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요괴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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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밤의꿈
작품등록일 :
2024.08.27 01:26
최근연재일 :
2024.09.03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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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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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소녀는 별이 되기를 꿈꾸었고

DUMMY

“죽여 버릴까······.”


의사와의 면담을 마치고, 슬기는 곧장 병원 화장실로 들어왔다.


때마침 자신을 제외하고는 화장실을 이용하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쏴아아아아.


흐르는 물에 손을 씻다가, 슬기는 고개를 들어 거울을 봤다. 그리고 거기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한참 동안이나 말없이 응시했다.


“······.”


스윽.


손을 들어 찬찬히 거울을 쓸어 만졌다. 표면을 따라 막힘없이 미끄러져 내리는 유리의 시원한 촉감이 손가락 끝에서 느껴졌다.


그러다 슬기는 손의 위치를 옮겨 본인의 얼굴을 직접 만지기 시작했다.


방금 전에 유리를 만지던 촉감과는 달리 온기가 있어 따뜻하고, 또 포근하다.


하지만 말캉한 살의 감촉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 순간, 고운 피부를 연이어 쓸어 가던 손끝에서 갑작스럽게 확연한 이질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손은 그만 멈칫하고 서 버린다.


흉터다.


자신의 손끝에 걸린 이질감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아주 커다란 흉터였다.


마치 도로 위에 솟아나 있는 방지턱처럼, 보기 싫은 흉터가 그녀의 얼굴 정 가운데에 볼록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이 방금 전 손의 진행을 가로막은 원인이었다.


흉터는 오른쪽 이마에서부터 시작해서 코를 지나 왼쪽 뺨 중앙까지 대각선으로 쭉 이어졌다.


이 병원에 온 이유도 그 흉터를 치료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면담을 한 의사는 슬기의 기대를 무참히 박살내는 말만을 들려주었다.




“완전히 흉을 지우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치료 비용도 비용이지만 일단 상처가 너무 크고 깊어서······. 최대한 덜 보이게 한다고 해도 현재 상태로 봐선 예전으로 돌아가기는······.”




큰 수술을 했다.


초기 6개월 동안의 처치가 중요하다고 해서 온 신경을 써서 관리했다.


그런데도 큰 흉이 남았다.


이후로 흉터의 색소를 빼고, 튀어나온 것을 깎아 내는 레이저 치료를 시작한다고 해도, 여전히 흉이 남을 거라는 의사의 말은 슬기를 절망에 빠뜨렸다.


까드득─.


주먹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 얼굴로 한국에서 노래할 수 있을까?


스스로가 보기에도 혐오감이 치밀어 오르는 이 얼굴을 과연 사람들이 참고 봐 줄까?


아니, 그 전에 이제 나를 써 줄, 쓰려고 하는 기획사가 있기나 할까?


까드드득─.




“미안하지만 이달 말까지 짐을 정리해서 연습생 숙소에서 나가 줘야겠어.”




지난달, 회사로부터 통보를 받았다.


처음엔 어떻게든 치료를 도와주겠다던 기획사는 완치가 불가능할 거라는 것을 알게 되자 슬기에게서 곧바로 등을 돌렸다.


다시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과 흉터를 보자 가슴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너무 많은 감정들이 한꺼번에 솟아나서 그 기분들을 뭐라고 명명해야 할지도 모를 정도다.


“하하하······. 진짜 그냥 다 죽여 버릴까. 하하하.”


다시금 중얼거리고, 또 실없이 웃었다. 그 웃음에 살기는 전혀 묻어나지 않는다.


그냥 순수하게 모든 것을 다 부숴 버리고 싶은 마음. 오직 그것뿐이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다.


아니, 정확하게는 짐작이라고 해야 하나.


“민세영······.”


거울 속에 비친 슬기는 초점 없이 멍한 눈으로 그리 머지않은 과거의 일들을 빠르게 회상했다.




‘누구보다도 빛나는 별이 되고 싶어. 내가 만든 노래들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고 싶어.’


그런 꿈을 가득 품으며, 17년간 살았던 고향 강원도를 떠나 혼자 서울로 올라왔다.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시고, 가족이라고는 외할머니뿐.


자신을 길러 준 외할머니는 굉장히 독특한 사람이었다.


상당한 괴짜에다 보통의 인간들과는 어딘가 아주 많이 다른, 무척이나 신비로운 사람이다.


그녀는 때때로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빤히 응시하다가, 뭐라 중얼거리기도 하고, 갑자기 혼자 큰 소리로 하하 웃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쭉 보아 온 외할머니의 남다른 모습들.


솔직히 슬기로서는 그녀의 그런 이상 행동들을 전부 다 공감할 수는 없었다.


그때의 자신은 아직 그녀처럼 무언가가 느껴지지도, 직접 보이지도 않았으니까.


단지 일상에서 오래도록 보아 온 모습이기에 자연스럽게 이해했다.


외할머니가 자신과는,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많이 다르다는 그 사실을 말이다.


‘아, 할머니는 그냥 저런 게 가능한 사람이구나.’


하고.


한 번씩 문득 궁금해져서 정말 뭔가 보이는 게 있는 거냐고 물어보면.


“흐음. 조금 더 자라면 너도 보이려나. 뭐, 그게 아니라도 상관없지만.”


그렇게만 말하며 언제나 빙긋 웃었었다.


그것이 어쩐지 얼버무리는 것 같기도 하고 돌려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여하튼 할머니는 그에 대해 언제나 정확한 답변은 들려주지 않았다.


그저 미소만 살짝 지어 보이며, 부드러운 손길로 머리를 쓸어 넘겨 주었었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으니 건강하게만 자라 달라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덧붙여 말하면서.


그래. 오직 그 사람뿐이다.


현재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고 있는 단 한 사람. 믿고 있는 단 한 사람.


그런 유일한 가족마저 고향에 남겨 두고, 꿈의 땅이라 여겼던 서울로 올라왔던 건데.




열일곱 살의 봄.


예전에 중학교 입학 기념 겸 생일 선물로 할머니가 시내에서 사 주신 싸구려 기타 하나를 달랑 어깨에 메고, 조금의 여비만을 챙겨서 서울로 올라와 대형 기획사의 오디션을 봤다.


그리고 놀랍게도 나는 단번에 합격했다.


믿을 수 없었다. 너무도 기뻤다.


드디어 꿈을 향한 첫걸음을 떼었다는 생각에 벅차게 뛰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바로 시골로 내려가 외할머니에게 홀로 서울 생활을 할 것에 대한 허락을 구했다.


반드시 성공하고 돌아오겠다는 나의 확고한 결심을 외할머니는 언제나처럼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응원해 주었다.


나는 짐을 꾸려 다시 서울로 올라왔고, 곧바로 연습생 기숙사에 들어갔다.


다니던 학교도 그만두었다.


차후에 검정고시를 칠 계획이었다.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연습뿐이라는 생각에, 그 희생이 아깝지 않았다.


소속사에서는 내가 걸 그룹의 멤버가 되기를 원했다.


사실 나는 기타를 치며 직접 만든 노래를 부르는 싱어송라이터가 되고 싶었지만, 예쁜 옷을 입고 귀여운 안무를 추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도 재밌고 즐거웠다.


걸 그룹으로 커리어를 쌓아 유명해져서 차후에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해도 좋았다.


그렇게 1년간 연습생 생활을 하게 되었고, 이후 나는 곧 데뷔가 결정된 5인조 걸 그룹 ‘허니 에스프레소’의 마지막 멤버로 발탁되었다.


무척이나 빠른 데뷔였다.


겨우 1년의 연습생 생활로 결정된 거니까.


연습생 중에는 나보다 훨씬 오랫동안 데뷔를 준비해 온 아이들이 많았다.


나는 그들의 부러움은 물론이고 질투와 시샘 어린 시선을 받아야 했다.


때때로 괴롭힘도 있었다.


갑자기 내 물건들이 사라지기도 했고, 나에 대해 좋지 않은 소문들도 돌았다.


그래도 나는 굴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그곳에 있는 누구보다도 훨씬 뛰어난 노래 실력이 있었으니까.


그것이 나를 자신감 있고 당당하게 만들었다.


그랬기에 신인 걸 그룹 허니 에스프레소의 메인 보컬의 자리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하다고까지 여기고 있었다.


“센터를 교체한다. 민세영 대신 류슬기로 간다.”


2월 14일로 데뷔 날짜가 나왔다.


그리고 데뷔 무대에 오르기 일주일 전에 갑자기 센터가 리더였던 민세영 언니에서 나로 교체되었다.


깜짝 놀랐지만 거부하지 않았다.


신인 그룹은 무엇보다 강한 임팩트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야 했고, 그걸 위해서 내린 회사의 결정이 연습생 4년 차인 세영 언니가 아닌 나를 택한 것이었다.


“축하해.”


“고마워, 세영 언니. 나 열심히 할게.”


“슬기야, 축하해. 당장 지금부터 포지션 변경하려면 좀 촉박하겠지만, 더 열심히 연습해 보자.”


“응. 고마워요.”


멤버들 모두 그 결정을 납득한 것처럼 보였다.


당시 세영 언니 역시 웃으며 나를 축하했었고, 나는 그녀의 자리로 내정되어 있었던 센터를 뺏은 것처럼 된 상황에 대해 미안하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우선 우리 그룹을 초반부터 확 띄우기 위해서는 이번만은 어쩔 수 없다고, 그리고 다른 멤버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고 여겼었다.


착각이었다.




2월 14일.


드디어 찾아온 데뷔 날.


마침내 서게 된 꿈의 첫 무대.


부들부들 떨리는 손.


터질 듯이 뛰는 심장.


호흡이 가빠져서 숨을 쉬기도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 모든 긴장감마저 나에게는 짜릿한 쾌감처럼 느껴졌다.


노래에 미친 내가, 이제는 정말 돌아 버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들떠 있었다.


“좋아, 가자!”


“네!”


“이 기합으로 다 죽이는 거야!”


첫 데뷔 무대의 긴장을 떨치기 위해 다 함께 힘차게 구호를 외쳤다.


“허니 에스프레소 팀! 준비해 주세요!”


잠시 후 무대 밖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우리는 스태프가 호명하는 소리를 듣고 나갔다.


리더인 민세영이 먼저 앞으로 걸어갔고, 우리가 뒤따라가며 무대 위로 올랐다.


나는 내 자리였던 맨 앞 정중앙의 위치로 가서 섰다. 이어서 다른 멤버들도 차례로 자신의 자리로 가서 섰다.


불이 꺼졌고, 노래의 전주가 흘러나왔다.


파앗─.


곧, 암전 속에서 딱 하나의 포인트 조명에 불이 들어왔고, 그것은 오롯이 나만을 비췄다.


계속해서 흐르는 전주를 느끼며 감고 있던 눈을 살포시 떴다.


눈부신 조명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오직 나에게 향해져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다 노래가 시작될 지점이 되었다.


나는 입을 열었고, 내가 맡은 노래의 첫 소절을 불렀다.


[달빛이 우리를 맞이해······!]


콰아아앙─!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내가 노래를 시작하자마자 나를 비추고 있던 핀포인트 조명이 아래로 빠르게 떨어졌다.


그리고 조명은 떨어지면서 내 머리 앞쪽을 강타했다.


나는 엄청난 양의 피를 흘리며 그대로 무대 위에 힘없이 쓰러졌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


사방에서 찢어질 듯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고.


“구급차 불러! 빨리!”


허둥거리며 다급히 스태프들이 다가왔다.


차츰 흐릿해져 가는 시야.


놀란 마음에 바들바들 떨며 내 옆에서 울고 있는 멤버들의 얼굴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리고······.


그 뒤에서 홀로 옅게 웃고 있는 민세영의 얼굴을 보았다.


‘설마······.’


좋지 않은 생각이 들었다.


미소?


내가 다쳐서 쓰러졌는데, 이렇게 피를 잔뜩 흘리며 정신을 잃어 가고 있는데 미소라고?


‘설마······!’


점점 더 짙어지는 그녀의 웃음을 발견한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사고가 민세영의 짓이라는 사실을.


처음에 들었던 감정은 그녀에 대한 원망뿐이었다.


이내 자꾸만 감기는 눈꺼풀을 참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정신을 잃은 나는 곧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든 감정은 아쉬움.


시작한 노래를 끝까지 부르지도 못했다.


그것이 그토록 꿈꿔 오고 기다려 왔던 가슴 뛰는 데뷔 무대이자, 나의 마지막 무대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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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행복을 찾아서(완) 24.09.03 21 0 12쪽
80 조우 24.09.03 11 0 11쪽
79 조우 24.09.03 8 0 12쪽
78 조우 24.09.03 10 0 11쪽
77 인생의 일부 24.09.03 9 0 12쪽
76 그녀, 민세영 24.09.03 9 0 11쪽
75 그녀, 민세영 24.09.03 9 0 11쪽
74 그녀, 민세영 24.09.03 10 0 12쪽
73 그녀, 민세영 24.09.03 12 0 12쪽
72 그녀, 민세영 24.09.03 14 0 11쪽
71 천재와 범재 24.09.03 10 0 12쪽
70 첫 방영 24.09.03 10 0 12쪽
69 사고들 24.09.03 11 0 11쪽
68 할머니가 허락하심 24.09.03 10 0 12쪽
67 할머니가 허락하심 24.09.03 12 0 12쪽
66 할머니? 24.09.03 11 0 11쪽
65 슬기는 나의 것 24.09.03 14 0 12쪽
64 슬기는 나의 것 24.09.03 12 0 11쪽
63 너에게는 내가 있지 않느냐 24.09.03 14 0 12쪽
62 너에게는 내가 있지 않느냐 24.09.03 13 0 12쪽
61 산신의 후손들 24.09.03 13 0 13쪽
60 산신의 후손들 24.09.02 14 0 12쪽
59 산신의 후손들 24.09.02 12 0 11쪽
58 산신의 후손들 24.09.02 12 0 12쪽
57 산신의 후손들 24.09.02 13 0 12쪽
56 대본 리딩 24.09.02 11 0 12쪽
55 다시, 도련님의 친우 24.08.31 14 0 12쪽
54 월하노인 24.08.31 15 0 12쪽
53 도련님의 친우 24.08.31 14 0 12쪽
52 도련님의 친우 24.08.31 1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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