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머리 러시아군 대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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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콩
작품등록일 :
2024.08.25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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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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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DUMMY

여기 정처없이 구천을 맴도는 유령이 있다. 이름은 박춘명. 향년 54세.


그가 무엇 때문에 이 꼬라지가 났는지는 잠시 넘어가기로 하자.


귀신에게 어쩌다 죽었는지 묻는 것은 산 사람에게 어쩌다 태어났는지 묻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한 이야기니까.


그저 정신을 차려보니 현충원 그의 묘소에 묶인 지박령이 되어 있었을 뿐이다.


귀신들끼리도 서로가 보이지 않는 건지, 아니면 죽어서 귀신이 된 게 그 밖에 없는 건지는 모른다.


아는 거라곤 이 넓은 현충원에 보이는 귀신이라고는 그 하나뿐이라는 것.


티라노 귀신에게 잡아먹힐 걱정은 덜었지만, 역시 혼자인 건 적적하기 짝이 없었다.


- 심심하네, 씨팔······.


이민간 가족들은 한번 찾아오지도 않으니, 그에게 할 일이라고는 다른 참배객을 구경하거나 주위를 산책하는 것 밖에 없었다.


박춘명은 살아있을 때도 그리 자유로운 영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해도 현 상황은 몹시 갑갑하기 그지 없는 일.


혼은 하늘로 떠나고 백은 땅에 남는데, 흩어지려면 3년은 기다려야 한다던가.


- 차라리 3년이면 다행이지.


이놈의 팔자에 없는 유령 생활이 언제까지 갈지도 모르는 판이 아닌가.


그렇게 박춘명이 언제나처럼 영혼을 질질 끌며 현충원 일대를 빙글빙글 돌아다니고 있을 때.


- 장군신이시여······.


어디선가 낮고 구슬픈 음성이 들려왔다.


박춘명은 귀를 쫑긋 세웠다.


이내 그의 귀에는 누군가를 애타게 찾는 듯한 목소리가 다시 한번 울려퍼졌다.


- 저쪽은 장군 묘역인데?


목소리가 점점 고조되는 격한 외침으로 바뀌는 가운데, 저 멀리 희끄무레한 형체가 엿보였다.


호기심이 발동한 그는 영혼을 질질 끌면서 그리로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형체의 모습이 더욱 선명해졌다.


가만 보니 그것은 공중에 살짝 떠 있는 빛무리였다.


- 이게 뭐지?


프리즘 현상인 것 같기도 하지만,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생전에도 생후에도 들어보지 못한 현상이지만, 어디 유령의 존재는 자연현상으로 설명이 가능한가.


이 심심하고 고요한 유령 생활에서 호기심이란 감정은 귀하다.


박춘명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다가 잠시 멈칫했다.


‘이게 뭔지도 모르는데 만져도 되나?’


하지만 곧 그는 자신의 현재 상황을 떠올렸다.


그는 이미 죽은 몸. 잃을 것도 없는 영혼이 무엇을 두려워할 게 있단 말인가?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


결국 박춘명은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그 빛나는 형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의 손가락이 닿는 순간.


- 자, 잠깐!


빛무리가 빙글빙글 돌며 삼각의 형상을 이루더니.


이내 시공의 폭풍이 되었다.



* * *



1894년.

러시아 제국 프리모리예 지방 안치헤 마을.


현대 한국인에게 털끝만큼 더 익숙한 지명으로 말하자면, 연해주 한인촌 연추 마을.


조선이란 나라가 개판난지는 하루이틀이 아니다.


백년간 이어진 세도정치, 삼정의 문란, 외세의 침입과 국권 침탈.


조선인들은 국경 밖에서 새로운 삶을 찾고자 꾸역꾸역 간도로, 연해주로 밀려들었고.


이곳 연추 마을 역시 그에 힘입어 1860년대에 형성된 이래 얼마 지나지 않아 연해주 최대의 한인촌으로 부상한 케이스였다.


먹고 살 길 찾아 러시아 제국의 신민이 된 그들이었지만, 하루아침에 조선인의 생활방식을 걷어찰 수는 없는 노릇.


열성적으로 러시아에 녹아들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었지만.


여전히 조선인은 곧 죽어도 쌀밥과 김치는 먹어야했고, 한켠에는 서당이 세워져 아이들에게 한학을 가르쳤다.


잣나무집 무당 최씨도 그런 ‘옛날 조선인’ 중 한 명이었다.


그렇기에 다섯 살 배기 아들이 앓아누웠을 때, 최씨는 의사를 찾아갈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개화된 이들의 시각으로 보자면 한없이 어리석고 미신에 심취한 행동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최씨가 그녀 나름의 합리적인 사고를 하지 못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정확히 말하면, 누군가를 붙잡고 도움이라도 청해보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최씨는 그것이 뾰족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도 그랬으니까.


파들파들 떠는 아들을 내려다보던 최씨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이건 신병(神病)이다.


백방으로 의약에 매달려봤자 낫지 않는다.

오히려 어설프게 신령님의 진노를 사 그 일생에 화가 미칠 뿐이다.


해답은 오로지 하나.


신을 받아들이고 박수무당이 되는 것 뿐이다.


하지만 최씨는 그렇게 놓아두고 싶지 않았다.


“어쩌자고 너도 이년의 팔자를 타고 났단 말이냐······.”


중이 제 머리 못깎듯이, 자기 운명을 점쳐볼 수 있는 무당은 많지 않다.


그러나 최씨는 아들의 앞길만큼은 훤히 보였다.


무당은 천민이다. 조선이 아닌 이 연추 마을에서도 그녀를 천민 아닌 다른 신분으로 봐주는 이는 드물었다.


이웃들은 평소엔 멸시하면서도 무슨 일이 있으면 냉큼 무당을 찾지만 효험이 없으면 복채를 내놓으라 하는 일은 다반사. 어쩔 때는 보복까지 걱정해야하는 것이 현실이다.


점점 따가워지는 정교회 신부의 눈총까지 더하면 이놈의 무당 팔자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딱 한가지 해결책 밖에는 없다.


다른 신을 모셔오는 방법 뿐.


어느 신을 모셔와야할까. 기왕이면 장군신이 좋을 것 같다.


장군신들은 대개 성품이 곧고 대범한 성정이 있어 이 아이가 무당 노릇 하는 것까지 눈을 부라리며 간섭하지는 않을 터.


다만 그 위세를 빌려 잠시 신령의 눈을 벗어날 뿐이다.


최씨는 방울과 부채를 쥐고 작두에 올라탔다.


조무도 악사도 없지만 그녀의 굿은 어느때보다 간절했다.


신(神)이 노하는 것이 느껴진다.


이 아이는 나를 위하여 점지된 아이인데, 어찌하여 네가 나를 방해하느냐고.


그러나 최씨는 굿을 멈추지 않았다.


천기를 뒤튼 대가로 그 업보를 모두 받아낸다 하더라도, 아들 하나만 팔자에서 건져낼 수 있으면 족하다.


그녀의 간절한 외침이 하늘에 닿은 것일까.


바람이 불어와 촛불이 훅 꺼짐과 동시에, 아까까지 아들의 입에서 부글부글 끓던 거품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바들바들 떨리던 몸도 점차 진정되었다.


“컥!”


최씨는 흐트러지는 정신 속에서 피를 왈칵 토했다.


자기 그릇을 빼앗긴 신령의 진노를 한 몸에 모두 받아낸 탓이리라.


그 분노가 이정도였을줄은 몰랐으나 그녀는 만족했다.


어느 장군께서 내려오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강림하셨다는 것은 아들을 돌봐줄 생각이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녀가 두 가지 착각했던 사실이 있었다.


첫째는 ‘그 신’이라 한들 무슨 사정을 알고 그녀의 아들에게 내려온 것은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둘째는.


- 여기가 어디야······?


장군 포기한 대령 박춘명.


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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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자대 NEW +14 11시간 전 2,005 196 11쪽
24 들통 +14 24.09.17 3,524 258 11쪽
23 치욕의 날 +28 24.09.16 4,151 303 11쪽
22 혈서 +21 24.09.15 4,491 300 12쪽
21 전야 +13 24.09.14 4,625 300 12쪽
20 반응 +13 24.09.13 4,469 297 11쪽
19 이륙 +37 24.09.12 4,960 340 14쪽
18 이륙 준비 +17 24.09.11 4,811 269 12쪽
17 발전 +14 24.09.10 4,975 294 12쪽
16 착수 +15 24.09.09 5,141 308 12쪽
15 내기 +18 24.09.08 5,144 282 12쪽
14 파티 +12 24.09.08 5,578 289 14쪽
13 황족 +21 24.09.07 5,733 311 13쪽
12 귀환 +19 24.09.06 5,668 344 12쪽
11 제안 +27 24.09.05 5,810 325 10쪽
10 호의 +22 24.09.04 5,891 307 14쪽
9 경매 +25 24.09.03 5,924 322 13쪽
8 수확 +27 24.09.02 5,974 325 12쪽
7 시작 +13 24.09.01 6,071 304 11쪽
6 참전 +10 24.08.31 6,571 311 14쪽
5 귀신 +21 24.08.30 6,723 313 12쪽
4 입학 +30 24.08.29 6,946 353 12쪽
3 연줄 +20 24.08.28 7,182 357 11쪽
2 스타팅이 왜 이래 +24 24.08.27 8,129 392 12쪽
» 프롤로그 +41 24.08.26 9,245 38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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