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 천재는 걸그룹이 너무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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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람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26 06:45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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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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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실의 마왕

DUMMY

#18화



서재이를 두고 사람들이 부르는 별명은 참으로 다양하다.


황금귀의 프로듀서.

마이다스의 손.

참각막 천재.

폭군.

가스라이팅 천재.


긍정적인 것도, 부정적인 것도,

서재이를 두고 하는 별명은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그런 대중들도 모르는 별명이 하나 있었으니.

오로지 서재이와 함께 녹음실에 들어가 곡을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 가수들만이 부르는 별명.


그건 바로 ‘녹음실의 마왕’이 그것이었다.


재이와 함께 녹음을 하는 그 날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바로···.


“다시.”

“이해가 안 되나요?”

“시간을 더 주면 가능한가요? 하루? 이틀? 일주일?”


저 세 가지였으니.


그렇게 녹음을 마치고 녹음실을 나온 아티스트들은 한동안 저 단어들에 대한 엄청난 노이로제와 함께, 서재이를 만족시키지 못한 자신의 능력에 대한 엄청난 자괴감에 빠지곤 했었다.


물론, 그 결과물은 엄청나게 성공적이었지만 말이다.


그나마 과거 서재이와 같은 회사에 있었던 서린조차 재이와 녹음실에 들어가 본 경험은 전무했기에,


리바이브 엔터테인먼트 케이팝 기획본부의 A&R팀의 팀장 이호준.

스타트업 마냥 신입사원들이 대부분인 이곳에서 몇 안 되는 경력직 중 하나이자 과거 서재이의 부사수로 ST엔터에서 짧게나마 함께 근무한 적이 있는 남자.


서재이의 별명 중 하나가 ‘녹음실의 마왕’임을 알고 있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인 그는 녹음실로 향하는 네 소녀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어쩌면 애들··· 울어버릴지도.”


아침과 밤.

오로라폰 새 기종에 들어갈 두 곡이 모두 최종 픽스된 회의가 끝나고 사흘이 지난 시점.


드디어 본격적인 데뷔곡 녹음이 시작됐다.


**


녹음은 재이가 작곡한 아침 테마의 곡 <Run!>부터 시작됐다.


노래를 부르는 아티스트의 국적조차 알 수 없도록, 아침과 밤 테마의 곡은 모두 영어로 작사가 된 상황.


녹음실에 들어가기 전, 녹음실 앞에 마련된 소파에 옹기종기 앉아 있는 네 소녀는 시험을 앞두고 마지막 스퍼트를 올리는 수험생마냥 열심히 가사지를 바라보며 중얼중얼 가사를 숙지하는 중이었다.


“미, 미아아··· 이거 발음 좀 맞는지 확인해줄래?”

“어떤 거? 어 이거··· 뭐였지?”

“야, 너 영국인인데 이걸 모르면 어떻게 해···!”

“국적만 영국이지 나 열 살부터 지금까지 계속 한국에만 있었단 말야. 영국에 가서도 한국어만 썼다구.”

“얘들아, 그거 이렇게 발음하는 거야.”


다시 투닥거리는 막내라인 서린과 미아에게 영어 발음을 알려주는 하늘의 모습.

그리고 그들 옆에서 가사지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접신이라도 한 듯 자신의 파트를 웅얼거리는 다빈의 모습까지.


엔지니어와 함께 모든 세팅을 완료한 재이가 흐뭇한 미소로 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네 명의 소녀가 처음으로 경험하는 재이와의 녹음.


그런 재이가 처음으로 선택한 소녀는 바로 미아였다.


허스키하면서도 단단한 음색의 소유자인 서린.

서린과 달리 얇고 쨍한 목소리를 가진 다빈.

기교는 부족하지만 아이스크림처럼 공기가 폭신하게 섞인 부드러운 음색이 무기인 하늘과 달리,


미아는 창법에 그 어떤 사소한 버릇도 녹아있지 않은데다 어느 음역대에도 변하지 않는 맑은 유리구슬 같은 목소리를 소유하고 있었기에, 곡의 처음을 여는 도입부 장인의 목소리로 딱이었다.


재이는 아마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고 여러 곡을 발표하다보면, 그녀의 뒤엔 필시 메인댄서라는 수식어와 함께 도입부 장인이라는 타이틀이 붙을 게 분명하리라 확신했다.


“시작해볼까?”

“···넵!”


후우.


헤드폰을 쓰고 떨리는 숨을 내쉰 미아.

마이크 앞에 선 미아가 창 밖으로 보이는 재이를 바라봤다.


불안함과 불확실함에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과 달리, 오히려 더더욱 흔들림 없이, 자신을 응시하는 재이의 모습을 바라보니 떨리는 숨이 잔잔하게 가라앉고.


이내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미아의 모습을 확인한 재이의 웃음과 함께 음악이 흘러나오며 녹음이 시작됐다.


“Wake up! It's time to shine-.”

“잠시-.”

“앗.”


첫 소절이 시작하자마자 바로 들려오는 재이의 목소리.


미아가 긴장된 시선으로 재이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녀만큼이나 긴장된 시선으로 재이를 바라보는 또 한 사람.

바로 그녀들과 함께 녹음실에 들어온 A&R팀 팀장 이호준.


그는 과거 서재이가 자칼에 가기 전 첫 직장이었던 ST 엔터에서 그와 함께 일을 했던 남자.

‘녹음실의 마왕’ 서재이의 모습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으니.


‘이제 바로 그 ’다시‘지옥이 시작되는 건가···!’


마음에 드는 한 소절을 얻어내기 위해 열 두시간 동안 한 단어를 부르게 했던 전력이 있던 재이다.


과연 오늘 그 모습을 보게 되는 걸까.


과연 소녀들은 오늘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인가!!


하지만 그런 미아와 호준의 걱정과 달리 재이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전혀 예상 밖의 것이었다.


“미아야. 춤을 한 번 춰볼래?”

“···네? 여기서요?”

“응. 내가 보기엔 지금 네가 너무 경직되어 있는 것 같아. 춤을 출 때 네가 보여주던 모습이랑은 아예 딴판이거든. 완전히 제대로 된 안무를 보여 달라는 건 아니고, 지금 네가 부르는 파트, 이 멜로디와 비트에 맞는 간단한 동작이나 바이브를 네가 직접 몸으로 연기하면서 불러보면 어떨까 해. 우리 처음 면접에서 했던 거 기억나지?”

“아!”


자신이 아이돌 멤버가 아닌 퍼포먼스 디렉터로 면접을 본다고 생각했던 그날.


갑자기 자신에게 마이크를 주고, 춤을 추며 라이브를 시켰던 재이가 했던 그 날의 조언을 떠올린 미아가 조금이지만 감이 잡힌다는 듯 탄성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흐뭇한 미소를 짓는 재이.


그리고 호준 또한 생각지 못한 광경에 이채를 띄며, 재이의 작업을 지켜봤다.


‘확실히 사람이 바뀌긴 했네···.’


각 멤버들의 특징과 강점에 맞춰 듣는 이가 가장 빠르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이어지는 설명.


예전에도 재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아티스트에서 상세하게 설명하는 디테일한 성정의 프로듀서였지만, 모든 화법이 결국 자신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모든 설명이 청자인 아티스트에 맞춰진 게 아닌, 프로듀서인 ‘서재이’에 맞춰진 이기적인 디렉팅이라고나 할까.


그럼에도 어떻게든 결과물이 좋게 나왔고,

그랬기에 아무도 재이에게 별 말을 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재이의 심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왜 내 말을 못 알아듣지? 라고 고민하고, 끊임없이 그런 아티스트를 굴렸던 이가 재이였는데.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각 멤버마다 그들을 위해 맞춤형으로 설계된 화법으로 다가간다.


복귀를 하면서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호준은 지금 재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 또한 프로듀서로서 한 단계 더 나은 모습으로 성장한 것 같다고 느꼈다.


‘원래도 천재면서··· 이젠 사람까지 좋아졌네.’


그렇게 녹음실 속에서, 경쾌하고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는 소녀의 모습을 연기하며 두둠칫 어깨를 움직이는 미아.


재이의 말마따나 곡의 바이브에 맞춰 몸을 움직이며 긴장이 풀린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티 한 점 없이 명료하고 자연스러운 첫 소절.


“Wake up! It's time to shine!”

“와아- 다르네!”

“후훗.”


작게 탄성을 터뜨리며 미아를 향해 엄지를 척 들어 보이는 소녀들과,

만족스럽다는 듯 미아에게 고개를 끄덕이는 재이.


그렇게 그녀들의 첫 데뷔곡 녹음은 재이의 녹음 역사상 가장 빠르고, 가장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마치 그녀들의 데뷔에 그 어떤 암초도 없을 것을 예견이라도 하듯,


그들의 데뷔 준비는 걸림돌 하나 없이 너무나 매끄럽게 나아가고 있었다.


**


투데이패치의 황대규 기자가 터뜨린 16억의 행방불명.


정말 서재이가 16억을 횡령한 것이 맞는지,

그게 아니라면 윤명중이 코드 미디어를 이용해 16억을 사적 자금으로 운용하려고 돈세탁을 한 것이 맞는지.


대중들의 궁금증이 날로 커지며, 서재이를 업계 밖으로 몰아내버린 자칼이 어쩌면 뭔가 숨기고 있는 게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이 대중들 사이에서 겉잡을 수없이 퍼져가던 그때.


『제이엑스 차준규. 음주운전 혐의 인정. “팬들에게 죄송.”』

『‘음주운전’ 차준규 “제이엑스 이름에 누끼쳐··· 처분과 질책 달게 받겠다”』

『‘홍현진과 진흙탕 결별’ SNS로 전남친 저격한 여배우의 진심은 이랬다. [전문]』


논란은 논란으로 덮는다고 했던가.


부나방처럼 도파민을 자극하는 소식들에 이끌리는 대중들의 냄비 근성을 이용하려는 윤명중의 수작질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렇게 윤명중과 자칼의 해명을 요구하던 대중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연이어 터져 나온 자극적인 연예계의 사건사고에 홀려 사라지고 말았다.


그것이 완벽한 해결책이 되지는 않을 테지만, 자칼과 윤명중은 일단 직면했던 난처한 상황은 회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졸지에 돈세탁 혐의에 엮여버린 코드 미디어의 한중식 대표.


윤명중이라는 인간에게 실망한 것과 별개로 어쨌든 그의 언론 플레이로 피곤한 상황을 면한 것은 같았던 그는,


“지, 지금 뭐라고요? 소녀제국 컴백을 미루라고?”


올해 가장 그가 심혈을 기울이며 준비하던 프로젝트가 무산될 위기에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의 원흉은 바로 이번에도 어김없이···.


“윤 회장,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1년 동안 준비한 정규 앨범인데, 이걸 미루라니?”

[대표님. 에센스도 그 시기에 리패키지 앨범을 낼 예정인데, 음방에서 같은 회사 소속 가수들끼리 1위 경쟁하면서 아귀다툼하는 모습, 보이고 싶으세요?]

“리패키지 앨범?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에센스는 이번 주가 마지막 활동이잖습니까!”

[아아. 이번에 괜히 구설수 때문에 분위기도 뒤숭숭하고, 성적도 좋은데 팬서비스 개념으로 급하게 리패키지 앨범을 제작하게 됐습니다. 여름에 맞춰서 보사노바 장르에 트로피컬한 느낌으로다가]

“···!!”


보사노바. 트로피컬.


서재이의 복귀로 이야기를 나눴던 그때,

자신의 질문에 제대로 긁혀버린 윤명중이 구리다며 욕했던 원래 소녀제국 여름 앨범의 컨셉이 그러하지 않았던가!!


이후 그의 강압으로 인해 소녀제국의 이번 앨범은 본래 기획했던 컨셉도 아닌, 소녀제국이 그간 지켜온 감성까지 버려가는 리스크를 떠안고 마녀 컨셉으로 제작했는데.


지금 자신에게 구리다고 말했던 그 컨셉을 윤명중은 홀랑 훔쳐가 에센스에게 가져다 준 것이었다.


[아시잖습니까. 자칼이 일단 살아야. 여러분도 사는 겁니다.]

“세상 어느 회사가 자사 레이블에 이런 사보타주를 합니까!!”

[그럼 뭐··· 계획대로 컴백하시던지요. 뒷일은 다 대표님이 감당하셔야겠지만.]

“이익-!”


악에 받쳐 응수하는 한중식.


하지만 그의 목소리가 채 전해지기도 전에, 윤명중은 통화를 일방적으로 종료해버렸다.


한중식은 그 순간 확신했다. 지금 자신과 소녀제국이 윤명중의 눈 밖에 났다는 사실을.


그는 소녀제국을 인질 삼아 자신을 협박하고 있는 것이었다.


네가 내게 반기를 들었고, 대들었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맞게 된 것이라고. 그러니 말 잘 들으라고.


제대로 된 대응도 하지 못하고, 윤명중에게 당해버린 한중식.


10분 남짓한 통화이지만 10년은 더 늙어버린 기분에 벌컥벌컥 위스키를 들이키던 그.


그는 데뷔조가 확정되고 감격한 얼굴로 자신과 함께 모여 사진을 찍었던 소녀제국 아이들의 웃음이 담긴 핸드폰 배경화면을 바라보다, 으드득 이를 갈며 중얼 거렸다.


“그래··· 이건 아니야.”


핸드폰 주소록을 뒤적거리는 그의 손.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번호를 받은 이후 단 한 번도 연락을 해본 적 없던 생소한 번호를 누른 그는 쭉 이어지는 통화연결음을 들으며 분노 가득한 눈을 번뜩였다.


이윽고,


[리바이브 성욱현입니다.]

“성 대표··· 나 한중식입니다.”

[···코드 미디어 한 대표님? 대표님께서 무슨 일로?]

“내가 긴히 할 이야기가 있는데, 자리 좀 만듭시다.”


한중식의 반격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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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왜? 쫄려? 24.09.16 458 11 13쪽
21 역대급 데뷔 앨범 24.09.15 520 10 12쪽
20 City Lullaby 24.09.14 534 11 14쪽
19 페이즈 24.09.13 559 10 12쪽
» 녹음실의 마왕 24.09.12 560 10 12쪽
17 좋은 소식 24.09.11 556 8 13쪽
16 아침은 서재이가 엽니다 +1 24.09.10 598 8 16쪽
15 서재이가 그럴 리가? 24.09.09 640 11 14쪽
14 데뷔하자 24.09.08 610 13 12쪽
13 공략 (2) +3 24.09.07 617 10 12쪽
12 공략 (1) 24.09.06 612 9 13쪽
11 어서 와 (2) 24.09.05 638 12 13쪽
10 어서 와 (1) 24.09.04 656 11 12쪽
9 반전의 순간 (2) +1 24.09.03 691 14 13쪽
8 반전의 순간 (1) 24.09.02 660 12 12쪽
7 천재와 일진과 도둑 +1 24.09.01 691 13 17쪽
6 알고보니 작곡 천재 24.08.31 718 1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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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REVIVE (1) 24.08.29 805 1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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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락에서 돌아온 천재 (2) 24.08.28 895 1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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