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자들이 막 다 퍼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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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수박
그림/삽화
DDD
작품등록일 :
2024.09.05 23:46
최근연재일 :
2024.09.19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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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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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4화. 렉카

DUMMY

솟구친 괴물의 피가 건우의 얼굴을 흠뻑 적셨다. 그 때문에 순간적으로 앞이 보이질 않았다. 사물 분간이 안 되는 상황. 건우는 당황하지 않고 즉시 괴물의 위에서 떨어져 착지했다. 후웅! 괴물이 발악하듯 휘두른 손아귀가 건우의 머리를 가까스로 스쳤다.


위험했다. 죽을 뻔했다. 건우는 확신했다. 방금 저 괴물의 손아귀에 잡혔으면 즉시 몸이 상체와 하체로 분리되었을 것이라고. 저 괴물은 인간을 쉽게 찢을 만한 힘이 충분하게 있어 보였다.


놈이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미친 듯이 발악했다. 건우는 그 틈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무기로 쓸 만한 게 뭐 없을까.


없다. 아까 썼던 깨진 보도블록은 놈의 왼쪽 눈에 박혀 있었다. 이러나저러나 무기로 삼을 건 목검밖에 없었다. 날조차도 없는 뭉툭한 목검으로.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며, 건우는 굳은 표정으로 놈을 바라보았다.


‘의심하지 말자. 해낼 수 있다.’


긴장감이 온몸을 옥죄었다. 하지만 검은 느슨하게 쥐었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하지. 당황하면 될 것도 안 된다.


열심히 검을 휘둘렀던 그 순간들을 떠올렸다. 힘들고 지쳤지만 포기하지 않고 우직하게 했었지. 그 노력들이 드디어 빛을 발할 순간이다.


괴물이 쿵쿵거리며 다가왔다. 하지만 방향이 좀 이상하다. 눈 한쪽이 보이지 않기에 거리 감각에 맛이 간 모양이다. 건우는 놈의 공격을 수월하게 피했다.


‘속도는 빠르지만, 공격이 부정확해.’


저건 피할 수 있다.


왼쪽으로 휙 몸을 돌리며 놈의 다리를 쳤다. 따악! 경쾌한 소리. 도저히 타격이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놈이 주춤거렸다. 분명 타격이 있다는 소리다. 날붙이가 아니라고 해서 놈을 상대하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지.


자그마치 초월자가 준 목검이다. 비록 목검이라 할지라도 어찌 평범하겠는가.


망설이지 않고 놈의 다리를 연거푸 두드렸다.


따닥!


키에에엑!


쿵!


휘청이던 놈이 넘어졌다. 건우는 그새를 놓치지 않았다. 즉시 달려들어 놈의 사타구니를 찔렀다. 푹! 마치 가죽이 눌리는 것처럼 놈의 툭 튀어나온 사타구니의 그것이 움푹 들어갔다. 상처를 입히진 못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


괴물이 눈을 부릅떴다. 그대로 뚝 굳어졌다. 아무런 비명조차 내지 못했다. 건우는 확신했다.


‘이 새끼, 역시 수컷이었어.’


어째 툭 튀어나와 있더라니, 역시나 사타구니가 급소였다.


그렇다면 집중 공격이지. 건우는 냅다 달려들어 놈의 사타구니를 힘껏 발로 찼다. 놀라운 고자킥!


파각! 무언가 깨지는 느낌과 함께 놈의 시꺼먼 눈알에 흰자위만 남았다.


놈이 게거품을 물었다. 아예 얼어붙은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어우, 잔인해라.

-못 보겠다.

-쯧쯧.


초월자들의 목소리였다. 주로 남자들의 목소리였는데, 지켜보고 있었나 보다.


건우도 사실 조금 동감했다. 왠지 미안해진다. 저 고통, 남 일 같지 않다. 남자라면 누구나 알지.


‘그러게 누가 세상 밖으로 튀어나오래.’


미안함은 잠시, 목숨을 끝내줄 때다.


아무리 괴물한테도 먹히는 목검이라지만 이걸론 목숨을 끊을 수 없는데. 뭐 쓸만한 거 없을까.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쓸만한 걸 발견했다.


길쭉한 철제 표지판이다. 횡단보도 표시가 그려진 표지판. 그 표지판이 인도에서 뽑힌 채 나뒹굴고 있었다. 건우는 그걸 가져와 놈의 심장에 박았다.


아우, 잘 안 박히네.


또 무겁기는 어찌나 무거운지.


하지만 못 들 정도는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놈의 심장에 못 박을 정도도 아니었다.


“뒈져라 좀!”


몸에 힘을 실어 깔아뭉개듯 꾹 눌렀다. 인간 한 명분의 무게가 더해지니 질기디질긴 괴물의 살가죽을 뚫었다. 그리고 마침내.


푸욱!


“······!”


털썩.


심장에 박혔다. 놈이 죽었다.


확실했다. 처치 메시지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어둠에 물든 트윈테일 리자드맨 변종을 처치했습니다!]


건우는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오, 힘들어.’


긴장이 풀리며 잊고 있었던 고통이 밀려왔다.


온몸이 욱신거린다. 괴물에게 조금 스친 것인지 복부에 길게 긁힌 자국도 있었다. 피도 나고.


“아파 죽겠네.”


괴물의 시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진짜 크기는 겁나게 크네. 족히 3미터는 넘어 보인다.


몰랐는데, 나 미친놈이었구나. 이런 괴물을 혼자서 상대했었다고?


-잘했다. 건우 너, 전투 감각 꽤 괜찮은데?

“그거 칭찬이죠?”

-당연히 칭찬이지, 짜식아. 그놈, 꽤 강한 놈이었다. 비록 급소를 공격하는 사내답지 못한 공격을 했지만, 뭐 상관은 없지. 약자가 강자를 이기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써야 하는 법이다.


“저어, 헌터님.”


누군가 말을 건다. 잡아먹힐 뻔한 행인이었다.


“저,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로, 크흡, 살려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 흐어엉!”


행인이 연신 꾸벅 고개를 숙이며 흐느꼈다. 건우는 행인을 토닥여 주었다. 이제 안심하라는 말도 잊지 않고 해주었다. 그러자 행인이 더 서럽게 흐느꼈다.


‘헌터님이라.’


헌터로 착각한 모양이다. 사실 나 짐꾼 나부랭이였는데. 하지만 굳이 그 말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이젠 아니니까.


헌터님, 그 말이 계속 뇌리에 맴돌았다. 그토록 되고 싶었던 꿈. 하지만 도달할 수 없었던 꿈. 그 꿈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난 이제 더는 무능력한 짐꾼이 아니야.’


비록 아직도 클래스는 없지만, 괜찮다.


배우면 된다. 배워서 익히고 성장하여 나아가면 된다. 비록 3주라는 짧은 시간이라지만, 그래도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는가. 그렇게 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하면 된다.


남들이 추앙하는 높으신 헌터님들 못지않게 강해지고 유명해지리라. 기필코.


건우는 연신 꾸벅이며 고마움을 표하는 행인을 뒤로한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보도블록에 지저분하게 흩뿌려진 괴물의 피와 먹히다 만 다른 행인의 시체 조각이 먼저 눈에 보이고,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그 다음으로 보였다.


‘응?’


두리번거렸다. 뭐지? 언제 이렇게 사람이 많아졌어?


수십 쌍의 눈빛이 건우에게 꽂혔다. 왠지 머쓱해져 머리를 긁적이는데, 커다란 트럭이 다가와 앞에 섰다. 뒤늦게 출동한 헌터들인 모양이다.


‘거참 빨리도 오는구만.’


상황이 다 끝난 다음에 오면 무슨 소용인가. 이미 뒈진 사람도 있는 마당에.


그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상황을 살피더니, 이내 다가와 건우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혹시 어디에 소속된 분이신지······.”

“소속 없습니다.”

“예? 소속된 곳이 없단 말입니까? 그럼 프리로 뛰고 계신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만.”


역시나 건우를 헌터로 착각한 모양이다만, 굳이 오해를 바로잡을 생각은 없었다.


사내가 건우를 위아래로 훑었다. 목검, 겉옷 사이로 드러난 새까만 무복. 꼭 모양새로 보기엔 검도장에 다닐 것 같은 모양새. 솔직히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 않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프리로 뛰는 헌터들은 대다수가 형편없는 것도 사실이니.


이내 사내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지어졌다가 사라졌다. 건우는 그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 표정을 놓치지 않은 게 아니었다. 못 봤지만, 건우에겐 항상 함께하는 길드원들이 있었다.


-막내야. 저 새끼 방금 너 비웃었다. 저 새끼 말, 일단 의심하고 봐라.

-맞아. 나도 봤어. 꿍꿍이가 아무래도 있는 것 같은데?


참 고마운 이들이다. 정신 연결이라는 게 이렇게나 좋을 줄이야. 꼭 수호령이라도 달고 있는 것 같잖아.


“알겠습니다. 먼저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덕분에 피해가 거의 없었습니다.”

“에이, 아닙니다. 뭘요. 당연히 했어야 할 일이죠.”

“싸우느라 힘드실 텐데, 이만 가보셔도 좋습니다. 이 괴물 사체는 저희가 치울 테니까요.”


사내가 부하들에게 손짓했다. 부하들이 서둘러 괴물 사체로 향했다. 건우는 즉시 그들을 제지했다.


“잠깐만요.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멈추세요.”

“괴물 사체를 치우려는 겁니다. 아무래도 보기 흉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인도를 점거하고 있으면 행인들이 지나다니지도 못할 겁니다.”


건우는 낯을 사정없이 구겼다. 어째 비웃었을 때부터 느낌이 이상하더라니, 역시나 개같은 렉카 새끼들이었네.


소위 ‘몬스터 렉카’라 불리는 이들. 남이 잡은 걸 냉큼 스틸해 가려고 하는 개새끼들.


“지금 제가 잡은 몬스터를 마음대로 가져가려고 하시는 겁니까?”

“가져가는 게 아니라, 치우려고 하는 겁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인도를 점거하고 있으니······.”

“말장난을 하시네. 그게 그 말이잖습니까. 누굴 호구로 아나. 게다가 신분도 밝히지 않고. 아, 됐고요. 놔두세요. 제가 알아서 처리할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일단 들이대고 보는 게 몬스터 렉카들의 특징이라서. 막무가내로 몬스터를 수거해가려고 하는 것이다.


왜? 몬스터 사체는 돈이 되니까.


건우도 업계에서 5년이나 구른 만큼 잘 알고 있었다.


허둥대다가 애써 잡은 몬스터를 몬스터 렉카에게 놓치는 헌터가 얼마나 많나. 목숨을 걸고 잡았는데 놓치면 그것만큼 허탈한 게 없다고 했다.


건우는 그들을 몸으로 막아섰다.


“손대지 마세요. 경고했습니다. 손대면 고소할 겁니다.”

“예? 아니, 그게 아니라.”

“차량번호 외워뒀습니다. 당신들 사진도 다 찍혔어요. 뒤에 사람들, 지금 찍고 있는 거 보이죠? 당신들 누군지 알아내는 거 일도 아닙니다.”


건우가 완강하게 나서자 그들도 함부로 몬스터에 손대지 못했다. 보는 이가 없다면 힘이라도 썼을 테지만, 여기는 사거리 앞, 사람이 너무나 많았다.


그들이 쩔쩔매는 사이 건우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앱을 깔았다. ‘몬스터사체수거서비스’라는 앱. 국가에서 운영하는 앱으로, 소속도 짐꾼도 없이 혼자 다니는 무소속 헌터들을 위해 국가가 개발한 사체 수거 서비스였다.


소정의 수수료만 받고 사체를 수거해주고 해체까지 해준다. 그야말로 무소속 헌터들의 젖과 꿀과도 같은 서비스라고나 할까.


이런 걸 이용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어쩐지 감격스럽다. 그토록 바라던 게 연일 이루어지고 있다. 그 마음을 숨기며 건우는 빠르게 휴대폰을 조작했다.


거래가 잡혔다. 10분 내로 출동해 사체를 수거해 줄 것이다. 해체까지 해주고, 원한다면 판매까지 해주지.


그럴 경우 수수료가 더 붙지만, 소속 없는 무소속 헌터에겐 그만큼 편한 게 없다. 쓸데없는 노력도 안 들이고 돈을 벌 수 있잖은가.


“쳇. 됐다. 공쳤구만. 가자.”

“예, 대장.”


그들이 투덜대며 물러났다. 건우를 향해 노려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치 두고보자는 듯이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목을 긋는 시늉도 했다. 그 행위에 건우는 피식 웃었다. 삼류 악당도 아니고 저게 뭐란 말인가?


뭐, 알 바 아니지. 그나저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이 거대한 사체. 3미터가 넘는 거대한 덩치. 여기서 나오는 부산물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돈 벌었다.’


벌써부터 기대됐다. 과연 이게 얼마나 될까?






*




같은 시각.


“저 개색······.”


건우를 지켜보던 어느 초월자는 욱했다.


“뭐가 어쩌고 어째? 두고보자고? 죽일 거라고? 감히 하찮은 인간 주제에? 우리 건우에게?”


그 이름은 라비나. 드래고니아 차원의 초월자. 당대의 드래곤 로드가 바로 그녀였다.


“분명 그리 말했어. 그렇게.”


건우는 듣지 못했으나 그녀는 들었다. 똑똑하게.


그녀는 화를 진정시키려 했다. 하지만 진정되지 않았다.


“감히, 감히 우리 막내에게······.”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났다.


‘내 소중한 뉴비를 해치려고 해? 내가 얼마나 소중하게 키울 건데!’


안 그래도 뉴비 폐사하지 않게끔 최대한 신경을 써주고 있는데, 하찮은 인간 나부랭이 따위가 건들다니!


“안 되겠구나. 참을 수가 없어. 저 괘씸한 인간을 당장 쳐죽여 버려야겠군. 우리 건우를 지키기 위해선 어쩔 수 없지.”


그녀는 일어났다. 오랜만에 본신을 움직일 때가 된 것 같았다.


초월자가 직접 움직이는 건 힘의 소모가 엄청나지만, 뭔들 어떠랴. 소중한 뉴비를 지키기 위해선 물불도 가리지 않아야 하는 법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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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화. 오리할콘 허수아비 NEW +1 14시간 전 284 9 13쪽
» 14화. 렉카 +2 24.09.18 442 15 12쪽
13 13화. 변종 리자드맨 +1 24.09.17 522 21 13쪽
12 12화. 관조 +2 24.09.16 609 22 14쪽
11 11화. 무아지경 +1 24.09.15 665 26 13쪽
10 10화. 사랑스러워 +3 24.09.14 738 34 12쪽
9 9화. 기틀을 완비하다. +1 24.09.13 819 30 14쪽
8 8화. 업적 개방 +2 24.09.12 856 38 16쪽
7 7화. 샤벨 타이거 +3 24.09.11 892 36 13쪽
6 6화. 리푸아 대수림 (2) +1 24.09.10 946 40 13쪽
5 5화. 리푸아 대수림 (1) +1 24.09.10 1,025 43 12쪽
4 4화. 뉴비 폐사시키지 않고 잘 키우기 대계획 +3 24.09.09 1,151 46 14쪽
3 3화. 시작부터 소매넣기 24.09.08 1,191 45 13쪽
2 2화. 우리 길드원들이 실은 초월자였다. +2 24.09.07 1,224 48 13쪽
1 1화. 섭종 기념 정모 24.09.06 1,317 4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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