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 천재는 걸그룹이 너무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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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람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26 06:45
최근연재일 :
2024.09.19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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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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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7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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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무대는 위기에서 시작된다

DUMMY

#23화



데뷔앨범 준비는 순풍에 돛을 단 듯 빠르게 진행됐다.


페이즈의 네 멤버도 그 어느 때보다 의욕적이었다.


트리플 타이틀곡에 각자의 솔로곡까지.

외울 노래도, 춤도 산더미.

심지어 녹음과 안무 숙지가 끝이 나면 쉴 틈도 없이 바로 뮤직비디오 촬영을 위해 일주일간 부다페스트에서 체류해야하는 엄청난 일정.


남은 3개월 안에 그 모든 걸 완벽하게 소화하는 것은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하드코어 그 자체였지만, 오히려 아이들은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자신의 앞에 놓인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서린과 다빈은 오로지 이 순간만을 바라며 살아온 것이나 다름없기에 체력적으로 버겁다고는 해도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중이었고,


미아는 원래도 괴물같은 체력을 지녔기에 지친 기색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


“괜찮아요. <소녀환상백서>때보다 나은 걸요? 거기선 잠도 세 시간밖에 못 잤어요.”


피와 살이 떨리는 아이돌 세계를 사실상 3개월의 속성코스로 하드코어하게 경험하고 온 하늘에겐 오히려 고향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했으니.


“오늘 우리 솔로곡 듣는 날인거지?”

“그치. 녹음도 바로 다음 주라고 하셨어. 10월 전에는 무조건 녹음이랑 안무 다 끝내고 뮤비 찍으러 가야한다고 하니까···. 엄청 바쁘겠다.”

“후우···.”

“걱정 마 언니, 저번 녹음도 엄청 잘 했잖아.”

“이번 건 다 같이 부르는 게 아니잖아. 3분 동안 나 혼자 부르는 거··· 처음인데.”


솔로곡을 녹음할 생각만 했을 뿐인데 저절로 심장이 떨린다.


확실히 <소녀환상백서>때 보다 자신의 실력이 일취월장함을 하늘 또한 느꼈다.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했던 자신의 음색에 대한 자신감도 어느 정도 쌓인 상태.


자신을 영입할 당시 책임지고 성장시켜주겠다 말했던 재이의 말을 믿었고,

그런 재이에게 또 그런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하늘 또한 밤낮없이 노력하며 자신의 실력을 갈고 닦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솔로곡이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소녀환상백서 때는 101명이 다 같이 불렀으니까. 나중에 가서도 사실 나 그렇게 파트가 길진 않았잖아.”


그땐 비주얼이 센터였지 사실상 수납 멤버나 다름없었지만 지금은 오롯이 혼자 힘으로 곡 하나를 소화해야하는 상황이다.


하늘은 연습실의 전경을 바라봤다.


자신과 앞으로 오랜 시간 함께하게 될 페이즈의 멤버들.


매 녹음마다 메인 보컬로서의 위엄을 보여주는 서린은 7년이라는 공백이 있었지만, 연습생 시절의 감각을 다시금 되살리며 원래의 폼을 되살리고 있다.


거기다 다빈은 데뷔앨범에 수록되는 곡 중 세 곡이나 작곡으로 참여했다.


미아 또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사실상 멤버 모두의 댄스 트레이너 역할까지 겸하고 있는 미아는 이번 타이틀곡의 안무에도 참여한 상황이다.


그런데 나는?


그냥 비주얼?


하늘은 그걸로 만족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려고 이곳에 온 것도 아니었고. 자신이 꿈꾸는 아이돌도 그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재능이 넘치는 수많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저 절망에 빠져 한 없이 땅을 파고 들어가는 사람도 아니었다.


하늘은 그런 재능 넘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뭐가 있을지 고민했다.


‘뭔가 더 있지 않을까.’


그렇게 고민하던 그때.


“하늘아. 녹음실로 와줄래?”


연습실의 문이 열리고, 재이가 하늘을 불렀다.


3분 동안 오롯이 자신의 힘과 매력으로 이끌어 가야하는 솔로곡.

그걸 들을 시간이었다.


녹음실 안.


[라리라라리라~ 라라]


가사 없이 허밍으로만 이어지는 하늘의 솔로곡이 울려 퍼졌다.


딥하우스 장르의 곡. 높은 고음과 기교가 요구되는 곡은 아니었지만, 그렇기에 몽환적이고 부드러운 보이스의 색깔이 더욱더 부각되어야 하는 장르의 곡이었다.


“처음부터 하늘이 너한테 그렇게 부담을 줄 생각은 없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쉬운 곡을 줄 생각은 더더욱 없었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난이도에서··· 가장 제 매력을 살릴 수 있는 곡이네요.”

“맞아. 여기선 음색이 그 무엇보다 중요해. 춤을 추면서도 흔들림 없는 발성법도 필요하지. 이 정도는 할 수 있으리라 보는데···.”

“할 수 있어요.”


투지가 엿보이는 하늘의 대답.

하늘은 아직도 귓가에서 맴도는 자신의 솔로곡의 멜로디를 음미하며, 그걸 부르며 춤을 추는 무대 위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그런 상상 속 무대에서 자신의 입은 아무런 가사도 아닌 그저 허밍만 뻥긋대고 있었으니.


하늘은 텅 빈 가사지를 내려다봤다.

텅 빈 종이 위에 만들어진 건 오직 <Diary>라는 제목 뿐.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자신만의 비밀과 슬픔, 고민과 욕망을 숨김없이 내비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일기와 대화를 나누는 화자의 모습을 상상하며 만들어진 곡이 바로 <Diary>였다.


음악 자체는 완성이 됐지만, 제목을 제외하곤 아무런 가사도 완성되어 있지 않은 자신의 곡.


가제로 붙여진 <Diary>를 바라보던 하늘의 시선이 재이를 향하고,


“피디님.”

“응?”

“이 곡, 제가 직접 가사를 써 봐도 될까요?”

“이걸?”

“네. 제가 해보고 싶어요. 아니, 할 수 있어요.”


그런 하늘을 바라보는 재이의 눈에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하늘의 눈 속엔 의욕과 더불어 수많은 이야기를 어떻게 내뱉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창작자의 열의가 담겨 있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많이 고민했나보네.’


어쩌면 아이들 중 가장 속이 깊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쉽게 내보이지 않는 덤덤한 성격의 하늘의 속엔 내뱉지 못한 수많은 이야기와 감정들이 담겨있으리라.


“그래. 하고 싶은 말, 마음껏 해봐.”

“네!”


허밍뿐이던 하늘의 노래에 채워질 이야기가 드디어 탄생하고,


페이즈의 데뷔앨범은 점점 더 완벽한 형체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


아름답고 유구한 역사와 혼란스러운 근대와 현대를 넘어오며 쌓인 생채기가 뒤섞여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도시 부다페스트.


방황하는 소녀들의 빛나는 꿈.

그리고 그 꿈을 가로막는 현실의 벽을 그려내기에 가장 완벽한 분위기를 가진 도시.


추석 연휴를 맞아 묵혀두었던 연차를 털어 해외로 나선 수많은 한국인들의 파도가 어느새 썰물처럼 빠져버린 한적한 10월의 부다페스트.


관광지가 아니기에 현지인들이 대부분인 도시 외곽의 거주구역.

한국인은 찾아볼 수 없는 그곳의 건물 하나를 통째로 빌린 페이즈와 재이 일행은 본격적인 뮤직비디오 촬영을 위한 준비를 바쁘게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동네 앞도 아니고,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머나먼 타국에서의 로케이션 촬영이란 늘 변수를 동반하는 법.


“천장이 무너졌다고요?”

“하하··· 네. 거짓말인 줄 알고 저도 오늘 아침에 직접 가봤는데, 나무 천장이 다 무너져서 거기도 긴급 공사 중이더라고요.”

“하··· 이것 참. 로케 오면 이런 일 하나쯤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첫날부터 이럴 줄은 몰랐네요.”


낭패한 표정으로 말을 잇는 현장 코디네이터의 말에 재이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본래 오늘 예정된 촬영은 뮤직비디오의 스토리상 가장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장면이었다.


꿈으로 뭉친 소녀들이 처음으로 하나의 그룹으로서 사람들 앞에서 노래와 춤을 선보이는 군무씬.


그를 위해 부다페스트 외곽에 위치한 작은 소극장을 대관했는데, 하필 지금 이때, 그곳의 천장이 내려앉았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오후 1시.


고민할 시간은 길지 않았다. 촬영이 예정된 시간은 5시였기에, 그 전에 최대한 다른 장소를 물색해야하는 상황.


재이는 마치 손을 뻗으면 잡힐 듯 하얀 구름이 가득한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고민에 빠졌다.


“새로운 공간을 당장 섭외하는 건 불가능하고··· 다른 씬 촬영을 앞당겨야할까요?”

“아뇨, 뭔가 방법이 있을 거예요. 30분 정도만 시간 줄 수 있어요? 잠깐 산책 좀 다녀올게요.”

“넵!”


어수선한 이 분위기 속에서 계속 고민에 빠져있다고 해서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기적처럼 솟구치진 않으리라.


그렇게 생각한 재이는 바로 스태프들과 바쁘게 단장중인 멤버들을 뒤로하고 부다페스트의 길거리로 발길을 옮겼다.


‘뭐든 사건이 하나 터질 줄은 알았지만···.’


액땜이라 생각해야할지.

헛헛한 마음을 다스리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길거리로 나선 재이의 마음은 생각보다 조급하거나, 초조하지 않았다.


이런 일은 언제든 있기 마련이고,

이런 상황에서 자신은 늘 새로운 방법을 찾았으니까.


심지어 그 방법이 더 나았던 경우도 있었고 말이다.


과거 자칼로 가기 전, 자신의 커리어를 가장 처음 시작했던 연예기획사 ST.


그곳에서 처음으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참여한 첫 걸그룹 루나틱의 미니 앨범 3집 때의 일.


야자수가 아름다운 남국의 해변에서 석양을 등진 실루엣을 찍으려 하던 날, 갑작스레 내린 폭우로 현장 자체가 훼손되었던 당시.


재이는 바로 그 근처 비행장의 격납고 안에서 촬영을 진행하자며 빠른 대안을 제시했고,


오히려 해변의 풍경이 멀찍이 보이는 격납고 안에서 도발적인 의상을 입고 군무를 선보인 장면은 발표 이후 엄청난 반응을 얻고 루나틱의 건강미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굳어지며 이후 수많은 아이돌 제작자들이 참고하는 레퍼런스가 되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재이는 지금 이 순간 또한 자신에겐 또 하나의 기회라는 생각으로 조급함을 마음속에서 밀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그저 발이 가는대로 시민들이 일상을 보내는 공간을 걷고 또 걷던 그때.


“호오···!”


한 지하철 역 출구 바로 맞은 편.


아름다운 분수를 중심으로 펼쳐진 꽤 널찍한 공원 겸 광장을 발견한 재이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그곳은 이곳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작은 여가생활 공간을 겸하는 장소인 듯 했다.


아름다운 분수와 초록이 가득한 공원.

그리고 묘하게도, 바닥과 벽에 그려진 그라피티는 꽤나 예상 밖의 힙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분위기는 페이즈의 이번 첫 앨범, <METEOR>가 가진 서사의 분위기와도 꽤나 어울렸으니.


그곳의 전경을 둘러보던 재이는 자신의 시선을 잡아끄는 그래피티 문구 하나를 발견했다.


“···이거다.”


The whole world is my stage.


온 세상이 내 무대.

그 강렬한 한 마디. 그걸 본 순간 재이는 답을 얻었다.


무너진 극장을 벗어나, 페이즈가 세상에 처음 자신의 춤과 노래를 선보일 무대가 어디인지.


하나가 되어 꿈을 시작하는 소녀들의 첫 발걸음이 어디서부터 시작이 되어야 할지.


그 모든 것이 명확하게 떠오른 순간.


재이는 바로 지체할 것 없이 몸을 돌려 모두가 있는 숙소를 향해 뛰었다.


그렇게 10분이 좀 지났을까?


대부분 준비를 마치고, 오늘의 이 돌발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할지 머리를 싸매고 있던 그때.


우당탕-!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지고, 벌컥 문이 열리며 재이가 멤버들과 스태프들을 향해 소리쳤다.


“우리··· 버스킹 합시다!”


작가의말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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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BOOM! (1) 24.09.18 417 13 11쪽
» 첫 무대는 위기에서 시작된다 +2 24.09.17 437 10 11쪽
22 왜? 쫄려? 24.09.16 458 11 13쪽
21 역대급 데뷔 앨범 24.09.15 520 10 12쪽
20 City Lullaby 24.09.14 534 11 14쪽
19 페이즈 24.09.13 558 10 12쪽
18 녹음실의 마왕 24.09.12 558 10 12쪽
17 좋은 소식 24.09.11 555 8 13쪽
16 아침은 서재이가 엽니다 +1 24.09.10 597 8 16쪽
15 서재이가 그럴 리가? 24.09.09 639 11 14쪽
14 데뷔하자 24.09.08 609 13 12쪽
13 공략 (2) +3 24.09.07 617 10 12쪽
12 공략 (1) 24.09.06 612 9 13쪽
11 어서 와 (2) 24.09.05 638 12 13쪽
10 어서 와 (1) 24.09.04 656 11 12쪽
9 반전의 순간 (2) +1 24.09.03 691 14 13쪽
8 반전의 순간 (1) 24.09.02 659 12 12쪽
7 천재와 일진과 도둑 +1 24.09.01 690 13 17쪽
6 알고보니 작곡 천재 24.08.31 715 14 15쪽
5 REVIVE (2) +1 24.08.30 726 16 12쪽
4 REVIVE (1) 24.08.29 801 16 12쪽
3 나락에서 돌아온 천재 (3) +1 24.08.28 862 19 13쪽
2 나락에서 돌아온 천재 (2) 24.08.28 893 17 14쪽
1 나락에서 돌아온 천재 (1) 24.08.28 1,129 1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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