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전에 군납비리란 없다 - (34)
“대인, 이곳입니다.”
“그래”
이곳은 청나라 황궁,
나는 태후의 비리를 조사하기 위해 죄인을 추궁했다.
서태후는 청나라 역사상 최초로 샴페인을 맛 본 사람, 그 맛에 반해 산둥 옌타이에 현대식 장비와 오크(Oak) 통을 설치한 생산 공장을 설치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왜 문제가 될까.
중국은 약 2000년 전부터 포도주를 마신 나라,
당연히 오래전부터 양조업이 발달했고, 한 양조장에서 포도주가 하루에 14톤이나 생산되기도 했다.
이 정도면 대기업이 등장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겠지,
아니나 다를까 양조회사 장위(張裕)의 설립자 장백사(張弼士)는 1869년에 재산 8000만 냥을 축적했다.
청나라의 그 당시 1년 재정 수입이 7천 만 냥이었으니 일개 사업가가 어느 정도의 부를 누렸는지 감이 오지 않나.
문제는 이 과정에서 비리가 없었냐는 것,
비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장백사가 서태후에게 은표 30만 냥을 바쳤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서태후가 권력의 정점에 오른 게 1861년, 그리고 장백사가 술 사업을 시작한 것도 마침 그 무렵이다.
“산둥성의 옌타이(烟台)에 좋은 포도가 많더군요. 그걸로 술을 만들어 팔면 큰 돈을 벌 수 있을 겁니다.”
“정말입니까?”
“네, 제가 돈만 있으면 청나라 조정에 사업을 제시할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군요.”
장백사는 예전부터 상업을 하던 자,
당연히 외국 영사와 거래를 하는 일도 잦았다.
아편 전쟁 당시 프랑스 군은 중국 각지에서 행패를 부렸는데, 그 과정에서 산둥 반도의 옌타이에 야생포도가 널려 있다는 게 밝혀졌다.
이걸 귀동냥으로 알아챈 장백사가 청나라에 뇌물을 바치고 양조사업을 시작한 것, 그렇게 10여 년 만에 은표 8천 만 냥을 벌어들였다.
문제는 이게 여기서 끝날 일이냐는 것,
일개 사업가가 어떻게 태후에게 뇌물을 바치고 사업권을 따냈을까.
나는 장백사와 태후를 연결해 준 커넥션을 찾아났다.
이 놈을 두들겨 패면 태후의 비리는 드러나겠지, 일단 주리를 틀기 전에 심문부터 시작했다.
“태후가 동치 7년에 장백사에게 뇌물 30만 냥을 받은 게 사실이냐? 아는 것이 있으면 이실직고하라.”
“대인, 그건 벌써 20년이나 된 일입니다. 소인이 어찌 그걸 기억하겠습니까? 소인은 억울합니다.”
“맞다 보면 기억이 나겠지. 뭣들 하느냐. 시작해라.”
“예!!”
그렇게 매질이 시작됐다.
청나라에서 태형은 가혹하기로 소문난 형벌, 잘못 치면 한 대만으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그래서 몇 대를 칠지 정해두고 치는 게 원칙, 하지만 황제 앞에서 무례를 범했거나 대역죄인인 경우 치는 횟수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청나라 태종 앞에서 담배를 피운 놈들이 제한 없는 태형을 맞은 건 유명한 사건, 나는 지금 그 짓을 재현하고 있다.
말 그대로 죽을 때까치 매를 치는 형벌,
정신이 번쩍 든 죄인은 목숨을 구걸하기 시작했다.
“대인!! 대인!! 기억 났습니다!! 기억이 났습니다!! 제발!! 제발!!”
“역시 맞다 보니 기억이 나는 모양이구나. 그래서, 태후가 뇌물을 받은 게 사실이냐?”
“예!! 장백사가 뇌물 30만 냥을 가져왔고!! 그 다음에 30만 냥을 더 가져왔습니다!!”
추가 혐의까지 술술 부는 죄인,
나는 확보한 증거를 토대로 장위의 설립자 장백사를 형장으로 끌어냈다.
“대인!! 이게 무슨 일입니까!!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이리 대하시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네 이놈!! 누구 귀는 귀머거리고 누구 눈은 장님인 줄 아느냐?!! 네 놈도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저 놈을 죽을 때까지 쳐라!!”
“예!!”
또 시작된 매타작,
장백사는 10대까지는 견뎠지만 더는 버티지 못하고 비명을 질러냈다.
“악!! 으악 ~ !! 제발!! 제발!! 그만 멈춰주십시오!! 나으리!!”
“네 놈이 죄를 실토하지 않는 한 매질은 멈추지 않는다. 더 쳐라!!”
“말하겠습니다!! 말하겠습니다!! 지금까지 태후에게 은화 1200만 냥을 바쳤고!! 그 ··· 그리고 ··· ”
“그리고? 또 뭐냐?”
“그게 ··· 회사 설립 비용으로 태후마마께 300만 냥을 지원 받았습니다.”
“뭐라고? 그게 사실이냐?”
“예 ··· 그 조건으로 매년 뇌물을 바쳤사옵니다. 으흐흐흐 ~ ”
이제야 드러나는 정경유착의 실체,
나는 장백사의 재산 1억 4천 만 냥을 모두 몰수했다.
또한 태후의 개인재산 5천 만 냥을 압류, 모두 국고에 귀속시켰다.
가장 중요한 자금줄이 끊겼으니 이제 태후는 끈 떨어진 갓 신세, 이쯤에서 풀어줘도 되지만 본보기를 위해 계속 감금해뒀다.
⁕ ⁕ ⁕
“병부 상서가 2억 냥을 몰수했다고 했나?”
“예, 폐하, 태후와 그 일당을 일망타진하였다 하옵니다.”
이곳은 청나라 황궁, 보고를 받은 광서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왜 태후는 생활비 50만 냥을 몰수 당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건가?
알고 봤더니 이미 기업가로부터 매년 30만 냥씩 뇌물을 받고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광서제는 유폐된 태후를 위해 음식을 보내줬으니,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었다.
“결국 나만 바보짓을 한 거군. 아니 그런가? 쥐새끼가 고양이 앞에 음식을 물어다 줬으니 내 꼴이 뭐가 되는가?”
“폐하, 어찌 그런 말을 하시는 겁니까?”
“나는 그래도 태후가 걱정돼서 그리한 것이네. 태후가 이대로 굶어 죽으면 뤼순 군벌이 더욱 날뛸 거 아닌가? 그래서 그랬던 건데 ··· 그 여자가 날 마지막까지 우롱하는군 ··· 날 고양이 걱정하는 쥐새끼로 만들었어!! 나를!! 나를!! 그 여자는 어디까지 날 능멸할 생각인가?!!”
“폐하!! 고정하시옵소서!! 폐하께선 효심으로 그리하신 겁니다!! 자신을 너무 자책하진 마십시오!!”
황제는 태후가 좋아서 그리 한 게 아니다.
뤼순 군벌의 위세가 날로 높아지는데, 이대로 태후까지 죽어버리면 누가 감히 그들과 맞설 것인가.
하지만 돌이켜보면 자신의 행동이 너무 부끄러웠다.
처음부터 굶어 죽었어야 할 태후, 앞으로 태후전에 아무 것도 보내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마지막 남은 끈까지 떨어져 나가면서 태후는 말 그대로 말라 죽는 중,
며칠 째 물도 마시지 못한 태후는 손톱으로 대문을 벅벅 긁어댔다.
“거 ··· 거기 누구 없느냐? ··· 나에게 물을 다오 ··· ”
“죄송합니다 태후 마마, 황제 폐하께서 아무 것도 들이지 말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대문 건너편에서 들리는 건 감시자의 차가운 답변 뿐,
황제까지 자신에게 등을 돌렸다는 소식에 태후는 절망했다.
“그 ··· 그럴 리가 없다 ··· 내가 죽으면 누가 폐하를 지킨단 말이냐?”
“폐하는 지금 진노하셨습니다. 태후께서 생활비를 몰수 당하시고 굶주림에 고생하실까 음식을 보내드렸는데, 태후께선 뒤에서 뇌물을 챙기지 않으셨습니까? 폐하께선 태후가 자신을 고양이 걱정하는 쥐새끼로 만들었다 하여 굶겨 죽이라 하셨습니다.”
“아니야 ··· 아니야 ··· 아니야!! 이 놈!! 어서 이 문을 열어라!! 어서!! 내가 누군지 아느냐?!! 네 이놈!! 열어라!! 어서!!”
발악도 잠시,
이미 기력이 다한 노인은 탈진하고 말았다.
황제를 쥐락펴락했던 권력자의 최후, 시신을 확인한 병사들은 황궁에서 100리 떨어진 곳에 시신을 매장했다.
이 사건은 황실 입장에서 두 가지를 의미,
서태후는 비록 황제를 등에 업고 권력을 누린 악녀지만, 어쨌든 그동안 어린 황제의 보호막이 된 것도 사실이다. 여자가 황제가 될 순 없으니 황제라도 옹립해 놔야 권력을 누릴 거 아닌가.
실제로 3살에 황제의 자리에 오른 광서제는 15세가 될 동안 아무 위협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서태후가 죽었으니 이제 황제의 목숨은 뤼순 군벌 손에 달렸다.
즉 서태후의 죽음은 황실의 몰락과 뤼순 군벌의 패권을 확정한 사건, 이 상황에서 황제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우창칭을 흠차대신으로 삼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황제의 목숨이 보장받을 수 있을까.
황제는 자신의 목숨을 위해 더 많은 걸 군벌에 내놔야했다.
⁕ ⁕ ⁕
“여보게 호부 상서, 폐하께서 나를 섭정으로 삼겠다고 하셨네.”
“섭정이라고요?”
“그래, 폐하는 아직 15살 아닌가? 태후가 죽었으니 보호자가 필요한 거겠지, 내가 섭정이 되면 폐하의 아버지가 되는 건가? 으하하하 ~ ”
이곳은 군기부,
나는 섭정이 됐다며 좋아하는 우창칭을 한심한 눈으로 바라봤다.
우리가 황제를 겁박하기 위해 태후를 때려잡은 건가,
거기다 섭정이라는 자리는 황실 사람만 할 수 있는 것, 여기에 손을 대는 순간 선을 넘게 된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황제의 신하일 뿐, 선을 넘진 말라며 충고했다.
“이런 때일수록 자중하셔야 합니다. 우리 손으로 태후를 굶겨 죽였는데, 섭정 자리까지 차지하면 황제와 황실의 꼴이 뭐가 되겠습니까?”
“아니 ··· 그건 내가 요구한 게 아니라 황실에서 ··· ”
“황실은 그리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태후가 그동안 악행을 펼친 건 사실이지만 황실의 방패막이가 된 것도 사실이니까요. 황실은 지금 새로운 보호막이 필요한 겁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가 황실을 보호하는 입장을 취해야 합니다. 그래야 백성의 민심도 얻을 수 있습니다.”
“뭐 ··· 틀린 말은 아니다만 ··· ”
“폐하는 지난 12년 동안 태후의 치마 폭에서 살아온 분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가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알겠네, 그럼 섭정은 받아들이지 않는 것으로 하지.”
나는 우창칭과 협의해 섭정 역할을 공친왕에게 넘겼다.
원래부터 섭정이었지만 서태후와 뤼순 군벌에 밀려 존재감이 없었던 존재, 하지만 지금이라면 다르다.
태후가 사라진 이상 황제에겐 다른 보호막이 필요, 황제의 친아버지인 순현친왕에게도 정사에 참여할 것을 요구했다.
이러면 황실의 체면도 어느 정도 서겠지,
그 대신 뤼순 군벌은 장백사가 운영하던 장위를 소유했다.
매년 1800만 냥의 매출을 올리는 청나라 최대의 양조기업, 이걸 손에 쥐면 군비 확보는 더 수월해 질 거다.
장위를 소유하면서 뤼순 군벌의 예산은 2억 8천만 냥으로 증가,
여기에 서태후 일파로부터 몰수한 2억 냥까지 손에 넣으며 군벌의 기반은 반석 위에 올랐다.
“이제 청나라는 사실상 대인의 것입니다.”
“하하하 ~ 역시 자네는 제갈공명 뺨 치는 사람이야!! 자네 덕분에 내가 이렇게 큰 권력을 누리는군!!”
“그게 어찌 제 공이겠습니까? 흠차 대신께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덕이지요. 대인이 절 써 주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도 미천한 조선인으로 농사나 짓고 살고 있었을 겁니다.”
“하하 ~ 사람 무안하게 뭐 그렇게까지 말을 하나? 우리는 물과 물고기 같은 사이야. 자네는 태어날 때부터 나한테 없어선 안 되는 존재였어. 우리가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고 말이야. 자네는 앞으로도 크게 쓰일 사람이야. 내가 그렇게 만들어주겠네.”
우창칭은 조정에 건의해 내 지위를 태사(太師)로 올렸다.
청나라 역사상 태사의 지위에 오른 사람은 단 2명 뿐,
태조 – 태종 - 세조를 모신 청나라의 개국공신 구왈기야 오보이 그리고 세조 시기 보정대신을 역임한 뇨후루 어빌룬 뿐이다.
이 둘은 어린 황제를 대신해 사실상 섭정 노릇을 한 권신들,
태사라는 자리가 얼마나 높은 건지 감이 오지 않나?
200년 동안 청나라가 태사를 따로두지 않고 섭정 제도를 운영한 것도, 황제는 황실 사람들이 보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권신의 힘을 빌려야 할 때, 섭정 제도는 지금도 유효하지만 사실상 내가 15살 어린 황제의 보호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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