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요괴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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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밤의꿈
작품등록일 :
2024.08.27 01:26
최근연재일 :
2024.09.03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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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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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차원의 패자가 되길 소망했다

DUMMY

지난 6개월간 치료하러 다니고 있는 병원의 화장실 안.


슬기는 다시 거울을 뚫어져라 봤다.


안정을 찾지 못하고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동자.


그간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던 탓에 조금 가칠해진 피부.


짙은 다크서클도 보였다.


거기다, 얼굴 한가운데서 엄청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는 커다란 흉터까지.


다행히 당시의 사고로 눈은 다치지 않았지만 의사는 흉터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기는 힘들 거라고 했다.


언제나 자신을 이미 데뷔를 마친 대형 스타처럼 떠받들던 기획사에서는 완치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단박에 등을 돌렸다.


연습생 시절부터 계속 스폰을 해 주겠다고 줄기차게 컨택을 해 왔었던 다수의 사람도 치료를 도와주겠다고 했었지만 결국은 마찬가지였다.


황금 알로 여겨졌던 슬기가, 이젠 부화 전에 깨져 버린 알이 되자마자 옆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그녀를 버렸다.


데뷔 전부터 그녀를 지지하던 다수의 사생팬들 사이에서도 한바탕 난리가 났다.


그들은 갑자기 사라져 버린 슬기의 행방을 찾기에 바빴다.


그러는 사이 슬기에 대해서 이상한 스캔들 몇 가지가 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의 사건을 직접 목격하거나 이야기를 전해들은 관계자들은 그저 아니라고만 이야기할 뿐, 현재 슬기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 명확하게 설명해 주진 않았다.


어찌 되었든 좋은 일도 아닐뿐더러, 그들 중 대부분이 이제는 손쓸 수 없게 되어 버린 슬기의 재능을 많이 안타까워했다.


그들은 슬기가 홀로 마음 정리를 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여기고, 사람들이 그녀를 찾지 못하게 나름의 배려를 한 것이었다.


그래서 슬기가 급작스럽게 사라져 버린 정확한 경위에 관해서는 그냥 입을 다물어 버렸다.


때문에 슬기에게 일어난 사고나 현재 그녀가 있는 곳 등의 정보도 일부 소수의 사람들만 아는 일이 되었다.


민세영을 제외하고서, 함께 데뷔하기로 했던 멤버들도 역시 안타까워했었다.


특히 제일 친하게 지냈던 막내 시아가 가장 슬퍼했지만, 아직 아무런 힘이 없는 신인 그룹의 멤버일 뿐인 그녀로서도 슬기를 도와줄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녀들은 벌써 지난달 회사의 뜻에 따라 슬기를 제외하고서 새로 ‘밀키웨이’라는 4인조 걸 그룹으로 다시금 데뷔 무대를 치렀다.


그리고 그 걸 그룹의 센터에는 그 민세영이 서 있었다.


바로 자신이 있기 그 직전처럼.


새로운 팀 이름에, 새로운 타이틀곡.


슬기가 있던 흔적들을 전부 지우고서 이뤄진 그녀들의 무대는 나름 꽤 괜찮은 반응을 얻었다.


슬기는 그녀들의 데뷔 무대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아니, 사실은 그룹의 센터에서 너무도 기쁜 듯이 웃으며 노래하고 있는 민세영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사고가 난 이후, 경찰들로부터 사고 원인에 대한 조사가 한차례 이루어졌지만, 딱히 슬기를 노린 범죄로 여길 만한 증거들은 발견할 수 없었다.


그들은 단지 조명의 연결 부위가 조금 낡아 있던 게 원인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그대로 사건을 종결시켜 버렸다.


그렇지만 슬기는 확신했다.


자신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든 범인은 틀림없이 민세영이다.


모두가 비명을 지르거나 당황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당시 민세영은 전혀 놀라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치, 이런 사고가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있기라도 한 사람처럼.


그날 보았던 그녀의 웃음.


거기에는 맹렬한 악의와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는 상황.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그렇게 짐작하고 있다는 것도 이야기하지 못했다.


오히려 미친 사람 취급을 받게 될까 봐서.


사고의 충격으로 제대로 된 이성적 사고를 못 한다고 여겨질까 봐.


‘죽여 버릴까.’


그녀의 데뷔 무대를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런 생각을 한다.


까드득─.


주먹을 쥔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타인을 증오하고 미워했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심으로.


몇 번이나 부엌을 왔다 갔다 하며 거기에 있는 칼을 쥐었다가 놓았는지 모른다.


내 꿈을 처참히 뭉개 버린 그녀를 나도 똑같이 짓뭉개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시골에서 한결같이 기다리고 있을 외할머니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라서.


어서 빨리 TV 속에서 어여쁜 모습으로 나타나 노래를 부르는 손녀를 볼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외할머니의 얼굴이, 그때마다 아른거렸기 때문에.


외할머니에게는 크게 걱정할 것이 뻔했기에 아주 작은 부상이 있어 데뷔가 조금 미뤄졌다고 전화로만 간략히 연락을 드렸다.


그 정도로만 이야기했는데도 수화기 너머 안절부절못하고 불안해하시는 것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어 다정하고도 따뜻한 걱정의 말들을 몇 번이고 자신에게 들려주었다.


당장에라도 슬기를 보기 위해 서울로 올라오려는 그녀를 겨우 말리고, 울컥하고 치밀어 오르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통화를 마쳤었다.


그 수화기를 놓자마자 물밀듯이 터져 나오는 슬픔이 시작점이 되어 이후로 몇 날 며칠을 또다시 울음으로 지새웠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정말 다 포기하고 다시 시골로 돌아갈까.’


거울 속에 비친 슬기의 눈이 한순간 슬퍼졌다.


노래가 하고 싶었다.


얼굴이 이 지경이 된 지금도 자신은 미칠 듯이 노래가 하고 싶다.


그리고 복수하고 싶다.


원래는 본인이 있어야 했을 자리를 대신해 지금 TV 속에서 밝게 웃고 있는 민세영보다도 더욱 빛나는 스타가 되고 싶다.


피식─.


그렇게 자신의 변함없는 마음을, 어쩔 수 없음을 확인한 슬기는 거울을 보며 한번 옅게 웃었다.


그리고 다시금 자신의 얼굴 한가운데, 커다랗게 자리 잡은 흉터를 응시했다.


도망칠 것인가?


다시 도전할 것인가?


결국 선택지는 둘 중 하나.


“치료······ 해 보자. 다시, 해 보는 거야. 될 때까지.”


그래.


되든 안 되든 간에 우선 할 수 있는 것은 전부 다 시도해 볼 것이다.


우선 얼굴을 치료해 보고, 정 안 되면 오직 노래 실력으로만 승부하는 ‘얼굴 없는 가수’가 되는 선택지도 있었다.


그리고 만약 그 이후에도 정말 여전히 여건이 안 된다면 그때야 비로소 절망할 것이다.


“할머니. 나 힘낼 거야.”


그렇게 방황과 결심을 끝냈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직시하는 슬기의 눈동자는 이제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보다도 훨씬 오래전, 그녀가 본래 지니고 있던 모습과 꼭 같은 진한 밝은 빛으로 그곳에 돌아와 있었다.








깊은 밤.


짙은 남색과 녹색이 혼돈처럼 어지럽게 얽혀 있는 어두운 밤하늘.


태양이 저문 그 자리에서 지금은 두 개의 영롱한 둥근 달이 밝게 빛나고.


그리고 그 아래, 지상의 수많은 가옥들 사이, ‘마녀의 약방’이라는 문패를 내걸고 있는 어느 동양풍의 아주 커다란 목조 건물이 하나 있었다.


방 안을 밝히는 불들은 남김없이 모조리 꺼져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곳에는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작금의 빛은 오로지 창밖에서 흘러들어 오는 은은한 두 개의 달빛뿐.


때문에 달빛이 닿지 않는 방 안 곳곳은 여전히 사무치도록 어둡기만 했다.


잠시간 이어지던 적막을 깨고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였다면 거칠고도 낮은 특유의 중저음이 무척이나 듣기 좋았겠지만, 현재 그의 목소리에는 서릿발 같은 날카로운 노기로 가득 차 있다.


“······그 말이 사실인가?”


“네. 이 상태로라면······ 머지않아 은후 님은 죽습니다.”


달콤한 미성을 지닌 여인이 차분한 어조로 답했다.


죽음을 말하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표정 없이 담담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쭉 사무적인 딱딱한 태도로, 그 차가움이 무척이나 어울리는 단정한 미녀였다.


물음을 던졌던 남자는 굳게 입을 다물었고, 또 한동안 말이 없었다.


“······흑흑, 흑흑흑.”


그러다 다시 적막을 깬 것은 은후라는 남자도, 여인도 아니었다.


오랫동안 남자의 옆을 지켜 왔던 그의 가신, 작고 귀여운 검은 여우였다.


복슬복슬한 털을 지닌 까만 여우가 울음을 터트렸다.


자신의 주인이 겪고 있는 운명이 너무도 기구하고 가혹해서. 안타까움에 그가 먼저 목 놓아 울어 버리고 말았다.


“도련니이이임. 훌쩍. 아이고, 우리 은후 도련님이. 흑흑흑.”


여우는 슬피 울며 생각했다.


‘어찌할꼬. 어찌할꼬. 우리 은후 도련님 불쌍해서 어찌할꼬.’


구슬피 우는 까만 여우는 고개를 들어 자신의 도련님, 은후를 바라보았다.


눈동자에 담긴 제 주군의 모습이 눈물방울에 섞여 함께 아롱졌다.


고귀하고 아름다운 자신의 주인. 주군.


태어났을 때부터 쭉 곁을 지키며, 제 손으로 직접 키워 온 나의 도련님.


그는 절대로 이렇게 허무하게 가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특별한 별 아래서 태어난 특별한 사람.


이곳 동방 차원의 다음 패왕이 될 남자라는 천명을 타고난 이가 바로 그였다.


그리고 도련님은 미래를 예지하는 ‘시간과 별을 읽는 이’가 그의 탄생 때 예언했었던 바로 그 말처럼 한 달 전 이 동방 차원의 주인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는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고, 또 많은 피를 흘려야 했다.


사실 그의 도련님은 타고난 운명은 비록 그러하였으나, 패왕의 자리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다름 아닌, 왕의 자리다.


모두가 그의 강함을 인정하고 우러러보는, 경외하는 그런 자리.


그럼에도 어딘가 모르게 초연하달까.


대부분의 요괴가 본능에 충실하고 탐욕적인 것에 반해 그는 그런 면에서 어린 시절부터도 여타 요괴들과는 뭔가가 달랐다.


잠재된 힘은 넘칠 만큼 있었으나, 그것을 함부로 쓰지 않았다.


여색을 밝히지도, 술이나 다른 무언가에 빠지지도, 심지어 특정한 것에 집착하지도 않았다.


아니, 애초에 그 어느 것에도 관심조차 없었다.


그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준 존재는 오직 그의 어머니뿐이었다.


‘마님.’


검은 여우는 죽은 마님의 얼굴을 떠올렸다.


고위 귀족 가문 출신인 도련님의 어머니는 그 신분에 비해 무척이나 약한 여인이었다.


힘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 이 동방 차원에서 그녀는 이례적인 존재였다.


신분의 계급 또한 힘의 크기에 의해서 구분되는 이곳이었기에, 일반적으로 고위 가문에서는 강한 요괴가 태어나는 것이 정설이었던 탓이다.


약한 자는 철저히 도태된다.


그녀는 요괴 세계에서 완전히 무시를 당했다.


하급 요괴든 누구든 그녀를 인정하지 않았다.


허울 좋은 가문의 고위 신분 따위는 그런 무례한 자들의 손가락질과 모욕을 막아 줄 방패막이조차 되지 못했다.


힘이 있기에 신분이 있는 세계.


힘이 없는 자는 그 지위를 막론하고 용납받지 못하는 곳.


심지어 피를 나눈 가족에게서조차도 그녀는 외면받았다.


그러나 마님은 너무도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맑은 목소리를 지닌 은빛 도깨비였다.


생전에 무척이나 좋아하던 버드나무 아래에서 금을 켜며 노래를 부를 때만큼은 어느 누구도 그녀를 손가락질할 수 없었다.


그 모습이 너무도 고와서 시선을 빼앗기고 홀린 듯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세상에 거절받지 않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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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달과 별 그리고 폭포수 아래서, 그대와 나 24.08.27 17 0 11쪽
17 달과 별 그리고 폭포수 아래서, 그대와 나 24.08.27 22 0 11쪽
16 이세계의 심마니가 되다 24.08.27 21 0 13쪽
15 이세계의 심마니가 되다 24.08.27 19 0 13쪽
14 이세계의 심마니가 되다 24.08.27 20 0 11쪽
13 Radio Killed The Video Star 24.08.27 21 0 11쪽
12 Radio Killed The Video Star 24.08.27 24 0 12쪽
11 Radio Killed The Video Star 24.08.27 20 0 12쪽
10 Radio Killed The Video Star 24.08.27 22 0 13쪽
9 마주 잡은 손 24.08.27 23 0 11쪽
8 요괴 기획사 24.08.27 22 0 11쪽
7 요괴 기획사 24.08.27 23 0 13쪽
6 너, 내 아이를 낳아라 24.08.27 31 0 12쪽
5 차원의 저편 24.08.27 30 1 14쪽
4 우리 도련님이 고자라니! 24.08.27 33 0 12쪽
3 남자는 차원의 패자가 되길 소망했다 24.08.27 35 0 13쪽
» 남자는 차원의 패자가 되길 소망했다 24.08.27 43 0 11쪽
1 소녀는 별이 되기를 꿈꾸었고 24.08.27 8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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