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판타지 속 무림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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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손
작품등록일 :
2024.08.20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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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31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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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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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가의 비밀 (2)

DUMMY

저택 안은 생각보다도 더 넓고 복잡했다.


크고 작은 정원과 건물들을 몇 개나 지난 후에야 중앙의 본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몇 번이나 몸수색을 당해야 했지만 문제 될 건 없었다.


‘미리 인벤토리에 다 넣어두길 잘했네.’


그렇게 도착한 본관 안의 알현실.


위병들에게 둘러싸인 채 잠시 기다리고 있자 자리를 비웠던 남자가 돌아왔다.


이번엔 웬 노인과 함께였다.


“저 자인가?”


노인이 유길을 가리키며 묻자 남자가 고개를 조아렸다.


“그렇습니다.”


“흐음.”


노인은 지팡이를 짚은 채 힘겹게 상석에 가서 앉았다. 그 옆에 남자가 시중을 들듯 시립했다.


별다른 설명 없이도 알 수 있었다.


‘저 노인네가 아르니스 공이군.’


유길은 슬그머니 한쪽 무릎을 꿇었다. 어쨌건 귀족이니 예를 갖추지 않으면 시끄러워질 터.


그걸론 성에 안 차는지 남자가 서늘한 눈빛을 보냈다.


“아르니스 공께 정식으로 예를 표해라. 이름과 내력도 소상히 고해 올리도록.”


“아아, 됐다. 어차피 발음하기도 힘든 괴상한 이름이겠지.”


아르니스 공이 손을 내저었다. 막이 씌인 듯 탁한 눈동자가 유길을 위아래로 천천히 훑었다.


“동방인은 참 오랜만이로군. 바닷길이 막히기 이전엔 이곳까지 오는 자들도 몇 있긴 했었지. 이젠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군 그래.”


노인네답게 옛이야기부터 끄집어내는 모습.


다행히 치매까진 아닌지 원래 만난 목적을 금방 기억해낸다.


“내 손녀딸의 상태에 대해 짐작가는 바가 있다면서?”


“일단은··· 그렇습니다.”


본격적으로 거짓말을 할 때가 되니 묘하게 양심에 찔렸다.


딱히 이상한 낌새를 느끼진 못했는지, 아르니스 공은 별 반응 없이 말을 계속했다.


“지나던 길에 저택에서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고?”


“예.”


“지나던 길이었다면, 어디로 가는 중이었나? 이런 시기에 동방인이 이 먼 곳까지 찾아올 일이 많진 않을 텐데.”


오늘내일하는 노인네 답지 않은 날카로움.


하지만 이 정도로 당황할 거였으면, 지금껏 살아있지도 못했다.


“제가 오래전에 목숨을 빚졌던 은인이 한 분 계십니다. 이젠 노쇠하셔서 임종을 앞두고 계신데, 그분께서 허스그라드의 특산물인 철갑상어 알을 마지막으로 맛보고 싶다 하셔서 그걸 구하러 가던 참이었습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즉석에서 지어낸 것치곤 그럴싸한 내용.


아르니스 공도 그럭저럭 납득이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긴, 동방인들은 은원(恩怨)을 갚는 일을 목숨보다도 중히 여기는 것 같더군. 그런 이유만으로 이 환란에 시달리는 땅까지 찾아왔다는 건 여전히 좀 이해하기 힘들긴 하지만.”


···뜨끔.


“그건 그렇고, 내 손녀딸의 상태에 대해 짐작간다는 건 무엇인가? 무언가 느꼈으니 이렇게 찾아왔을 것 아닌가.”


이제야 겨우 본론인가.


유길은 고개를 끄덕였다.


“느껴지는 기운으로 보건대 질병이나 다른 문제보다는··· 악독한 저주에 시달리고 계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퀘스트 설명에 그리 나와있었으니 맞겠지.


아르니스 공도 고개를 끄덕였다.


“내 손녀딸이 저주에 시달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많지 않지. 대외적으론 병에 걸렸다, 몸이 아프다 정도로만 둘러대고 있을 뿐이고 진짜 상태를 아는 건 나와 측근들 뿐이니. 일단 자네에게서 사기꾼 딱지는 떼도록 하지. 아직 완전히 떼긴 그러니 반 정도만.”


“···감사합니다.”


유길이 고개를 조아리는 사이, 아르니스 공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여기서 이러는 것보단 직접 가서 보며 말하는 편이 빠르겠지. 자, 가세. 내 앞장설 테니.”


?


이건 또 너무 시원시원한데.


말이 안 통한다 싶으면 그냥 다 뒤엎고 힘으로 뺏을 생각까지도 하던 참이라 다행이긴 하지만.


옆에 있던 남자도 당황한 기색이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안 괜찮을 건 또 무어냐. 본인이 짐작가는 게 있다니 직접 데려가 보이면 어느 쪽이든 답이 나오겠지. 달리 시간 낭비할 필요가 있느냐?”


“···그럼 안내라도 제가 대신 하겠습니다.”


“됐다. 넌 여러 일로 바쁘잖으냐. 나야 하녀들 엉덩이 두드리는 것 말고는 할 일도 없으니 이런 거라도 해야지.”


“······.”


결국 남자가 고개를 떨구며 물러났다.


아르니스 공이 유길을 힐끗 쳐다보았다.


“뭐 하나? 안 따라오고.”


“아, 예.”


유길은 재빨리 일어나 아르니스 공을 따라갔다.


알현실을 나서는 동안, 왠지 등 뒤에 따가운 시선이 꽂히는 듯했지만 그냥 무시했다.



* * *



아르니스 공을 따라 도착한 곳은 뒤편에 있는 작은 별채였다.


‘기분 탓인가?’


어쩐지 본관보다도 이곳의 경비가 더 삼엄한 느낌.


밖은 물론이고, 건물 안에도 위병들이 잔뜩 깔려 있었다. 마치 누군가 침입할까 봐 경계라도 하는 것처럼.


아르니스 공에게 경례를 올리며 비켜서는 위병들을 지나 복도를 따라가자 곧 고풍스러운 문이 나타났다.


그 문 앞에, 한 여자가 서 있었다.


“오셨습니까, 아르니스 공.”


큰 키에 늘씬한 몸매. 가죽옷 위에 검은 망토를 걸치고 후드를 쓴 모습은 얼핏 유길과도 비슷했다.


하지만 후드 아래로 보이는 갸름한 턱선과 긴 밤색 머리카락. 뾰족하게 도드라진 귀 부분이 그녀가 어떤 존재인지 알려주고 있었다.


‘엘프?’


3년 전, 세계수 아르몬술이 지상에 강림한 마족에 의해 불타며 주변에 있던 엘프들의 왕국도 몰락을 맞이했다.


소수의 생존자들은 대륙 각지로 흩어져 유랑길에 올랐다. 하지만 다들 제 코가 석자인 상황에 이방인인 엘프들을 흔쾌히 받아줄 곳은 얼마 없었다.


종족의 존속 자체가 어려워진 상황. 이전 같았다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일까지 해가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건 들었지만,


‘인간의 호위 같은 일까지 하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유길은 그녀가 찬 짧은 쌍검을 보다가 시선이 마주치는 걸 느끼곤 슬쩍 눈을 피했다.


엘프가 고개를 갸웃했다.


“뒤에 계신 분은···?”


“아, 본인 말로는 그냥 지나가던 동방인이라더군. 갑자기 나타나선 엘리아의 상태에 대해 짐작가는 게 있다기에 속는 셈 치고 한번 데려와봤지.”


“······.”


이 노인네가.


그딴 식으로 설명하면 당연히 저런 눈으로 쳐다볼 수밖에 없잖아.


유길이 어색하게 시선을 피하고 있는 동안, 엘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가능성이 있다면 무엇이든 시도해보는 것이 맞겠죠.”


그녀가 옆으로 비켜서며 문을 열었다.


동시에, 안에서 형용할 수 없는 악취가 훅 풍겨왔다.


‘윽? 뭐야, 이거.’


참아보려 했지만 순간적으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르니스 공은 진작부터 손수건을 꺼내 코와 입을 감싸고 있었다.


“오늘은 그래도 참을만한 편이군. 정말 심할 땐 눈도 뜰 수 없을 정돈데 말이지.”


“······.”


“자, 들어가세. 눈으로 직접 봐야 자네의 그 ‘짐작’도 더 명확해질 거 아닌가.”


“···예, 그러죠.”


어렵사리 걸음을 떼 방 안으로 들어가자 장막으로 가려진 침상이 보였다.


함께 들어온 엘프가 장막을 살짝 걷고는 안쪽을 살폈다. 놀랍게도 이 악취 속에서도 코를 막긴커녕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있었다.


아르니스 공이 물었다.


“어떤가?”


“평소와 같습니다. 그나마 고름은 좀 덜 나오는 편이군요.”


“장막을 걷어서 여기 이 친구도 볼 수 있도록 해주게.”


잠시 주저하는 듯하던 엘프가 장막을 걷어붙이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유길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슨 소린가? 설마 이제 와서 모르겠단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아르니스 공의 눈빛이 묘하게 차가워졌지만 유길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눈앞에 나타난 붉은 선. 그걸 쳐다보느라 정신이 팔려있었으니까.


‘역시, 이번에도 딱 맞춰서 나타나네.’


가이던스(Guidance) 시스템.


전작에서 퀘스트가 너무 어려웠다는 지적들이 쏟아진 후, <다크월드 사가> 개발진은 과감하게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그것이 바로 가이던스 시스템. 퀘스트 대상에게 다가가면 붉은 선으로 다음 단서가 있는 방향을 알려주는 시스템이었다.


‘게임이 너무 쉬워진다고 반대도 많았지.’


유길 자신도 그중 하나였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겜알못이 대체 뭔 소리를 지껄였던 건가 싶지만.


‘이거라도 없었으면 죽어도 진작에 죽었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낯선 세상에 떨어졌던 자신을 걸음마 시키듯 이끌어 준 게 바로 이 시스템이었으니까.


다음 단서가 있는 곳이 뻔히 표시되는 마당에, 굳이 끔찍할 게 뻔한 몰골을 직접 볼 필요는 없었다.


유길은 눈을 지그시 감으며 말했다.


“저주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 것 같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사악한 기운이 요동을 치는군요.”


“···정말인가?”


“이쪽인 것 같군요. 따라오시죠.”


유길은 붉은 선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아르니스 공과 엘프가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뒤를 따라왔다.


선은 건물 밖으로 이어져 있었다. 계속 따라가자 곧 별채 뒤편에 자리한 작은 정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등나무가 만든 그늘 아래, 작은 분수와 벤치 하나가 놓여있는 곳.


그곳에 선 채 유길이 말했다.


“여깁니다.”


“······?”


아르니스 공과 엘프가 의아한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아르니스 공이 유길을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없잖은가?”


유길은 대답 대신 아래쪽을 가리켰다.


평평한 반석들이 깔려있는 정원 바닥. 그 밑으로 붉은 선이 향하고 있었다.


“이 아래를 한번 파보시죠.”


“여기를?”


“분명 무언가 나올 겁니다. 저로서도 정확히 무엇인지까진 아직 모르겠지만··· 손녀따님의 상태와 관련이 있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있던 아르니스 공이 엘프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자네는 뭐 느껴지는 것 없나? 엘프들도 이런 쪽 감각엔 예민한 편 아닌가.”


“···죄송합니다. 전혀 없습니다.”


엘프가 고개를 저었다.


잠시 턱을 괴고 고민하는 듯하던 아르니스 공이 유길을 쳐다보았다.


“솔직히 그리 믿음이 가진 않네만··· 정원 하나 뒤집어 엎는다고 집안 기둥뿌리가 흔들리는 것도 아니니 자네 말대로 해보도록 하지.”


어느덧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는 해를 바라보며 아르니스 공이 덧붙였다.


“작업은 내일 아침에나 시작해야겠군. 오늘 밤은 이곳에서 묵도록 하게나. 어쨌건 손님이니 대접은 섭섭잖게 하도록 하지.”


이왕이면 지금 당장 파헤쳐 줬으면 좋겠지만, 하루쯤이야 뭐.


“감사합니다.”


유길은 순순히 고개를 꾸벅였다.



* * *



섭섭잖게 대접하겠단 장담대로 식사 자리는 호화로웠다.


여행하는 동안 종잇조각 같은 육포와 뭘 넣고 끓인 건지도 모를 스튜 따위로 고통받았던 뱃속에 간만에 기름칠을 할 수 있었으니.


미리 잠자리로 안내받은 곳도 제법 널찍하고 깨끗한 방. 거기다 딱 봐도 고급스러운 침구까지 완비돼 있었다.


‘슬슬 침대에서 자는 게 어떤 느낌인지 까먹어가던 중이었는데.’


상단에선 말할 것도 없고, 그전에도 노숙을 하거나 농가의 헛간 같은 곳을 빌려 눈만 붙이는 경우가 대다수였으니.


그렇게 가벼운 걸음으로 방으로 가던 중, 유길은 의외의 인물과 마주쳤다.


“······.”


그 뱀 같은 남자였다.


‘다시 봐도 기분 나쁜 놈이네.’


슬쩍 눈인사나 하고 지나치려는데, 갑자기 남자가 입을 열었다.


“얼마를 원하나?”


“예?”


의아하게 바라보는 유길을 향해 남자가 재차 말했다.


“얼마를 원하냐고 했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저주를 풀어주려고 온 건 아니지 않나.”


뭐지? 지금 떠보는 건가?


유길은 시치미를 뚝 떼곤 고개를 숙였다.


“돈 같은 건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고통받는 사람을 돕고 싶어서 왔을 뿐이죠.”


그깟 돈 몇 푼보단 퀘스트가 더 중요하니까 거짓말도 아니다.


가만히 쳐다보던 남자가 가볍게 혀를 찼다.


“···말이 안 통하는군. 그렇다면 이쪽도 어쩔 수 없지.”


더는 볼일 없다는 듯, 남자가 등을 돌려 멀어져 갔다.


유길은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 어깨를 으쓱였다.


“희한한 놈이네.”


하지만 금방 신경을 끄곤 푹신한 침대가 기다리고 있을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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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분수를 모르는 자 (1) 24.08.23 48 2 14쪽
5 귀족가의 비밀 (3) 24.08.22 52 1 12쪽
» 귀족가의 비밀 (2) 24.08.21 52 2 12쪽
3 귀족가의 비밀 (1) +1 24.08.20 66 1 12쪽
2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 24.08.20 78 1 15쪽
1 동방에서 온 사람 24.08.20 92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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