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전에 군납비리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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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키만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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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전에 군납비리란 없다 - (33)

DUMMY

[풍속의 사치가 오늘날보다 심한 적이 없다.


먹는 것은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밥상을 채움으로써 서로 자랑하는 수단이 됐으며, 옷은 몸을 가리기 위하는 것이 아니라 화려하게 꾸밈으로써 서로 경쟁하는 허영심의 증표가 되었다.


귀족의 한 끼 식사는 주린 자의 수개월 분의 양식이 되고 옷 한 벌의 비용이 십인 분의 옷이 된다.


열 사람이 밭을 갈아도 한 사람을 먹이지 못하거늘 밭 가는 자는 적고 상업으로 이득을 보려는 자들은 많으니, 어찌 백성이 굶주리고 추위에 떨지 않으리오?]


이곳은 청나라의 어느 도시,


곳곳에 붙은 격문이 민심을 흐리기 시작했다.


청나라는 도시화가 진행되며 농촌 인구가 도시로 빠져나가는 중, 5년 전만 해도 170개 도시에 2200만이 살았는데 지금은 도시 인구가 4천 만을 넘어섰다.


왜 이렇게 됐을까.


그건 농촌이 사람들에게 부를 보장해주지 못하기 때문, 명나라는 농업을 중시하고 상업을 천대했는데 그래서 귀족들은 사치를 하지 않았나?


정확히 말하면 평민이 잘 사는 티를 내는 게 싫었던 권력층,


그래서 평민의 복장을 엄히 단속하고 사치를 적으로 규정한 거다.


⁕ 관료는 관모를 쓰고 평민은 망건만 쓸 수 있다. 또한 사람은 그 옷을 보고 귀함과 천함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 하급관리가 세 품계 이상 높은 관리를 만나면 길을 비켜야 한다.

⁕ 평민이 길에서 관료를 마주하면 길가 옆에 서야 한다.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건 왜 저런 규정이 생겼냐는 것,


평민이 관모를 쓰면 안 된다? 신분에 따라 옷에 차별을 둬야 한다고?


이건 당시 상당 수의 평민이 관모를 쓰고 화려한 옷을 입을 만큼 형편이 좋았다는 뜻이다.


상식적으로 평민이 관모를 쓰고 화려한 옷을 입고 다니니까 규제하는 거지, 걸레를 걸치고 다니면 저런 규정이 생겼겠나?


그렇게 명나라는 엄격한 법 집행으로 목표를 달성했다.


거리에 화려한 옷이 사라진 것, 그런데 이건 자랑할 게 아니다.


평민의 살림이 재력을 과시할 만큼 형편이 좋지 않았다는 뜻 아닌가.


농민들이 검소해진 건 그들이 가난해진 탓, 그런데도 명나라 조정과 기득권층은 이걸 사회가 안정됐다고 여겼다니 할 말이 없다.


그러다 명나라 중기에 접어들면서 상황은 급변, 대외무역이 활발해지면서 수공업자와 농민의 살림이 점 점 나아지기 시작했다.


그 증거가 명나라의 사치금지령,


명 왕조는 존속기간 동안 119번의 사치 금지령을 내렸는데, 이 시대에 사치령(1465 ~ 1487)이 108번이나 집중됐다.


상업의 발전이 평민에게 얼마나 많은 부를 안겨줬는지 감이 오지 않나?


이런 흐름은 청나라 시절이라고 다를 게 없다.


18세기 중국은 전 세계 GDP의 1/3을 차지할 만큼 번성, 이 당시 여성들의 사치가 얼마나 심했는지 관료들은 여성의 사치와 화장이 나라를 좀 먹게 할 것이라며 한탄했다.


그런데 말은 똑바로 해야 되는 거 아닌가.


문제는 평민의 사치가 아니라 그 꼴을 두고 못 보는 기득권 층, 황제 입장에선 평민이 잘 살고 잘 입고 다니는 게 낫지, 후줄근하게 입고 다녀야 만족스러운가.


이런 역사를 고려하면 저 격문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평민이 사치를 해서 나라가 멸망 한다?


그런 말을 하는 본인은 사치를 안 하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는 문제, 지금 지방 호족들은 평민의 사치를 문제 삼는 게 아니다.


도시로 사람이 빠져나가면 누가 농사를 짓고 지주를 위해 일을 하겠나.

호족들은 그게 못마땅한 것, 평민의 사치를 운운한다는 건 이 나라가 먹고 살 만 해졌다는 뜻이다.


기득권층은 그걸 보고 세상이 말세라고 한탄하는 것,


아무리 떠들어도 그게 현실이었다.


⁕ ⁕ ⁕


“대인, 식사 하세요.”

“그래”

“왜 그러세요? 음식이 입에 안 맞으시나요?”

“그건 네 죄가 아니다. 원래 그런 걸 어찌하겠느냐?”


오늘도 반복되는 일상,


집으로 돌아온 나는 하녀들이 차려 준 밥상을 받아들었다.


단언컨대 세상에서 제일 맛 없는 음식들, 솔직히 이 시대로 타임 슬립을 한 이후, 제대로 된 밥을 먹어본 기억이 없다.


미래에 맛있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음식에 혀가 만족하겠나.


많은 사람들은 만한전석을 근거로 대며 청나라 시기에 맛있는 음식이 발달했다고 알고 있는데, 그건 사실과 완전히 다르다.


청나라 황실 요리를 담당한 부서는 어선방(禦膳房),


주방에서 근무하는 인원은 370명, 여기에 더해 차(茶)를 관리하는 인원만 120명에 달했다.


황제 한 명의 식사를 위해 600명에 가까운 인원을 동원한 것, 한 끼에 드는 비용만 은화 100냥이다.


어지간한 서민의 한 달 치 수입, 그럼 그 음식을 맛있게 만들었을까?


어림도 없다.


황제가 독살당하면 그 책임자가 목이 날아가는 형편, 당연히 요리의 핵심은 맛이 아니라 황제의 안전이 중심이 될 수 밖에 없다.


오죽하면 건륭제가 지방에 순시를 갔을 때 ‘맛있는 음식 좀 가져 와라.’라는 명령을 내렸을까.


황궁에서 온갖 산해진미를 맛 본 건륭제도 민가에서 파는 만두 하나를 먹어보고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고 하니, 이 시기 청나라 귀족 층이 먹는 음식은 맛이 아닌 체면 치레에 불과했다.


이제는 출세했다고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해야 하나?


하녀들은 온갖 귀한 재료로 상을 차려냈지만 솔직히 뭐 하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인, 이건 황제 폐하가 드시는 음식입니다.”

“누가 황제처럼 먹고 싶다고 했느냐? 나는 이런 건 필요 없다. 차라리 몇 가지라도 제대로 된 음식을 내오라는 말이다.”

“알겠습니다. 다시 차리겠습니다.”


하녀들은 다시 음식을 차렸다.


설탕과 간장을 넣고 푹 조려낸 돼지고기, 육즙이 뚝뚝 떨어지는 만두, 찹쌀을 찐 후 소를 넣고 참깨를 섞어 동그랗게 만드는데 찹쌀떡, 양고기를 넣고 끓인 국수,


지극히 서민적인 음식이지만 개의치 않았다.


천하의 건륭제도 길에서 파는 만두 하나를 먹고 만족했다는데, 나라고 뭐 다르겠나.


이후에도 화려함보다는 맛있는 음식을 기준으로 밥상을 차렸다.


덕분에 식비도 예전에 비해 1/10로 감소, 하지만 사치가 우선인 황실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 ⁕ ⁕


“태후 마마, 식사를 들이겠습니다.”


이곳은 태후전,


서태후는 오늘도 요란한 밥상을 받아들었다.


오늘의 메뉴는 18가지 요리와 두 종류의 전골, 그 중 제비 집을 끓여 만든 요리가 4개를 차지했다.


청나라 역대 황제들이 즐겼다는 제비 집 요리,


서태후가 권력을 잡자마자 왜 밥상을 제비집으로 도배를 했을까.


내가 황제와 같은 음식을 먹는다는 과시욕이었던 것, 제비 집은 사실 아무 맛도 없지만 서태후는 오로지 체면치레를 위해 예산을 낭비했다.


문제는 이런 사치도 점 점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


평소에 6개 씩 올라오던 제비집 요리가 4가지로 줄자 서태후는 역정을 냈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 내가 제비집은 꼭 6개를 올리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게 ··· 황실에 지급되는 돈이 줄어 소인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예산이 줄다니?!! 어느 놈이 감히 황실 자금에 손을 댔단 말이냐?!!”

“전인환 상서가 그리하였사옵니다.”

“뭐라고? 그 놈이 무슨 자격으로 황실 예산을 줄였단 말이냐?!!”


서태후는 화를 참지 못했다.


뤼순 군벌의 권위가 황실을 뛰어넘은 건 사실, 그렇다고 해도 황실 예산에 손을 댄 건 황실을 무시하는 행위 아닌가.


서태후는 즉시 상서부에 사람을 파견해 잘잘못을 따져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단호했고, 그 내용은 대략 이랬다.


[올해 황실 자금은 500만 냥으로 작년과 다를 게 없습니다. 만약 예산이 부족하다면 가을까지 기다리십시오. 물론 예산이 더 확보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청나라의 세금은 운해(運解)와 존류(存留)로 구분된다.


운해는 중앙에 바치는 자금, 존류는 지방에 쓰이는 자금,


이걸 매년 봄과 가을에 걸쳐 나눠 집행한다.


문제는 그렇게 쓰고도 자금이 부족하면 어떻게 하냐는 것,


청나라 재정 운영은 정액주의(定額主義)에 기초하기 때문에 수입 항목과 지출 항목이 거의 고정 돼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 돈이 부족하면 땡겨 쓰는 게 정치인들의 모습 아닌가.


도광제 15년(1825년)의 기록만 봐도, 예정보다 85만 냥을 더 지출했다는 내용이 남아 있다.


이런 일탈이 하나 둘 쌓이면서 청나라 재정 상태가 박살이 난 것,


관료들이 예산을 중간에 빼돌리는 건 일상이고 봄 – 가을에만 거둬야 하는 세금을 몇 번 씩 거두는 사건도 일어났다.


[서양에서 수입되는 사치품 중에서도 특이한 것이 있으면 황제에게 먼저 올릴 것]


이후 황실의 도덕성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원래 수입품은 1년에 4번(端貢, 萬壽貢, 年貢, 灯貢)만 수입할 수 있지만, 황제가 마음에 드는 수입품을 수시로 사들이는 사건이 반복,


자세한 기록은 알 수 없지만 청나라는 황제를 위한 사치품에 매년 15만 냥의 백은을 투입했다.


공식만 이 정도니 뒤에서 얼마나 많은 돈을 착복했는지 감도 안 잡힌다.


이때부터 회계결산은 의미가 없어졌고 백성들을 착복하는 관행은 반복, 청나라를 무너뜨린 게 외세의 침공일까?


아니면 도덕성을 상실한 황족들의 만행인가.


상서부는 그걸 바로잡는 것, 나라의 예산제도를 예전으로 되돌려 놨다.


세금은 1년에 두 번만 거두고, 황제의 사치품 수입도 2회로 제한, 이러니 서태후가 예전처럼 사치를 누릴 수가 없는 것도 당연하다.


권력도 잃고 이제는 사치도 못하는 입장,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서태후는 이때부터 밥상 엎기를 반복했다.


⁕ ⁕ ⁕


“또 밥상을 엎었다고?”

“예, 이건 황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 ”

“ ··· 여봐라!! 거기 아무도 없느냐?!!”

“예!! 호부 상서 나으리!!”

“앞으로 태후전 예산은 30만 냥으로 줄여라. 그리고 밥상을 엎을 때마다 1만 냥씩 줄여라.”

“알겠습니다.”


이곳은 상서부,


나는 반찬 투정을 하는 태후에게 회초리를 휘둘렀다.


서태후는 뤼순군벌이 허베이로 원정을 나갔을 때 리훙장과 짜고 우리의 뒤통수를 노린 늙은이, 죽여도 시원치 않는 늙은이지만 주둥이에 밥이라도 넣어주고 있는데 반찬 투정을 한다?


지금 태후전에 지급하는 예산도 50만 냥으로 절대 적지가 않다.


그런데 그것도 적다고 징징거리는 중, 예정대로 태후가 밥상을 엎을 때마다 1만 냥씩 깎았다.


어차피 주도권은 내가 쥐고 있는 상황,


13일 만에 태후전 예산 50만 냥을 전부 깎아 버렸다.


한계까지 몰린 태후는 이렇게 사느니 굶어 죽겠다는 시위를 벌이는 중,


하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백성들은 하루에 백은 40전으로 살아가는데 50만 냥을 쓰는 태후가 뭐가 아쉽다고 투정을 부리는가?!!”

“하 ··· 하오나 상서 나으리, 이러다 태후께서 돌아가시면 ··· ”

“상관 없다!! 50만 냥이면 백성 1500명이 1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식이다!! 입 하나 줄여서 1500명이 편해진다면 천하가 반길 일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강경책에 태후전은 점 점 궁지에 몰리는 중,


하지만 나는 태후전에 쌀알 한 톨도 보내지 않았다.


태후 옆에 있다간 다 굶어 죽을 판, 태후를 모시던 하인들도 더는 참지 못하고 태후전을 빠져나왔다.


이제 태후전에 남은 사람은 한 명 뿐,


나는 사람을 시켜 태후전 대문에 못질을 해버렸다.


상황 파악이 끝난 황족들은 눈치만 살피는 중, 황제도 아무 불만 없이 예산 500만 냥 안에서 모든 걸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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