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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가연
작품등록일 :
2024.08.08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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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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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전쟁의 잔해 앞에서(1)

DUMMY

5. 역사 전쟁의 잔해 앞에서(1)


- 희선샘, 고생했어요. 다시 보니까 반갑네.

- 아예 모르는 기관에서 근무하는게 쉽지 않지. 막판엔 복잡한 일도 있었잖아.

- 강샘, 오자마자 출장이라 어떡해. 그래도 어짜피 해야 될 일이니까 그냥 빨리 해치운다, 그렇게 편하게 생각하고 다녀와요.

- 희선씨는 1년만에 보는데도 여전하네. 그럼, 지금은 파견근무니까, 우리 과에선 6개월 정도 있는 건가?


오래간만의 정부 청사 사무실 출근이지만 사무실의 직원들은 모두 낯이 익다.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라는 식상한 표현이 떠오르는 아침이다.


책상을 정리하고, 자료 인수인계를 받고, 컴퓨터 인증시스템 세팅을 하고.. 그렇게 정신없게 한 주가 흘러가고, 어느덧 금요일이다.

옆자리 이진영 연구관이 퇴근 전에 자료를 건넨다.


“토요일 출발하는 일정이라, 미안해요. 그래야 귀국해서 일요일이라도 하루 쉬고 월요일부터 출근할 거 같아서, 내 나름대로는 생각한 건데, 괜찮지?”


“네, 괜찮아요. 어짜피 주말에 별 일도 없는데요 뭐. 그 한 교수님이랑은, 공항에서 만나면 되는거죠?”


“응, 공항 카운터 근처에서 만나면 될 거예요. 전화번호는 서로 안다고 했고..

그리고, 가서 대독(代讀)할 청장님 축사는, 여기. 비서실 검토까지 끝난 거니까, 가서 그냥 읽기만 하면 돼.”


“업무 협의는, 수요일에 말씀하셨던 그거, 정리해서 오면 되는 거죠?”


“네. 아직 초기 단계니까, 큰 부담 갖지 말고, 서로 안면 튼다, 생각하고 다녀와요. 그럼 다담주에 봐요.”


희선은 항공 티켓과 숙박 예약 등 몇 가지를 더 프린트해서 짐을 챙기고, 사무실을 나선다. 해외 출장이야 이미 익숙하지만, 이번의 출장 도시들은 인터넷 블로그들에도 정보가 많지 않은 곳들이라 조금 긴장되기도 했다.


****


지석의 취향은 공항에서도 확실하다. 투미 캐리어, 투미 백팩, 투미 자물쇠. 특별히 과하게 꾸미지 않은 단정한 패션도, 늘 그 정도 수준이다.

비행기 탑승 전광판을 확인하고 돌아서는 지석의 뒤로, 희선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온다.


지석은 학과 내에서도 해외 출장이 많은 편에 속했다. 학회나 강연, 학술조사 등등.. 일제강점기 시대 우리 선조들, 특히 독립군과 임시정부의 발자취를 추적하고 새로운 자료를 발굴해 내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간 수없는 출장을 다녀오는 동안 딱히 성별이나 나이를 가리진 않았었지만, 이번 출장을 희선과 단둘이 다녀와야 된다는 걸 막판에 알게 된 건, 지석을 조금 당황하게 했다.

설렘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고, 부담스럽다는 단어가 지석의 지금 심정과 좀 더 비슷할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될 거였으면, 바빠서 못 간다고 하는건데..’


“교수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수속은 다 하셨어요?”


“네. 저는 아까 와서 짐 다 부쳤어요.”


“아.. 그러시구나. 그럼 편하게 할 일 하시고, 비행기 타는 시간에 게이트 앞에서 뵈어요. 이따가 다시 뵙겠습니다.”


마치 지석의 마음을 읽은 듯, 희선은 혼자 캐리어를 끌고 체크인 데스크로 사라진다.


****


타슈켄트.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이자 실크로드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한 곳이다.

지석도, 희선도, 이 나라엔 처음이다.

공항에는 알 수 없는 우즈베키스탄어가 가득하고, 바깥의 공기마저도 낯설게 느껴진다.


인터넷에 나온 얼마 안 되는 정보대로 희선은 Yandex앱을 깔고, 택시를 부른다. 목적지는 타슈켄트에 단 하나 있는 한국계 체인 호텔, 샤롯호텔이다.


“교수님, 저는 원래 외국 나오면 한식은 굳이 안 찾아 먹는데, 이 동네 음식이 어떨지 몰라서 호텔을 한국 체인으로 잡았어요.

조식에 한식이 괜찮게 나온대요. 한국 사람들이 출장 오면 거의 다 거기서 묵는거 같더라고요.”


“잘하셨어요. 저는 그런 이유였는지는 몰랐네요.

찾아보니까, 호텔 건물이 1958년에 지어졌는데, 우즈베키스탄 문화유산 목록에 들어있다고 하더라고요.

난, 그래서 거길 잡았나보다, 국가유산청 직원답다, 그렇게 생각했죠.

뭐 어쨌든, 숙소는 괜찮을 거 같습니다.”


공항에서 호텔까지는 10분. 생각보다 가깝다.

체크인 후에 각자의 방에 짐을 두고 루프탑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는 것까지 정하고 나니, 딱 호텔 입구에 도착했다.


루프탑 레스토랑의 분위기는 기대 이상이었다. 물기 없이 건조하고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라이브 밴드가 연주하는 옛 팝송이 괜찮게 어울렸다.

지석은 소고기와 닭고기 꼬치, 옥수수와 여러 야채로 구성된 모둠을 밥 대신 주문하고, 술을 시키려다가, 멈칫한다.


“강 선생님, 술, 하세요?”


“네. 잘은 못 하는데.. 오늘 생맥주가 맛있어 보이긴 하네요.”


“그럼 이 나라 맥주로, 한 잔씩만 하시죠. 여기요, 술 메뉴판 좀 주시겠어요?”


“네, 잠시만요!”


주문을 받는 직원의 한국어가 유창하다.


적당히 배불리 식사를 마치고 디저트 아이스크림까지 먹었는데도, 아직 시간은 일곱 시도 되지 않았다.

출장을 가면 새벽부터 밤까지 자료를 수집하는 지석은, 이렇게 이른 시간에 방으로 들어간다는 건 이 나라의 낯선 공기보다 더 적응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강 선생님, 저는 주변에 뭐가 있는지 좀 둘러보고 가려고 하는데.. 선생님은 피곤하시면 먼저 들어가셔도 됩니다.”


“아, 교수님, 저도 지금 들어가긴 좀 시간이 애매해서, 이 주변에 혹시 볼 만한 게 있는지 구글에서 찾던 중이었어요.

요 앞 공원에 ‘알리샤르 나보이 극장’ 이라고.. 소련 시기에는 3대 극장 중 하나였대요. 티켓 가격도 저렴하고 수준이 굉장히 괜찮다는데, 오늘은 공연이 없나 봐요.


근데, 이거 보세요.

일본이랑 우즈벡이랑, 예전에 전쟁을 했나보죠?”


<Alisher Navoiy Theater>

Review 5년전 ★★★★★

일본인 포로들을 동원하여 지은 극장.


지석의 눈이 반짝인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게 맞는지, 해 떨어지기 전에 빨리 가 봅시다. 강 선생님이 재밌는 걸 찾아냈으니 오늘 저녁은 내가 살게요.”


카운터에 카드를 내미는 손길이 급하다.

옆에 서 있는 희선은, 지석의 안중에서 사라진 것 같다.


호텔 로비를 나와, 길만 건너면 보이는 건물. 알리샤르 나보이 극장.

구 소련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건물 양식이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 노을이 비추는 탓에, 군데군데 장식한 돌이 원래 흰색인지 누런색인지 구별되질 않는다.


하지만 지석에게는 상관없는 눈치다. 위아래를 훑으며 혼자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다.

그 모습이 너무 진지해서, 희선은 차마 말을 더 붙이지를 못하고 한 걸음 뒤에서 따라 걷는다. 사실 구글에 나온 내용보다 지석의 반응이 더 흥미로웠다.


‘그래서, 여기서 뭔가를 찾아낼 수 있을까?’


막, 건물의 반을 돌았을 때였다.


“여기, 있네. 강 선생님, 이거 봐요.”


건물의 한쪽 벽, 건물과 이질감이 느껴질 만큼 좋은 재질의 돌로 화려하게 장식된 커다란 사각형의 프레임 안에, 우즈베키스탄어, 일본어, 영어가 적혀 있다.

전체적인 배치가, 벽의 절반은 차지할 만한 크기다.


1945-1946 YILLARDA UZOQ SHARQDAN DEPORTATSIYA QILINGAN YUZLAB YAPON FUQAROLARI ALISHER NAVOI NOMIDAGI TEATR BINOSINING QURILISHIGA O’Z HISSALARINI QO’SHGANLAR


1945年から1946年にかけて極東から強制移送された数百名の日本国民がこのアリシェル・ナヴォーイ名称劇場の建設に参加し、その完成に貢献した。


IN 1945-1946 THE HUNDREDS OF JAPANESE CITIZENS DEPORTED FROM FOR EAST TOOK AN ACTIVE PART IN THE CONSTRUCTION OF BUILDING OF THE THEATER NAMED AETER ALICHER NAVOIY


“강 선생님, 저 중에 읽을 수 있는 거 있어요?”


“우즈벡어는 당연히 못 읽고요, 일본어도 읽을 수는 있는데, 영어가 그나마..

‘1945년부터 1946년까지 동쪽에서 강제 추방된 수백 명의 일본 시민,

아, 일본 국적자, 라고 해야 하나.. 이건 번역이 좀 애매하긴 한데요,

여튼, 그 사람들이 이 이 알리샤르 나보이 극장 건물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교수님은요?”


“저는, 일본어가 좀 더 편하네요.

‘1945년부터 1946년까지 극동에서 강제 이송된 수백 명의 일본 국민이 이 알리샤르 나보이 명칭 극장 건설에 참여하여 그 완성에 공헌했다.’


이게 무슨 얘기냐면..

1945년에 일본이 패망하고, 당시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의 동부 지역, 시베리아와 러시아 극동 지역에 억류됐던 일본 군인과 민간인 중에 일부가,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이주가 됐어요.

그 사람들이, 이 건물을 짓는데 참여했다는 거죠. 여기 와서 이런 걸 볼 줄은 몰랐네.”


“전 잘 몰라서 그런지, 그냥, 신기하네요.

우리 여기 온 게, 일제강점기때 러시아 지역에서부터 강제 이주된 이후에 계속 여기 살고 계시는 고려인 분들 뵈러 온 거잖아요.

근데 일본은, 전쟁이 끝나고 나서 사람들이 이 쪽으로 이주가 된 건가요?”


“뭐라고 설명해야 되나.. 그게 좀, 복잡한데, 나중에 기회 되면 다시 말씀드릴께요.

참, 두 문장이 좀 다른 거, 알아챘어요?”


“어,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일본어는 국민인데, 영어는 citizen이네요.

일본어엔 강제이송이라고 적혀있는데, 영어로는 Deported.. 강제적인 느낌은 같지만, 추방, 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는 것 같고요. ”


지석이 휙, 돌아선다.


“갑시다. 여기서 계속 쳐다보고 있다고 뭐 더 안 나와요. 일단, 사진 다 찍었으니까, 호텔로 갑시다.”


“뭐.. 그러시죠.”


호텔 앞 횡단보도를 건너는 지석은, 발걸음이 바쁘다.

머릿속엔 그저, 빨리 노트북을 꺼내 자료를 검색할 생각뿐이다.


****


다음날 아침.


“교수님, 안녕히 주무셨어요?”


“자긴 잤는데.. 아니, 솔직히 잘 못 잤어요. 어제 그거 궁금해서.

새벽까지 노트북 보다가 겨우 조금 잤네요.”


지석은, 멋쩍게 웃는다.


약간의 시차 때문이었는지, 새벽에 깬 건 희선도 마찬가지였다.

오늘의 일정이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억지로 다시 잠들었다가, 조식당 시간에 맞춰서 겨우 눈을 떴다. 틀림없이 지석은 더 했을 것이다.


인터넷 후기에서 본 것처럼 조식 메뉴 중엔 깔끔한 한식이 포함되어 있었다. 희선은 자기 몫의 소고기미역국을 한 대접 떠서, 지석 앞에 앉는다.

서로 음식을 챙겨 줄 사이는 아니니까. 사실 이렇게 이른 아침에 같이 밥을 먹는 것만 해도, 아직은 어색하다.

지석은 식사를 다 했는지, 커피를 가져온다.


“그리고, 포로라는 단어는, 없었어요.”


뜬금없다.


“강 선생님, 우리가, 그 건물을 일본군 포로가 만들었다는 리뷰 때문에 간 거잖아요. 근데 현장에 붙어 있는 안내판에는, 포로라는 단어가 없었다고요.

국민이나 citizen,이라고 적혀 있었죠.”


“아, 네.. 사실 전, 까먹고 있었어요.”


“적어도 군인은, 포로가 맞거든요. 근데 내 생각엔, 저걸 만들 때, 포로,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안 쓰거나, 어느 시점에 뺀 것 같아요.”


“누가요? 왜요?”


“그리고 그 일본인들이, 1945년부터 여기로 강제로 옮겨졌다고 했잖아요.

1945년 패전 시점의 일본군이라면..

그때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중엔, 실제로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있었을지도 몰라요.”


희선은 수저를 들기도, 놓기도, 애매한 상태다.

상관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는 지석.


”일단, 오늘 할 일부터 하고... 시간 될 때 다시 얘기합시다.

그럼, 전 먼저 일어날게요. 드시던 식사 마저 하시죠.

어제 정한 대로, 아홉 시에 로비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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