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야구 천재가 회귀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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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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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각(2)

DUMMY

시카고 컵스. 우리에겐 염소의 저주로 더 잘 알려진 구단인 컵스는 ‘가장 오래 우승을 하지 못한 팀’으로도 유명하다.


2016년, 1908년 마지막 우승 이후 무려 108년 만에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염소의 저주를 깬 컵스의 팬 중에는 태어날 때 우승을 봤던 108세 할머니도 계셨다고...


내셔널리그가 창단될 때부터 있었던 유이한 팀이자, 그에 더해 한 번도 연고지를 바꾸지 않은 유일한 팀인 컵스는 그 이후로도 꾸준히 포스트시즌에 얼굴을 내미는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그 오랜 기간 동안 우승하지 못한 팀에게도 끝까지 의리를 지킨 강성한 팬덤을 지닌, 메이저리그 구단 가치 4위의 빅클럽으로서.


하지만 현재는 서부지구와 동부지구의 강세에 밀려 중부지구 2위를 하고 있음에도 와일드카드 순위는 5위로 처져있다.


15경기밖에 남지 않은 가운데 3위와의 승차가 무려 5승이라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포스트시즌은 물 건너간 절망적인 상황.


기적이 이루어지려면 이번 필리스와의 시리즈 4연전에서 반전을 노려볼 수밖에 없을 거다.


하지만 우리도 쉽게 경기를 내줄 생각은 전혀 없다는 건 매한가지. 어제 1차전도 이긴 김에 스윕을 다짐하며 1회 초 수비를 하러 올라온 경기장은...


“우와.”


한마디로 장관이었다.


빨간색으로 칠해놓은 바탕에 중간중간 주드의 이름이 적힌 문구들이 있었고 붉은 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은 팬들은 모두 주드의 이름을 연호했다.


평소에 가장 많이 들리던 캡틴이나 조의 이름보다 압도적인 데시벨로.


커뮤니티에서 주드 기록 관련 글이 인기를 끌었다고 듣긴 했는데 팬들이 이렇게까지 해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우리 아버지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던 존이라는 너튜버의 힘도 어느 정도는 영향을 미쳤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스케일이 크잖아?


‘이러다가 너무 감동해서 오히려 흔들리는 거 아냐?’


저, 봐라. 주드 저 녀석, 마운드를 5분이 넘게 발로 파고 있네. 저러다가 땅굴 파고 안으로 들어가겠어.


“주드!”


있는 힘껏 주드의 이름을 부르자 내 쪽을 한번 본 주드가 정신을 차리려는 듯 고개를 몇 번 젓고는 이내 힘차게 연습구를 던지기 시작했다.


휘이익 퍼엉


오우야, 외야에서 봐도 공에 힘이 느껴질 만큼 좋다. 특히 저 슬라이더는 나도 치기 어렵겠다 싶을 정도로.


‘저 정도 공이면 걱정할 필요가 없겠는데?’


“플레이 볼!”


심판의 경기 시작 소리와 함께 시작된 컵스와의 시리즈 2차전은 굉장히 빠른 템포로 진행됐다.


이유는 우리 5선발과 맞붙은 컵스의 투수가 1선발인 카일러 아놀드라는 것. 그리고 주드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무시무시한 피칭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 15승 6패에 평균자책점 2.57의 화려한 성적으로 유력한 사이 영 위너로 꼽히는 카일러 아놀드는 오늘도 자신의 역량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5회까지 안타 하나에 볼넷 하나로 우리 타선을 꽁꽁 묶으며 단 70구만을 던지는 효율적인 투구수 관리까지. 퍼펙트한 피칭에 상대 팀의 에이스임에도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도 1회 첫 타석에서 겨우 볼넷을 골라 나갔고 이어진 4회의 두 번째 타석에선 싱커에 속아 범타를 기록했다.


휘이이익 퍼엉


대기타석에서만 봐도 압도적인 카일러의 저 싱커는 정말 상대하기 까다로운 공이다. 전생을 통틀어서도.


하지만 전생이었다면 헛돌았을 방망이를 어떻게든 힘으로 컨트롤해 갖다 맞추기라도 한 게 좀 달라진 점이랄까?


바뀌지 않은 게 있다면... 범타를 기록했을 때 나에게 향했던 팬들의 욕설.


‘아닌가? 전생보다도 좀 더 심했나?’


가차없는 우리 팬들의 비난이 아직도 귓가에 아른거린다. 아니 근데 똑같은 신인인데 왜 주드에겐 안 하고 나한테만...


순간 억울함이 치밀어 올랐지만 빠르게 가라앉았다.


‘그래, 이것도 다 경험치잖아? 감사하게 먹자!’


어쨌든 이런 대단한 활약을 해준 카일러가 있음에도 아직 팽팽한 승부를 이어갈 수 있는 건 당연하게도 주드 덕분이다.


팬들의 칭찬과 응원을 등에 업고 각성이라도 했는지 5이닝 3피안타 무사사구 무실점의 신들린듯한 활약을 하며 카일러가 부른 장군에 멍군으로 화답했다.


이거 이거 이러다가 주드에게 갈 욕까지 나에게 배분될 느낌이 강하게 든다.


무엇보다 경기 전에 큰소리를 있는대로 쳐놨는데 이러면 주드한테 면이 안 서잖아!


이제 공은 충분히 봤으니 다시 한번 카일러를 상대할 시간이다.


‘명품 투수전에선 한방으로 모든 게 결정 나기도 하니까.’


* * *


[(Live) 필라델피아 필리스 0 : 0 시카고 컵스] - 6회 말

└아....

└으악! 또!! 오늘 진홍이 재수가 없네.

└ㅇㅇ. 이번엔 진짜로 잘 맞았는데 하필 야수 정면으로 갈건 또 뭐야.

└아쉬운 거지 뭐. 그런데 요 몇 경기 연속으로 저러니까 걱정이네.

└저러다가 슬럼프 오면 안 되는데...

└그나저나 오늘 경기 진행 겁나 빠르다. 아직 1시간 조금 넘었는데 벌써 6회 말이야ㅋㅋ

└지금 다른 경기는 4회 진행중임ㅋㅋㅋㅋ

└우리 선발들이 미쳤어요ㅋㅋ

└카일러는 알겠는데 주드는 뭐임? 얘 오늘 딴사람 같은데?

└사이 영 컨텐더가 굳히기 피칭 들어갔는데 뜬금없이 잘해주니까 어이가 없으면서도 좋은? 이상한 기분ㅋㅋ

└난 솔직히 여기까지만 해도 대만족!!

└나도ㅋㅋ. 카일러 vs 주드라고 해서 포기하고 있었거든.

└아....

└ㅅㅅㅅㅅㅅ

└이런....

└에라이! 마셜까지 삼진이라니!

└가운데 ㅅㅅ 누구냐. 컵빠는 당장 ㄲㅈ.

└쟤도 이제 한물갔어.

└저기요. 3할에 43홈런 친 타자에게 한물이 갔다니요. 제정신이신가요?

└걍 오늘 카일러가 언터쳐블임. 제대로 맞은 타구가 거의 없음.

└제발, 누구라도 쳐줘! 주드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ㅇㅇ. 오늘 지면 다시 흑화 하는 거임.


* * *


“주드, 이번엔 진짜야. 한방 치고 올 테니까 기다려!”

“큭큭. 그 말 아까 6회에도 했잖아. 그냥 살아서 나가기만 해.”

“애송이 주제에 뭔 한방이야? 주드 말처럼 그냥 나가기만 하라니까? 나까지만 오면 내가 다 해결해 줄 텐데 기회가 없어요, 기회가!”


진을 보며 낄낄대던 주드가 타겟을 변경해 조에게도 한마디를 했다.


“그러기엔 조도 오늘 3타수 무안타에 삼진이 두 갠데...”

“커흐흐음. 내가 밥상만 차려져 있었으면 안 그랬지. 모름지기 4번 타자란 말이야, 루상에 주자가 나가야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는 말씀이야!”


선두타자였던 루카가 그새 삼진을 당하고 들어오자 진이 대기타석으로 들어가며 조에게 한마디를 한다.


“네. 변명 아주 잘 들었고요. 만회하실 타석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조.”


‘에휴. 쟤는 다 좋은데 꼭 매를 벌어.’


당장이라도 진을 따라 나가려는 조를 딱 붙어 말리며 주드는 오늘 경기를 복기했다.


8회 초가 끝난 현재, 주드의 기록은 8이닝 4피안타 8삼진 1볼넷 무실점에 투구수 105개.


주드가 필리스와 계약하고 나서 3년 동안 치른 경기 중에 가장 좋은 성적이라 장담할 수 있는 기록이다.


오늘, 팬들은 처음 보여준 모습 그대로 잘할 때는 물론이고 안타를 맞거나 볼넷을 내줄 때도 계속해서 응원을 해줬다. 아예 욕설이 들리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였고.


이에 주드도 시티즌스 뱅크 파크의 마운드 위에서 처음으로 편안하게 공을 던질 수 있었다. 다소 정신이 없기는 했지만.


사실 처음 연습구를 던진 후로 어떻게 공을 던졌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조가 사인을 내고, 던지고, 아웃카운트를 잡고.


그냥 그 행동들을 반복했을 뿐인데 어느덧 마지막 이닝만을 앞두고 있었다. 이번에도 점수를 내지 못하면 9회가 마지막 이닝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따악


“아웃!”


이반도 범타로 물러나게 되었다. 보면 볼수록 카일러의 저 싱커는 사기다. 벌써 4번째 보는 공인데도 타자들이 저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으니.


믿을 건 이제 쟤 밖에 없다. 느긋하게 나와서 특유의 타격 루틴을 수행하는 진홍을 보면서 주드는 난간에 달라붙어 기도를 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점만 부탁해!’


따아아아악


리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듣자마자 홈런임을 직감할 수 있는 타격음이 들렸다.


“우와아아!”

“홈런이라고 홈런! 역시 저 애송이가 마지막엔 한건 해준다니까!”


기도하려고 눈을 감고 있는 그 찰나에 일이 일어나 버리다니.


“애송이가 몸 쪽으로 말려오는 싱커를 제대로 노려 쳤어. 18살짜리가 수 싸움이 18년 차 베테랑 같다니까? 으하하.”


덕아웃 밖까지 나가서 광분하던 조가 진정하고는 자초지종을 말해주며 대기타석으로 향했다.


‘역시 저 녀석은 뭔가 있어. 필요할 때 꼭 해준다니까?’


팀이 승리에 한 발짝 다가섰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을 때 투수코치가 다가왔다.


“주드, 감독님이 부르셔.”

“아... 네!”


대답을 하고 감독님에게 다가가며 주드는 직감했다.


‘아, 여기까지구나. 그래도 8이닝 무실점이 어디야.’


내심 9회를 마무리 짓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지금 필리스는 피 말리는 와일드카드 싸움을 하는 중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감독은 단 1퍼센트라도 팀이 이길 확률이 높은 결정을 해야 하는 자리고.


동점일 때는 몰라도 이제 점수가 났으니 자신이 아는 감독님이라면 아마 확실한 카드로 굳히기에 들어가시겠지.


“감독님, 저 왔습니다.”

“왔는가? 오늘 아주 끝내줬어, 주드. 다른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해바라기씨를 입에 넣고 질겅거리며 주드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고 말하는 감독을 보면서 주드는 여기까지라는 걸 확신했다.


“감사합니다. 지금 저를 부르셨다는 건, 오늘은 여기까지라는 거겠죠?”


코라 감독이 아무 말 없이 모니터 쪽을 가리켰다.


“저건 불펜 모니터 아닙니까? 근데 왜 아무도...”


감독은 그제야 주드를 강렬한 눈으로 쳐다봤다.


“너도 잘 알겠지? 내가 불펜 운용에 있어서 상당히 냉철한 감독이라는걸.”


주드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요. 근데 그게 지금 왜...?”

“이런 내가 봤을 때 지금 너보다 좋은 투수는 우리 불펜에 없다. 이미 100구를 던져 지친 너라고 해도 말이다.”


퉤엣.


입안의 해바라기씨 껍질을 뱉어낸 뒤 코라가 이어 말했다.


“그래서 난 오늘 너 말고는 마운드 위에 누구도 올릴 생각이 없어.”

“그 말씀은...”

“다음 이닝에 자네가 출루를 허용하더라도 난 자네를 믿을 거야. 아마 실점을 한다면 생각이 바뀔지도? 흐흐.”


이제 막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는 리에게 하이파이브를 하며 감독이 주드에게 눈을 찡긋했다.


“그래도 이왕이면 가장 친한 친구가 만들어준 승리의 기회를 자네가 직접 지켜야 하지 않겠나?”


“......”


감독의 말은 그만 던질 생각만 하던, 자신의 공에 확신 따윈 없던 주드의 마음에 날아와 꽂혔다.


‘그래, 100구를 넘겼으면 어때. 지금 내 공이 최고인데.’


“어서 마운드로 올라가게나. 가서 팬들에게, 팀원들에게, 그리고 적에게 가서 네가 누군지 확실하게 보여주도록!”


빠각.


오늘만 9번째로 마운드를 향하는 주드에게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고뇌, 괴로움, 두려움.


그동안 주드의 비상을 막고 있던


스스로 만든 껍질이 깨지는 소리였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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