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꾼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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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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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7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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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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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전투 경험

DUMMY

이튿날.

날이 밝자마자 등록센터에 갔다.


“헌터 등록을 하시려면 여기 보이는 마정석에서 마나를 추출하는 테스트를 하셔야 해요. 크기 별로 헌터 등급이 달라지고요, 마정석은 센터에 구비한 물건만 허용되세요.”


날이 일러서인지 데스크 직원은 졸린 눈으로 카탈로그를 내보였다.

거기에는 크기 별로 마정석 값이 기재되어 있었는데, 시세보다 비쌌다.

그 차익으로 센터 운영비를 충당하는 거였다.


“백규 씨는 새로 등록하시는 거니까 최하급 마정석을 권장드려요. 짐꾼 중에 뒤늦게 마나 감응력이 생기는 분들이 계시는데, 대개는 최하급 마정석도 간신히 다루시거든요.”

“저 헌터가 아니라 각성자 등록하러 왔는데요.”

“각성자요?”


심드렁하던 직원은 각성자라는 단어에 졸린 눈을 떴다.

게이트 시대가 수십 년이 흐르는 동안 각성자 등록을 하는 사람은 극소수.

등록센터를 찾아온 사람 대부분은 마나 감응력을 체크하려는 헌터 지망생이었다.


“어 잠깐만요.”


직원은 상급자에게 전화를 걸어 한참 통화했다.

각성자 등록 매뉴얼을 숙지하지 못한 듯싶었다.


“어쨌든 마나 감응력 테스트부터 받으셔야 하세요. 각성자시니까 제일 큰 거를 쓰셔야겠네요.”


긴 통화를 마친 직원은 카탈로그에서 가장 커다란 육백만 원짜리 마정석을 가리켰다.

체내에 마나를 품어 살아있는 마정석인 각성자는 마나 감응력도 상상을 초월했다.


그래서 증명하는 방법도 일반적인 헌터와는 차원이 달랐다.

하지만 그건 평범한 각성자의 사정이었다.


“스킬을 가진 각성자는 마나 감응력 테스트는 받지 않아도 되는 거로 알고 있는데요?”

“스킬이요?”

“예. 스킬이요.”


직원은 멍하니 눈을 깜빡이더니 다시 상급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데스크 뒤의 문이 열리더니 풍채가 당당한 중년인이 걸어 나왔다.


“이거 귀한 분이 오셨네요. 제가 여기 서울 센터장입니다.”


센터장과 악수했다.


“실례지만 어떤 계열 스킬인지 여쭐 수 있을까요?”


센터장은 데스크 직원과 자연스럽게 자리를 바꿔 앉았다.


“신체 강화입니다.”

“테스트 내용은 간단하겠네요. 참관인, 촬영팀, 장비만 있으면 되니까 천오백만 원 선에서 해결이 가능할 겁니다.”


갈수록 내야 하는 액수가 커갔다.


“비싸죠.”


센터장이 머쓱하게 웃었다.


“각성자는 특히 비쌉니다. 각성자 등록증이 나오면 어디 가서 사업하기도 좋고, 사기 치기도 편하니까 편법으로 증을 받으려는 사람이 많거든요. 그래서 검증이 갈수록 까다로워지는 겁니다.”


너 사기꾼이냐?

센터장의 눈이 그리 말하는 듯했다.


웃음이 나왔다.

짐꾼 생활이 몇 년인데 등록센터가 돈 먹는 하마라는 건 알고 있었다.

진짜 능력 있는 각성자라면 굳이 돈을 낼 필요가 없다는 것도.


“까다롭나요?”


나는 검지 하나를 펼쳐 보였다.


“각성자의 검증은 그 능력의 증명으로 한다고 되어있잖습니까?”


검지가 나와 센터장 사이에 놓인 책상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깔끔하게 음각되어 새겨진 글자는 세 글자로 각성자였다.


“이 책상은 제가 구비한 물건이 아니죠. 증명이 더 필요할까요?”


센터장이 침을 꿀꺽 삼키더니 가까스로 입술을 벌렸다.


“아니요. 증명 완료되었습니다. CCTV 자료까지 함께 제출하면 문제는 없을 겁니다.”

“책상을 망가뜨렸으니 변상하겠습니다.”

“아닙니다. 각성자가 손으로 새긴 글씨니 그 자체로 기념이 되겠죠. 여기 오는 헌터 지망생들이 모두 자극을 받을 겁니다.”


언제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냈냐는 듯 센터장은 곤란한 웃음을 지었다.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짐꾼이나 저등급 헌터들이 편법 쓰려는 경우가 많아서요.”

“괜찮습니다. 짐꾼이 하루아침에 스킬까지 들고 왔다니 의심하는 게 당연하지요.”

“등록증은 바로 발급해드리겠습니다. 십 분만 기다리세요.”


센터장이 눈짓하자 직원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인적 사항을 보시면 현재는 길드 생활을 하시지 않으신데, 각성하셨으니 길드를 찾아야 하지 않으시겠어요?”

“가능한 그래야겠죠.”


센터장이 책상 밑에서 강장제 한 병을 까서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잘 마셨다.

센터장이 왜 저리 나오는지는 아는데 짐꾼이란 족속은 원래가 낯짝이 두껍다.


“제가 잘 아는 길드가 있는데 요즘 신체 쪽을 구한다고 해서요. 백규 씨처럼 짐꾼 생활 오래 하신 각성자라면 두 팔 벌려 환영할 겁니다. 연봉을 삼억은 받으실 거예요.”

“어머니가 마나 중독증을 앓으셔서 삼억으로는 부족합니다. 각성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 몸값 더 올려볼 생각입니다.”


센터장은 더 권하지 못했다.

삼억으로 마나 중독증을 감당하기는 어려웠다.


“잠깐만요. 각성한 지 얼마나 지난 겁니까? 데이터상으로는 한 달 전에도 게이트에 들어가셨던데.”

“이틀 쨉니다.”

“네? 뭐라고요?”

“각성한 지 이틀 째라고요.”


센터장은 할 말을 잃었다.

어떻게 들어도 사기인데 책상에 새겨진 글자를 보니 긴가민가한 거였다.


“그럼 수고하세요.”


나는 등록증을 받자마자 센터를 나섰다.

센터장의 의문을 풀어줄 때가 아니었다.


각성자의 시간은 범인보다, 헌터보다도 비싸다.

한시라도 빨리 몸값을 올리러 갈 때였다.


*


집 근처 파출소 앞에서 민이를 만났다.


“등록증은 잘 받았어?”


답 대신 새로 인쇄된 등록카드를 내밀어 보였다.


“와 한 방에 A급 헌터가 됐네.”

“여기 각성자란 별표 표시도 잊지 말아줘. 그냥 A급 아니라 각성자 A급 헌터님이시니까.”

“와. 시작부터 A급이라니 각성자는 세금 더 떼야 해.”


민이는 카드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이후에는 내 전신을 훑어보고, 부쩍 튼실해진 팔뚝과 가슴팍도 쿡쿡 찔러보았다.


“그럼 진짜지 가짜겠어? 족발 맛있게 먹어놓고도 그러네.”

“보고도 믿기지 않아서 그런다. 내 오빠가 하루 만에 몸짱되고 스킬까지 생겼다니 마음으로 받아들이려면 시간이 걸릴걸.”


민이는 경찰에게 서류 몇 장을 받아 돌아왔다.

파출소 관할 구역에서 토벌되지 않은 블루 게이트 목록이었는데, C등급에 잘 나가는 길드 소속 헌터쯤 되면 받아볼 수 있었다.


“가자. 마음으로 이 오빠가 가장이라고 받아들이게 해줄게.”

“헛바람이 찼다니까.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게이트는 위험해.”

“너보다 내가 잘 알지 않을까. 게이트 경험은 내가 더 많은데.”

“순 고블린만 보고 쌓은 경험이잖아. 초등학교 성적으로 대학까지 잘 갈 거라고 으스대는 꼴이지. 몬스터랑 목숨을 걸고 싸우는 건 구경하는 거랑 완전히 다르다고.”


남매답게 투닥거리는 사이 게이트가 나타났다.

출입금지 경고 줄이 처진 것이 누가 먼저 들어간 듯했다.


이후로도 세 개쯤 누가 선점한 게이트를 지나쳤다.

블루 게이트 중에서도 작은 것들이었다.


“완전 작은 게이트는 토벌이 쉽잖아. 발견하면 들어가고 보는 사람이 많아. 무슨 말인지 알겠지?”

“경찰이 나눠준 목록의 블루 게이트에 선객이 없는 건 난이도가 있는 편이란 거지.”


민이가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제법 커다란 게이트를 보고 미소했다.

높이 삼 미터. 표준 사이즈보다 두 배로 거대한 블루 게이트는 가장자리 부근이 보랏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죽은 고블린도 보였다.

열 명도 넘는 시민들이 야구 배트와 각목 등의 둔기를 들고 있었다.


게이트 건너 이세계라면 몰라도 지구로 기어 나오는 고블린은 근처 주민들이 쪽수로 제압이 가능했다.

그것이 도시 지역이 고블린 천국으로 전락하지 않은 이유였다.


“퍼플되기 직전이네?”


퍼플 게이트는 블루 게이트보다 한 단계 윗급으로 거기서부터는 오크가 꼬이기 시작한다.

오크라는 몬스터가 고블린과는 비교가 안 되는 전투력을 자랑하는지라, 헌터 병기를 쓰지 않는 근본 없는 파티로는 공략이 어렵다.


“하루 이틀이면 퍼플 되겠는데? 이건 포기하자. 제대로 된 파티가 공략해야 하는 거야.”

“쫄?”

“오빠 몸값 올리려고 왔는데 헛고생할까 봐 그러지.”


민이는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헌터입니다. 여기 게이트에 진입하겠습니다.”

“경고 줄 치는 것 좀 도와주세요.”


우리 남매는 시민들 도움으로 경고 줄을 쳤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게이트로 들어가니 이국적인 숲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세계였다.


“비상사태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민이는 게이트에 진입하자마자 어깨에 둘러멘 기타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곳에서는 기타가 아니라 총기 부품이 튀어나왔는데, 불과 일 분도 지나지 않아 무식하게 거대한 소총 한 정이 조립되었다.


“오크 몇 마리쯤은 가루로 만들어버릴 수 있어. 하나뿐인 우리 오빠 오크한테 머리통 뜯기지 않게 해야지.”


민이는 총구가 대포처럼 두꺼운 소총을 척 어깨에 걸쳤다.


“오크학살자잖아. 각성까지 한 오빠를 정말로 못 믿는구나.”


오크학살자.

범위 내 몬스터를 가루로 만드는 괴물 산탄총.

웬만한 소총탄은 몸으로 버티며 달려드는 오크를 가장 많이 죽인 헌터 병기 중 하나였다.


“보험이라고 생각해 보험. 이거 한 발이면 족발 열 마리도 사고 남으니까 쓸 일 없게 만들자고.”


오크학살자를 어깨에 걸친 민이는 평소보다 더 당당해 보였다.

오빠가 각성자인 건 모르겠고, 숙련 헌터인 자기 말을 들으란 의지가 뿜어졌다.


동생이 제일 날 못 미더워했다.

길드 입사할 때 내가 부린 까탈을 돌이켜보면 탓할 문제는 아니었다.


가족이니 없는 걱정도 만들어내는 거였다.

해결책은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는 것뿐이었다.


“알지? 탁 트인 언덕부터 찾아 올라가야 해.”

“정찰은 짐꾼도 하는 일이다.”


우리는 야트막한 언덕 위로 올라가 주변을 살폈다.

퍼플 게이트로 변하기 직전의 상황이라서인지 가까이 고블린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전방 숲속에 고블린 부족 접근 중. 개체 수는 다섯인데 뒤에 스물 정도가 더 있어. 선발대를 오 분 내로 처치하지 못하면 스물을 처치해야 해.”


고블린이 스물다섯이면 퍼플 게이트에서나 볼 법한 숫자.

오크로 따져도 세 마리는 되는 전투력이다.


“고블린 부족 우측 이백 미터 지점에 오크 정찰병이 하나 있어. 뒤에는 둘이 더 있고. 이거 저놈들끼리 붙겠는데? 퍼플 직전 게이트에서 고블린이 튀어나오지 않은 이유가 있었어.”


민이는 망원경까지 꺼내 들고 상세 전황을 브리핑했다.


고블린과 오크는 상호 적대적이고, 블루 게이트가 퍼플 게이트로 변하는 즈음에서는 가끔 싸운다.

보통은 고블린이 피떡이 되는데 지금처럼 비등비등한 전력을 갖출 때도 있다.


운수 대통.

오크 세 마리를 날로 잡을 기회다.

그러나.


“피해 가는 게 맞겠는··· 오빠?”


나는 고블린 뒤로 접근했다.


“오빠 고블린이 너무 많아!”


듣지 않았다.

검은 병사에게 수도 없이 두들겨 맞으며 익힌 감각이, 고블린 따위는 날 해하지 못한다고 속삭이고 있었다.


“케헤헤헥!”


내 접근을 눈치챈 고블린 하나가 돌아섰다.

녀석이 자기 머리 위로 단검을 치켜들어 올리는 사이 발을 밟아 움직임을 죽였다.


퍽.

정수리에 당수를 내리쳤다.

한계까지 단련한 육체에 고블린의 무른 두개골이 박살이 났다.

즉사였다.


‘되네.’


검은 병사와의 다툼으로 쌓은 경험이 고블린에게도 통하고 있었다.

난 그때보다 약했지만, 검은 병사보다 약하긴 고블린도 마찬가지였다.


“카아악!”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단검을 피하며 팔뚝을 붙들었다.

그걸 그대로 휘두르니 허리 아래를 노리던 고블린 두 마리가 맞고 자빠졌다.


쿠직.

뒤꿈치에 힘을 싣고 밟았다.

고블린의 가슴뼈가 으스러졌다.


푹.

등을 노려오던 고블린의 정수리에 단검을 박아넣었다.

팔뚝을 붙잡은 고블린에게서 빼앗은 것이었다.


퍽. 퍼퍽. 푹. 푸직.

상체를 노리는 놈은 단검으로 숨통을 끊고, 하체를 노리는 놈은 후려 차 넘어뜨렸다.


쿠직.

그다음에는 가슴뼈를 으깼다.

채 오 분이 지나지 않아 스무 마리 고블린이 궤멸했다.


“야 너 뭐해?”


민이를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민이는 대포처럼 거대한 총신을 내 쪽으로 겨눈 채 굳어 있었다.


“그거 얼른 내려놓고 카메라 들어. 여기 왜 들어왔는지 목적을 잊지 말라고.”


오크가 남아있어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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