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머리 러시아군 대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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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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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5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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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수

DUMMY

“나 발트함대 포술학교장 로제스트벤스키에게 내기를 거는거냐? 네가?”


- 야야, 화난거 같은데? 어떡하냐?


심기가 몹시 불편해져 삼류악당 같은 자기소개를 늘어놓는 로제스트벤스키를 두고 박춘명이 물었다.


사실 이렇게까지 도발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안 그래도 모자이스키 의원이 뻗대는 통에 슬슬 스팀이 올라오던 차, 거하게 들이받고 말았던 것이다.


‘근데 생각해보니까 별로 손해볼게 없는데?’


나는 육군 생도, 상대는 해군 교장.


군대에서도 옆중대 병장은 아저씨인데 하물며 군종까지 다른데 로제스트벤스키가 나한테 뭘할 수 있지?


우리 교장한테 하소연할수도 있겠지만, 그래봤자 자기만 바보되는거고.


로제스트벤스키 역시 우리 교장한테 가서 ‘너희 애 버릇없다’하겠다고 버럭버럭 화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모양 빠지게 쫄려서 물러설 수는 없는 노릇.


“오냐, 네 몽상이 정말 들어맞는다면 내 무슨 소원이든 다 들어주마!”


“그럼 저도 지면 소원 하나 들어드리도록 할게요. 제가 들어드릴 수 있는 소원이면 말이죠.”


- 야, 이런 내기했다가 실패하면 어쩌려고?


아니, 실패할 일은 없어.

나는 분명히 ‘비행기가 성공할 것’이라고만 했거든. 로제스트벤스키도 내 몽상이 들어맞으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고.


즉, 내가 성공시킨다는 말은 안했다는거다.


만에 하나 내 비행기가 꼬라박아도 라이트 형제가 성공하면 내 승리라 이거야.


그때 가서 딴말하면 안될테니, 나는 증인을 세우기로 했다.


바로 옆에 있는 잘 차려입은 아저씨였다.


“혹시 선생님께서 증인이 되어주실 수 있나요?”


“선생님?”


잠깐 눈을 크게 떴던 신사는 크게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그러고보니 내 소개를 안했구나. 나는 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 로마노프다. 해군이지.”


로마노프 성을 가진걸 보니 황족인 것 같긴 한데······.


- 잠깐, 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 대공?


왜 그래. 아는 사람이야?


- 비행기의 시대가 도래하고 나서 러시아 항공을 맡아서 발전시킨 사람이다. 1차대전 때는 러시아 제국 공군의 수장이었고. 그게 아니었으면 몰랐겠지.


오호라, 모자이스키는 알지도 못하더니 춘명이가 겨우 밥값을 하는구나.


‘어쨌든 엄청나게 중요한 사람이다 이거군.’


특히 내가 계획하고 있는 비행기 개발과 관련해서는 말이다.


반신반의하면서도 내 말을 망상이라 깔아뭉개진 않더니, 역시 나중에 항공 관련해서 중책을 맡는 거물이라 그랬던건가. 친하게 지내야겠다.


“내기에 관해서라면 내가 보증을 서도록 하지. 그래도 상관없겠지요, 로제스트벤스키 교장님?”


“좋습니다. 이렇게 어린 생도한테 빌 소원 같은건 없소만, 그때 가서 엉덩이라도 실컷 때려줘야 분이 풀리겠습니다.”


그렇게 내기는 무사히 타결.


방금까지도 파네 마네 실랑이하던 모자이스키 의원은 대공의 영압에 그대로 찌그러져버렸다.


어느새 대공까지 나서서 매각을 기정사실화해버렸으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돈 떼먹는 일은 없을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딱 기다려, 아저씨.


당신 아버지의 꿈을 내가 이뤄주지.



* * *



걱정이 태산이던 모자이스키 의원은 내가 수표를 끊어주니 바로 태세를 전환했다.


그는 정말 고물값만 받고 비행기 기체와 연구노트, 관련된 모든 권리까지 깔끔하게 나에게 내어주었다.


알고 보니 죽은 모자이스키 제독이 러시아 최초의 항공기 특허까지 냈더라고.


어쨌든 쿨거래를 완료한 나는 야심차게 모자이스키 비행기가 보관되어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다행히 비행기가 있는 곳은 그리 멀지 않았다.


모자이스키 제독이 실험하던 시절, 비행기가 보관되어 있던 곳은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심에서 남서부로 가면 있는 크라스노예 셀로 부근의 군사 훈련장.


모자이스키 의원은 아버지가 죽은 후 이를 옮겨야했지만, 당연히 이를 볼로그다까지 끌고 갈 수는 없었던 탓에 페테르부르크 근처의 낡은 창고에 이를 보관해두고 있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아버지의 유품을 성심성의껏 관리한 모양인지 비행기는 원형을 제법 보존하고 있었다.


- 외관만 봤을 때는 나쁘지 않네. 내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럼 뭐 때문에 비행기가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추락했을까?


- 일단 단엽기인게 문제야. 항력은 줄겠지만 안정성은 떨어지지. 이 시대에 단엽기 개발하던 사람들이 실패한 이유가 있어.


오호, 그렇구만. 그럼 또?


- 엔진이 증기기관인거.


“아, 그거······.”


가장 골 때리는 부분.


모자이스키가 당시에는 내연기관 성능이 오히려 떨어져서 증기기관을 썼다고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시대에 뒤떨어진 동력기관에 불과하다.


무조건 들어내야지.


“모자이스키는 증기엔진 출력을 강화해서 해결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 될거 같으면 해보든가.


됐다. 내가 이 세계를 스팀펑크로 만들 것도 아닌데 굳이 증기기관을 쓸 필요는 없지.


하지만 지금 내연기관 성능은 서유럽 쪽이 훨씬 월등할 것 같은데.


러시아 동맹국인 프랑스에서 엔진이라도 수입해와야 하나.


-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 자동차 엔진 집어 넣는다고 곧바로 비행기에 쓸 수 있는건 아니지만, 맨땅에 헤딩하는 것보단 훨씬 나을거야.


지금 프랑스는 자동차와 엔진 개발의 최전선에 있다.


파나르, 드 디옹-부통, 지금은 별로 유명하지 않지만 르노에 이르기까지.


우리 러시아의 자동차 제조업체인 프레제도 엔진 개발자인 야코블레프가 죽은 뒤로는 프랑스 엔진을 사용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거 갖고 와서 개량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은데.


- 한 8기통 엔진까지는 개발해야하지 않을까.


중요한 힌트인거 같으니 일단 메모.


“그리고 또 조언해줄건?”


- 없는데.


없다고?


- 그럼 내가 항공기 전문가도 아닌데 뭘 더 바라는거냐. 이것만 해도 내가 귀동냥한거까지 밑천 다 턴거라고!


하긴 박춘명 씨가 그정도 항공 덕후였으면 진작 진로를 다른 쪽으로 잡았겠지.


장군도 못달고 쫓겨난 군인 말고.


그때 박춘명이 미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 야.


응?


- 근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거냐?


“내 돈 내고 비행기 샀는데 그럼 이걸 그냥 썩힐까.”


- 넌 숟가락만 얹고 싶다고 했잖아. 그럼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박춘명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 정말 그러고 싶으면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개발하고 난 뒤를 노려도 돼.

몇 년 정도는 사람들이 너를 조롱하겠지만, 본격적으로 항공의 시대가 도래하고 나면 모두가 너를 칭송하겠지. 모자이스키의 위대한 유산을 유일하게 알아본 사람이라고 말이야.

어쩌면 알렉산드르 대공도 너를 지원할지도 모르고, 그럼 네 돈 한푼 안들이고 훨씬 좋은 조건에서 시작할 수 있다고.


그래.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먼저 발명하더라도, 내가 손해볼 일은 없다.


당연히 자국 항공산업을 육성하려는 러시아의 지원이 따를거고, 후발주자만의 어드밴티지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부터 시작한다면······ 기껏 벌어놓은 내 돈까지 전부 빨려들어갈지도 모른다.


설마 그렇게까지 돈이 깨질까 싶긴 하다만.


- 애초에 네가 원하는건 이 나라를 뜨는 거 아니었냐. 지금 번 돈만으로도 그건 충분히 가능해. 하지만 너는······.


“우리 엄마는 말이지.”


나는 박춘명의 말을 끊으면서 입을 열었다.


“내가 무당 말고 하고 싶은걸 하면서 살라고 목숨을 바쳤어.”


- 그리고 이게 네가 하고 싶은거냐? 명예에 집착하는 성격인줄은 몰랐네.


천만에.


내가 미국에 간다해도 남들보다 좀 부유한 옐로몽키에 불과할 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하고 싶은걸 마음껏 하고 살기엔 2% 부족한 환경일 것 같단 말이지.


“박 대령, 당신 말이 맞았어.”


러시아 제국에서도 귀족도 아닌 연해주 출신의 고아가 살아남으려면 만만찮은 기반이 필요하다.


실력과 명성, 그리고 신분까지.


하지만 그것이 있다면, 이 시대에 ‘내가’ 살아가기에 러시아 제국보다 더 좋은 곳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적어도 이곳은 인종보다 신분이 앞서는 다민족 제국이니까.


- 잠깐. 너······.


“그리고 얘기했잖아.”


난 숟가락만 얹을거라고.


나는 손가락 사이에 끼운 편지를 박춘명에게 보여주었다.


당연하지만, 박춘명이 준 힌트가 있다해도 내가 직접 비행기 개발에 뛰어들 수는 없다.


나도 박춘명도 이과랑은 거리가 머니까.


나는 모자이스키로부터 비행기를 인수한 그 시점부터 곧장 이 시대 러시아의 항공 전문가들에게 편지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내 손에 들린건 내게 도착한 유일한 답장.


제국 모스크바 기술 학교에서 온, 니콜라이 주코프스키(Никола́й Жуко́вский) 교수의 편지였다.



* * *



제국 모스크바 기술학교 교수 니콜라이 에고로비치 주코프스키.


유체 및 공기역학의 창시자로 훗날 항공의 아버지로 불릴 그 역시 한때 애국소년으로 떠들썩하던 루슬란 킴의 이름 정도는 들어보았다.


하지만 이 소년은 평소라면 자신과는 절대 엮일 일이 없는 인물.


자연히 화제가 가라앉으며 그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던 루슬란의 이름이었지만, 뜬금없이 날아온 편지에 주코프스키는 다시금 그 이름을 소환할 수밖에 없었다.


[존경하는 주코프스키 교수님께,

저는 유체역학 분야에서의 교수님의 업적을 놀라울 정도로 많이 들어왔습니다. 저는 교수님의 연구가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 중 하나인 인간의 비행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

저는 모자이스키의 비행기가 일부 동체 개선과 엔진의 개량만 이루어진다면 충분히 비행이 가능하리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모쪼록 이 기체를 인류와 러시아를 위해 연구해 주신다면 큰 기쁨이겠습니다. 연구에 필요한 자금 역시 투자할 용의가 있습니다······.]


“모자이스키의 잊혀진 연구를 되살리겠다고?”


주코프스키는 편지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몇 년 뒤 제국 모스크바 기술학교에서 항공 학회를 창립하는 인물.


이 항공 학회는 러시아와 소련의 수많은 항공 및 기술 분야 유명인들이 거쳐간 곳이었으니, 그야말로 러시아 항공 발전에는 그의 공헌이 지대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이 킴이라는 생도의 편지를 그대로 믿으시는겁니까? 정말 모자이스키의 비행기가 뜰 수 있다고요?”


“나는 옛날에 모자이스키가 그런 연구를 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았소. 정확히 어떤 실험을 거쳤는지는 알지 못했기에 내 연구에 참조하지는 못했소만······ 오토 릴리엔탈을 만나러 독일까지 갔던 내가 자국의 비행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건 안타까운 일이지.”


주코프스키 역시 항공학의 전문가로서 공기보다 무거운 비행기의 발명 가능성을 확신하고 있었다.


헌데 비록 실패했다고는 하나 그 실물 기체를 가지고 있는 자가 항공학 연구를 위해 아낌없이 내놓겠다며 편지까지 보냈는데, 그것을 그냥 무시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 기회를 그냥 날려버릴 수는 없다.’


주코프스키는 펜을 집어들었다.


아직 항공 학회가 설립되기까지는 몇 년 남았지만, 이 시점에서도 그와 관심사를 공유하는 동료들과 학생들이라면 얼마든지 있었다.


예를 들면.


세르게이 알렉세예비치 차플리긴. 제국 모스크바 기술 학교 역학 교수. 러시아의 기계공학자이자 현대 공기역학의 창시자 중 한 사람.


니콜라이 보리소비치 델로네. 모스크바 대학 출신 기계공학자이자 수학자. 훗날 키예프 항공 학회 창립자.


드미트리 니콜라예비치 자일리거. 기계공학자 겸 수학자. 카잔 대학교 기계과 교수이자 훗날 카잔 항공 학회 창립자.


레오니드 사무일로비치 레이벤존. 주코프스키의 제자로 모스크바 대학 물리학 및 수학부 학생이자 훗날 모스크바 대학 기계과 교수. 소련 과학 아카데미 정회원.


레오니드 블라디미로비치 아수르. 러시아와 소련의 엔지니어. 기계 및 메커니즘 이론 전문가.


루슬란도 알지 못하는 사이.

모스크바에서는, 항공 어벤져스가 결성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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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이륙 +37 24.09.12 4,960 340 14쪽
18 이륙 준비 +17 24.09.11 4,811 269 12쪽
17 발전 +14 24.09.10 4,975 29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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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내기 +18 24.09.08 5,144 282 12쪽
14 파티 +12 24.09.08 5,578 289 14쪽
13 황족 +21 24.09.07 5,733 311 13쪽
12 귀환 +19 24.09.06 5,667 344 12쪽
11 제안 +27 24.09.05 5,809 325 10쪽
10 호의 +22 24.09.04 5,891 307 14쪽
9 경매 +25 24.09.03 5,923 322 13쪽
8 수확 +27 24.09.02 5,974 325 12쪽
7 시작 +13 24.09.01 6,071 304 11쪽
6 참전 +10 24.08.31 6,571 311 14쪽
5 귀신 +21 24.08.30 6,723 313 12쪽
4 입학 +30 24.08.29 6,946 353 12쪽
3 연줄 +20 24.08.28 7,182 357 11쪽
2 스타팅이 왜 이래 +24 24.08.27 8,129 39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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