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판타지 속 무림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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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손
작품등록일 :
2024.08.20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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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31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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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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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가의 비밀 (3)

DUMMY

늦은 밤.


저택 모처의 어두운 방 안으로 누군가 소리 없이 들어섰다. 그리곤 익숙한 손길로 촛불을 찾아 불을 밝혔다.


화악-


어스름한 빛이 주변을 밝히며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뱀을 연상시키는 차갑고 마른 얼굴, 아까 유길과 만났던 그 남자였다.


남자의 눈이 앞에 놓인 수정구를 향했다. 그리곤 수정구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부르노니, 저편에 있다면 답하라.”


마도구를 작동시키기 위한 시동어.


수정구에 비친 방의 광경이 흔들리나 싶더니, 공간 너머에 있는 누군가의 형상이 흐릿하게 떠올랐다.


[이런 야밤에까지 서슴없이 불러내시다니. 귀한 가문의 도련님께서 너무 절조가 없으신 거 아닌가?]


나른하면서도 고혹적인 여인의 목소리.


그녀가 농염한 웃음기를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


[아무리 내가 매력적이라곤 하지만 말이야. 약속대로 쓸만한 패거리들을 구해두긴 했어. 이 근방에선 ‘검은 갈기 형제단’이라고 불린다지? 당신도 들어봤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돈만 받으면 갓난아이의 목도 기꺼이 가져다준다는 잔혹무도한 용병단. 차라리 도적떼에 가까운 그 악명을 잘 아는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좋은데, 문제가 생겼어.”


[문제?]


곧 남자가 유길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갑자기 영애의 저주를 풀어주겠다며 나타난 동방인.


그가 저주의 근원이 묻힌 정원을 정확히 지목했다는 말까지 듣고 나자, 여인이 흥미롭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정말 그랬다고? 인식저해 주문을 몇 겹이나 걸어뒀는데 신기한 일이네. 엘프라고 해도 이상한 낌새는 전혀 느낄 수 없을 텐데. 동방인들에게 이상한 신통력이 있다는 게 소문이 아니라 진짜였나?]


“아버지는 내일 동이 트자마자 정원을 다 갈아엎을 기세야.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있지만 난 알 수 있지. 엘리아를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에 몸이 달아있다는 걸.”


[손녀한테 쏟은 정성의 십분지 일만 당신한테 썼어도 이리 되진 않았을 텐데. 참 답답한 인간이네, 당신 아버지도.]


한탄하는 듯한 여인의 말에 남자가 코웃음을 쳤다.


“이제 와서 아버지를 원망할 생각 따윈 없어. 피차 상처를 주고받은 건 마찬가지니까. 내가 바라는 건 복수가 아니라 가주 자리야.”


[오로지 야망만 향해 직진하는 남자라. 위험한걸. 그래서 내가 반한 거긴 하지만.]


“어쨌건, 그 동방인은 미리 처리해두는 게 좋겠지? 또 무슨 방해를 할지 모르니.”


일전에 여인에게 건네받았던 마법검.


어지간한 갑옷 따위는 종잇장처럼 잘라버릴 수 있는 그 물건을 허리에 찬 채 남자가 말했다.


동방인이 소문처럼 신출귀몰하다 해도 자고 있을 때 몰래 다가가 목을 치면 끽소리도 내지 못할 터.


그 후 시체를 없애고 야반도주한 것처럼 꾸미면 뒤처리도 완벽하다.


“그러면 아버지도 거짓말이 들통날까 두려워 도망친 걸로 생각하고 정원을 파볼 생각 따윈 하지 않겠지.”


하지만 여인은 고개를 저었다.


[뭘 번거롭게 직접 손대려고 그래? 그냥 파게 내버려둬. 알아서들 용 아가리로 걸어들어가겠다는데 굳이 말릴 필요 없잖아.]


“···무슨 소리지?”


의아해하는 남자를 향해 여인이 어깨를 으쓱였다.


[생각해 봐. 네 번째 위계까지 오른 마법사인 이 몸도 다루기 힘들었던 놈이야. 갇혀있는 동안 독기까지 잔뜩 품었을 테니 이젠 더하겠지. 풀려나는 순간 주변에 있던 작자들은 다 갈가리 찢길걸?]


“······.”


[당신은 틈을 봐서 그 조그만 아가씨나 마저 처리해. 그럼 귀찮게 용병 따위 끌고 갈 것도 없이 상황 종료잖아. 잠깐, 이거 오히려 그 동방인한테 감사해야 되는 거 아니야?]


여인이 오오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은근한 목소리로 폐부 깊숙한 곳을 찌르듯이 물어온다.


[아니면··· 형님 내외와 조카까진 어찌했어도 아버지한테까지 손대는 건 역시 꺼려지는 건가?]


잠시 침묵하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내내 굳어있던 그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오히려 바라던 바지.”



* * *



“그 남자? 내 아들인 아르님이라네.”


다음날 아침.


함께 정원으로 가던 중, 유길이 넌지시 던진 질문에 아르니스 공이 대답했다.


“내가 이젠 글씨도 잘 안 보이는 처지다 보니 대신에 이런저런 일들을 도맡아 처리하고 있지. 근데 그건 왜 묻나?”


“아, 어떤 분인지 궁금해서 그랬습니다. 그럼 손녀따님도 그분의···?”


“아니, 엘리아는 장남인 아르반의 딸일세. 아르님은 내 차남이고.”


그런 거였군.


근데 딸이 저 모양인데 아버지라는 양반은 어디에-


“아르반은 땅에 묻은 지 몇 년 됐네. 며늘아기와 함께 변방 장원을 시찰하다 둘 다 시신으로 돌아왔지.”


속내를 읽기라도 한 것처럼 아르니스 공이 설명했다.


유길은 잠깐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질문을.”


“죄송하긴. 누가 어디서 죽든 이상할 거 없는 시기 아닌가. 일일이 마음 쓰는 것 자체가 사치지.”


손을 내젓던 아르니스 공이 갑자기 괘씸하다는 투로 혀를 찼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참 몹쓸 녀석이야. 죽으러 갈 거였으면 혼자 가서 죽지 왜 죄 없는 며늘아기까지 끌고 갔다가 엘리아만 부모 없는 자식으로 만드느냐 이 말일세.”


“······.”


“그 장원도 주변에 도적떼와 사교도들이 창궐해 사실상 버려진 곳이었던 것을 가문의 재산을 방치할 순 없다며 아득바득 찾아가선 그 꼴이 났지. 가르친 적도 없는데 그런 고지식함은 누구한테 배운 건지, 원.”


뭐라 맞장구치기도 힘든 넋두리를 들으며 걷다 보니 곧 정원 앞에 도착했다. 이미 곡괭이와 삽 따위를 든 하인들이 모여 작업할 준비를 마쳐놓고 있었다.


집사로 보이는 멀끔한 차림의 중년인이 하인들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아르니스 공.”


“아르님은 어찌하고 자네가 대신 나와있나? 내 분명 그 녀석에게 준비하라 일렀는데.”


“몸이 좀 좋지 않으시다 하여 제가 대신···.”


“몸이 안 좋다?”


“예에.”


순간, 아르니스 공의 눈빛이 의미심장하게 변했다. 그가 집사에게 다시 물었다.


“···별채를 경비 중인 위병들은 모두 제자리를 지키고 있겠지?”


“물론 그렇습니다만, 어쩐 일로 그러시는지···?”


“아니, 아무것도 아닐세.”


아르니스 공이 손을 내젓고는 유길에게로 눈을 돌렸다.


“자, 그럼 자네 말대로 이곳을 파보면 되는 건가? 그러면 저주와 관련이 있는 물건이 나오는 게 맞겠지?”


“예, 아마 그럴 겁니다.”


가이던스 시스템은 틀린 적이 없으니까.


적어도 지금까진.


“아마···? 영 자신감이 없어 보이는데. 그래도 너무 걱정하진 말게. 설령 아무것도 안 나오더라도 심하게 책망하진 않을 테니. 고작해야 홧김에 저택 지하 감옥에 며칠 가두는 정도가 끝일 걸세.”


“하하···.”


태연히 말하는 아르니스 공을 보며 유길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건 내가 아니라 당신이 걱정해야 되는 거고, 이 양반아.’


그땐 정말 무력으로 빼앗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어지는 거니까.


할아버지 뻘은 되는 노인네 멱살을 잡고 흔들면서 숨겨놓은 마법서를 내놓으라고 윽박지르고 싶진 않다고.


잠시 후, 집사가 하인들에게 손짓하자 작업이 시작됐다.


깡! 깡!


능숙한 곡괭이질에 바닥에 깔린 반석이 순식간에 치워지고, 드러난 흙바닥을 삽들이 퍼올리기 시작했다.


‘···삽질들 잘 하네.’


멍하니 하인들의 능숙한 솜씨를 구경하던 중,


“······?”


뭔가가 유길의 예민한 감각을 건드렸다.


저 땅 밑에서 느껴지는, 뭔지 알 수 없는 끈적하고 기분 나쁜 기운.


그게 살기의 일종이라는 걸 깨닫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잠깐, 작업을 멈춰야 될 것 같습니다.”


갑작스런 유길의 말에 아르니스 공이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왜 그러나? 아무것도 안 나올까 봐 걱정하는 거라면 내 이미 말했듯이···.”


하지만 유길의 진지한 표정을 보곤 아르니스 공도 말을 멈췄다. 그리곤 곧장 집사에게 눈짓을 보냈다.


“다들 잠시 작업을 멈추-”


집사가 하인들을 향해 말하던 순간,


푸화악-!


갑자기 땅속으로부터 검은 연기가 솟구쳐 올랐다.


“끄아악!”


“으억?”


가까이 있다 연기에 닿은 하인 몇 명이 비명을 지르며 뒹굴었다.


순식간에 닿은 부위의 옷들이 녹아내리더니, 피부에 수포가 잔뜩 잡히며 고름이 터져나왔다.


“아아악!”


“이, 이게 대체?”


피어오른 연기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겁에 질린 하인들을 굽어보았다.


다음 순간, 그 속에서 뼈만 남은 커다란 손이 튀어나왔다.


콰직!


내리쳐진 손에 하인 하나가 그대로 피떡이 되어 짜부라졌다. 손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옆에 있던 다른 하인까지 후려쳐 날려버렸다.


쾅! 우지직!


벽에 부딪혀 목이 부러져 절명하는 그 광경에 모두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으, 으아아!”


“괴물이다! 도망쳐!”


그 아비규환 속에서, 뭉글거리는 연기를 뚫고 커다란 해골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으으으-


눈구멍 속에서 섬뜩한 녹색 불길을 피워올리고 있는 해골.


꿈에 나올까 두려운 그 형상을 향해 집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외쳤다.


“페, 페스타(Pesta)? 어째서 이런 곳에?”


한 번 출몰하면 작은 마을 하나쯤은 간단히 몰살시킨다는 역병의 망령.


이곳 북부에선 그 어떤 마물에게도 뒤지지 않는 악명을 자랑하는 재앙 중의 재앙.


전설 속 사신처럼, 검은 연기를 로브처럼 뒤집어쓴 형상의 해골이 감히 자신을 뉘 집 개 부르듯 한 자를 향해 눈을 돌렸다.


집사와 아르니스 공, 그리고 유길이 있는 쪽.


그곳을 향해 해골이 갈퀴 같은 손을 휘둘렀다.


쿠콰콰쾅!


땅이 뒤집어지고 놓여있던 벤치가 산산이 쪼개져 흩날린다. 부옇게 날아오르는 먼지 속에서 해골이 파괴에 만족한 듯이 이빨을 딱 부딪쳤다.


“······?”


하지만 무언가 허전했다. 손끝에 당연히 느껴져야 할 뜨거운 피와 싱싱한 살의 감촉이 전혀 없었다.


어리둥절해 두리번거리던 해골의 눈에 어느새 멀찌감치 피해있는 세 사람이 보였다.


유길은 진작에 아르니스 공과 집사의 옷깃을 붙잡고 피한 후였다. 둘의 옷깃을 놔주며 그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너무 급한 상황이라 실례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잠시 멍하니 쳐다보던 아르니스 공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신경 쓸 것 없네. 구해줘서 고맙군.”


“별말씀을.”


소중한 퀘스트 대상이 죽으면 안 되지.


그오오오-


뒤늦게 먹잇감들이 빠져나간 걸 눈치챈 해골이 분노했다. 눈에서 녹색 불꽃을 폭사시키며 경련하는 놈을 보며 유길이 말했다.


“아무래도 저 해골바가지가 저주의 근원인 것 같습니다만.”


“내 생각도 그렇네. 이제 자네에게서 사기꾼 딱지는 완전히 떼도록 하지. 감옥에 갇힐 걱정은 안 해도 좋네.”


“감사합니다.”


“······.”


아무런 동요도 없이 차분히 대화하는 두 사람을 집사가 얼빠진 얼굴로 쳐다보았다.


그으으-


격노한 해골이 감히 자신을 농락한 먹잇감들을 향해 몸을 틀었다.


강제로 붙잡혀 좁아터진 매개물 안에 오래도록 갇혀있어야 했던 원한. 타고난 악의에 더해 그 원통한 감정까지도 악령을 충동질한다.


그아아아-!


곧바로 검은 궤적을 남기며 해골이 이쪽으로 쏘아져왔다.


갈퀴 같은 손가락들을 세운 채, 더운 피를 머금은 증오스러운 것들을 찢어발기기 위해.


“위, 위험합니다!”


집사가 비명처럼 외쳤지만 유길은 오히려 앞으로 나섰다.


눈까지 지그시 감고는 양 주먹을 옆구리에 붙인 채, 꼿꼿이 선 자세로 숨을 들이켠다.


후우우-


주변의 공기가 진동하며 보이지 않는 힘이 유길에게로 모여들었다. 동시에 발밑의 땅에도 작은 균열들이 수없이 생겨났다.


그 사이 해골의 갈퀴손은 코앞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눈구멍 안의 녹색 불길이 거칠게 춤추며 살을 찢고 피를 뿌리고픈 갈망으로 한층 더 타올랐다.


그아아-!


칼날 같은 손가락들이 몸뚱이를 갈가리 난도질하기 직전,


유길의 눈이 번쩍 뜨였다.


“--------------!”


동시에, 어마어마한 굉음이 그 입에서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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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분수를 모르는 자 (2) 24.08.24 46 1 15쪽
6 분수를 모르는 자 (1) 24.08.23 48 2 14쪽
» 귀족가의 비밀 (3) 24.08.22 53 1 12쪽
4 귀족가의 비밀 (2) 24.08.21 52 2 12쪽
3 귀족가의 비밀 (1) +1 24.08.20 66 1 12쪽
2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 24.08.20 78 1 15쪽
1 동방에서 온 사람 24.08.20 92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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