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꾼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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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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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7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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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7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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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19.탐사(1)

DUMMY

레드 게이트 앞에는 백여 명의 길드원이 진을 쳤다.


“연구국 파티는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보급팀이 거의 다 들어갔습니다.”


먼저 들어간 레드 게이트 공략팀이 보급 자원을 들여보내고 있었다.

우리 파티는 레드 게이트 공략이 이뤄지는 틈에 끼여 들어가는 거였다.


“보급이 필요할 정도면 절반 이상 진행됐나 보군요.”

“그렇죠. 늦어도 사흘 안에는 게이트가 닫힐 겁니다.”

“그럼 우린 다른 게이트로 나오게 되겠네요.”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연구국이 게이트 좌표를 들고 올 테니까요.”


지구와 게이트 속 세상은 거울과 유사한 연관성을 갖는다.

따라서 게이트의 좌표 정보를 복수로 가지고 있다면 이론상 생뚱맞은 게이트로 탈출할 수도 있는데, 어디까지나 이론상인 것은 결정석의 영향을 받지 않는 지역에서의 몬스터 분포도 때문이다.


블루 게이트는 고블린.

퍼플 게이트는 오크가 주 몬스터이지만 결정석의 영향을 받지 않는 지역에서는 어떤 몬스터가 나올지 모른다.


게이트 시대는 고작해야 삼십 년.

인류가 아는 건 결정석이 열어젖힌 게이트의 크기에 따라 꼬이는 몬스터의 종류뿐.


결정석의 영향을 받지 않아 이세계를 자유롭게 유랑하는 몬스터의 생태는 거의 모른다.

그래서 블루 게이트의 영향권 근처에서 레드 게이트에서도 보기 어려운 위험 몬스터를 만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난다긴다하는 헌터들이 이세계 탐방보다 교외 헌팅을 우선시하는 이유가 거기 있었다.

이세계 탐방에는 위험한 변수가 너무 많았다.


‘전쟁 나가는 것 같네.’


그래서 탐사 파티의 장비 수준도 상상을 뛰어넘었다.


기관총 달린 미제 군용 지프가 두 대.

험지에서 길을 낼 용도인지 삽날에 원형 톱날을 붙인 불도저.

덩치 큰 차량들을 며칠이고 움직이게 할 탱크로리 등.


탐사보다는 개척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준비물이 즐비했다.

파티는 스무 명 정도로 백여 명의 파티가 꾸려진 오크 부족 섬멸전의 반의반도 안 되는 숫자인데, 차량 덕분에 규모는 오히려 더 컸다.


“그럼 가봅시다.”


육중한 체구를 자랑하는 차량이 차례차례 게이트를 넘어서고, 우리 차량이 뒤따라갔다.

차량으로 게이트를 넘어서는 기분이 묘했다.


짐꾼 오 년이면 짧은 시간은 아닌데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경험이었다.

레드 게이트는 몇 번인가 구경한 적이 있지만 모조리 도보로 들어갔었다.


“이제부터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당연히 하고 계시겠지만 긴장하세요.”


게이트에 들어선 지 오 분이나 지났을까.

황길동이 더욱 가라앉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주변 몬스터 밀도가 현저하게 적어졌다.

레드 게이트의 상징 트롤이 모습을 감추고, 이세계의 대자연만이 어디 해보라는 듯 우리 파티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렇게 십여 분쯤 들판을 달렸을까.


“여기는 이동 중 지휘를 맡은 괴수전담과다. 전방 일 킬로미터 지점 오크 부족을 섬멸하고 거점으로 삼는다. 오버.”


무전이 들어왔고.


투타타타타!

선두의 두 군용 트럭이 기관총을 쏴댔다.

아주 잠깐이었다.


“오크 투사 전멸. 서울 길드의 선발대는 괴수전담과를 엄호하도록. 잔존 오크를 정리한다. 오버.”


무전이 들어왔다.

이번에는 시간이 꽤 걸렸다.


“오크 부족 섬멸 완료. 임무 목표 중 하나인 오크 족장은 발견되지 않았다. 불도저가 먼저 진입해 캠프 자리를 고르도록 하겠다. 오버.”


시간이 걸렸다곤 해도 엄청나게 짧았다.


“엄청나게 빠르네요.”

“저도 놀랐습니다. 괴수전담과 놈들이 몬스터 잡는 귀신이란 말은 들었어도 몇 명도 안 왔을 텐데··· 엄청나네요.”


황길동과 난 비슷하게 놀랐다.

난 아직 짐꾼 태를 다 벗지 못해서였고, 황길동은 게이트 업무가 익숙하지 않아서였다.

어쨌든 우리가 후방에서 놀라기만 해도 좋게 임무는 스피디하게 진행되었다.


‘시간 싸움이니까.’


게이트 탐사는 무한정 진행할 수 있는 임무가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몬스터 밀도가 높아지고 황소지옥 또한 포위망을 좁혀온다.


게이트 내부에 군 기지를 짓지 못한 이유가 거기 있다.

값비싼 장비로 아무리 무장해도 황소지옥으로 뒤덮이고 나면 답이 없는 것이다.


“자. 오늘은 이곳에서 묵습니다! 모두 프로들이니 자유롭게 행동하시되 해지기 전까지는 이곳으로 모이십시오! 비상사태 시 경보를 들을 수 있도록 반경 이 킬로 너머로는 가시지 않는 걸 권장 드립니다!”


연구국장이 메가폰을 내려놓자 파티원들은 저마다 캠프를 펼치기 시작했다.

대부분 차량 지붕에 텐트를 붙이고 와 캠프 차리는 속도도 일반 게이트보다 몇 곱절은 빨랐다.


“그럼 전 전투원의 역할을 하러 가보겠습니다. 백규님은 그냥 쉬고 계세요. 며칠은 놀아도 되실 겁니다.”

“저도 같이 가면 안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여기 오크를 다 처리했으니 싸울 일도 없을 테고, 저 혼자로도 충분해요.”

“폐를 끼치기가 미안한데요.”

“미안할 것까지야 있겠습니까? 백규님은 정부 측 사람으로서 저기 저놈들이 헛짓거리를 모의하지는 않을지 감시해야 하니까요.”


황길동이 신성 길드와 서울 길드 쪽 사람을 가리켰다.

미리 전해 들은 바로는 두 길드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일부러 앙숙 관계의 길드를 참여시킨 거였다.


“기록은 하게 해주실 겁니까? 사실 여기 따라온 건 저기 연구국 사람들처럼 게이트 탐사를 하고 싶어서였거든요.”

“매번 똑같은 탐사인데 궁금할 것이 있겠습니까?”

“헌터넷에는 안 올라오는 정보잖습니까. 짐꾼으로 살아남으려면 게이트 공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알겠습니다. 원래는 안 되는 건데 제가 길동이 아닙니까? 백규님이 원하시는 대로 되게 하겠습니다.”


황길동은 주먹을 꽉 쥐어 보이더니 연구국 측 사람들과 어울려 갔다.

남은 연구원들은 뭔가 읽느라 정신이 없고, 길드 사람들은 괜히 날 흘기며 거리를 뒀다.


괜히 따 당하는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신성 길드와 서울 길드.

한국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두 길드에서도 내로라하는 헌터들이 내 눈을 피하고 있었다.


이것이 공권력의 힘인가?

각성자 헌터가 일반 헌터보다 더 많은 파티가 짐꾼 출신 백규를 매섭게 다그치긴커녕 눈을 피하다니.


나는 빌런전담과가 조금은 더 좋아졌다.

원래 매우 꺼려졌으니 조금 좋아졌다고 사람 잡는 일을 함께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게 시선만으로 괜히 헌터들을 괴롭히던 차.

홀로 차를 마시는 김설아가 눈에 들어왔다.


신성과 서울 길드 사람들이 연합 팀을 꾸려 탐사를 떠나고 있었다.

대부분이 캠프를 나서는데도 김설아는 꿈쩍할 생각을 않았다.


아마 황길동은 떠나고 나는 남은 것과 유사한 이유일 터였다.

첫날. 막 캠프를 차리고 주변 탐색을 하는 시점에서 S급의 무력은 필요하지 않으리라.


순수 무력만 따지자면 더 강하다고 평가받는 사람도 있지만 인지도로 따지면 김설아는 단연 톱이었다.

헤아리기도 어려운 돈을 번단 소문이 많았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광고료, 후원금만 해도 연예인 수준은 한참이나 초과하고 남음이 있었다.


그 돈을 조금이나마 우리 어머니 병원비에 보탰으면 하고 바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검은 태양 아래를 버텨낸 원동력 중에는 김설아에 대한 원망도 전연 없진 않았겠지.


그러나 난 각성하고 돌아왔다.

원망의 원인인 어머니의 병은 급격하게 나아지고 있었다.


더구나 먼저 내민 손을 거절한 건 분명 내 쪽이었다.

김설아가 다시 거절하기까지는 꽤 시간이 흘렀으니 많은 일이 있었을 터다.


그 많은 일이 김설아를 어떻게 바꿔놓았는지는 모른다.

다만 정부 주재의 탐사 임무에 참여한 이유는 추측할 수 있다.


‘신성의 얼굴이 올 곳이 아니지.’


이번 탐사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과기부의 게이트 연구국.

S급 헌터가 참여한다는 건 극히 이례적이라 뒷말이 많았다.

신성이 더는 감당할 수 없는 유지비 때문에 김설아를 버리려 한다는 거였다.


김설아는 빙제.

세계에서도 손에 꼽히는 얼음 능력자로, 화기든 냉기든 원소를 다루는 능력자의 마나 회복은 어렵다.


불을 삼키든 얼음을 삼키든 해서 상온에서 줄어드는 재생력을 보충해줘야만 하기에, 억지로라도 신체 쪽 스킬을 찍으려고 노력한다.


밥만 먹어도 마나 재생력이 오르는 신체 스킬을 찍으면, 마나 재생력이 오히려 음수가 되는 원소 스킬을 보완할 수 있다.

이처럼 효율적으로 마나를 다루기 위해서는 스킬 밸런스가 맞아야 한다.


상기 이유로 원소 능력 각성자의 성장 곡선은 갈수록 완만해지는데 김설아는 그렇지 않았다.

김설아의 활약은 매번 톱 뉴스를 꿰찼고, 이제는 국내보다 외신의 주목을 받는 실정이었다.


말이 안 됐다.

냉기 스킬에만 올인하고 다른 스킬 개발을 전혀 하지 않았다면 몰라도.


‘올인 형이다.’


김설아의 등 뒤에는 뒷문을 열어놓은 냉동 탑차가 있었다.

얼음 능력자가 마나 회복을 위한 장비로 종종 활용하긴 해도 S급 헌터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장비였다.


“전투도 없었는데 탑차 시동을 걸어놨네. 틀림없어. 돈 딸려서 온 거야.”

“지나가면서 봤는데 안에 침구가 있더라고요. 김설아 저기서 잘 생각입니다. S급이 냉동 탑차에서 잔다니 쪽이 좀 팔리겠는데요.”


앉아만 있어도 김설아 소식이 귀에 꽂혔다.

일과를 마친 연구국장이 날 식사자리에 초대한 탓이었다.


“포션 상자도 하나밖에 없어요.”


뛰어난 원소 능력자는 포션을 쓴다.

포션이란 재능과 무관하게 급속도로 마나를 회복시켜주는 묘약으로 아무리 저렴한 것도 억 단위를 호가한다.

김설아 수준의 각성자가 마셔대는 포션 값이 얼마나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여기가 레드 게이트도 아니고, 그보다 훨씬 윗줄 난이도인데 하나라니 적자란 소문이 사실이었나 보네요.”

“얼음 능력자로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니 말이지. 요즘에는 티비에서 얼굴 보기도 어렵잖아.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화려한 능력자들이 얼마나 많아.”

“광고 단가도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군. 광고비로 손해를 메꾸는 형태라던데, 그것도 어려워진 거지.”

“빚이 엄청날걸요. 신성 길드 시스템은 비용을 헌터한테 떠넘기는 구조잖습니까.”


가만 앉아 들었다.

한때 한 지붕 아래 살던 사람의 뒷담화를 듣는 기분이 묘했다.


뉘앙스를 보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이슈인 듯한데, 나는 잘 모르는 이야기였다.

언젠가부터 난 김설아 뉴스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가끔 민이랑 강철이 형이 주절거려도 싫은 티를 내거나 자리를 피해버렸다.


이제 우리 집 사는 사람 아닌데 미련을 두면 안 됐다.

혹시라도 도움을 바라선 안 됐다.


그래서 외면해온 시간.

김설아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되어버린 듯했다.


그러나 누가 도울 수 있을까.

S급 헌터가 추락하는 걸 누가 막아줄 수 있을까.


‘추락해도 먹고 살 걱정이 뭐가 있겠어.’


스트리밍만 해도 먹고 살겠지.

나는 김설아 걱정을 흩어버렸다.


걱정하기에는 너무 강한 사람이었다.

내 걱정만 하기에도 삶이 벅찼다.


태양이 검붉어지는 때.

그때는 반드시 온다.


그때를 대비하려면 가능한 깊숙이 이세계를 탐사해야 했다.

황소지옥을 사냥하는 건 어려울지라도.


‘응?’


황소지옥을 떠올리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황소지옥의 체내에서는 마정석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사냥 사례가 워낙에 드물어 모든 부위가 연구용으로 쓰이지만, 빨리 썩어서 큰돈은 안 된다.


사냥 자체가 큰 화젯거리는 된다.

수익의 상당 부분이 광고나 후원금인 김설아에게는 황소지옥 자체가 돈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돈벌이의 길드.

연구 자료 확보의 연구국.


두 상반된 집단이 힘을 합칠 주제로 황소지옥만 한 것이 있을까?


괴수전담과는 차치하더라도 황길동의 실력은 김설아의 아래가 아니다.

더구나 대인전에 한정해서는 백이면 백 황길동이 우세하다.

김설아가 힘으로 좌지우지할 임무는 아닌 것이다.


이번 임무.

김설아의 최선은 황소지옥 사냥이었다.


*


임무 닷새째.

파티는 캠프를 옮겼다.


두 번째 캠프는 사방이 탁 트인 구릉지.

해발고도가 상당히 높아 깎아지른 단애가 즐비하고, 무릎 위로 웃자란 풀도 없는 바위투성이 지형이었다.


“잘 쉬었지요? 이제 몸 좀 푸셔야죠.”


새로 옮긴 캠프에서 난 황길동을 따라나섰다.

여전히 기분 나쁜 웃음에서 황길동의 의도에 휘말린단 마음은 있었으나, 워낙에 지루한 닷새여서 그냥 따랐다.


지난 닷새.

난 게이트에 관한 거라면 뭐든 공부할 수 있단 생각이 얼마나 오만한 것이었는지 알게 됐다.

인기글을 목표로 정제되어 올라오던 헌터넷의 글만 보다가 데이터 그 자체를 보니, 스스로 공부로 대성할 스타일은 아니란 자각이 있었다.


황길동이 이 임무에 참여한 목적이 날 강하게 만드는 것일 진데 이 이상 빼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다.

생긴 것도 성질도 마음에 안 드는 인간이지만 내게 도움이 되는 인간이었다.


“바위 트롤입니다.”


연구국 사람들이 부지런히 시료를 채취하는 동안 황길동과 나는 바위 트롤을 마주 보고 섰다.


바위 트롤.

퍼플 게이트부터 등장하는 몬스터로, 오크와는 달리 주변 지형이 바위투성이일 때만 나오는 녀석이다.


흔히 볼 수 없는 만큼 강하다.

또 빨라서 대부분의 중소 길드는 바위 트롤이 나오는 지형은 입찰도 하지 않는다.


“백규님 수준에서 좀 과한 놈이긴 한데, 그간 강해지셨잖습니까? 해보세요. 어려울 것 같으면 제가 개입할 테니까요.”

“오늘따라 유독 표정이 밝으시네요.”

“그럴 수밖에요. 팔자에도 없는 게이트 이 순간을 위해 들어왔다고 할 수 있거든요. 점 찍은 각성자가 빌런전담과가 아니라 가르치지도 못했는데, 여기서만큼은 확실하게 교육할 수 있잖습니까.”


황길동은 ‘교육’에 악센트를 줬다.


“그런가요?”


헛웃음을 삼키며 걸음을 뗐다.

바위 트롤이 날 인식하고 경계에 들어갔다.

그리고 곧장 덤벼드는데 평범한 각성자라면 스킬을 써보지도 못하고 당할 만큼 신속했다.


근데 난 평범한 각성자가 아니었다.

황길동이 보고 놀란, 속리산식구파를 일망타진하던 시절의 비범한 각성자도 아니었다.


직감을 썼다.

2레벨 직감은 바위 트롤의 움직임을 한 박자 빠르게 캐치해냈다.


물론 그것만으로 바위 트롤을 감당하기는 어려웠다.

바위 트롤은 움직임 자체가 워낙에 빨라서 보고도 맞아 죽는 경우가 흔했다.


근력을 썼다.

평범한 각성자라면 그냥 힘이 세지는 용도로 쓰겠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엄지발가락에 스킬을 쓰고 허리를 뒤로 젖혔다.

엄지가 땅을 파고들 때쯤 바위 트롤의 주먹이 머리칼을 스치고 지났다.


땅에 파고든 엄지를 기점으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복사뼈에서 종아리로 순간적으로 근력 스킬을 돌렸다.

대퇴부에서 허리로 이어지는 라인부터는 2레벨 근력을 돌렸다.


그렇게 질러낸 단검.

일전에 오크 투사를 상대하기도 한 삼백만 원짜리 헌터용 단검에 실린, 총합 10레벨도 넘는 마나가 푸른 호선을 그렸다.


쿠직!

바위 트롤의 가슴팍이 깨졌다.

함께 단검 날도 부러졌다.


바위 트롤이 몇 걸음 물러섰으나 방어력이 워낙에 지랄 맞은 놈이라 죽을 상처는 아닐 거다.

나는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 걸음도 엄지가 단단하게 땅을 파고들었다.


쿠직!

새로 꺼내 든 멀쩡한 단검이 바위 트롤의 가슴팍 깊숙하게 박혔다.

나는 쓰러진 놈이 날뛰지 못하도록 양쪽 무릎으로 두 팔을 누르고는 숨통이 끊길 때까지 기다렸다.


“죽었네요.”


돌아섰더니 황길동이 기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웃는 얼굴보다는 호감이었다.


“교육하신다면서요. 가르칠 게 있습니까?”


황길동은 답 없이 고개만 저었다.


“물어보실 거 있으면 물어보셔도 됩니다.”


황길동은 붕어처럼 뻐금거리더니 간신히 입술을 열었다.


“직감 말고 쓰신 스킬은 근력이죠? 총합 몇 번이나 사용하신 겁니까?”

“2레벨이 네 번. 1레벨이 네 번입니다.”

“2레벨이요?”

“예. 꽤 됐어요. 근력 2레벨 찍은 지. 참고로 직감도 2레벨입니다.”


황길동은 다시 붕어 모드를 가동했다.

내장 기능에 사시 모드도 있는지 눈동자가 왔다 갔다 했다.


“발바닥부터 어깨까지 한꺼번에, 그것도 스킬 레벨을 섞어서 전부 다 돌리셨단 거죠? 초짜가 그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하니까 되던데요. 게임도 아니고 스킬에 쿨타임도 없잖습니까.”

“마나는 얼마나 남았습니까?”

“바위 트롤 하나 정도는 더 잡을 수 있을 것 같네요.”


문답을 나누는 사이 황길동은 표정 변화가 잦았다.

문답이 끝나고도 표정 변화가 한동안 이어지더니 오래 수행한 승려 같은 얼굴이 되었다.


“저는 어떻게 보십니까?”

“예?”

“백규님 저 황길동도 솔직하게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설마요. 저 이제 각성한 지 석 달쨉니다.”

“석 달째지만 길은 보이지 않습니까? 마나만 넉넉하면, 장비만 좋은 거 끼면 못해볼 것도 없단 생각 안 드십니까? 이제 전 솔직히 장담을 못 하겠는데요.”


황길동은 승려 같은 표정으로 께름칙한 말을 꺼냈다.


“말 안 되는 소리 그만하고 돌아갑시다. 연구자들이 기다리잖습니까.”


미어캣처럼 우릴 보고 있는 연구국 사람들이 도움을 줬다.


돌아가는 길.

황길동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수다스러운 인간이 떠들지도 않고, 기분 나쁘게 웃지도 않고 핸들만 붙든 모습이 터지기 직전의 폭탄 같았다.


퍼퍼펑!

진짜 폭탄은 다른 곳에서 터졌다.

하늘이라도 찢어졌는지 천둥을 방불케 하는 굉음에 승려 모드인 황길동조차 브레이크를 밟았다.


“몬스터가 아니다. 신성 길드의 김설아 헌터가 그리폰을 격추했다. 무전을 듣는 파티원들은 모두 안심하도록. 오버.”


무전이 들어왔다.


“끈 떨어진 헌터인 줄 알았더니 돌았군. 그리폰을 일격에 격추했어!”

“원래 땅에 끌어내려서 잡는 거잖슴까. 공중 격추라니 이게 무슨 총 게임도 아니고.”

“총으로는 만 발을 쏴도 안 죽는··· 어? 무전 안 꺼졌슴다!”


쓸데없는 무전까지 잔뜩 들어왔다.


그리고 그날 저녁.


“황소지옥을 사냥하려고 합니다.”


김설아는 제 속내를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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