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머리 러시아군 대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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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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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5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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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

DUMMY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뒤에야, 독일 생도들은 간신히 제정신을 되찾을 수 있었다.


“사람이······ 하늘을 날다니······.”


“우리는 방금 역사의 한 장면을 목격한 거야! 앞으로 100년 후의 사람들이 우리를 부러워할 거라고!”


“뭘 그렇게 흥분하고 있어! 저 나약한 이반 놈들이 하늘을 나는 기계를 만들었는데 질투하지는 못할 망정!”


“우리보다 나약할지는 몰라도 똑똑하기는 하겠지. 이제 세상이 완전히 바뀌게 될거야. 우리는 방금 미래를 본거라고!”


감탄, 의심, 흥분, 질투, 자괴감에 이르기까지 독일 생도들의 반응은 다양했지만.


결론은 똑같았다.


그들은 역사에 남을 순간을 목격했다.


그리고 그것을 직감한건 생도들 뿐만이 아니었다.


생도단을 이끌고 온 장교들은 러시아의 비행기 개발을 외부에 증언해줄 역할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들이 맡아버렸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어쩌면 러시아의 교풍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쓸데없는 소리. 생도가, 그것도 황인종 따위가 비행기를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나? 이건 분명 러시아 군부가 오랫동안 준비해온 작업일거다!”


“러시아 놈들이 뭘 잘못 먹었길래 일개 생도에게 그런 영광을 안겨주겠나? 저놈이 차르의 사생아라도 되나? 이건 황인종의 위협이 사실이라는 명백한 증거야! 오늘 일을 카이저께 분명히 보고해야해!”


생도들이 루슬란의 발명에 질투심을 느꼈다면, 좀 더 머리가 굵은 그들이 느낀 감정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감정은 그들이 독일로 귀환할 때까지 결코 사그라들지 않았다.



* * *



비행 시험의 성공 소식은 곧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뜨겁게 달구었고, 몇날며칠이 지나도록 열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조종사인 레베데프는 물론이고, 개발에 관여한 주코프스키 팀까지 환호하는 군중들 틈에 껴서 옴짝달싹도 못할 정도라고 하던가.


반면 학교 안에서 생활하는 나는 제1생도군단으로 몰려든 기자들과의 몇 차례 인터뷰를 제외하고는 그 인파에 휩쓸릴 일이 없었다.


정정.


미친 듯이 열광하는건 시민들 뿐만이 아니었다. 학교 안의 생도들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마치 중국 원정에서 돌아왔을 때의 열 배는 되는 것 같은 반응.


나를 볼 때마다 붙잡아서 행가래를 치는 통에 삭신이 쑤신다. 마지막엔 거의 학교 천장까지 날아갔던 것 같은데.


- 좋은거 아니냐? 네가 얻고 싶어했던게 바로 그 명성이잖아.


그래. 대중의 지지와 환호는 있어서 결코 나쁠게 없지.


앞으로는 그들의 의사가 더욱 중요해지는 시대가 도래할테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저 흥분한 군중들보다 중요한 사람들이 내 눈 앞에 있지 않은가.


군사 교육감 콘스탄틴 대공.

그리고 입이 근질근질해 죽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알렉산드르 대공.


이 전제군주국에서, 나의 명성을 권력과 영향력으로 치환해줄 수 있는건 바깥에서 내 이름을 부르짖고 있는 시민들이 아니다.


오직 황제 뿐.


- 지금 당장은······ 말이지.


그리고 내 눈 앞의 두 대공은 그 진정한 권력에 다가가도록 만들어줄 수 있는 이들이다.


나를 데리고 온 포코틸로 교장마저 두 대공의 영압 탓에 한켠에 눌려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할말이 많아보이던 알렉산드르 대공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번에 훈장 수여가 있을걸세. 자네와 연구원들 모두.”


“정말입니까?”


- 예상하고 있었으면서 놀란 척하기는.


그야 이만한 대업적을 세웠는데 훈장 정도야 당연히 받아야하는거 아닌가?


내가 관심있는건 그 이상이었다.


“너무 놀라지 말게. 이건 귀족의 작위를 받아도 될 정도의 대업적이야! 지금이야 훈장이지만 조만간 그 또한 논의해보자는 이야기가 틀림없이 나올거야.”


“앞서 나가지 말게.”


알렉산드르 대공의 말에 콘스탄틴 대공이 고개를 저으면서 진정시켰다.

그는 나를 향해 물었다.


“자네가 성공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미국에서도 한 형제가 비행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네. 알고 있나?”


“예. 들었습니다.”


라이트 형제 역시 비행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우리 귀에 들어온건 며칠 전이었다.


본국에서 소식을 들은 대사관이 보도자료를 돌려 이를 대서특필하자, 미국은 발칵 뒤집혔다.


그리고 같은날 자국에서도 최초 비행이 있었다는 제보가 들어오자 한번 더 뒤집혔다.


원 역사에서 그들의 비행에 대한 반응은 증거 부족으로 인한 불신과 무관심으로 점철되었다.


하지만 여기에 국가의 위신이 걸리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전보 담당자의 메시지 유출로 버지니아 신문이 이를 최초로 보도하자, 마침 우리의 비행 소식을 듣고 흥분했던 미국 기자들은 전부 그쪽으로 모여들었다.


이쯤되자 라이트 형제 역시 ‘보안 유지’를 명목으로 플라이어 1호의 사진 제공을 거부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가 선수를 쳐버렸으니 사실 감출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이내 플라이어 1호의 비행 사진이 공개되자, 기레기들의 곡필이 잔뜩 들어간 기사들이 미국을 휩쓸었다.


[사진을 분석한 전문가들의 소견으로는, 그들의 비행은 러시아보다 짧지만 훨씬 안정적이다.]


[플라이어 1호는 불행한 사고로 파손되었으나, 러시아의 마더 러시아 호보다 월등한 성능일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형제의 겸손한 성품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이미 최초 비행은 그 전날이나 전전날에 이루어졌을수도 있다!]


[빼앗긴 미국의 승리! 정부는 뭘하고 있는가? 빨리 플라이어 2호의 제작을 지원하라!]


우리 비행기 보지도 못했을 놈들이 이런 소리를 지껄이는건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누가 스콧이 남극점 정복했다고 가르치던 영국 놈들 후예 아니랄까봐.


- 아니, 아직 남극점이 정복되려면 좀 남았으니 이쪽이 원조겠지.


그래? 몇 년 남았나?


어쨌든 분기탱천한 러시아 대사관은 미국의 이런 반응을 본국에 퍼다날랐고, 조금 가라앉는 것 같던 비행기 열풍은 해외반응이 끼얹어지자 뜨겁게 불타올랐다.


콘스탄틴 대공도 러시아인이니 이 점을 확인하지 않고서는 못 넘어가겠지.


“자네는 이 미국의 비행이 사실이라고 보나?”


“그렇겠지요.”


대외적으로는 내가 비행기 전문가처럼 알려져 있으니 부리나케 달려온 것이리라.


그러나 나는 차분히 콘스탄틴 대공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정도는 20년 전에 모자이스키가 밥먹듯이 하던겁니다.”


내가 알아본 바로는 모자이스키의 비행기가 하늘에 떴냐 뜨지 못했냐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게 갈렸다.


몇 초 정도 하늘에 떴다는 증언들이 있지만, 그걸로 비행 사실을 입증하기엔 무리였다.


게다가 그 비행(?)의 결과는 땅과의 충돌로 끝났으니 당연하지.


원 역사에서 비행기의 최초 발명가로 모자이스키가 아니라 라이트 형제가 꼽히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게 중요한가?


모자이스키의 후계자인 내가 말하는게 곧 진실이 되어 신문에 나갈텐데. 가짜뉴스에는 가짜뉴스로 대응해야하는 법이다.


나는 자연스럽게 ‘동력 비행’의 기준을 몇 단계 높여잡아버림으로써 미국의 주장을 부정했다.


“저희는 고작 그정도를 동력 비행이라 칭할 수는 없었기에, 추가적인 연구를 진행한 것 뿐입니다. 어디로 보나 이쪽이 최초인 것은 확실하지요.”


“과연······!”


나는 태연한 표정으로 찻잔을 내려놓았다.


- 손은 덜덜 떨리고 있는데.


당연하잖아.


들어간 돈도, 인력도, 전문성도 라이트 형제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끗 차이였다.


물론 성능이야 우리쪽이 월등하겠지만, ‘인류 최초’라는 타이틀은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사안이니까.


더 완벽한 비행기를 만들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는 주코프스키 팀을 닦달해서 겨우 1903년 안에 비행기를 띄웠더니, 하필 라이트 형제의 비행일과 겹쳤을줄이야.


어쨌든 라이트 형제도 원 역사의 찬밥 대우에 비하면 미국 정부의 푸쉬를 받게 됐으니 잘된 일이군.


- 잘된 일 맞냐?


그럼.

너 같으면 생전의 부와 사후의 영광 중에서 뭘 선택하겠냐.


아마 전자를 선택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을걸.


라이트 형제는 어느쪽인진 모르겠지만 통계적으로 그런걸로 치자.


원 역사에서 있었던 미국 과학계의 질투와 시샘은 맹렬히 끓어오르는 경쟁심 앞에서는 무의미하다.


미국과 러시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쳐 세계의 중심으로 부상하는 두 나라지만, 현재는 문명의 중심인 서유럽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변방 국가에 불과하다.


차라리 상대가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서유럽 선진국이면 또 모르되, 서로끼리도 서로를 최초로 인정하지 못할걸.


“정말 잘했네. 표트르 대제 이래의 문명화가 드디어 이 시대에 결실을 이룬 셈이야.”


표트르 대제까지 튀어나오는걸 봐라. 이게 문명뽕이라니까?


심지어 자기 관할 생도가 이런 일을 벌였으니 얼마나 예뻐죽겠는가.


나는 다 알지, 아저씨 마음.


“좋은 소식이 하나 더 있네.”


반면 알렉산드르 대공은 아직 내게 말하고 싶은 것이 더 있는 모양이었다.


잠깐, 나 당신 무슨 소리 꺼낼지 알 것 같은데.


근데 그거 지금 이 자리에서 꺼낼 이야기는 아니지 않나?


“로제스트벤스키 교장이 편지를 보내와 패배를 인정했네. 나 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 로마노프가 보증한대로, 자네에겐 그에게 정당한 요구를 할 권리가 있네.”


“잠깐, 패배를 인정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콘스탄틴 대공이 문득 고개를 들어 물었다.


“설마 비행기의 성공을 가지고 내기라도 ······?”


“아차.”


콘스탄틴 대공의 얼굴에 어려있던 감동이 사라지고, 교육자로서의 엄격한 표정이 되돌아왔다.


그 옆에서는 포코틸로 교장이 내게 무시무시하게 도끼눈을 치켜떴다.


대공들 앞에 있으니 차마 뭐라 말은 못꺼내지만, 상사 앞에서 이런 소리를 듣게 한 나를 한 대 쥐어박고 싶은 표정이었다.


아 이거.


좆된거 같은데.



* * *



“생도가 장성과 사사로운 내기를 했다는 것도 문제지만, 그것도 지금 온 국민의 관심사인 비행기 개발의 이면에 이런 내기가 존재한다는게 밝혀지면 어떻게 되겠나!”


비행기라는 대업적을 세운 나지만, 콘스탄틴 대공은 공과를 따로 보는 성격인 모양이었다.


이런 내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남겨서는 안되기에, 공식적인 처벌은 없었다.


그러나 권력자에게 찍히면 언제든 다른 꼬투리를 잡히는건 시간문제.


특히 저 깐깐징어 교장에게 찍히면 답이 없다. 현재까진 별말이 없긴 하지만.


- 지금 너 정도면 교장도 함부로 못하는거 아니냐?


말했잖아.

우리 학교에서는 ‘분수’를 아는게 중요하다고.


귀족이든, 고관 자제든 여기선 똑같은 생도 취급이고 위세 부리다간 짤없이 왕따당한다.


나야 내 힘으로 인기를 얻은 케이스니 조금 다르긴 하겠다만, 그래도 교장을 들이받았다간 보는 눈들이 전부 험악해질걸.

게다가 이 평화로운 학교 분위기까지 흐려버릴 위험이 있다. 그건 절대 바라는 바가 아니다.


결심했다.


혹시 모르니 내 평안한 학교생활을 위해서라도 돌아가는 길에 선물이라도 하나 갖다바쳐야겠군.


나는 그런 결심을 하면서, 차르스코예 셀로의 알렉산드르 궁전으로 들어섰다.


이제 이 대제국의 황제.

니콜라이 2세를 알현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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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혈서 +21 24.09.15 4,491 300 12쪽
21 전야 +13 24.09.14 4,625 300 12쪽
» 반응 +13 24.09.13 4,469 297 11쪽
19 이륙 +37 24.09.12 4,960 340 14쪽
18 이륙 준비 +17 24.09.11 4,811 269 12쪽
17 발전 +14 24.09.10 4,975 294 12쪽
16 착수 +15 24.09.09 5,141 308 12쪽
15 내기 +18 24.09.08 5,144 282 12쪽
14 파티 +12 24.09.08 5,578 289 14쪽
13 황족 +21 24.09.07 5,733 311 13쪽
12 귀환 +19 24.09.06 5,668 344 12쪽
11 제안 +27 24.09.05 5,809 325 10쪽
10 호의 +22 24.09.04 5,891 307 14쪽
9 경매 +25 24.09.03 5,923 322 13쪽
8 수확 +27 24.09.02 5,974 325 12쪽
7 시작 +13 24.09.01 6,071 304 11쪽
6 참전 +10 24.08.31 6,571 311 14쪽
5 귀신 +21 24.08.30 6,723 313 12쪽
4 입학 +30 24.08.29 6,946 353 12쪽
3 연줄 +20 24.08.28 7,182 357 11쪽
2 스타팅이 왜 이래 +24 24.08.27 8,129 392 12쪽
1 프롤로그 +41 24.08.26 9,244 38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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