 원안대로 경기와 삼남 그리고 해서에서부터 먼저 실시하여 그 효용을 보고 전국으로 확대하겠다.”

“올바르신 성단이옵나이다!”


물론, 이회신은 단순히 사창에서 끝이 아니라 지방 금융조합의 설립과 지방 은행의 발족으로 이어지리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아직 너무 일렀다.


1863년 10월. 김좌근은 영의정 사직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고 임금은 이를 가납하였다.


* * *


살아 있는 21세기의 외교는 거의 즉각적인 반응이 온다. 어디 아프리카나 남미 구석에 처박힌 영사관이라고 사건이 터지면 해도 기사는 곧바로 뜨곤 한다.


기사가 떴다면 외교부 채널에서 영사관에게 직통으로 ‘너네 미쳤지? 지금 한국 들어오기 싫어서 그래? 망명 신청 서류 보내 줘?!’ 하는 소리가 쏟아지기도 한다.


철밥통 공무원 사이에서 그런 게 어딨냐고? 있다. 내가 첸나이에서 똑똑히 들은 기억이 있다.


반면 조선의 외교는 느긋하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자면 그럴 수밖에 없다.


전선이 있는 것도 아니라 일일이 편지가 바다를 건너고 사람이 육지를 뛰어야 소식이 전달된다.


그렇다고 내가 정부를 대리해 외교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조선 정부 역시 청나라 떼고 독자 외교는 꿈도 못 꾼다.


고로 한동안은 커피 사업으로 바빴다. 논 것 아니냐고? 그럴 리가.


“좌우 양쪽이 두들겨 맞았으니, 이건 살아남은 조선의 승리네? 의심할 것도 없이 정답이구만.”


벌써 내가 조선의 외교를 정상화시키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어림도 없는 일.


그냥 가만히 있었으니 순서가 뒤로 밀린 것뿐이었다.


앞으로 몇 년만 더 있으면 유럽 전체에 김치 맛집으로 소문나서 영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 오스트리아, 덴마크, 벨기에, 이탈리아, 미국까지 모두 달려든다.


이걸 어떻게 하려면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나뿐이기는 한데······


“그렇다고 아직 숨통은 붙어 있는 양반한테 빨리 후계자 지명하고 저승에 입국 수속 하라고 할 수도 없으니.”


사람이라면 생각해서는 안 되지만, 외교관이라면 가능한 생각이다.


21세기에도 쪼아 대는 타국 정상을 보면서 ‘음, 빨리 죽어서 정책 기조가 바뀌면 좋겠다.’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래야 우리 집 술독도 남아나지 않을까.”


VIP께서는 우리 집 탁주에 아예 맛이 들리셨는지 거의 매주 사람을 보내서 털어가고 있다.


―쿵쿵쿵.


“거봐. 역시 양반이 아니셔서 그런가 말하면 바로 오시네. 박 씨. 떠 놨는가?”

“예, 해 놨습니다.”

“문 열게나.”


문이 열리고 익숙한 흑색의 외형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뒤로는 낯빛마저 어두운 사람이 함께 들어왔다.


또야? 아니, 무슨 궁궐 문 지키는 숙위대는 뭐 그렇게 자동문처럼 자꾸 열어 주는 거야?


“오늘은 직접 오셨군요.”

“마지막 술 정도는 직접 가지러 와야지 예의가 아니겠는가.”

“순무 김치가 잘 익기는 했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그대도 내가 올 줄 알았다니 역시 앉아서 만 리를 보는 청안광이로다.”

“아.”


그거 박규수가 알려 준 거지? 그렇지?


작가의말

1. 제가 못 찾을 걸 수도 있지만,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 1863년의 사쓰에이(薩英, 살영)전쟁과 시모노세키 전쟁(下関戦争)에 대한 기록은 없는 걸로 보입니다. 워낙에 짧은 것도 있겠지만, 조선의 대외 정보 수집 능력이 떨어져서가 아닐까 합니다. 두 사건은 생각보다 일본의 근대화에 많은 영향을 끼친 사건이기도 합니다.\\


2. 1863년을 기준으로 이회신의 나이는 20세입니다. 김 씨가 괜히 ‘도련님이 고자인가?’ 하는 게 아닙니다. 조선시대의 혼인 적령이 15세임을 고려했을 때는 늦었지만, 적장 본인은 ‘흠, 그정둔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양반가의 혼인은 보통 남자 쪽의 관운이나 미래를 보고 상대적으로 권세가 좋은 여자 집안 쪽에서 먼저 제안을 하는 형식입니다.


3. 사창제는 남송의 유학자 주희, 흔히 알기로 주자(朱子)에 의해서 12세기에 시작되어 조선에서도 세종 조에 직제한 이계전(李季甸)에게 사창 시행을 위한 사목(事目)을 연구하게 한 바도 있습니다.

( 출처 : 세종실록, 세종 27년 을축(1445) 7월 24일(을미) )

실제로는 성종 때는 국가적으로 시행되었다가 폐지되었지만, 국가차원에서의 폐지이지 지방에서는 사족들을 중심으로 운용되는 경우도 잦았습니다. 1808년 의령의 향약사창계절목≪(鄕約社倉稧節目)≫과 1803년 ≪어화중하촌동향약곡분급성책 漁火中下村洞鄕約穀分給成冊≫이 그 실행 예시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합니다.

현 시점에서 조정에서 논의되는 사창제는 원래 역사속 고종4년(1867)에 논의된 사창법과는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합니다. 해당 사창법은 당백전(當百錢) 1,500,000냥으로 환곡 복구를 명하고 난 후에 시행하였고 현 시점에서는 지방 아전과 유지의 자발적 납부, 포흠한 자들에게 환곡 압수, 환곡의 취모보용(取耗補用) 기능을 축소하며, 본래 기능인 구휼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고종32년(1895년) 갑오개혁 시기의 사환조례(社還條例)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참고 : 이동희. (2007). 주자의 사창법(社倉法)이 주는 사회복지학적 시사점. 유교사상문화연구, 29(0), 219-246.  / 박지태. 大韓帝國期政策史資料集. 서울: 韓國人文科學院, 19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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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조선 외교 정상화의 이회 신 (1) +13 24.09.15 1,098 7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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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황궁의 짐승과 조련사 박규수 +12 24.09.14 1,115 78 14쪽
43 프랑스는 진짜 유명한 유럽의 중국임 +12 24.09.13 1,168 87 14쪽
42 숏돌이 이회신과 특급 요리사 언년 +16 24.09.12 1,211 82 13쪽
41 이렇게 된 이상 청나라로 간다 (3) +9 24.09.11 1,252 69 13쪽
40 이렇게 된 이상 청나라로 간다 (2) +13 24.09.10 1,286 72 13쪽
39 이렇게 된 이상 청나라로 간다 (1) +8 24.09.09 1,307 82 14쪽
38 원래 약소국은 이렇게 외교하거든요? (2) +16 24.09.08 1,460 89 13쪽
37 원래 약소국은 이렇게 외교하거든요? (1) +16 24.09.07 1,460 90 12쪽
36 번국은 맘대로 팔아먹는 중화식 외교 +8 24.09.06 1,489 82 14쪽
35 가장도 그리고 나라도 지키는 청안다점 +9 24.09.05 1,528 89 15쪽
34 새로운 길을 내는 방법 +12 24.09.04 1,543 94 14쪽
33 선왕, 강종의 유산 +16 24.09.03 1,615 94 14쪽
32 얘는 그냥 이회신이 좋음. +18 24.09.02 1,684 94 15쪽
31 개똥이, 임금이 되다. +15 24.09.01 1,676 98 13쪽
30 너무 늦게 타오른 불꽃 +17 24.08.31 1,636 105 13쪽
» 조선 외교 TF팀, 그런데 나 혼자인 (3) +9 24.08.30 1,574 93 13쪽
28 조선 외교 TF팀, 그런데 나 혼자인 (2) +10 24.08.29 1,576 94 13쪽
27 조선 외교 TF팀, 그런데 나 혼자인 (1) +9 24.08.28 1,592 95 13쪽
26 시작된 강화도령의 라스트 댄스 +12 24.08.28 1,625 95 12쪽
25 뒤에서 움직이는 조선의 외교통 (2) +11 24.08.27 1,598 101 14쪽
24 뒤에서 움직이는 조선의 외교통 (1) +11 24.08.26 1,607 9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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