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꾼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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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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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7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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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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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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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10.오크 부족 섬멸전(3)

DUMMY

나는 민이를 등지고 오크 투사에게 접근해갔다.


정글의 강가에서 죽음처럼 찐득한 습기가 피어올랐다.

거기 발목 잡혀 허우적대는 사람과 오크가 많았다.


난 아니었다.

흩날리는 핏방울로 범벅이 된 습기조차 감히 내 발걸음을 막아서지 못했다.


감히.

나는 그 수식어를 내 발걸음에 당당하게 덧붙일 수 있었다.


큿.

단검에 서린 푸른 기운이 진로를 막은 오크의 머리통을 떨어뜨렸다.

전처럼 요란하지 않고 익은 과일이 떨어져 내리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단검이 마정석의 마나를 빌어 헌터 병기 본연의 위력을 드러냈다.

그렇게 열댓 마리쯤 오크 머리통을 떨어뜨리고 나니 오크학살자를 든 오크 투사의 등 뒤였다.


“카아앗!”


오크 투사는 좀 달랐다.

놈은 소리를 죽인 내 접근을 단박에 알아차리고는 손에 쥔 오크학살자를 휘둘러왔다.


카카캉.

몇 차례 맞부딪쳤다.


힘에서는 녀석의 속도에서는 내 우세였다.

오크학살자는 고찬성의 총격을 튕겨내긴 적합했으되, 연속 공격이 가능한 단검을 막아내긴 부적합했다.


‘각성자가 필요한 놈이긴 하네.’


놈이 오크학살자를 내 쪽으로 집어 던지고는 허리춤에 꽂아둔 곤봉을 다시 들었다.

그 짧은 찰나. 오크학살자로는 날 대적할 수 없단 걸 파악한 거였다.


카카캉.

곤봉을 손에 든 오크 투사는 과연 퍼플 게이트의 최대 난적이었다.


내리친 둔기는 푸른 빛이 서린 단검으로도 버텨내기 어렵게 강했다.

움직임도 날래서 치명타를 꽂아 넣기도 어려웠고, 시간이 끌리자 급기야 단검의 푸른 빛도 옅어갔다.


마정석의 힘이 다한 것.

놈도 그걸 간파한 듯 움직임이 한껏 수비적으로 변했다.

그리고 단검의 푸른 빛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카핫!”


놈의 곤봉이 더할 나위 없이 매서워졌다.

도무지 피할 수 없는 방위로 정수리를 후려쳐왔다.


‘동작이 크네.’


나는 머리를 눕히면서 틀어 곤봉을 피했다.

곤봉이 귀를 할퀴고 지났고, 놈의 가슴팍이 훤히 열렸다.


쿠직.

헌터 병기의 힘 대신 스킬을 덧댄 단검으로 두꺼운 가슴 근육을 갈라냈다.


“크오!”


오크 투사가 곤봉까지 놓아버리고 두 팔로 날 밀쳤다.

힘은 녀석이 더 세니 순순히 밀려났다가 발바닥 앞쪽에 스킬을 적용하고 다시 접근했다.


순간적으로 속도가 올라가자 녀석의 반응이 늦었다.

그새 바꿔 쥔 새 단검이 다시금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쿡.

거기 스킬까지 덧대어 오크 투사의 가슴팍에 내리꽂으니, 돌처럼 단단하던 근육이 두부처럼 쉽게 뚫렸다.

숨통이 끊긴 것이었다.


‘괜찮네.’


만족스러운 전투였다.

헌터 병기와 스킬 연계가 상상한 그대로 매끄러웠다.


그러나 오크 투사를 쓰러뜨렸다는 고양감은 크지 않았다.

하나 더 잡고 싶단 투쟁심이 앞섰다.


“선발대 백규! 합류합니다!”


홀로 오크 투사 둘을 맞상대하는 각성자와 눈을 맞췄다.

전신 갑옷이라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여기저기 찌그러진 꼴만 봐도 곧 죽을 상황이었다.


손안의 단검에서 푸른 빛이 옅어져 갔다.

총격을 견제하던 오크 투사가 오크학살자를 앞세워 다가왔다.


방금 죽인 놈과 같은 그림으로 끝장내면 될 것 같았다.

그럼 세 자루 헌터 단검이 못쓰게 되는데, 남은 한 마리는 고찬성과 각성자가 어떻게든 처리해내겠지.


“영리하게 싸워야 해! 고찬성 쪽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


오크 투사가 오크학살자를 버리고 곤봉을 쥐고 있는 참에, 각성자의 외침이 귀에 꽂혔다.

그러고 보니 총격이 뚝 끊겨 있었다.


‘좋은 어드바이스.’


선발대의 각성자가 무장하는 병기는 단검일 경우 보통 셋. 그걸 알고 병기를 아끼란 말을 해준 거였다.

그리고 내 눈에는 그 어드바이스로 이 상황을 슬기롭게 타개할 방법이 보였다.


나는 대면한 오크 투사를 버려두고 각성자 쪽으로 내달렸다.

각성자와 마주 본 오크 투사가 돌아봤으나 이미 늦었다.


스킬로 땅을 박 차 날 듯이 접근한 다음, 다시 스킬을 덧씌운 단검을 내리꽂았다.

뒤통수로 내리꽂힌 단검이 목젖을 뚫고 튀어나왔다.

헌터 병기와 스킬의 조합이 두 번째라 첫 번째보다 능란했다.


“미치게 세네. 곧 기절할 것 같아서 그런데 혹시 혼자 저놈 처리도 가능할까?”


각성자는 볼썽사납게 주저앉은 채였다.

그래서인지 하나 더 잡으란 말이 고깝지 않았다.


단검도 하나 남았겠다, 마지막 놈까지 내 손으로 죽여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그 장면까지 찍어야 몸값도 시원하게 오를 것 같았고.


무엇보다 스킬 두 번은 더 쓸 힘이 남았는데 오크 투사의 움직임이 눈에 훤했다.

죽인 둘보다 더 쉽게 잡아낼 자신이 넘쳤다.


*


고찬성은 각성자가 헌터보다 상위 존재란 말을 믿지 않는다.

게이트가 열리며 등장한 미지의 힘. 마나를 동반한 전투는 각성과 비각성만으로 재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목숨을 건 전투 상황에 적응을 못 해 게이트 공포증에 걸린 각성자가 한 둘이 아니다.

적응했다고 호들갑을 떨다가 중요한 순간에 몸이 굳는 각성자도 많다.


게이트는 지구와 겹쳐진 또 다른 세상이며, 그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류에 적대적이다.

적이 눈앞의 몬스터가 아니라 이세계 전체이기에, 알량한 인간의 육체를 스쳐 가는 마나가 아니라 그 세계 자체를 관조하는 능력. 경험이 중요해진다.


고블린과의 목숨을 건 사투.

오크와의 목숨을 건 사투.

오크 부족과의 목숨을 건 사투의 끝.


목숨을 건다는 공포를 오롯이 넘어설 수 있을 때야 헌터는 성장한다.

그리고 그렇게 성장한 헌터는 대부분의 각성자를 능가한다.


마나를 활용해낸단 조그만 특수성은 생각보단 중요하지 않다.

지구에 게이트가 열리기 시작한 지도 수십 년, 헌터 병기는 놀랍게 발전했다.


고찬성의 손에 들린 대물 저격총 K99는 포탄을 상회하는 괴력을 가졌다.

포신보다 빠르게 목표를 바꿀 수 있고, 얼마간은 유도 성능조차 있었다.


그것은 퍼플 게이트의 악몽이라 불리며 수많은 각성자의 자신감을 꺾은 오크 투사조차 손쉽게 숨통을 끊었다.

그런 만큼 아무나 사용할 수 없는 헌터 병기, 웬만한 각성자는 손도 대지 못 할 병기였다.


‘버릇없는 새끼.’


고찬성은 그 병기로 감히 자신에게 턱을 치켜든 각성자 백규에게 보여줄 생각이었다.


이곳이 게이트라는 걸.

각성이라는 운만으로 헤쳐가기에는 너무나도 험난한 장소라는 걸.

풋내기 각성자인 자신과 거대 길드에서 숙련된 헌터의 격차가 엄청나다는 걸.


투웅!

K99가 불을 뿜었다.

과장 보태 웬만한 탄환은 피부도 뚫어내지 못한단 오크 투사가 단 한 발로 숨통이 끊겼다.


떡장갑 각성자와 작살의 보조까지 야무지게 활용한 헌터의 전술.

몹몰이라는 지엽적 임무를 수행하는 각성자는 상상 못 할 풍경이었다.


‘게이트 속 세상은 세계와 세계가 맞붙는 것이다.’


상대는 오크 투사가 아니라 오크 부족 전체였고, 그렇기에 우리 지구인들도 파티 전체로 맞서야 했다.


투웅! 투웅!

K99가 불을 뿜을수록 흥이 올랐다.


오늘 선발대가 상상 이상으로 잘 해줬다.

인솔을 D급 헌터가 맡았다고 했나?

몰아온 오크 숫자가 예상보다 삼 할은 많아서 강 쪽에 병목 현상이 생겼다.


오크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이거 어쩌면 임무를 내일까지 끌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팀장님. 퇴각하기로 약속한 라인이 돌파당했습니다.”

“그래서 뭐? 그림이 이렇게 좋은데 물러나면 바보 소리나 듣지. 계속해.”


고찬성은 부하 헌터를 사뿐하게 비웃어준 후 경험 많은 헌터의 위용을 거듭 알렸다.

달아나는 짐꾼과 추격하는 오크들이 제멋대로 얽혀 저격하기가 쉬웠다.


“퇴각 예비조에서 저격이 가능한 헌터를 추려 모아라. 이곳에서 최대한 숫자를 줄인다.”


흥이 올라 기세를 이어가기로 했다.

파티 전체를 수족처럼 부리는 팀장만 가능한 명령이었다.


“이 이상 후퇴를 미루다가는 짐꾼들이 다칠 텐데요.”


부하 헌터가 말꼬리를 흐렸다.


“게이트의 팀은 전체가 한 몸이다. 때로 적의 숨통을 끊기 위해서 피륙의 상처쯤은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인데, 네 생각은 다른가?”


부하 헌터는 짐꾼의 피해를 피륙의 상처로 비유하는 무심함에 혀를 내둘렀다.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기를 들지는 않았다.

퇴각을 준비하던 부대에서 헌터 여럿이 소총을 들고 나왔다.


짐꾼 뒤로 꼬리를 문 오크에게 총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짐꾼 쪽에서 부상자가 나오고 있지만 허용 범위 내였다.


발 빠른 사람을 게이트 바깥으로 보내 추가 짐꾼을 고용하고, 생존 짐꾼에게 보너스를 주면 별문제는 없을 터였다.

게이트 임무 중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건 짐꾼들도 잘 아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한참 고찬성의 총구가 정글 곳곳을 누비던 참이었다.

스코프 속에서 이상 현상이 관측되었다.


‘저놈들이 왜 저렇게 빠르지?’


오크에게 던져준 짐꾼이 쓰러지질 않았다.

언제 우왕좌왕했냐는 듯 정글을 비집고 잘도 도망쳐댔다.


짐꾼으로 세워둔 장벽이 무너져가고 있는 셈인데, 그곳에서 낯익은 청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저 새끼는?’


각성자 백규였다.

진즉 후방으로 피신했어야 할 놈이 오크 대가리를 분리해내고 있었다.


‘뭐야?’


고찬성은 눈을 몇 차례 깜빡였다.

잔뼈 굵은 저격수의 눈으로도 오크 목이 떨어지는 이치가 올바로 파악되지 않았다.


단검이 그리는 호선이 바람처럼 오크를 스쳐 지나면 목이 떨어졌다.

그 광경이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오크의 힘을 역이용하고 있잖아.’


한참을 들여다 봐 사태를 파악하고 난 이후에도 놀라움은 그대로였다.


적의 힘을 빌려라.

말이 쉽지 숙련된 각성자도 하기 어려운 기예.


거기 저놈의 목적은 오크를 참살하는 것이 아니었다.

놈은 오크 투사에게 접근하는 와중에 오크를 도륙하고 있는 거였다.

그냥 두면 도망치는 짐꾼이나 헌터들에게 해를 끼칠 경로로 이동하는 오크만 골라서.


“괴물이다.”


고찬성이 가까스로 인정하기 싫은 말을 내뱉은 때.

놈이 쥔 헌터 병기가 푸른 빛을 띠었다.

그제야 마정석을 활용하기 시작한 거였다.


고찬성은 백규가 오크 투사를 상대하는 모습을 홀린 듯 바라보았다.


헌터 병기와 스킬을 한 몸으로 조화시키는 능력.

눈앞에 둔 오크 투사를 버려두고 멀찌감치 떨어진 오크 투사의 뒤를 노리는 판단력.

상체뿐 아니라 하반신에도 적용 가능한 스킬 응용력.


어느 것 하나 꼬투리 잡을 부분이 없었다.


‘어떻게 저런 놈이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지?’


게이트 시대.

달리 상상하는 모든 것이 가능해진 시대.


고찬성은 삼화 길드의 팀장으로서 저런 괴물도 나타날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래서 더 속이 쓰렸다.

저놈은 그 존재만으로 각성자와 헌터. 마나를 다루는 신 인종의 격차를 증명해내고 있었다.


‘놈이 전장을 지배하고 있다.’


저격수의 눈에 뒤바뀐 전황이 훤히 보였다.

짐꾼들이 달아난 이후 헌터들까지 달아나기 시작했다.


팀장 명령 없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

그 중심에 저놈 백규가 있었다.

전장을 헤집는 것만으로 백 명이 넘는 파티를 이끄는 거였다.


“퇴각한다.”


접착제로 붙어버린 듯한 입술을 간신히 떼어 말했다.

자신은 대 삼화 길드의 제1팀장이 될 사람.

전장에서 시기와 질투보다 앞세워야 할 것이 뭔지는 알았다.


“퇴각이다!”

“퇴각 명령이 내려졌다!”

“모두 돌아선다!”


부하 헌터들이 기다렸다는 듯 목청을 드높였다.


고찬성의 입가가 푸르르 떨렸다.


*


“쩔었습니다.”


캠프를 차리자마자 나혜연이 조르르 달려왔다.


“오크 투사까지 썰어버리시다니 대단하십니다. 헌터 병기랑 스킬을 따로 쓰는 사람이 많은데 간단하게 해내 버리시더라고요! 백규님 같은 각성자가 프리인 게 이해가 안 갑니다. 길드들이 눈깔이 뒤집혔을 텐데 말이죠.”

“우리 오빠는 각성한 지 며칠 안 돼서 그래요.”


나보다 민이가 신나 입을 열었다.


“어쩐지 닮았던데 남매셨어요?”

“네. 남매에요.”

“오빠도 동생도 너무 잘생기고 예쁘시네요. 부러워라.”

“와핫. 그런가요?”


나혜연은 짐꾼 출신답게 사회성이 좋았다.


“임무 때나 오시지 너무 빨리 오신 거 아닙니까? 그러다가 고찬성 눈 밖에 나겠습니다.”


그래서인지 걱정이 됐다.

귀동냥으로는 퇴각 명령을 내린 고찬성 표정이 썩었다던데, 나 대신 나혜연을 괴롭히고도 남을 사람이 고찬성이었다.

그러나 그건 내가 고찬성을 너무 높게 평가한 거였다.


“실례합니다. 각성자님.”


고찬성은 다이렉트로 날 찾아왔다.

나혜연이 황급히 엉덩이를 뗐으나 이미 늦어서, 고찬성의 서늘한 시선이 훑어가고 난 뒤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팀장님.”

“오늘 임무에 의논할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들어보겠습니다.”


고찬성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나는 앉고 고찬성은 여전히 서 있으니 그 자체로 상급자가 하급자의 보고를 받는 느낌이었다.


“왜 그런 돌발 행동을 하셨습니까?”


고찬성은 권하지도 않은 자리에 앉았다.

접이식 의자는 스스로 폈으니 너그러이 봐주기로 했다.


“돌발 행동이라뇨?”

“선발대 임무는 오크 부족이 강변에 이르러 끝났습니다. 백규 각성자님은 선발대와 같이 후방으로 피신하셔야 했죠. 아닙니까?”

“보통은 그렇겠지요.”

“각성자님이 전투에 참여하는 바람에 임무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원래라면 오늘로 끝날 임무가 내일까지 이어지게 생겼단 말입니다.”


나는 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라고?

표정으로 말했다.


“퍼플 게이트 임무를 모르시는 것 같은데 파티원이 백 명입니다. 그 사람들 인건비, 장비값이 무시무시한 수준이지요. 무슨 말인지 모르시겠습니까?”

“모르겠는데요.”

“삼화 길드는 이번 임무에서 백규 각성자님의 돌발 행동으로 인한 손해 배상을 청구할 것입니다. 그게 마땅하겠지요.”

“마땅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느새 고찬성과 난 눈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계약서에 명시된 제 역할은 선발대입니다. 그 임무는 성공적으로 마쳤지요.”

“선발대 임무는 성공하셨지만 전체 임무는 망치셨습니다.”

“전체 임무를 망친 건 제가 아니라 팀장님이시죠.”

“제가요?”

“예. 팀장님이요.”


내가 대단히 단호하게 나오자 고찬성은 말문이 막혔다.

나는 그 기세를 놓치지 않았다.


“선발대 임무를 맡은 각성자가 임무 이후에 할 행동에 대해서는 정해진 바가 없습니다. 후방에서 휴식을 취하기도 하지만 때로 전투를 돕기도 하죠.”

“전투를 돕는 건 관례적으로 거의 없는 일입니다.”

“아예 없는 일도 아니죠. 거기 저는 전투를 방해한 게 아니라 도왔습니다. 전투를 도운 것으로 임무를 망쳤다니 법정으로 가면 꼴이 좋으시겠네요. 누가 봐도 팀장 잘못 아닙니까. 제 행동이 전투에 방해가 될 것 같으면 따로 지시가 있었어야죠.”


고찬성이 합죽이가 됐다.


“팀장 체면 구겨서 뿔난 건 알겠는데 피곤하니 이만 돌아가시죠. 저나 팀장님이나 내일 임무 마무리하면 안 볼 사이 아닙니까? 깔끔하게 임무 끝내고 갈 길 갑시다.”


팩트 폭행에 고찬성이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팀장님 좀 가라고요. 우리 쉬어야 한다고요.”


민이가 고찬성이 앉은 의자를 툭툭 건드리며 도발적인 축객령을 내렸다.


“짐꾼 따위가 낄 자리가 아니다.”


고찬성은 나 대신 민이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민이가 찔끔 안색이 굳는 모습이 길드원 태가 남은 듯싶었다.


“짐꾼 따위라뇨? 지금 그거 문제 있는 말씀이신 거 아시죠?”


오빠로서도 전직 짐꾼 출신으로서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발언이었다.


“사과하십시오. 사과 안 하면 차별 발언으로 정식 제소하겠습니다.”


고찬성은 순간 뭐 이런 놈이 다 있냐는 표정을 지었다.


“삼화의 팀장님이잖아. 짐꾼이 뭐로 보이겠어? 오빠가 좀 참아.”

“오빠?”


고찬성이 나와 민이를 번갈아 보았다.

그 시선이 제법 오래 민이에게 머물렀다.

싸했다.


“사과 안 하십니까?”


고찬성이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미안합니다. 제가 흥분해 결례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럼 가십쇼. 여기 짐꾼 친구 말대로 쉬어야 합니다.”


고찬성은 맥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터덜터덜 걸어갔다.


‘알아봤나?’


그래도 상관없었다.

사표를 던지고 곧바로 동종 업계에서 일하는 건 불법이니 걸어 넘어질 순 있겠지만, 대처할 수단은 차고 넘쳤다.

대처할 수단이 없었으면 애초에 민이를 데려오지도 않았을 거다.


“씨발!”


보일락말락 한 지점에서 고함치는 소리가 났는데 굳이 책잡지는 않기로 했다.

오크 투사와의 전투로 아직 긴장한 근육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고찬성의 발칙한 도발이 재미있었달까?

물론 고찬성은 재미없었겠지만.


“와. 씨발이 이렇게 듣기 좋은 말이었나?”

“그러게.”

“오늘 저녁은 밥만 먹어도 맛있겠는데요?”


우리 셋은 저녁을 함께 먹었다.

나혜연의 말대로 맛보다 영양, 영양보다는 칼로리만 신경 쓴 전투 식량이 너무 맛있었다.

마시지도 않은 술에 취한 기분이랄까.


“백규 각성자님. 팀장님께서 메시지 남기셨습니다.”


그렇게 기분 좋은 저녁을 보내고 있을 즈음 고찬성의 부하가 서류 한 장을 들고 왔다.


-오늘 처리한 일이 많아 내일 임무에는 선발대가 필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약속한 보수는 모두 지급하겠으니 먼저 물러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미친.”


육성이 터졌다.


“미친.”


민이도 육성이 터졌다.


“미친. 조기 퇴근을 절받고 하네.”


말씨 곱던 나혜연조차 비속어를 내뱉었다.


‘갈궜더니 조기 퇴근하라니 사실 좋은 사람이었나?’


몰랐다.

어쨌든 난 조기 퇴근을 마다할 사람이 아니었다.


짐꾼 시절에는 단 한 번도 조기 퇴근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어서 나가서 역시 짐꾼 시절에는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것.


‘벌었으니 써야지.’


플렉스라는 걸 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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