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야구 천재가 회귀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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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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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여우(2)

DUMMY

마지막까지 노력했지만 우리는 브루어스와의 시즌 마지막 홈경기에서 이기지 못했다. 그나마 8회에 나온 내 홈런으로 영봉패를 당하지 않은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랄까.


지금은 비행기 안, 잔여경기를 제외한 마지막 원정길에서 난 자리에 앉아 캡틴과 대화 중이다.


“그래도 애리조나랑 메츠 둘 다 져서 그나마 다행이에요.”

“그래도 아직 안심하긴 일러. 우리도 기왕 와일드카드를 치를 거면 홈에서 치르는 게 좋고.”

“당연하죠! 애리조나까지 가서 경기하면 가은이가 절대로 못 올 거예요.”


와일드카드 시리즈는 각 지구 1위 팀 중에 승률이 가장 떨어지는 팀과 와일드 카드 3위 팀이 지구 1위 팀의 홈에서,

와일드카드 1위 팀과 2위 팀이 1위 팀의 홈에서, 3경기를 모두 치르기 때문에 당연한 말이지만 순위는 올릴수록 좋다.


이대로 시즌이 끝난다면 우린 애리조나의 체이스 필드에서 디-백스와 3연전을 펼치고, 메츠는 밀워키의 아메리칸 패밀리 필드에서 브루어스와 3연전을 치르게 된다.


뉴욕이나 필라델피아처럼 동부지구에 속한 경기장이 아니라면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아마 결사반대를 외치시겠지.


‘절대로 애리조나를 제치고 홈 어드밴티지를 따내야 해!’


이번 워싱턴과의 4연전과 마이애미와의 더블헤더에 모든 게 달렸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두 팀 다 이미 포스트시즌과는 거리가 멀다는 거였다. 각각 4위와 5위로 이미 시즌을 포기한지도 좀 됐고.


그런 면에서 보면 강팀과의 일정이 남은 디-백스와 메츠보단 훨씬 유리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워싱턴은 좀 어때요, 캡틴?”

“우리와 그리 사이가 좋진 않지. 그와는 별개로 상대하기 힘든 팀은 아니고.”


자, 이쯤에서 문제 하나!


내셔널리그 동부지구에서 가장 최근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한 팀은?


정답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다.


그럼 그다음은?


워싱턴 내셔널스, 이제 우리와 마지막 정규 시리즈를 앞두고 있는 바로 그 팀이다.


2005년 워싱턴으로 연고지를 이전한 뒤, 동부지구에서 마이애미라는 확실한 꼴등을 제외하면 인기나 전력이 뒤처졌던 내셔널스는 스트라스버그 - 하퍼 - 소토로 이어지는 금맥을 발굴하며 2010년대에 강팀으로 떠올랐다.


2019년에는 슈어저와 스트라스버그, 코빈의 막강한 선발진과 앤서니 랜던, 후안 소토의 미친 활약으로 필리스에 하퍼를 빼앗긴 울분을 월드 시리즈 우승으로 씻었고.


하지만 그 영광도 잠시.


슈어저와 랜던은 팀을 떠났고,

장기계약을 안겨준 스트라스버그와 패트릭 코빈은 역대 최악의 계약을 다퉜으며,

필사의 의지로 15년 4억 4천만 달러를 제안했던 소토마저 거절하고 팀을 떠나버리자 워싱턴에 남은 건 명맥만 간신히 유지할 정도의 힘뿐이었다.


이렇게 되자 잠시 주춤했던 필리스의 팬들이 다시 왕성하게 활동을 시작했다.


전통적으로 메이저리그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팬덤을 보유한 필리스는 내셔널스와의 경기 때면 항상 수많은 팬들을 몰고 오곤 했다. 00년대 인기없고 티켓이 넘쳐나는 내셔널스 파크가 마치 홈인 것처럼.

이에 참다못한 내셔널스에선 티켓 판매 지역을 제한하는 편법으로 맞서기도 했고.


이런 촌극은 10년대 성적이 역전되자 잠시 주춤했지만 20년대 다시 활발해졌다.


“꼬맹아, 내가 데뷔할 때는 말이야. 내셔널스 파크가 그냥 시티즌스 뱅크 파크였었다고! 홈경기랑 다를 게 하나 없었어.”

“정말 그 정도였어요? 지금은요?”

“글쎄. 올해 초까지는 안 그랬는데, 이번 시리즈는 좀 다를지도?”


내 생각에도 팀이 잘나가는 지금, 우리 팬들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싫냐면 그건 또 아니다. 오히려 좋을지도.


이젠 팬들의 열성적인 응원이 점점 좋아지고 있으니까. 심지어 야유까지도. 이러면 내가 너무 변태 같나?


‘음... 2차전엔 주드가 선발 등판하는데, 이젠 괜찮겠지?’


“캡틴! 또 애송이랑 붙어있구먼. 요새 보면 아주 둘이 한 몸 같아?”

“저희 집에서 하숙을 하고 있으니까요. 이제 그것도 얼마 안 남았습니다. 집을 얻어 곧 이사를 간다고 하니까요.”

“시즌 끝나고! 결혼식 올리고! 바로 이사 갈 거예요. 그때 다들 와주셔야 합니다.”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조가 바로 용건을 꺼냈다.


“일단 결혼이나 하고 말해, 이 애송아! 그리고 전에 말했던 네 선발 건 말인데...”

“선발이요? 그건 왜요?”

“내가 네 공을 못 받아줄 것 같다.”


덜컹.


순간 마음속에 커다란 돌이 내려앉았다.


* * *


오늘 경기를 지고 나서 코라는 방에 꼼짝도 하지 않고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있었다. 한시가 급하게 팀의 문제점을 개선해야 했기에...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은 하나였다.


포수.


‘그 자리를 너무나 뛰어난 한 선수가 독점하고 있었기에 일어난 일이지.’


계속해서 오스틴과 스탠리를 투입시키고는 있었지만, 시즌 막판으로 갈수록 점점 중요한 경기들이 많아져 그마저도 줄어드는 중이었다.


항상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조였기에, 그도 나이가 들었다는 걸 잊어버렸었다.


‘조에게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하는데. 젠장!’


하지만 일은 벌써 벌어졌고 이제는 어떻게든 그걸 수습해야만 했다.


코라는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는 차분하게 수화기를 들었다.


-필리스 단장 샘 펄드입니다. 어떤 일이신가요, 감독님?

“자네도 경기를 보지 않았나? 당연히 수습하려고 전화했지.”

-흠... 우리 감독님이 어떤 수를 내셨을까 궁금하군요. 제가 어떻게 해드리면 되죠?

“우리 백업포수 중 한 명을 팔든지 마이너로 내리든지 해서 자리를 하나 만들어주게. 개인적으로는 스탄이 남아있으면 하고.”

-오스틴을 정리해 드리죠. 그다음은요?


역시 시원시원하다.


코라의 생각에 오스틴은 아니었다. 수비와 공격력 모두 수준 이하. 거기에 나이도 스물여덟에 내후년에 FA가 되는 선수라 메리트도 전혀 없었고.


데려가는 팀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단장이 또 무슨 요술을 부려주겠지.


“자네가 저번에 말해준 그 스톤이라는 녀석 말이야. 지금 바로 올려줄 수 있겠나?”

-그럴 수는 있지만 왜죠? 내년에 올려도 될 텐데요.

“아무래도 조의 다음 포수를 찾는 일을 조금 서두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빠르면 빠를수록 좋네.”

-감독님 생각이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스톤은 워싱턴으로 바로 보내도록 하죠. 대신 결과로 꼭 보여주셔야 합니다.

“알겠네. 꼭 그러지.”


‘휴우...’


이제 마지막 큰 산이 하나 남았다.


노쇠화가 진행되는 선수에게 자신이 늙었다는 걸 인지시키는 일은 언제나 괴롭다. 자신도 겪어본 일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럼에도 꼭 해야 하는 일이니까.


「워싱턴으로 떠나기 전에 잠깐 보지.」 -알렉스 코라


* * *


메츠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홈런을 치긴 했지만 조는 자신의 몸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무릎은 갈수록 시렸고 피로가 누적돼 타격 폼은 점점 무뎌졌다. 수많은 경험으로 어찌어찌 커버하고는 있었지만 이제 그것도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도 느끼고 있었고.


다만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그걸 외면하고 있었을 뿐.


그런 면에서 이번 밀워키와의 3연전은 외면하던 사실들을 강제로 보게 된, 그의 인생에서 가장 쓰디쓴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조는 자신이 늙었다는 걸, 필리스의 라인업에서 자신이 약점이 됐다는 걸 만천하에 공개당한 그 비참한 시간에서 빠르게 빠져나왔다.


이제 붙박이 포수로 활약하던, 162경기를 한 경기도 쉬지 않고 다 뛰던 그 선수는 없다는 걸 조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기에,


또 자신이 무너지면 다시 비상하려고 날갯짓을 하던 필리스라는 팀이 같이 무너질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아마 감독님도 빠르게 자신에 대한 결정을 내려주실 거다.


겉으로는 푸근한 인상을 하고 있지만 누구보다 냉정하고 칼 같은 사람이란 걸 보스턴에 있던 시절부터 거의 경력 내내 같이 생활한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아니까.


‘음... 휴식 차원의 로스터 제외려나?’


똑똑.


“조 그라함입니다.”

“들어오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각잡힌 책상에 차분하게 앉아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그리고 그 남자는 조가 준비되어 있는 의자에 앉자마자 말을 시작했다.


“팻 그 여우 같은 영감이 작정하고 자네만 노리더군. 아주 제대로 당했어.”

“......”

“덕분에 나도 정신이 확 들었네.”

“크음. 저를 부르신 까닭이...?”


감독님이 온화한 얼굴을 하고 단호한 말투로 말씀하셨다.


“아마 자넨 다음 경기에서 라인업에 제외될 거야. 그리고 다음 시리즈 내내 포수로 출전하지 않을 거고.”


‘역시...’


예상했던 대로다. 감독님 성격상 약점을 아예 치워버리는 방법을 좋아하시니까. 지금 자신의 타격감이 많이 떨어져 있기도 하고.


“그럼 지금 보자고 하신 게, 워싱턴엔 같이 안 가도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코라가 뭔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무슨 말인가? 자네가 왜...”

“그럼 출전도 안 하는데 뭐 하러 따라갑니까?”


코라가 이내 알았다는 듯 입가에 자그마한 미소를 띠었다.


“내가 언제 자네를 라인업에서 아예 빼겠다고 했나?”

“그럼...”

“지명타자, 그리고 백업포수.”


그 특유의 확신에 찬 표정으로 이어서 말하는 감독.


“난 아직 자네의 타격감이 무너졌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냥 체력이 빠졌을 뿐이지. 그러니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최대한 빠르게 회복할 생각이나 하게. 난 아직 자네가 필요하니.”

“아...”


조가 멍한 표정으로 있자 코라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그런 표정도 지을 줄 알았군. 그리고 아마 내일 로스터에서 오스틴이 빠지고 스톤이라는 루키가 올라올 거야. 단장 말로는 자네도 알 거라던데?”

“알고 있습니다. 리가 포수로 포지션 변경하라고 노래를 부르던 아이죠?”


제이크 스톤. 건방진 애송이 녀석이 감히 자신의 뒤를 이을 거라 확신에 차 말하던 아이. 전화만 나눠본 그 아이도 곧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점점 흥미로워졌다.


‘어디 얼마나 대단한 놈인지 한번 확인해 보자고.’


“그래. 그 아이와 스탠리를 잘 좀 봐주게. 그들이 잘 커야 자네도 부담을 좀 내려놓을 것 아닌가.”

“흐흐. 알겠습니다. 맡겨만 주시면 제가 제대로 봐드리죠.”


‘너는 더 이상 붙박이 포수가 아니다, 이젠 포수 자리도 로테이션을 돌릴 거다’라는 뜻으로 말씀하시는 거였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이런 자신이라도 팀에서 긴히 쓸모가 있다는 사실에 오히려 기쁘기도 했고.


‘지금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지, 뭐.’


그렇게 생각하며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순간, 감독님이 책상에서 급하게 다가와 잊어버린 것이 있다는 듯 조에게 종이 한 장을 보여줬다.


“아! 그리고 이건 와일드카드 시리즈 라인업이네. 이미 다 작성해놨지. 3일 모두 같은 라인업으로 나갈 예정이고.”


[2034 와일드카드 시리즈 라인업]

1. (SS) Ivan Gardner

2. (CF) J. H. LEE

3. (3B) Robert Marshall

4. (C) Joe Graham

······.


언제나 자신의 자리였지만 희미해졌던 4번 타자와 포수. 그 옆에 선명히 적힌 조 그라함이란 이름이 새삼스러워 보였다.


“그러니 몸 관리 잘하게나.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면.”

“하하하. 저 조 그라함입니다, 감독님! 그런 일은 없을 거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감독실에 들어왔을 때와는 다르게 조의 입가엔 다시 그 특유의 악동 같은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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