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야구 천재가 회귀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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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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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각(3)

DUMMY

“후우....”


벌써부터 긴장되는 마음에 주드는 올라오기 직전 포수 장비를 두르며 조가 했던 말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이렇게까지 많이, 오래 던져본 적 없지? 이제 악력도 떨어질 거고.”


꽈악.


공을 꽉 쥐고 있던 떨리는 손이 조의 말이 맞다고 얘기하는 듯했다.


“조금씩...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힘 떨어진 투수가 제일 어려운 게 뭔지 아나, 겁쟁이 애송아?”


주드는 그 물음에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답이 뭔지 몰라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 고를 수가 없어서.


“흐흐흐. 지금 너처럼 생각이 많아진다는 거야. 내가 힘이 빠졌으니 이렇게 하는 게 좋겠지? 기껏 던졌는데 제구가 안되면 어쩌지? 고민하다가 정작 공은 제대로 못 던지지.”


조가 옆구리에 끼고 있던 마스크를 쓰고는 주드의 등을 힘차게 두드렸다.


“그러니까 그런 잡생각에 힘 빼지 말고 내가 던지란 공을 어떻게 하면 정확하고 강하게 던질지만 생각하란 말이야! 나머지는 네 뒤에 있는 사람들이 알아서 해줄 테니까.”


조의 말이 맞다.


8회에도 이런저런 생각에 제대로 채지 못해 뜨는 공들이 계속 나왔었다. 그 공을 받던 포수가 조였으니 저런 조언을 하는 것도 당연하겠지.


‘지금부터라도 잘하면 돼. 정신 차리자, 주드!’


다짐하며 다시 공을 으스러져라 잡아보는 주드였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마지막 이닝은 컵스의 6번 타자부터 시작되는 하위타선이 등장한다.


아드리안 테일러. 컵스의 지명타자를 맡고 있는 장타 원툴의 타자다.


‘정타만 안 맞으면 돼!’


볼, 스트라이크, 볼, 볼, 파울


“헉. 헉. 흐헉.”


점점 숨이 가빠 온다. 라인 살짝 오른쪽으로 나가는 장타성 코스의 파울타구엔 정말이지 가슴이 철렁했었다.


하지만 조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공을 받자마자 바로 사인을 보낸다. 저런 파울타구 따윈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저런 무심한 조의 모습에 이상하게 주드는 조금이나마 안심이 됐다.


‘바깥쪽으로 빠지는 슬라이더.’


역시나 슬라이더다. 아마 테일러도 내가 지금 슬라이더를 던질 거라는 걸 알고 있을 거다. 지금껏 내내 그렇게 던져왔으니까.


하지만 뭐 어때.


‘내 슬라이더는 감독님과 조 그리고 무엇보다 저기 센터필드에 있는 친구가 인정한 공이니까.’


저 옛날 스티브 칼튼과 랜디 존슨의 슬라이더, 샌디 코펙스의 커브를 타자들이 언제 던질지 몰라서 못 쳤을까.


조의 말대로 그냥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공 하나에 모든 걸 실어 정성스럽게 던지면 된다.


휘이익 퍼엉.


존 안으로 들어오는 듯하다가 급격하게 밖으로 휘는 공에 이미 예상을 했음에도 방망이를 가져다 맞추지 못하는 테일러. 결과는 주드의 승리였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아자!’


좋아하는 것도 잠깐, 다음 타자에게 던진 초구가 실투가 돼 강습 타구를 맞았을 때는 깜짝 놀랐었다.


찡긋.


하지만 저 3루 쪽에는 골드글러브 4회 수상자인 우리 캡틴이 버티고 있었고, 캡틴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타구를 잡고는 가볍게 1루로 던져 아웃시켜버렸다.


뭐든지 그게 쉬워 보이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장인 이랬나?


그런 의미에서 정말 우리 내야는 장인들의 조합임에 틀림이 없다.


이제 대망의 마지막 타자. 스콧 워커라는 2루수인데 타격 성적은 별로라 살짝 안심이 됐다. 그런데...


컵스도 어떻게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건지 대타를 내보낸다.


리암 로버트슨.


가벼운 감기로 컨디션 조절을 위해 빠져있던 컵스의 붙박이 1루수가 9회 말 2아웃에 컵스의 승리를 위해 대타로 나왔다.


* * *


와... 컵스 쟤네도 진짜 끈질기네.


‘하긴 뭐, 쟤네도 한방이면 동점이니까.’


한 경기, 한 경기가 간절한 입장에서 경기를 놓기 쉽지 않을 거다.


어쨌든 저 리암 로버트슨이라는 타자는 정말 조심해야 할 타자다. 스치면 넘어가는 타격의 전형에 가까운 선수니까.


아니나 다를까 허드슨이 나와 코너에게 손짓을 하며 뒤로 물러난다.


자리를 잡고 마운드를 보자 주드가 딜레이가 거의 없이 공을 뿌려댔다.


보나 마나 조가 정신 무장을 제대로 시켰겠지. 흐흐흐.


스트라이크, 볼, 볼, 스트라이크, 파울, 파울, 파울.


리암이 2-2 카운트에서 계속해서 커트를 하는 바람에 주드의 투구수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이러면 심리적으로 말릴 텐데... 뭐 그건 조가 알아서 하려나?’


크게 한숨을 내쉰 주드가 전과 마찬가지로 조의 사인을 받자마자 빠르게 공을 던졌다.


정확하게 오늘 주드가 던진 120번째 공이었다.


따아악


그리고 드디어 이번엔 타구가 필드 안으로 들어왔다.


중견수와 좌익수 사이로 날아오는 타구. 코스는 또 왜 이리 안 좋은 건지 좌익수 쪽에 더 가깝다.


굼뜬 코너가 죽었다가 깨어나도 잡지 못할 코스였기 때문에 난 타구를 보자마자 전속력으로 뛰었다.


거의 워닝트랙에 다다라서 뒤를 힐끔 바라보자 정상적으로는 절대 못 잡을 곳으로 타구가 오고 있었다.


‘어쩔 수 없지. 도박을 해보는 수밖에.’


디딤 발을 강하게 박차고 달려온 관성을 이용해 펜스 쪽으로 손을 쭉 뻗으며 다이빙했다.


훗날 주드가 ‘날았다’라고 표현한 내 다이빙의 결과는...


“아웃! 게임 종료!”


심판의 퇴근 콜이었다.


글러브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바닥에 떨어질 때 조금만 충격이 셌으면 떨어졌을 법한 캐치. 그래도 잡긴 잡았으니까!


그 콜을 듣자마자 마운드에서 조와 얼싸안은 주드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진! 네 말이 정말 맞았어! 내가 해냈어, 진짜로 해냈다고!”


자식, 그래도 내 은혜를 알긴 아는구나.


요 기특한 친구와 말없이 어깨동무를 하고 방방 뛰면서 이 기쁨을 함께 나눴다.


“그래서 말인데, 진. 그... 걸그룹 사인은 진짜 안될까?”


‘아... 진짜 산통 다 깨네.’


* * *


컵스와의 시리즈 2차전 경기가 마무리되고 덕 아웃으로 들어오자 건장한 키에 잘생긴 얼굴을 한 신사가 나를 반겼다.


“리, 이렇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지? 애런 놀라야.”


난 황급히 손을 맞잡고는 90도로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는 그럴 자격이 있는 선수니까.


“안녕하십니까! 필리스 신인, 리입니다. 편하게 진이라고 불러주세요.”


애런 놀라.


2014년 필리스의 1라운드 전체 7번으로 드래프트되어 이듬해인 2015년에 데뷔해 2032년 은퇴할 때까지 18년 동안 유니폼에 언제나 ‘Pillies’라는 팀명만이 새겨져 있던 선수.


평균 92마일밖에 되지 않는 구속으로도 포심, 투심, 커브, 체인지업, 커터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정교한 제구력, 뛰어난 무브먼트와 경기 운영 능력으로 그렉 매덕스와 로이 할러데이의 후계라는 극찬을 들었던 선수.


필리스의 심장이 하퍼에서 마셜로 이어졌다면 투수진의 머리는 언제나 그였었다.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그건 내가 얘기해 주지, 진.”


옆에서 감독님과 브랜트 스트롬 투수코치가 나타나며 말했다.


“요새 이 친구가 필리스 해설 위원으로 활약하고 있지 않나? 그래서 내가 끝나고 좀 보자고 했지.”

“겸사겸사 올해가 내 마지막 시즌이니 후임 추천도 하고 말이야. 여기 애런이라면 투수코치로 차고 넘치지.”


브랜트 투수코치님은 와이프 되시는 분 지병 때문에 올해까지만 하시고 일을 그만두신다고 들은 것 같다. 그 이유를 차치하고도 저분이 지난 3년간 어지간히 고생하셨어야지. 숱하게 희생된 머리카락에 조의를...


“조금만 더 같이 하자니까 절대 못한다고 고집을 부려서는, 에잉. 그래도 후임 하나는 기가 막히게 골랐으니 내가 봐주는 거네.”

“더 이상은 못 합니다! 그리고 애런이 저보다 훨씬 잘해줄 거라니까요?”

“저기... 전 아직 확답을 드리지 않았습니다만? 너무 김칫국부터 드시는 거 아닙니까, 감독님, 투수코치님? 하하.”


말은 저렇게 해도 아예 생각이 없는 것 같지는 않다. 은퇴한지 2년 밖에 되지 않아 익숙한 선수들도 많고 감독님과도 2년을 같이 보냈으니 스타일도 알 거고.


‘이렇게 생각하니 정말 딱인데?’


“이거 왜 이러나, 우리 사이에. 좀 도와주게.”

“지금 하고 있는 해설 위원 일도 있고, 마무리 지어야 할 일도 있어서 바로는 힘듭니다. 그래도 다음 시즌부터라면 제가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정도면 굉장히 긍정적인 답변이다. 바로 합류는 힘들고 아마 다음 시즌부터는 가능할 것 같다는 뉘앙스.


그러면 이렇게 된 김에 배울 수 있는 건 모두 배워야 하지 않겠어? 투수에게 무기는 많을수록 좋은 법이니까.


“애런! 여긴 웬일이세요?”

“오, 이게 누구야! 우리 대투수님 아닌가!”


덕아웃으로 내려오던 캡틴과 조가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애런에게 달려들었다.


“여어. 마셜, 조 이거 오랜만에 보는군. 어때, 잘 지내고 있었어?”

“애런이 있을 때보단 훨씬 사정이 좋습니다. 슬쩍 들었는데 투수코치로 오신다고요?”

“좋고말고! 포스트시즌엔 더 이상 못 나가보고 은퇴하나 싶었는데 이렇게 와일드카드라도 올라갈 수 있게 됐으니까. 그리고 한번 제대로 키워보고 싶은 루키들도 꽤나 들어왔고.”


조가 밖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주드와 나를 스윽 쳐다보며 애런에게 말했다.


“사실 나도 흥미가 생기는 신인이 생겨서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려 했는데 그게 오늘 두 명이 됐네? 허허.”

“애런이 와서 좀 봐줘야겠어. 둘 다 구종이 부족해서 레퍼토리 짜기가 너무 힘들어.”


저기, 조? 전 다 생각이 있습니다만. 이번 비시즌에 슬라이더를 연마하면...


잠깐. 애런이 팀으로 온다면 저번 생엔 인연이 닿지 못해 못 배운 ‘그 공’을 배울 수 있는 거잖아?


사이 영 상이 하나도 없는 그를 그렉 매덕스, 로이 할러데이와 감히 비교할 수 있게 만들어준, 횡 무브먼트 하나는 메이저리그 최고 수준이라던 ‘투심 패스트볼’을.


“저기 애런, 그럼 비시즌에 구종을 배우러 찾아봬도 될까요?”

“그럼, 당연하지! 이왕이면 올 때 저기 인터뷰하고 있는 아이도 데려오도록! 슬라이더가 일품이긴 하지만 내년에 낱낱이 분석되면 반대 손 타자들에게 어려움이 생길게 분명해.”


역시 슥 보면 전부 파악이 되시는구나. 나도 그게 살짝 걱정이긴 했는데.


“알겠습니다. 꼭 찾아뵐게요!”

“흐흐흐. 야, 애송아. 너 왜 저기 다른 애들이 애런한테 안 오는 거 같냐?”

“네?”


그러고 보면 아직 은퇴한지 2년도 안 돼서 거의 다 아는 얼굴일 텐데도 다른 선수들은 마치 천적을 본 초식동물 마냥 멀리 떨어져 눈치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특히 투수들은 더.


‘뭐지?’


“으하핫. 애런이 아주 지독한 훈련광으로 유명하거든. 아마 저기에도 당한 애들이 수두룩할 거다.”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축하한다, 애송이! 애런과 함께하는 지옥의 비시즌 멤버로 영입된 걸. 크하하.”


박장대소를 하는 조의 옆에서 인자한 웃음을 짓고 있는 애런이 갑자기 포식자로 보였던 건 내 착각이었을까.


두 사람 옆에서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날 보는 캡틴이 내 생각에 현실감을 불어넣어 줬다.


“진, 나 왔어! 근데 뭔 일 있어?”


‘그래. 같이 고생할 애라도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지. 좋게 생각하자, 좋게.’


어서 와, 주드. 이제 그만 웃고.


아마 우리 비시즌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예정인 것 같으니까.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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