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야구 천재가 회귀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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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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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여우(1)

DUMMY

밀워키 브루어스의 감독으로 10년간 팀을 잘 이끌어온 팻 머피는 부감독인 리키 웍스 주니어와 함께 경기전 티타임을 즐기고 있는 중이다.


“이번 필리스와의 시리즈는 참 힘들었어, 안 그런가 리키?”

“그렇다고 볼 수 있죠. 두 경기 모두 지고 말았으니까요.”


메츠와의 마지막 두 경기에서 엄청난 화력을 보여주고 나서 필리스와 맞붙게 된 브루어스는 그 기세를 막기 위해 사력을 다해야 했다.


“그래도 아예 성과가 없었던 건 아니죠.”

“결국 지지 않았나. 오늘 경기라도 이겨야 진정한 성과라고 할 수 있지.”


필리스의 막강한 상위타선을 막기 위해 브루어스 감독과 코치진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끝에 나온 해결책은 어느 정도는 들어맞았다.


메츠와의 마지막 2경기에서 10점 이상씩을 득점하며 마운드를 폭격했던 필리스의 타선이 차디차게 식었으니까. 물론 브루어스의 타선도 마찬가지여서 지긴 했지만.


“그래서 오늘 경기도 똑같이 조를 공략합니까?”

“그래. 조에게 한 번 더 걸어보자고. 그리고 오늘은 우리 에이스가 등판하지 않겠나? 꼭 이겨야지.”


스몰 마켓인 밀워키 브루어스를 이끌고 10년간 지구 우승을 5번이나 해낸 명장인 팻 머피였다.


악재가 터져 뎁스가 줄어든 팀의 가장 약한 부위를 찾아 물어뜯는 건 그의 특기이자 장기였으니,


이번에도 쉽게 필리스의 약점을 찾을 수 있었고, 그 약점이 포수 조였을 뿐이었다.


필리스의 포지션 플레이어 중 자신의 자리를 가장 공고히 하고 있는 조였지만 팻이 집중한 건 그의 나이와 무릎 상태였다.


35살의 나이.

체력이 점점 떨어져가고 있는 시즌 막판.

이런 상황에 쉬지 못하고 체력 소모가 가장 큰 포수로 계속 출전 중.


모든 조건이 조를 가리키고 있었다. 메츠와의 경기 전부터 쭉 타격감도 떨어지는 중이었고.


그래서 밀워키 브루어스의 감코진은 제한된 타석에서만 리와 마셜을 상대하고 나머지 타석에선 고의사구로 내보냈다.


‘그리고 투수로 하여금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계속해 조와 승부를 보게 하는 거지.’


조에게 계속해서 득점권의 찬스를 몰아주게 하는 이 방법은 2경기에서 단 5실점이라는 결과로 돌아왔다.


리와 마셜에게 각각 볼넷 4개씩을 헌납했지만 조가 득점권에서 6타수 무안타 4삼진을 당하며 처참하게 무너진 관계로.


물론 테이블세터진이 출루한다든가 해서, 리와 마셜 앞에 주자가 쌓인 경우라면 쓰지 못할 방법이긴 했다. 그래서 마셜에게 적시타 두 방을 맞기도 했고.


팻은 그래도 리에게는 철저하게 좋은 공을 주지 않도록 지시했다.


‘내가 봤을 때 현재 필리스에서 가장 무서운 타자가 바로 그 루키였거든.’


그리고 루키는 산전수전 다 겪은 마셜과는 다르게 쉽게 흥분해 스스로 타격감을 망칠 확률이 높으니까. 그렇게 된다면 포스트시즌에 만날 가능성이 있는 브루어스에겐 희소식이고.


“이번엔 루키도 한번 공략해 보라고 전하게. 슬슬 타격감이 무너졌을 수도 있어.”

“하긴, 이틀 동안 좋은 공은 구경도 못했으니까요. 어제 경기에선 안 좋은 공에도 몇 번 방망이가 나온 걸 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벤치에서 치지 말라는 사인이 나왔는지 볼넷으로 많이 나가긴 했지만, 지금쯤은 아마 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하겠지.’


원래 그렇게 타격감이 무너지는 거다.


좋은 공이 들어오지 않으면 안 치면 되는데 자꾸 욕심이 생겨 존 밖의 공을 건드려보게 되고, 그러다가 설정한 존 자체가 무너지는.

또 안 좋은 공을 치기 위해 몸이 폼을 살짝 변화시키고, 결국엔 좋은 공도 못 치게 되는.


그런 악순환의 반복.


거기에 심리적 타격까지 더하면...


펑! 슬럼프가 오는 거지.


아마 그렇게 무너진 루키들로 줄을 세우면 경기장 몇 바퀴는 돌리지 않을까?


그래도 팻은 어쩔 수 없었다.


잘 성장하고 있는 루키를 망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지금 브루어스가 남 사정을 봐주고 그럴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와이어 투 와이어.


시즌 시작 후 한 번도 1위가 아닌 적이 없던 브루어스지만 지금에 와서야 위기가 찾아왔다.


“휴우... 컵스는 어떻게 됐나?”

“또 이겼습니다. 필리스와의 3차전부터 7연승입니다. 저희는 2연패를 하며 승차는 더 좁혀졌고요.”


현재 내셔널리그는 기형적인 순위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서부지구와 동부지구의 강세로 인해 브루어스는 85승 70패로 중부지구 1위를 달리고 있음에도 와일드카드 2위인 86승 69패의 필리스보다 성적이 떨어지는 상황.


81승 72패의 시카고 컵스에 덜미를 잡히는 순간 와일드카드 진출도 걱정해야 한다.


“하... 시즌 내내 좋다가 막판에 이게 뭔지. 7경기밖에 안 남았는데 아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야.”

“하필 마지막에 컵스와의 4연전이 껴있을 건 또 뭐랍니까. 스윕이라도 당했다가는 진짜 가을에 손가락만 빨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반드시 이겨야지. 무슨 일이 있어도.”


브루어스와 필리스의 3차전 직전의 대화였다.


* * *


“하아...”


브루어스와의 마지막 3차전, 이번 시즌의 마지막 홈경기가 될 수도 있는 경기에서 우리는 이틀 전부터 엄습해오던 불안감이 실체를 드러내는 걸 목도하고야 말았다.


직전 2연승으로 와일드카드 1위인 87승 68패의 애리조나 디-백스와 1경기 차로 따라붙어 더 의욕에 차 경기에 임했던 우리였지만, 상대의 전술에 막혀 단 1점도 내지 못한 채 5회를 낭비해 버렸다.


잔여경기의 대체 선발로 내가 선정됨에 따라 오늘 경기가 정규 시즌 마지막 등판이 된 코디 로이 역시 분전하고는 있지만 상대 에이스 코빈에겐 역부족이었고.


벌써 4점째를 내주며 맞이한 6회 말 공격에서도 밀워키의 작전은 변한 것이 없어 보였다.


저기 무심한 표정을 유지하는 70세의 노장은 이전 이닝들과 마찬가지로 나를 거르라는 지시를 내린 듯했고, 난 타석에 서보지도 못하고 1루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캡틴! 한방 부탁드려요.”

“걱정 마라, 꼬마. 내가 걸어서 홈 플레이트를 밟게 해줄 테니까.”


애써 힘을 북돋았지만 결과는 지난 이닝들과 마찬가지였다. 아니, 이번엔 캡틴마저 범타로 물러났으니 더 악화된 건가?


한창 잘하고 있는 선수를 거르고 못하고 있는 선수와 승부한다.


이건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이는 말이지만 사실은 어리석은 방법이다.


아무리 잘 치는 타자라도 타율은 3할, 출루율은 4할, 장타율은 6할을 넘지 않기에.

하지만 거른다는 건 출루율을 10할로 만들어주는 행위니까.


어떤 선수의 컨디션이 최고조에 올랐을 때,

뒤를 받쳐주는 선수의 컨디션이 바닥을 칠 때,

잘치는 타자 앞에 1루가 비워진 득점권 상황이 왔을 때 등 몇몇 조건이 충족되는 경우에 한정해서 쓸 수 있는 전술인 거다.


그래서 정규 시즌에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잘 나오지 않고.


그래서 처음엔 이렇게 생각했다.


‘이런 극단적인 전술을 쓰다니 브루어스가 급하긴 급한 모양이네. 하긴, 뒤에서 치고 올라오는 컵스를 떨쳐내야 하건만 연패를 당해 오히려 좁혀진 최악의 상황이니까.’


하지만...


그 무리수가 이번엔 아주 기가 막히게 들어맞았다.


오늘따라 테이블세터진이 모두 침묵했고 운 좋게 몇 번의 기회가 왔지만 나와 캡틴 모두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그리고 조는...


첫 두 경기에서는 이겼으니까 좋게 넘어갈 수 있었지만 지고 있는 오늘 경기에선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었다. 조의 컨디션이 말이 아니라는 것을.


[3경기에서 안타뿐 아니라 출루 자체를 한 번도 못하며 최악의 컨디션을 보여준 조 그라함!]


내일 올라올 기사가 눈에 보이는듯하다.


테이블세터나 조 뒤의 지명타자인 콜튼 산체스, 1루수 도미닉 파커라도 좀 쳐주면 좋으련만 손잡고 동시에 부진에 빠져있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원정 덕아웃을 보니 수염이 허연 강인한 인상의 감독이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본다. 마치 ‘어때 내 전략이?’라고 묻는 듯이.


‘아마 저런 사람을 보고 곰의 탈을 쓴 여우라고 하는 거겠지?’


인정하긴 싫지만 이번에 우리의 약점을 아주 제대로 찔렸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해결책을 만들어내야 한다. 안 그러면 저 여우 같은 감독의 전술은 남은 경기나 곧 열릴 포스트시즌에서 우릴 상대하는 팀들의 제1전략이 될 테니까.


* * *


경기는 이제 8회 말, 브루어스의 에이스 코빈은 아직도 건재하게 마운드 위에 서있었다. 아직까지 단 한 점도 내주지 않은 채로.


8회 말 2아웃 주자 없는 상황에서 타석으로 들어섰다. 오늘도 볼넷 두 개만을 얻고 2타수 무안타인 내게 아마도 마지막 기회가 될 타석.


“어이 루키, 그동안 공짜 출루로 재미 좀 봤지? 이번에도 방망이 휘두를 일은 없을 테니 얌전히 있다가 가라고.”


‘엥, 갑자기?’


내내 조용하던 브루어스의 포수, 제이콥이 갑자기 말을 걸어온다.


휘이이익 퍼엉.


“스트라이크!”


오늘 처음으로 제대로 들어온 패스트볼. 이제서야 슬슬 제대로 승부해볼 마음이 생겼나?


아니면 이때쯤 내 타격감에 문제가 생겼을지 모른다고 판단했을지도.


그나저나 98마일! 8회인데도 쌩쌩하구나.


“큭큭. 어때, 공 죽이지? 코빈이 너한테 이런 공을 얼마나 던지고 싶어 했는지 알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럴 거면 미리 좀 던져주지. 경기 다 끝나가는 마당에...’


“이젠 저랑도 제대로 승부 하고 싶은 맘이 생긴 거예요? 저도 좀이 쑤셔 미치는 줄 알았다고요!”


일부러 안달 난 루키 연기도 좀 해주고.


“감독님만 아니었으면... 잘 보라고 우리가 널 어떻게 요리하는지. 난 루키를 아주 싫어하거든. 흐흐.”


쓸데없는 말만 지껄이는 포수를 무시하고 투수를 살폈지만 얼굴에 변화가 없다. 역시 에이스는 다르다는 건가?


휘이이익 퍼어엉.


“볼.”


다음 공은 좌타자의 밖으로 휘어져 나가는 슬라이더. 하마터면 방망이가 나갈 정도로 완벽한 유인구였다.


“휴우...”

“호오. 이걸 참아? 좀 하는데?”


뒤에서 쫑알대는 포수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면서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이런 상황에서 나라면?


몸 쪽으로 꽉 찬 직구를 던지겠지. 그것도 전력투구로.


휘이이익


‘왔다!’


따아아아악.


짜 맞춘 듯이 생각한 그대로 오는 공에 난 3경기 동안 모았던 한을 폭발하듯 방망이를 휘둘렀고 공은 중앙 담장 넘어 2층의 원정 불펜에 떨어졌다.


“우와아아!”

“리! 너밖에 없어.”

“내 돈을 가져가! 내 시간도 가지고, 아니 그냥 날 가져!!”


팬들의 응원을 들으며 천천히 베이스를 돌았다.


경기에 아무런 영향이 없는, 8회에 나온 1점짜리 홈런이었지만 그래도 마음속에 응어리진 게 조금은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 후련했다.


덕아웃으로 들어오니 분위기가 조금은 살아나는 느낌이다. 팀원들과 함께 세리머니를 하고 난 뒤 서둘러 감독님께 다가갔다.


“수고했네, 리. 그렇게 견제를 받고도 아직 타격감이 살아있는 게 느껴져. 앞으로 그렇게만 해주게.”


감독님이 애써 웃음을 지으며 나를 격려해 주신다. 그래도 아마 속에선 고민이 말이 아니실 거다.

어떻게 해서든 이 전략에 대응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건 감독님이니까.


“전 괜찮습니다.”

“엥? 뭐가 괜찮다는 말인가?”

“전 순번이 어디든 좋으니 감독님 마음대로 타순을 짜주십시오. 군말 없이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내 뜬금없는 말에 잠시 멍해 계시던 감독님이 이내 웃음을 터뜨리셨다.


“푸하하핫. 내 마음을 알아주는 루키가 있을 줄은 몰랐군. 그래, 내가 최적의 자리에서 자네를 굴려줄 테니 기대하게나.”


저 확언대로 감독님은, 아마 진짜로 답을 가져오실거다.


저렇게 허허 웃으며 사람 좋아 보이는 감독님이지만, 전생에서 건강 문제로 물러나기 전까지 10년 동안 필리스를 월드시리즈 정상에 두 번이나 올려놓은 명감독이었으니까.


그리고 10년 후, 자신의 은퇴 시즌에 우승을 달성하고 생긴 알렉스 코라의 별명은 바로...


‘늙은 여우’였으니까.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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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위기(1) +1 24.09.05 1,831 4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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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탈각(2) +1 24.09.03 1,969 50 12쪽
29 탈각(1) +1 24.09.02 2,081 49 12쪽
28 허리케인(3) +1 24.09.01 2,128 53 11쪽
27 허리케인(2) +1 24.08.31 2,146 52 11쪽
26 허리케인(1) +3 24.08.30 2,173 5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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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홈! 스위트 홈!(2) +1 24.08.28 2,215 49 12쪽
23 홈! 스위트 홈!(1) +1 24.08.27 2,246 59 13쪽
22 WELCOME TO MLB(3) +2 24.08.26 2,284 5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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