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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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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8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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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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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전쟁의 잔해 앞에서(2)

DUMMY

6. 역사 전쟁의 잔해 앞에서(2)


다음날 오전, 호텔에서 타고 온 택시에서 내린 지석과 희선은 조금 당황한다.

‘고려인 협회’와 면담하기로 한,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문화센터>.

규모가 상당히 크다. 차를 내린 곳에서 건물까지의 거리도 꽤 되어 보인다.


“교수님, 저는, 협회라고 해서 작은 사무실 같은 곳에 있는 줄 알았어요.”


“그러게요, 저도 이렇게 클 거라고는 생각 못.. ”


“아유, 오셨으면 들어오시지, 왜 거기 그러고 계세요. 난 아직 안 오신 줄 알았네.”


둘을 발견하고, 몇 걸음 앞에서부터 반가워하는 인사가 들린다.

당당한 풍채만큼 목소리도 시원시원하다.


“나, 김 아나스타샤 협회장이에요. 두 분, 먼 길 오셨어요. 어서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국가유산청에서 국제교류 담당하는 강희선 연구삽니다.

이쪽은, 근현대사 연구하시는 한지석 교수님이세요.”


“오신다고 얘기 들었어요. 내 사무실 가서, 차 마시면서 얘기해요. 자, 이쪽으로.”


건물 현관에서 끝 사무실까지 거리도, 언뜻 봐서 몇십 미터는 될 듯하다.


****


듣던 대로 김 협회장의 한국어는 아주 유창하다.


“... 그래서 우리는,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어요.

매년 와서 전통 무용 가르쳐주시는 것도 그렇고, 사마르칸트에 있는 아프라시압 박물관 리모델링하는것도 국가유산청에서 지원해 주기로 했다면서요.

덕분에, 우리 고려인 사회에 여러모로 힘이 많이 됩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저희가 더 감사합니다.

저희 청이 그동안에 우즈베키스탄에서 전통문화 관련된 여러 사업을 해 왔는데, 앞으로는 어떤 쪽으로 좀 더 같이하면 좋을까 의견도 여쭤 보고..

저희가 지원했던 사업들, 결과물 어떻게 됐는지 사진도 좀 찍어가고, 그러려고, 이번에 왔습니다.

전 타슈켄트는 처음인데, 일정이 짧아서 아쉽네요.”


“나도 아쉽네요. 보여드릴 게 많은데.. 그럼, 같이 한 번 돌아봅시다.”


함께 한참 동안 내부를 둘러본 김 협회장은, 복도에 걸린 사진들 앞에 선다.


“우리, 지금 이 건물은, 박 대통령께서 다녀가시고 나서 우즈벡에서 땅을 줘서, 대한민국에서 건물 짓고, 임시정부 100주년 때 문 대통령께서 여기 오셔서 개관식을 하셨죠.

행사 때, 우즈벡 정부에서도 고위급이 많이 왔어요.

매년 설날에 고려인 사회에서 제일 큰 문화행사를, 여기서 합니다.”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당시에, 우즈벡에 7만 6천 분 정도 오셨잖아요. 지금은 얼마나 계세요?”


“초기에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1930년대에 강제로 여기 왔을 때, 우즈벡 사람들이 참 잘 대해줬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대통령님들 오실 때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우즈벡 사람들이 우리 힘든 때 받아준 거, 그 우정 얘기를 항상 하지요.

뭐, 일본도 아베 총리가 와서 나보이에서 좋은 얘기 하면서 행사도 크게 하고 했지만서도...

참, 지금 우즈베키스탄에, 고려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한 18만 명 정도 됩니다.”


‘나보이 극장, 일본, 아베 총리.’


지석은, 놓치지 않는다.


“우리 고려인들이 처음에 여기 올 때는, 참, 어렵게 왔지만...

지금은 우즈벡에서 한 자리 하시는 분들도 많고, 대한민국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으니까 젊은 사람들도 고려인인걸 자랑스러워 하고, 그렇습니다.

아유, 내가 너무 신나서, 시간이 이렇게 된 걸 모르고...

두 분, 미안합니다. 우리 건물 앞에 택시 불러놨어요.”


****


“강제 이주 후의 비극적인 삶... 그 스토리가 지금까지 이어질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제가 좀 부끄럽네요.

저분들은, 진작에 그 시절을 다 극복하신 것 같아요.

교수님은 알고 계셨겠지만, 전, 그동안에 갖고 있던 고정관념들하고 많이 달라서... 오늘 많이 배웠어요.”


“그러게요. 이제는 우리가 뭔가를 베푼다는 생각보다, 파트너로서 협력한다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되는 시점인 것 같습니다.

참, 아까 같이 찍은 현장 사진들은, 호텔에서 바로 보내드릴게요.”


“급한 건 아니에요. 보고서 쓰기 전까지만 주시면 됩니다.

내일, 비행기 기다리면서 시간 되실 때 보내주셔도 되고요.”


“그럼, 각자 방에서 정리 좀 하고, 저녁을 어제처럼 일찍 드시죠.

따로 식당 찾기도 귀찮은데, 호텔 1층 한식당에서 갈비탕이나 한 그릇씩. 괜찮습니까?”


“네, 그러시죠.”


저녁까지는, 세 시간 정도 여유가 있다.

지석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재빨리 노트북부터 켠다.


[https://japan.kantei.go.jp/ Prime Minister’s Office of Japan 일본 총리실 홈페이지]


- Find : Uzbekistan


<Prime Minister Abe Visits Uzbekistan 아베 총리가 우즈베키스탄에 방문>


... Prime Minister Abe and Mrs. Abe viewed a plaque stating that Japanese citizens were involved in constructing the theatre ...

... 2015년 10월, 아베 총리 내외는 이 극장 건립에 일본 시민이 참여했다는 현판을 관람하고 ...


2015년. 머릿속이 명료해졌다.

남은 두 시간, 정리만 하면 된다. 커피를 타는 지석의 손이 바빠진다.


****


“여기, 밥이 괜찮네요. 한국보다 갈비탕에 고기도 많이 들어있고.”


“다 드셨으면 어제 거기 한번 다시 갑시다. 나보이 극장.”


“뭐 좀 알아내셨어요?”


“가면서 얘기합시다. 참, 아까 그, 아프라시압 박물관? 그건 뭡니까?

자료 찾다 보니까, 우리나라 대통령이 우즈베키스탄에 갈 때마다 그 얘길 하던데.”


“실크로드에 있는 사마르칸트라는 오래된 도시에, 아프라시압 궁전이라고..

그 궁전의 서쪽 벽화에, 7세기에 방문한 여러 나라 사절단 그림이 남아 있어요.

그중에 조우관(鳥羽冠)을 쓰고 환두대도(環頭大刀)를 찬 사신이 한국인이라는 데에는 학계에서 이견이 없고요.

고구려인이 직접 거기까지 간 건지, 그냥 상상 속 이미지를 그린 건지, 그건 아직 좀 여러 얘기들이 있지만요.


어쨌든 이게, 우즈베키스탄이랑 그 나라의 오래된 인연, 이런 걸 보여주기가 좋다 보니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경쟁적으로 그 벽화를 보관하는 박물관 시설 개선도 해 주고, 이런저런 콘텐츠도 만들어서 무료로 제공해주고.. 그런 상황이예요.”


“그 박물관은 가만히 있어도 전 세계에서 돈을 싸 들고 오네요.”


“뭐.. 박물관이야, 좋은 유물 갖고 있는 게, 제일 큰 복이니까요.”


둘은 다시, 어제 그 벽 앞에 섰다.


“어제 잠깐 얘기했지만,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추축국(樞軸國)인 일본이 패망했을 당시에, 약 60만명에서 80만명 정도의 일본 군인과 민간인들이 소련 시베리아 강제노동수용소에 억류됐어요.

연합국의 일원이었던 소비에트연방사회주의공화국, 즉, 소련이, 전쟁으로 인한 인력 손실을 보충하기 위한 조치로 적국 군인과 민간인들을 억류했던 거죠.


그 중 약 25,000명은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이송됐고, 일부는 마이즈루 항(舞鶴港まいづるこう)을 통해서 일본으로 귀환하기도 했는데...

우즈벡으로 온 일본인 중에 일부가, 1945년부터 1946년까지 이 건물을 짓는 일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1947년에 완공이 됐고요.


하지만 결국 그 중 끝까지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여기서 생을 마감한 사람들이, 기록상에는 812명.

그 중 79명의 일본인들은 타슈켄트 공동묘지의 한 구역에 같이 묻혀 있어요.

아무튼, 그래서 그 무덤과 이 건물이 일본과 우즈베키스탄 간 교류의 상징이 되었다, 뭐 그런 스토리인데...”


“시간 많은데, 천천히 하세요. 여기, 물 좀 드시고요.

근데, 그게, 이렇게 크게 써서 건물에다가 붙일 정돈가요? 전 잘 이해가 안 돼서.”


지석은 벤치에 앉아 건물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간다.


“2012년에서 2015년까지 리모델링을 했고, 2015년에 재개관 행사를 하면서, 저 벽에 기념 헌화를 했는데, 그때 vip가... 아베 총리였습니다.

이 나보이 극장 리모델링 개막식이, 일본 총리가 9년 만에 우즈벡 방문해서 하고 갔던 공식 일정 중에, 제일 중요한 행사 중 하나였어요.

또 하나는 아주 대규모의 비즈니스 포럼이었고요.

잘은 모르지만, 우즈벡 측에서도 나름, 성의를 보인 거겠죠.”


“뭐, 역사상 그런 일이 있었다면야, 서로 합의만 된다면...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한 일 같은데요?”


“근데, 아베가 뭐라고 했냐면...


‘대규모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은 나보이 극장을 건설한, 수감자 신분임에도 열심히 일해서 이렇게 멋진 극장을 만들어 낸, 일본군 수감자들의 성실한 노동에 대해 존경과 자부심을 담아 칭송한다’고 했어요.

1966년에 타슈켄트에 대지진이 있었는데, 인근 건물은 다 무너지고 이 건물만 멀쩡했거든요.


패전국 국민으로서의 인간적인 아픔, 강제로 동원된 국민들에 대한 연민,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 안타까움, 이런 걸 되새긴게 아니고..

여기 남아서 할 일을 잘 해줘서, 우리 선조들이 참 자랑스럽다, 라고 표현을 한 거죠.”


“남에게 보이는 면을 중시하는, 그 나라 정서의 반영, 아닐까요?”


“그게, 2015년 10월입니다.”


희선은, 의아한 표정이다.


“2015년 7월에, 군함도, 아시죠? 그, ‘메이지 산업 유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어요. 아직도 우리 국민 강제 동원에 대해서 제대로 인정 안 하고 있는...”


“네, 잘 알죠.”


“그 해 10월 10일엔, 1945년에서 1956년 사이에 시베리아에 전쟁 포로로 억류되었다가 일본의 마이즈루 항으로 송환된 사람들이 남긴, 억류와 송환에 대한 기록물들, 일명 ‘마이즈루 항으로의 귀환’ 자료들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록이 됩니다.”


“아... 그게 같은 해였을 거라고는, 생각을 안 해 봤어요.”


“그리고 바로 그 직후인 10월 26일에, 아베는 여기에 왔습니다.

일본 근현대 시기의 국제적인 서사를 완성한 거죠.

‘돌아온 사람들’에 대한, 그리고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자신들이 피해자인 것처럼, 마치 과거를 포용하는 듯이.”


지석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덧붙인다.


“하지만, 억류되어서 여기서 생을 마친 사람들과, 일본으로 귀환했던 사람들, 그 중엔 분명, 전쟁에 동원됐던 한국인도 있었을 겁니다.

근데 모든 서사를 되새기는 과정에서, 일본군으로 동원됐었을 한국인은... 철저하게 지워졌어요.”


호텔 맞은편에서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는 짧은 동안, 둘의 얼굴에 스치는 밤공기가 제법 쌀쌀하다.


”아, 예전에 이 극장에 있던 더 작은 안내판에는 일본군 포로라는 표현이 있었는데, 이후 우즈벡이, 일본하고 전쟁했던 건 소련이지 우리 우즈벡이 아니지 않냐고, 그 단어를 빼고 새로 설치했다고 하네요.

아마, 구 소련과의 선 긋기 차원이었겠지만.


어쨌든, 우즈벡 카리노브 대통령이, 정상회담 때, 아베 총리한테 직접 언급을 했더군요.

안내판의 ‘포로’를 ‘국민’으로 바꿨다고.“


“모든게 결국은 다... 각자의 의도가 있나 봐요.

그, 공산당 표석처럼.”


공산당 표석. 결국 희선도 그 표현을 쓰고 만다.

쓴웃음이 났다.


“그나저나 교수님, 하나 더 설명해 주셔야 될 게 있는데요.”


“어떤...?”


“그 안내판에서, 영어랑 일본어가 미묘하게 다른 거, 그거요.”


“까먹고 계신 줄 알았는데.”


“제가, 궁금한걸 잘 못 참는 성격이라서요.”


“내 방에 같이 가는 건 좀 그러니까, 노트북 갖고 내려올게요.

아, 얘기 안 한 거, 하나 더 있었습니다.

내가 왜, 여기에 한국인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노트북 보면서 마저 하죠.

10분 후에, 로비 라운지에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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