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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AK
그림/삽화
NOVAK
작품등록일 :
2024.08.05 19:36
최근연재일 :
2024.09.15 14:48
연재수 :
18 회
조회수 :
553
추천수 :
44
글자수 :
104,043

작성
24.08.05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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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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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3쪽

19:30

DUMMY

“기각입니다.”

“아.......”

변호사의 말에 누나의 몸이 허물어진다.


나는 쓰러지는 그녀의 몸을 부축해 택시에 태웠다.


누나는 요새 광풍처럼 몰아치는 전세 사기 피해자다.


피해 금액은 2억. 6년간 회사생활 하며 모은 1억에 대출 1억.

플러스 1억이 눈 떠보니 마이너스 1억이 되어 있었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결과다.


세전 월급 300만 원. 복구하려면 얼마나 걸릴까? 5년? 10년? 생각만 해도 현기증이 났다.


눈만 뜨면 계약서에 사인한 손가락을 자르고 싶은 그 엿같은 기분을 10년간 겪어야 할 거다. 누나는. 그 긴 절망의 터널을 버틸 수나 있을까?


혹자는 말한다. 당하기 전에 꼼꼼히 살펴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이런 거 일일이 나라가 구제해 주면 그게 자본주의냐고.


하, 모르겠다.

어떤 건 맞을 수도 있죠. 자기 삶은 자기가 책임지는 거니까요.

이런 속 깊은 답변은 차마 못 하겠다.


누나 나이 그래봐야 31살. 사회 초년생이고 이런 쪽으로 경험도 없다.

공인중개사가 자신이 건물주를 잘 아니 믿고 계약하라고, 책임지겠다고 하는 말에 홀리듯 사인했다.


책임. 그가 썼다는 그 단어에 구역질이 난다. 빵집에서 식빵 쪼가리 하나 살 수 없는 그놈의 ‘도의적 책임’을 믿어버린 탓에 사달이 났다.


나는 뭐든 잘 참으며 살아왔다.

그 방면으론 꽤 재능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정말 죽여버리고 싶다. 깡통 전세 건물주도, 탐욕의 혓바닥을 가진 그 공인중개사도. 하지만, 그래봐야 뇌세포에서만 벌어지는 시나리오다. 나는 아무 짓도 못 할 거고, 그들은 같은 짓을 또 할 거다.


“좀 자.”

나는 누나를 내 원룸 침대에 눕히곤 이마를 쓰다듬었다.


“정열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

“괜찮아, 누나. 괜찮아. 내가 지켜줄게.”


라고 말했지만, 현실은 나도 월세방 원룸이다. 월급이라고 해 봐야 누나와 오십보백보다. 주에 2, 3회 대리운전으로 용돈벌이했는데 이젠 매일 나가야 할 것 같다.


누나가 확실히 잠든 걸 확인하고 밖으로 나왔다. 사실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도망친 거다.


집 앞 근린공원을 배회하다 머리가 아파 쉴 곳을 찾았다.

살면서 본 적도 없는 1억이라는 숫자가 윙윙거리고 돌아다녀서 머리가 복잡했다.


공원 벤치에 앉았다.


박정열, 너라도 정신 차려. 이러다 같이 죽겠다.

우울증에 빠지려는 마음을 꾸역꾸역 붙잡았다.


우웅.

열심히 벤치에서 얼빠지게 앉아 있던 중 문자가 왔다.


[정열 군, 잠깐만 와줄 수 있습니까. 내가 몸이. 조금 급해서. 바쁘면 미안. 합니다만.]


내가 사는 원룸 옆 호실에 사는, 폐지 줍는 할아버지다. 안 지는 이제 2년이 다 되어 간다.


비 오는 날 리어카에 폐지를 수북이 쌓고 가는 그를 도와준 것이 만남의 계기가 됐다.


나는 그전까지 그가 옆집에 사는 줄도 몰랐다.

아마 생활루틴이 달라서였을 거다.


가는 길에 이만저만 이야기하다 보니 같은 곳에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할아버지는 죽마고우라도 만난 듯이 극구 괜찮다고 했는데도 그날 번 5천 원으로 분식집 라면을 사주었다.


옆집 사는 것을 알아버렸는데 그냥 가버리는 것도 그렇고 해서 엉겁결에 라면을 얻어먹게 되었다. 아, 반주로 소주 반병도 같이.


할아버지는 마르고 구부정한 체형에 까슬한 흰 수염이 몇 밀리 자란, 우리가 아는 전형적인 ‘폐지 줍는 노인’ 그대로의 외모였다.


인생 스토리도 참으로 교과서처럼 전형적이었다.


소싯적엔 패기 있게 사업도 하고 열심히 살았다.

그러다 지인에게 배신당해 크게 한 방 맞고 가족도 잃고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세월만 수십 년. 근근이 기초수급비와 폐지 수거로 하루하루 연명하며 고독사를 기다리는, 대한민국 노인 문제의 단면을 정석적으로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왠지 나와는 코드가 잘 맞았다.

처음에는 그래, 불쌍함에 연민으로 상대해 준 것은 맞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나도 고독사하기 딱 좋은 환경이긴 하다.

내향적 성격. 밤낮으로 일하느라 사람 만나기 힘든 패턴. 주말에 누구라도 만나려 손 치면 천정부지로 솟은 안줏값 걱정에 그냥 방콕하고 짜빠구리 끓여 먹는 인생.


그런 나에게 할아버지는 의외로 뭔가 통하는 친구 같은 관계였다.


[네. 지금 들어가는 길이에요. 마트에서 라면사서 들르겠습니다.]


할아버지는 라면을 좋아한다.

가성비 때문에 매일 먹어야만 하는 음식이 질리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 천운이다.

건강 괜찮을까 싶지만, 겉으로 보기에 허리 굽은 것 빼곤 상당히 정정한 분이다.


혼자 있는 누나도 슬슬 걱정되고 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좀 사치스럽게 부대라면을 끓여볼까.

나는 할인 중인 햄과 대파까지 마구 결제해서 봉투에 넣었다.


똑똑.


“할아버지, 저예요.”


303호. 할아버지 원룸이다. 그는 벨소리를 싫어한다. 좁아터진 원룸에 무슨 벨이 이렇게 크냐며 손사래를 친다. 솔직히 그건 나도 동의하는 바이긴 하다.


응? 그런데 할아버지가 답이 없다. 두드리는 소리가 작았나? 70대인데 가는귀 하나 먹지 않고 정정한 분이다.


“.......”

똑똑. 나는 다시 한번 문을 두드려 보았다. 역시 반응이 없다. 잠귀도 밝은 편이라 계시면 모를 리가 없을 텐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 보았다. 띠리리리. 문 너머로 할아버지의 핸드폰이 울렸다. 하지만 묵묵부답.


혹시. 전혀 계산에 없었던 가능성이 의식의 수면 위로 올랐다.

약간의 불안감. 설마 그럴 리야 있겠어?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순간 할아버지가 보낸 문자의 특정 부분이 생각났다.


[내가 몸이. 조금 그래서.]


문자 받을 때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한마디였다. 문자상의 ‘몸이 그래서’가 그래봐야 감기몸살 정도라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내 문자에 답장도 안 했다.

할아버지는 무조건 자신이 대화의 끝을 마감하는 타입이다.


내가 라면 사 간다고 보냈으면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가 나왔어야 했다. 지금까지 쭉 그래왔다.


약간의 불안함이 세력을 키워갔다. 나는 3초 정도 고민하다가 303호 현관 도어락의 비번을 눌렀다. 언젠가 할아버지가 알려준 거다. 자신의 고독사를 언급하면서 말이다.


[나 죽으면 정열 총각이 찾아줘. 구더기 펴서 집주인이 신고하기 전에 말이야.]


그렇게 종종 말하곤 했다.


삐리리릭.


문이 열렸다.


“할아버지.”


불이 꺼져 있다.

나는 문을 열자마자 봉투를 현관에 내려놓고 슬라이딩하듯 진입했다.


책상에 앉은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 너머로 컴퓨터 모니터 불빛이 보였다.


가만, 모니터? 할아버지가 컴퓨터를 했었나?


물론 컴퓨터가 있긴 있었다.


언젠가 ‘할아버지 컴퓨터 하세요? 게임도 하세요?’ 하면서 놀림조로 물어봤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때 ‘5년 전에는 바둑 좀 뒀는데 고장 난 뒤로는 안 합니다.’라고 들었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나는 다시 답 없는 할아버지를 흔들며 얼굴을 보았다.


“할, 흡!”

순간 툭, 하며 할아버지의 목이 힘을 잃고 옆으로 기울었다. 나는 숨이 멎을 정도로 놀라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노끈에 걸린 과메기처럼 그의 몸이 축 늘어졌다.


언젠가 이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20살이었나. 기르던 강아지가 장염을 앓다가 눈앞에서 꾸웩, 크게 토하고 죽은 장면이 떠올랐다.

육체에 매달려 있던 생명이, 혹은 영혼 비슷한 뭔가가 힘을 잃고 사라진 모습.

그것은 강아지나 인간이나 다르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죽었다.


“할아버지.”


무섭진 않았다. 상당히 여러 감정이 잡탕이 되어 몸을 감쌌다. 그는 예상대로 고독사했고 옆방 청년에 의해 상당히 빨리 방치 상태에서 벗어났다. 사체가 부패해 귓구멍에 구더기가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연민이 느껴졌다.


죽기 직전 할아버지는 무슨 마음이었을까.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식어버린 그의 몸을 안아주었다.


“대파랑 햄도 샀어요. 라면은 영정 앞에 올려드릴게요.”


그렇게 몇 초의 묵념 비슷한 애도 뒤, 경찰에 사망 신고를 하기 위해 핸드폰을 들었다. 자칫 신속하지 못하거나 미심쩍은 뉘앙스를 풍기면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 수 있다.


“.......”

그런데 순간 컴퓨터가 눈에 들어왔다. 모니터는 역사 속 유물과도 같은 구형 LCD. 앞뒤로 크게 공간을 잡아먹었다. 상단에 고운 먼지까지 켜켜이 쌓여 고물상에 어울릴 것 같다.


하지만 곧 불필요한 모니터 품평을 끝내고 화면에 집중했다. 어둠 속이라 확연히 눈에 들어왔다.


할아버지는 메신저로 누군가와 이야기 중이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컴퓨터로? 이상하다기보다는 낯설다. 그리고 그게 사망 시점이라 위화감이 들었다. 동년배 친구는 아닐 거고, 혹시 뭐 오랫동안 연락 안 되던 손주라도 만난 걸까?


나는 정지화면처럼 모니터를 응시했다.


[코스모스]


뭔가 이상했다. 이런 메신저가 있었나? 다크웹 뭐 그런 건가?


설마. 갑자기 그 생각을 한 나 자신에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할아버지가 그런 IT 지식을 갖추리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어쨌건 대한민국 사람 대부분은 핸드폰 메신저를 그대로 컴퓨터에 깔아서 쓴다. 하지만 이건 다르다. 게다가 처음 본다.


투박하고 기교 없는 검은 실선의 사각 테두리. 하얀 배경. 그것은 마치 컴퓨터의 기본 메모장 내지는 문서 프로그램의 상자 그려 넣기 같은 극도의 밋밋함을 보여주었다.


나는 모니터와 할아버지 사이에 몸을 끼우곤 내용을 들쳐 보았다.


[결과는 어떻게 됐나.]

- 상고는 기각되었습니다.


상고. 기각.

대화의 첫머리부터 자극적인 단어들이 눈에 띄었다. 신경이 곤두섰다. 오늘 있었던 누나의 전세 사기 건이 떠오르며 기분이 나빠졌다.


질문자는 할아버지다. 혹시 재판 중인 사건이 있던 건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꼭 당사자가 아니라도 관련된 무언가일 수 있다.


그것이 할아버지의 죽음에 영향을 미친 걸까?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


대화창을 키워 전체 내용을 펼쳐보았다.



[그런가. 결국 그렇게 되었군.]

- 네. ‘원주민 거주권 연장’은 결국 무산되었습니다.


[사유는? 2심과 같은 건가?]

- 그렇습니다. 원주민의 ‘거주 지속성’이 불투명하여 연장 필요성에 대한 사유가 타당하지 않다는 내용입니다.


[발 빠른 녀석들이 개떼처럼 몰릴 것이다. 그렇지 않나?]

- 맞습니다. 거주권 신청이 빗발치고 있습니다.


[‘방어권’은? 원주민 방어권은 허용이 되는 건가? 최소한 그것만이라도.......]

- 네. 적극 주장해서 방어권 발동은 승인해 주었습니다. 지원자 진입과 함께 ‘빅 아이 프로그램’의 시각화 모드가 가동될 겁니다.


원주민? 프로그램? 이야기가 산으로 간다. 자식들 재산분할 같은 민사 소송 뭐 그런 게 아니었나? 국어 선생님이 고전 시를 낭독하다 미적분 그래프를 그리는 정도의 이질감이 들었다.


[시점은 언제인가?]

- 19:30입니다.


19:30?


지금이잖아? 본능적으로 핸드폰 시간을 확인한다.


29분이다.


이상한 나라에 빨려들 듯이 폰 화면을 터치하며 초침을 보았다.


40초.


[적합 테스트ㄹ]

- 마스터? -

- 마스터? 무슨 일 있으십니까? -


끊어진 할아버지의, 아니 이제껏 ‘내가 알고 있던 그’가 보냈다기에는 심히 이상한 메시지.

그리고 할아버지를 ‘마스터’라 부르는 누군가.

그리고 30분까지 남은 시간 10초.


이 미궁의 삼위일체가 두뇌의 사고를 이지러뜨린다.

뇌로 가는 혈류량이 급속히 늘어나는 탓인지 심장의 펌프질이 더욱 거세진다.


진정해.

따지고 보면 이건 죽은 사람의 사생활 엿보기다.


괜한 오지랖이다.

그리고 사실 아무 일도 아닐 수 있다. 현실이라면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

하지만 그런 이성적 사고를 다시 한번 무너뜨리는 현상을 맞닥뜨린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왜 구석기 유물 같은 구형 LCD 모니터에 전선이 없는 거지?


남은 시간 5초.


무언가 하고 자시고 할 시간도 남아있지 않다. 아니, 이 병신 같은 두근거림은 5초 뒤에 끝날 거야. 그게 합리적인 인간의 사고야.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동작은 시계와 화면을 번갈아 보는 것뿐이었다.


4초


3초


2초


1초


삐-



작가의말

어떤 것이라도 의견 주시면 소중히 반영하고 발전해 나가겠습니다. AI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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