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판타지 속 무림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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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손
작품등록일 :
2024.08.20 04:33
최근연재일 :
2024.08.31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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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0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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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가의 비밀 (1)

DUMMY

말이 마을이지, 바이로바이잔은 어지간한 소도시나 다름없는 크기였다.


길은 질척거리는 비포장이었지만 오가는 인파와 마차로 계속 북적였다.


길가의 건물들도 나무나 진흙보단 벽돌로 번듯하게 지어올린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정도 마을은 오랜만이네.’


세상이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있는 지금도 성세를 유지하고 있는 북부의 자유도시들.


그중에서도 굴지의 위치에 있는 허스그라드의 권역 내에 있는 곳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틀 전 상단을 습격한 놈들처럼, 이 근방에도 사교도들의 손길이 뻗쳐오고 있는 게 현실이긴 하지만.


‘그래도 여기만 보면 망해가는 세상인 줄은 알지도 못하겠는데.’


오랜만에 사람냄새나는 곳을 거닐고 있노라니 피폐해졌던 마음도 조금 치유되는 느낌.


문제는,


‘···길을 모르겠네.’


가끔 표지판 같은 게 보이긴 했지만 그것만으론 도무지 맞게 가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헤어지기 전에 길이나 물어볼 걸 그랬나.’


뒤늦게 불라덴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이미 지나간 일.


될 대로 되란 심정으로 계속 걷다 보니 어느새 커다란 광장 같은 곳으로 접어들었다.


다른 곳도 사람이 많았지만 여긴 아예 인파로 터져나갈 지경이었다.


‘뭐지, 여긴?’


의문을 품기 무섭게, 쩌렁쩌렁한 외침이 귀청을 때렸다.


“죽여라, 죽여!”


“전부 매달아버려! 저주받을 놈들!”


“사교도는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먹먹한 귀를 감싸 쥔 채 광장 중앙을 보자 사람들이 모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무대처럼 마련된 높다란 교수대.


그 위에 부부처럼 보이는 남녀와 두 아이가 나란히 서 있었다.


모두 손발은 단단히 결박되고 목에는 올가미가 걸려있는 모습.


굳이 누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하는 건지 알 수 있었다.


‘사교도 사냥인가.’


숱하게 봐온 광경이라 이젠 별 감흥도 없었지만, 유쾌한 볼거리는 아니었다.


냉랭하게 바라보는 군중들을 향해 남편과 아내가 눈물 콧물을 쏟으며 애원했다.


“아, 아니야! 우리는 사교도가 아니라고!”


“제발 자비를···!”


딸과 아들로 보이는 두 아이는 부모와 달리 차분했다.


너무 겁을 먹어서 굳어버린 건지, 아니면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곧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남자 하나가 군중 앞으로 나섰다.


“준엄한 허스그라드의 법도에 따라! 난민을 가장해 마을에 숨어든 사교도들에게 재판 없는 극형을 언도하는 바이다! 이 엄정한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자 있는가?”


와아아아-!


군중들이 우레와 같은 환호성으로 대신 답했다.


남편이 악을 쓰며 교수대 위에서 항변했다.


“아니야, 아니오! 우린 정말로 남쪽에서 도망쳐 온 난민이란 말이오! 간신히 사교도들에게서 빠져나와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 이런···.”


“에에이, 시끄럽다! 처형을 집행하라! 지엄하신 빛을 대신해 저 간악한 것들의 죄를 벌하라!”


“아, 아이들이라도! 아이들만이라도 제발-!”


아내의 절규를 무시하며 남자가 손을 크게 휘둘렀다. 신호를 본 집행인이 바로 지렛대를 잡아당겼다.


덜커덩-!


가족들이 딛고 있던 발판이 꺼지며 몸뚱이들이 허공에 매달렸다.


잠깐 손발이 펄떡이는가 싶었지만, 곧 모든 움직임이 멎으며 아래로 축 늘어졌다.


와아아아아-!


시계추처럼 힘없이 대롱거리는 주검들을 보며 군중들이 다시 한 번 환호를 터뜨렸다.


유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보면 볼수록 지랄맞은 세상이야.’


역시, 최대한 빨리 빠져나가는 게 답이다.


꾸물대다간 저들처럼 광기에 삼켜지거나 멸망의 참상 속에서 마족들의 한 끼 식사로 전락하게 될 테니.


유길은 인파를 뒤로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마침 건너편에 골목이 하나 보였다. 저기로 들어가면 이 광기어린 곳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막 골목으로 들어서던 그때,


“어이, 형씨. 어딜 그리 급하게 가시나?”


갑자기 나타난 남자가 앞을 막아섰다.


우락부락한 덩치에 대충 주물러놓은 듯한 얼굴. 멧돼지가 두 다리로 서면 딱 이런 모습이겠다 싶었다.


대낮부터 퍼마시기라도 한 건지, 전신에서 술냄새가 풀풀 풍겼다.


‘취객인가.’


유길은 상대하지 않고 그냥 옆으로 비켜가려고 했다.


하지만 어느새 한 명이 더 나타나 남은 길목까지 가로막았다.


“그렇게 후드까지 깊이 눌러쓰고서 말이야. 얼굴을 가려야 될 이유라도 있나 보지?”


이쪽은 대조적으로 깡마르고 약삭빨라 보이는 인상의 사내였다. 저쪽이 멧돼지라면 이쪽은 족제비였다.


똑같은 냄새를 풍기고 있는 걸 보니 멧돼지와 술친구라도 되는 모양.


유길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별로 잘 생긴 얼굴이 아니라서.”


“그래? 사교도라서 그런 게 아니고?”


초점 없던 멧돼지의 눈이 어느새 적의로 번들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하긴, 그때그때 기분이 종잡을 수 없이 변하는 게 술 취한 인간들 특징이긴 하지.


“내가 지금 좀 바빠서 그러는데, 비켜주면 안 될까?”


“비켜? 이 새끼가 어디서-”


다짜고짜 주먹을 들려는 멧돼지를 옆에서 족제비가 제지했다.


“아아, 바쁘시다는데 비켜드리자고. 사교도인지 아닌지 확인만 해보고.”


“확인? 어떻게?”


의아해하는 멧돼지를 뒤로하고 족제비가 유길에게 다가왔다.


회심의 미소를 머금은 채, 놈이 말했다.


“마족 개새끼, 해봐.”


“······.”


이제 더 상대해봤자 시간낭비라는 게 명확해졌다. 유길은 그냥 다른 길을 찾으려 등을 돌렸다.


하지만 그 전에 멧돼지의 솥뚜껑 같은 손이 어깨를 붙잡았다.


“대답해, 이 사교도 새끼야!”


곧장 날아오는 주먹.


하지만 유길은 피하지 않았다.


그저 슬쩍 돌아서면서 손을 뻗어 멧돼지의 옆구리를 가볍게 짚었다.


우두둑-


“커헉?”


지그시 누른 엄지손가락에 갈빗대가 부러져 나가며 멧돼지가 풀썩 무릎을 꿇었다.


애벌레처럼 몸을 구부린 채 컥컥대는 그 모습에 족제비가 눈을 부릅떴다.


“색슨? 이 개새끼가!”


하지만 주먹을 채 뻗기도 전에, 유길의 손가락이 먼저 움직였다.


쿠욱!


“어···?”


목 뒤쪽에 위치한 마혈(痲穴).


그곳을 가볍게 점한 유길이 족제비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하루 정도 지나면 알아서 풀릴 거야. 그때까지 친구랑 같이 뭘 잘못했는지 천천히 반성해 봐.”


이미 딱딱하게 굳어진 족제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유길은 그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곤 골목 안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잠시 후,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걸음을 돌려 다시 족제비에게로 돌아왔다.


“······?”


족제비가 술기운이 싹 가신 얼굴로 눈만 굴려 유길을 쳐다보았다.


유길이 씩 웃었다.


“너, 혹시 여기 길 좀 잘 아냐?”



* * *



다행히 찾던 곳은 멀리 있지 않았다.


족제비가 일러준 대로 골목을 서너 개쯤 지나자 공터에 자리한 거대한 저택이 모습을 드러냈다.


길게 이어진 담장을 따라 위병들이 순찰을 돌고 있었다. 날카롭게 벼린 창날과 잘 닦인 갑옷이 서슬퍼런 군기를 보여주는 듯했다.


눈앞에 보이는 정문도 물샐틈없이 경비되고 있었다. 가끔씩 드나드는 이들도 철저히 검문을 받은 후에야 안으로 들어갔다.


물론, 유길 자신에겐 저런 경비쯤이야 아무것도 아니긴 했지만.


‘몰래 들어가는 거야 간단하지만··· 그랬다간 일이 꼬일지도 모르지.’


결정을 내린 유길은 정문을 향해 보란 듯 걸어갔다.


“거기, 정지!”


당연하게도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위병들이 달려왔다.


유길은 양손을 들어 적대할 의사가 없다는 것부터 드러냈다.


“아, 수상한 사람은 아닙니다.”


“······?”


수상한 사람이 아니면 대체 뭐냐는 눈빛으로 위병들이 쳐다보았다.


“이곳이 바이로바이잔의 귀족이신 아르니스 공의 저택 맞습니까? 맞는 것 같긴 한데 확실히 하고 싶어서요.”


“맞다. 너 같은 자가 이곳엔 무슨 용무지? 바른대로 말해라. 그렇지 않으면 험한 꼴을 보게 될 테니.”


위병들 중 선임으로 보이는 자가 눈을 부라렸다. 다른 이들도 언제든 창대로 후려칠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무슨 용무냐면···.”


유길은 어느새 시야 한쪽에 떠올라 있는 글씨들을 슬쩍 살폈다.



<서브 퀘스트 :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


• 북부의 명망 높은 귀족, 아르니스 공의 손녀딸 엘리아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저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 저주를 풀고, 그 보상으로 아르니스 공이 서고에 보관하고 있는 차원 이동에 관한 고대 마법서를 손에 넣으십시오.


• 아르니스 공과 엘리아는 바이로바이잔에 위치한 가문의 저택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 보상 : 50xp, 집으로 돌아갈 단서



‘···진작 좀 깨둘걸.’


한참 묵혀뒀던 내용을 다시 보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동안 대체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되지도 않을 메인 퀘스트에만 매달렸던 걸까.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다행이긴 하지만.’


어쨌건 위병들에게 퀘스트를 깨야 하니 안내해달라고 할 순 없는 노릇.


유길은 헛기침을 하곤 진지한 빛으로 말했다.


“원래는 그냥 지나는 길이었습니다만···.”


“그런데?”


“저택 안에서 큰 우환이 느껴져서 도저히 무시하고 지나칠 수가 없더군요.”


“···우환이라고?”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느냔 듯한 눈빛의 선임.


‘걸렸군.’


유길은 지그시 눈을 감고는 어두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여러분은 안 느껴지십니까? 저택 안에 불길한 기운이 가득합니다. 누군가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음을 말해주는··· 그런 기운이.”


오래 전, 사이비 종교를 권유하러 집에 들이닥쳤던 아줌마까지 흉내내며 말을 이어간다.


“들립니다. 고통받고 있는 사람의 울부짖음이··· 그 피맺힌 절규가··· 가엾게도 아직 어린 나이의 여성분이신 것 같군요. 맞습니까?”


뒤에 있던 위병 하나가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그 위병을 노려보던 선임이 다시 유길을 쳐다보았다.


“어디서 헛소리를! 그럴싸한 말로 속아넘기려는 수작인 걸 모를 줄 아나? 당장 감옥에 처넣어서 본때를 보여주마!”


···역시, 말만으론 힘든가.


그럼 믿을만한 걸 보여주면 된다.


유길은 천천히 후드를 걷었다.


드러난 모습에 선임과 위병들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제가, 그 먼 동방에서 사기나 치자고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선임 뒤에서 위병들이 속삭였다.


“동방인들 눈에는 우리 눈에 안 보이는 것들이 보인다던데···.”


“얼굴만 보고도 그 사람이 어디가 아픈지, 언제 죽을지 맞춘다는 소리도 있어.”


“그럼 정말로 영애님을 낫게 해드릴 수도-”


“제기랄, 입들 안 닥쳐?”


정신을 차린 선임의 일갈에 모두가 조용해졌다.


여전히 탐탁잖은 시선으로 유길을 쳐다보던 그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안에다 보고는 하겠다. 하지만 허튼소리라면 그냥 넘어갈 생각은 않는 게 좋을 거야. 여기서 얌전히 기다려라.”


유길은 빙긋 웃었다.


“고통받는 사람을 구할 수만 있다면, 기다리는 일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죠.”


“······.”


약간 감탄한 듯 바라보던 선임이 곧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가 한 남자와 함께 다시 나왔다.


“영애의 용태에 대해 짐작가는 바가 있다는 게 사실인가?”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인상.


정말로 그런 말이 어울리는 삼십 대 가량의 남자였다.


단정하게 빗어넘긴 머리에 고급스러운 정복 차림. 하지만 전신에 흐르는 차가운 분위기는 가릴 수 없다. 가느다란 두 눈도 꼭 뱀처럼 서늘한 분위기를 풍겼다.


‘···기분 나쁜 놈이네.’


하지만 유길은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그렇습니다.”


잠시 지켜보던 남자가 말했다.


“따라오도록. 아르니스 공께서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신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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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숲의 주인 (2) 24.08.27 32 2 16쪽
9 숲의 주인 (1) 24.08.26 41 3 14쪽
8 분수를 모르는 자 (3) 24.08.25 42 2 18쪽
7 분수를 모르는 자 (2) 24.08.24 46 1 15쪽
6 분수를 모르는 자 (1) 24.08.23 48 2 14쪽
5 귀족가의 비밀 (3) 24.08.22 52 1 12쪽
4 귀족가의 비밀 (2) 24.08.21 51 2 12쪽
» 귀족가의 비밀 (1) +1 24.08.20 66 1 12쪽
2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 24.08.20 78 1 15쪽
1 동방에서 온 사람 24.08.20 92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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