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야구 천재가 회귀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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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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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0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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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케인(1)

DUMMY

메츠와의 시리즈 4차전, 시리즈 스윕을 눈앞에 둔 중요한 순간에 뜬금없이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띠리리리


“네, 필리스 단장 샘 펄드입니다.”


받기 싫은 인물이었지만 무시하기엔 껄끄러운 전화. 그럼 받아야지 어쩔 수 있나, 이게 단장의 삶인걸.


-샘, 자네 팀에 필요할 것 같은 매물이 있어서 전화했네. 아직 외야가 완성되지 않았다지? 우리 팀의 딕슨은 어떤가?


“브래들리 딕슨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렇다면 저는 좋긴 한데.. 혹시 원하시는 게?”


이 양반이 웬일로? 또 무슨 꿍꿍인지..


-리는 어떤가? 내 불펜 유망주도 하나 껴서 보내겠네.


그러면 그렇지, 이 도둑놈의 영감탱이! 아주 생선 뼈도 안 바르고 드시려고 하네.


이로써 오늘만 4번째 리에 대한 문의를 받고 있는 중이다. 어제도, 그제도 걸려오는 전화의 반 이상이 온통 리에 대한 얘기뿐이다. 지금부터 카드를 맞춰보고 스토브리그 때 빼가려는 수작일 테지.


“또 그 전환가?”


오늘 특별히 경기를 관람하러 온 존 S. 미들턴 구단주가 나를 보며 물었다. 아까부터 연신 전화를 받는 모습에 호기심이 동한 모양이다.


“네. 메츠와 2차전이 끝난 뒤부터 계속해서 리에 대한 문의가 오고 있습니다.”


“리? 좀 전에도 홈런을 친 우리 신성을 말하는 건가? 그렇다면 그 양반에게 전하도록 해. 그쪽의 1선발, 마무리 투수와 주전 중견수를 같이 줘도 안 바꾼다고.”


수화기를 살짝 가리고 전한 말에 구단주는 단호한 표정으로 선포했다. 이제 빅리그에 올라온 지 열흘도 채 되지 않은 루키를 무슨 일이 있어도 팔지 않겠다고.


“들으셨죠, 캐시먼? 리는 트레이드가 불가한 선수입니다.”


-에잉, 그래도 가능성은 열어두자고. 그럼 두 번째 포수 오스틴은 어떤가?


“그 얘긴 경기 끝나고 따로 제가 연락드리겠습니다. 보시다시피 구단주님과 경기 관람 중이어서요.”


서둘러 전화를 끊자 기다렸다는 듯이 구단주가 질문을 건네왔다.


“오늘까지 리의 성적이 어떻지?”


투수로 5.2이닝을 던지며 1실점했던 2차전 이후 3차전인 어제 4타수 2안타, 오늘도 교체되어 나가기 전까지 3타수 1홈런을 치며 완벽한 모습을 보여준 선수다.


왠지 내가 주도해 데려온 루키에 대한 공치사를 하려니 괜히 어깨가 펴지는 기분이다.


“타자로는 12타수 6안타, 타율 5할에 3홈런이고 투수로는 8.2이닝 1실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80이 가까운 노인임에도 아직 정정하다 못해 정력적인 구단주는 근래에 보지 못한 온화한 웃음을 지으며 내 등을 다독여 주었다.


“허허허, 그래. 내가 바로 이런 선수를 원했단 말이네! 그리고 리가 나오면 계속 이기는게 아주 마음에 들어. 팀 분위기도 묘하게 좋아진 것 같고.”


“네. 살짝 겉돌던 투수들과 야수들, 영건들과 노장들 간의 거리를 줄여주는 역할도 해주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방금 전 교체되어 나가기 전까지 이기고 있었으니 나오기만 하면 이긴다는 말이 맞았다.


필리스는 리가 처음 출전했던 토론토전부터 어제까지 무려 5연승을 달렸고 결국 메츠를 제치고 와일드카드 3위가 된 건 물론 2위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까지 2경기 차로 바짝 따라붙게 되었으니.. 정말 리가 승리의 요정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말이야, 메츠를 저렇게 시원하게 뭉게주지 않았나! 내가 코엔 그 친구에게 할 말이 생겼어. 근래엔 만나기만 하면 야구 얘기를 해서 자리를 피한지 오래됐거든.”


안 본지 아마 3년쯤 되실 겁니다, 구단주님...


따아아악


그때 불길한 타격음 소리가 나더니 메츠 4번 타자의 홈런이 터졌다. 중앙 펜스를 넘어가 불펜으로 떨어지는 역전 투런홈런이었다.


“에잉. 저 정도 거린 리가 중견수였으면 충분히 훔칠 수 있는 홈런이었는데 말이지.”


구단주님 그건 좀...


하지만 난 힘없는 월급쟁이 단장일 뿐이다.


태연하게 표정관리를 하고 손을 한번 비벼본다.


“토론토 전에서도 그런 장면을 보여준 걸로 봤을 때 아마 충분히 잡아냈을 겁니다. 출산 문제로 빠진 게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출산 문제라면 어쩔 수 없지. 아니 그러면 이다음 시리즈에서도 리가 없는 상태로 경기를 치러야 하나?”


“그건 아직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 시리즈가 마이애미와의 원정 경기인데 지금 그쪽으로 허리케인이 북상하고 있어 사무국의 결정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웬만하면 경기를 진행하는 메이저리그지만 허리케인은 특수한 상황이니 취소를 할 가능성이 크다. 돔 경기장이라 경기는 할 수 있다 쳐도 난리가 났는데 야구 경기를 보러 올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거라서.


“알겠네. 결과가 나오면 내게 바로 알려주도록 하고.. 그나저나 리 같은 선수는 신인 때부터 마음을 확 잡아놔야 하는데 말이야.. 리가 바라는 게 뭐가 있을까?”


안 그래도 리의 행보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난 머릿속에 정리된 파일을 열어 구단주에게 대답했다.


“그게 좀.. 이상합니다. 계약금 600만 달러를 받자마자 필라델피아 어린이 관련 자선단체에 60퍼센트를 꽉꽉 채워 기부를 했다고 합니다.”


“어허. 기부까지? 이거 더욱 욕심이 나는 선수구먼, 그래! 그리고?”


“그러고는 남은 100만 달러로 에이전트를 통해 필라델피아 다운타운에 가족과 함께 살 집을 구하고 있는데 그게 잘 안되고 있나 봅니다.”


“집이라.. 그렇다면 내가 소유하고 있는 리튼 하우스 스퀘어 근처 오피스텔을 임대해 줄 테니 의사나 한번 물어봐 주게나. 보안도 훌륭하고 살기 편할 거야.”


기부에 아주 뻑이 가셨구나. 하긴 우리 구단주도 필라델피아 사회환원사업이라면 환장을 하시니 말이지. 이런 걸 두고 리의 나라에선 인과응보라고 하던가?


“안 그래도 와이프 될 사람이 유펜(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 입학하려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위치라면 아마 좋아할 게 분명합니다.”


“그래? 그것참 다행이군.”


미들턴 구단주가 빈자리 없이 꽉 들어찬 시티즌스 뱅크 파크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난 10년 전에 모레노 그 짠돌이 친구가 오타니를 놓쳤을 때 정말 이해를 할 수가 없었네. 돈 쌓아뒀다가 어디에 쓰려고. 쯧쯧. 난 반드시 리가 우리의 미래가 되게끔 만들 거야. 그러니 자네도 조금 더 분발해 주게. 내가 죽기 전엔 반지 하나 껴봐야 하지 않겠나.”


헉. 이건 월드시리즈 우승을 원한다는 압박이기 전에 나를 믿고 계속 가겠다는 구단주의 의지라고 볼 수 있겠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필리스의 우승도, 그리고 리와의 계약도.”


2014년, 필리스 지분의 48퍼센트를 인수해 정식으로 구단주가 되었던 남자가 20년 만에 양강 체제였던 벅(Buck) 가문의 32퍼센트 지분을 모두 인수하며 비로소 진정한 주인이 된 첫해에 한 다짐이다.


아마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지지 않을까?


* * *


나는 지금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뉴욕으로 가는 차 안이다.


조금 전 5회 초에 홈런을 치고 들어오자마자 구단 매니저가 황급히 달려와 가은이의 진통 소식을 알렸다. 난 당연히 그 소식을 듣자마자 관중석에 계시던 두 분을 모시고 뉴욕으로 올라가는 차를 탔고.


사실 어제 가벼운 진통이 시작됐다는 연락을 받았었다. 당연히 당장 가겠다고 난리를 쳤지만 가은이가 아직 출산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다고 오늘 경기 끝나고 와도 될 거라고 했는데..


-아까 6시에 이서방 경기 시작하자마자 5분 간격으로 진통이 왔어. 다행히 병원이 멀지 않아 바로 와서 입원을 했는데 조금 있으면 분만실에 들어가야 될 것 같아.


“알겠습니다, 장모님. 저랑 부모님이 지금 가고 있거든요? 조금 있으면 도착해요. 그러니까 저희 도착하기 전에라도 가은이가 너무 아프다고 하면 그냥 제왕절개 시켜주세요.”


차분한 장모님과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를 전화를 하고 나서부턴 뉴욕까지 가는 2시간이 이틀은 되게 느껴졌다.


건이가 4.1kg을 넘는 우량아라고 했는데 초산인 가은이가 잘 낳을 수 있을까? 자연분만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상황이 안 좋은데도 고집부리는 건 아니겠지?


아니, 아니지. 전생에도 별 탈 없이 낳았는데 혹시 무슨 일이 있겠어?


계속되는 불안감과 초조함을 이기고 병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가은이는 분만실에 들어간 후였다.


서둘러 소독을 하고 무균복을 입은 뒤 분만실로 들어가자 자지러지는 아이 울음소리와 함께 기진맥진한 가은이가 보였다.


“미안해, 가은아. 내가 너무 늦었지.”


조심스레 가은이의 손을 잡으며 사과의 말을 전했다.


“아니야. 갑자기 진통이 와서 이렇게 됐네. 진홍이 너 머리털 좀 뽑고 그러려고 했는데. 후으으.”


이 와중에도 농담 따먹기를 하며 힘없이 웃는 가은이가 한없이 예쁘고 대견해 보였다.


“2034년 9월 9일 21시 58분, 4.2kg, 54cm. 건강한 아들 출산하셨습니다. 초산이고 우량아인데도 이렇게 빠르게 순산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축하드립니다.”


이제 막 탯줄을 자르고 울음을 터뜨린 아이는 시뻘겋고 쭈글쭈글하고... 정말 못생겼다.


“헤헤. 이게 우리 건이구나! 근데 좀 못생겼다, 그치?”


가은아.. 그렇게 솔직한 발언은 우리 아들에게 너무 실례이지 않을까?


“부기 빠지면 잘생겨질 거야. 누구 아들인데.”


내가 이미 저 녀석 인물은 미래에서 보고 왔단다, 가은아. 걱정은 안 해도 될 거야.


출산 후처리가 끝나고 건이는 신생아실, 가은이는 회복실로 이동했다.


우리 아버지는 운 좋으시게도 돌아가시기 직전에 손자를 보실 수 있었고 어머니는 귀국하지 않으시고 당분간 가은이와 함께 지내시기로 했다.


여기는 산후조리시스템이 잘 돼있지 않아 가은이에 아이까지 함께 돌보기엔 장모님이 너무 힘드실 것 같아서 그런다나. 뭐 두 분이서 원래 친분도 있었으니 알아서 잘 하시겠지.


자연분만을 해서 그런가 가은이는 출산 2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 회복된 뒤엔 걸어 다니기도 하고 밥도 잘 먹었다.


식사를 끝내고 잠이 든 가은이를 보자 그제서야 긴장이 풀려 부재중 전화를 확인했다.


-이제야 연락이 되는군. 그래, 어떻게 됐나?


“2시간 전에 출산 잘하고 이제 회복 중입니다. 아이와 산모 모두 건강해요!”


-잘 됐군. 정말 축하하네.


“아! 경기는 어떻게 됐습니까? 정신이 없어서 그것도 확인 못했네요.


-아쉽게 졌어. 자네가 가고 얼마 안 있어 역전 당했지. 스윕은 못했지만 그래도 위닝 시리즈를 가져갔으니 충분한 성과라고 생각하네.


“아.. 알겠습니다. 그러면 선수단은 이제 마이애미로 출발하는 건가요?”


-허리케인 때문에 사무국에서 10일, 11일 경기를 취소했어. 12일 경기도 상황을 보고 결정할 듯싶네.


“그렇다면..”


-그래. 복귀는 마이애미로. 12일 저녁까지만 오면 봐주겠네.


“감사합니다, 단장님. 감사 인사는 13일 날 성적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구단주님이 자네를 아주 좋게 보신 모양이야. 오면 자네에게 줄 선물도 있으니 기대하게.


그 전화를 끝으로 난 그동안 못 본 설움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병원 회복실에 있는 48시간 동안 가은이와 건이에게 꼭 붙어있었다. 12일 아침 가은이의 짐을 챙겨 퇴원을 할 때까지.


뉴욕의 가은이네 집에 도착하자마자 점심을 먹고 가은이와 건이의 배웅을 받으며 선수단에 합류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건아! 아빠한테 인사해야지~잘 다녀오세요!”


“아빠 다녀올게, 건아! 가은이 너도 몸 잘 추스르고 어머니들 말씀 좀 잘 듣고.”


가은이가 울려고 하는 건이를 품에서 달래며 말했다.


“알았어! 진홍이 너도 몸 다치지 말고 잘 다녀와. 다음 메츠 원정 때 온댔나?”


“응. 다음 주 수요일에 홈경기 끝나고 여기로 올 거야.”


다행히도 가은이는 원체 몸이 튼튼한지 별 탈 없이 회복했고 마지막으로 인사를 할 때는 문 앞까지 배웅을 나올 정도라 걱정을 덜고 나올 수 있었다.


이제 다시 치열한 메이저리그로 향할 때다.


내가 활약하지 못하면 가은이의 행복한 웃음도, 사랑만 받고 자랄 건이도 모두 없는 일이 될 테니까..


근데 급하게 오느라 아버님께 사인을 못 드렸네.. 다음에 드려도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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