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오리할콘 허수아비
이튿날 아침 일찍 연락이 왔다. 어제 이용했던 ‘몬스터사체수거서비스’의 연락이었는데, 사체를 해체하고 판매 등록까지 해놓았다는 알림이었다.
휴대폰에 깔아놓은 앱으로 그것에 대한 현재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꼭 택배 배송조회 서비스처럼 말이다. 앱에선 현재 부산물 시세에 대한 예상 판매 수익까지도 계산해 주었는데, 어째서 무소속 헌터들이 그렇게 이 앱을 찬양해 댔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이렇게 편한데 어찌 이용을 안 할까. 판매 수익의 일부를 떼어줘야 한다는 단점이 있기는 해도 압도적인 편리함이 있지 않은가. 건우도 앞으로 자주 이용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직 어디에 소속될 생각 같은 건 없으니까.
이 앱이 아예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현재 대두되는 문제는 독과점 문제인데, 수수료를 올릴 기미가 보여서 문제다.
뭐, 보니까 무소속 헌터들끼리 모여서 시위도 하고 그러던데, 씨알도 안 먹히는 듯했다. 그러든가 말든가 업체 측에서는 수수료를 올릴 것 같으니까. 그것도 대폭.
‘이래서 독과점이 문제라니까.’
사실 비슷한 업체가 꽤 있어서 독과점까지는 아니지만, 문제는 무소속 헌터들은 힘이 없다는 거다. 어디에도 비빌 언덕이 없으니 업체에서 막무가내로 한다고 해도 뭐 어쩔 도리가 있나.
꼬우면 직접 시간을 들이거나 단체에 소속되면 되는데, 그들이 힘없는 이들을 받아주나? 당연히 안 받아주지. 그러니 문제인 것이다.
‘경쟁업체가 빨리 커지면 좋겠는데.’
서로 경쟁을 해야 선순환이 일어나지. 경쟁이 없어지면 도태되기 마련인데.
건우는 그런 생각을 하며 후다닥 라면을 끓였다. 천화영이 준 이틀이라는 휴일의 마지막 날, 야무지게 먹고 쉴 생각이었다.
솔직히 요리를 하려고 했는데, 어우 귀찮아. 얼른 먹고 쉬지.
라면을 흡입하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현대인의 필수품인 유튜브에 자연스레 손이 간 건 당연했다. 그렇게 틀자마자 건우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맨 위에 뜬 영상 때문이었다.
[목검 헌터]
그런 제목 따위는 문제가 안 됐다. 중요한 건 썸네일이었다. 썸네일에 대문짝만하게 박힌 한 남자의 모습. 목검을 들고 괴물을 후려치는 역동적인 장면.
‘이거 나잖아?’
바로 건우 자신이었던 것이다.
조회수는 대략 9만 정도. 그렇게 많은 건 아니나, 올라온지 하루도 되지 않았다는 걸 감안해 본다면 상당히 많다고 볼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건우였다. 변종 리자드맨과 싸우는 풀영상. 건우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도망치는 와중에 이걸 영상으로 찍었다고? 미친 건가?”
목숨이 아깝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그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휴대폰을 꺼내서 동영상을 촬영할 생각을 했다니. 아무리 괴물과 맞서 싸우는 사람이 있었다고는 해도.
‘진짜 대단하다. 대단해.’
건우는 그 대담함에 찬사를 보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라면 일단 안전해질 때까지 도망부터 칠 텐데.
영상의 내용은 건우도 아는 대로였다. 리자드맨과 싸웠고, 마침내 죽였다. 그리고 난 후 흐느끼는 행인을 토닥여 줬고, 마지막으로 뒤늦게 등장한 몬스터 렉카측 헌터들과 시비가 붙는 것까지.
덕분에 건우는 괴물과 싸우는 자신의 모습을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이야······.”
감탄스러웠다. 솔직히 멋있었다. 내가 이렇게 잘 싸웠던가? 그냥 몸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싸웠을 뿐인데.
-크, 우리 막내, 역시 전투 센스가 있다니까. 안 그러냐 얘들아?
-당연하지. 다이나믹 월드 때부터 건우의 전투 센스는 알아줬다고.
같은 시야를 통해 같은 영상을 보는 초월자들은 우리 건우 대단하다며 호들갑을 떨어댔지만, 건우는 고개를 저었다.
“화영 누나가 잘 가르쳐 준 덕분이죠. 진 형도요.”
-에이, 천화영 걔가 잘 가르치긴 개뿔. 솔직히 뭘 잘 가르쳤냐. 그냥 검 냅다 휘두르게 시킨 것밖에 없잖아. 그리고, 진? 걔는 뭘 했는데? 그냥 야생에 떨궈놓는 것밖에 안 했잖냐.
“아니에요. 그것 덕분에 많이 배웠는데요 뭘.”
-아니야. 그냥 네가 잘한 거다. 생각해 봐라. 고작 그 정도 수련했다고 보통 사람이 그 괴물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냐?
“으음, 그건.”
-절대 못한다. 겁먹고 오줌이나 질질 싸지 않으면 잘한 거야. 근데 넌 해냈지. 그것부터가 네가 평범하지 않다는 증거야. 알겠어?
건우는 갸웃했다. 정말 그런가? 듣고 보니 설득력이 있긴 했다.
‘하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역시 우리 건우, 대단해!
-최고다 내 새끼!
다른 걸 떠나서 저렇게까지 칭찬을 해주니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없었다. 살면서 누가 나한테 저렇게 적극적으로, 진심으로 칭찬을 해줬는가. 돌아가신 부모님과 이제는 없는 친구들조차도 그러지 않았다.
-그거 댓글 궁금한데, 얼른 눌러봐라.
“아, 옙.”
그렇게 궁금해하시니 눌러드려야지. 댓글은 백 개가 넘게 달려 있었다.
-와, 얘 누구임? 좆간지 뒤지네. 어떻게 저렇게 싸우냐?
└그렇게 유명한 헌터는 아닌 것 같은데, 진짜 잘 싸우긴 잘 싸우는 듯
└아니, 다른 걸 떠나서, 어떻게 달랑 목검 하나만 들고 덤빌 수 있지? 미친 거 아님?
└ㄹㅇㅋㅋ 뭔 광전사인줄ㅋㅋㅋ
└04:17 이부분만 봐도 다 본거임. 벽돌 들고 냅다 달려가서 눈깔 찍어버리는 거.
└아니 ㅋㅋㅋㅋ 이건 뭔뎈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06:02 고자킥!
└07:28 이것도 있음. 표지판 주워다가 심장 뚫어버리는 거.
└진짜 미친놈임?
└그런 듯ㅋㅋㅋㅋ
└캬~ 목검으론 안 되니까 답답했는지 냅다 벽돌로 찍어버리는 거 보소. 이게 상남자지ㅋㅋㅋ
└ㄹㅇㅋㅋ 속이 다 시원하네. 맨날 깨작깨작 싸우는 헌터들만 보다가 이런 헌터 보니까 속이 뻥 뚫리넼ㅋㅋ
건우의 얼굴이 화끈해졌다. 자신이 봐도 진짜 미친놈 같긴 했다.
-16:52 렉카 새끼들 똥 씹은 표정으로 돌아가는 거 개 후련ㅋㅋㅋㅋ
└이거 보고 한발 뽑았다
└이게 맞지 ㅋㅋㅋ 기여도도 없는 새끼들이 어딜 감히 남의 몹에 손을 대냐고ㅋㅋ
└누군지 모르겠지만, 이 형님 찬양한다
└근데 그거 암? 이 새끼들 전부 떼로 죽었음
└??? 그건 뭔 소리?
└뉴스에 떴음. 몬스터 렉카 업체 하나 떼로 몰살당했다고. 그게 얘네임.
건우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죽었다고? 어제 걔네가?
└?? 진짜네?ㅋㅋㅋ 뭐임?
└설마······ 이 목검형님께서······.
└너 이제 좆됐다. 너 그거 언급했다고 이 목검형님이 너 신상 추적해서 찾아감 ㅅㄱ
뉴스를 뒤져보니 정말이었다. 죽었다는 헌터의 얼굴과 어제 본 얼굴이 똑같았다. 대체 어떻게 된 거란 말인가?
-나 그거 누가 한지 앎.
“예?”
-우리 중에 범인이 있다.
진의 말이었다. 건우는 갸웃했다. 그건 또 뭔 소리.
“쟤네 죽인 게 형, 누나들이란 말이에요?”
-그렇다니까. 누가 했는지 알려줄까? 그건 바로 라비나······ 우웁!
-야! 내가 말하지 말랬지! 비밀이라고 했잖아!
-얼마나 그 인간이 꼴 보기 싫었으면, 타 차원의 일에 관여하지 말자는 규칙마저 깨고 직접 등장하셔서 응징하셨잖냐. 크, 얼마나 감동적이야.
-아니, 그게 아니고. 나는 우리 건우 보호하려고······.
-뭐라고 했는지 아냐? ‘감히 하찮은 인간 주제에 우리 건우를 해치려고 하다니! 용서할 수 없다!’였나?
-아아악! 너 가만 안 둬!
그 뒤로는 한참 조용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티격태격 싸우고 있는 거 아닐까, 그렇게 추측했다.
-그래. 내가 했다. 아니, 걔네들이 꼴받게 하잖아. 감히 하찮은 인간 주제에 우리 소중하고 귀여운 건우에게 살해 협박을 했다고. 이거 중죄야 아니야?
-중죄긴 하지. 사실 죽어도 싸긴 해.
-나도 동의. 다만 손속이 좀 과하긴 했어.
-맞지맞지. 그래도 뭐, 잘하긴 했어. 라비나가 안 했으면 내가 했을걸? 그치 건우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쏟아지는 목소리 속에서 건우는 상황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라비나 누나가 한 거라는 거예요?”
-으, 으응······. 혹시 화났어?
“아뇨. 화는 무슨. 절 위해서 해주신 거잖아요.”
-맞아! 나는 우리 건우를 위해서······!
“그러면 저는 괜찮아요. 화낼 이유가 뭐가 있겠어요.”
다만 황당할 뿐이다.
그리고 염려스러운 것도 있고.
-그치? 역시 우리 건우가 내 마음을 알아줄 줄 알았다니까?
묘하게 의기소침해졌던 라비나의 목소리가 다시 쾌활해졌다.
-건우야. 걱정하지 마! 우리 건우 건드는 하찮은 것들은 이 누나가 전부 모조리 쓱싹해서······!
“다만 좀 자제할 필요는 있어요.”
-으응······?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모조리 쓱싹해 버린다면, 제가 뭐가 되겠어요. 안 그래요?”
-그, 그런가?
“그렇다니까요. 계속 그러다가 혹시라도 저 빌런으로 찍히기라도 하면 어떡하실 거예요?”
-그건 안 되지! 빌런이라니! 감히 어떤 새끼가 우리 건우를!
“아니, 그랬다는 게 아니라 그럴 수도 있다는 거죠.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의심을 안 하겠어요?”
-아아.
“참교육을 해주는 건 좋지만, 굳이 죽일 필요까지는 없다고 봐요. 뭐, 진짜 절 죽이려는 놈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알았어! 그러면 죽이지는 않을게! 대신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될 정도로 만드는 걸로! 증거도 없이 깔끔하게!
해맑은 대답.
건우는 한숨을 쉬었다. 이 못 말리는 누나를 어떻게 하지?
‘그래도 안 죽인다니 다행이지 뭐.’
*
이틀이라는 휴식은 빠르게 지나가고, 또 다시 수련의 시간이 됐다.
제대로 된 검을 배울 시간.
[던전: 수련장에 입장합니다]
예의 그 수련장이다. 지난 3주 동안 먹고 자고 했던 그 환경.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수련장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허수아비가 움직인다는 점이다.
“뭐야. 이거 왜 움직여요?”
“네 적이야.”
“예?”
“오늘부터 네가 상대할 적.”
“그게 무슨······.”
물어봐도 역시나 천화영답게 대답해 주지 않았다. 가타부타 설명 없이 냅다 일을 진행해 버리는 것이다.
“바로 하자. 시작.”
그녀가 손을 튕겼다. 그러자 출력되는 메시지.
[수련용 오리할콘 허수아비가 당신을 적으로 간주합니다!]
홱!
허수아비 하나가 홱 몸을 돌려 건우를 바라보았다. 건우는 등골이 오싹했다.
‘무, 무슨.’
저딴 허수아비 따위가 그 굉장히 비싸고 단단하다는 금속인 오리할콘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부터가 놀라웠지만, 더 놀라운 건 저 오리할콘이 달려든다는 것이다.
[수련용 오리할콘 허수아비가 침입자를 제거합니다!]
허수아비가 목검을 들고 달려왔다. 후웅! 위협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건우는 기겁해서 몸을 피했다.
‘아니, 검술 배울 줄 알았더니만!’
그게 아니고 실전이라니!
투덜댈 시간은 없다. 허수아비는 가만히 있지 않으므로.
“그거 한 마리 쓰러트리는 게 네 목표야.”
“이거 쓰러트리라고요?”
“응. 허수아비를 박살내면 네가 이겨.”
“까짓거!”
한 마리? 해내지 뭐. 못할 거 있나!
변종 트윈테일 리자드맨도 쓰러트렸던 난데!
건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삽시간에 집중 모드에 들어갔다.
달려드는 놈의 검 끝을 똑바로 든다. 다가와 휘둘렀다. 위협적인 삼연격! 건우는 몸을 피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귓가에 웅웅거렸다.
‘빈틈!’
찾아냈다. 그 빈틈을 노려 검을 휘둘렀다. 타악! 경쾌한 소리.
하지만 효과는 없었다. 허수아비는 꿈쩍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무슨 저딴 게······ 이크!”
그 커다란 리자드맨조차도 타격을 입혔던 사기 목검인데 저게 안 먹힌다고?
‘오리할콘, 사기잖아!’
저 단단한 걸 목검으로 박살을 내야 한다고? 그게 가능해?
“가능해. 검에 기를 주입해서 공격하면 타격을 입힐 수 있어.”
“아니, 그걸 어떻게······.”
건우는 황당하면서도 수긍했다. 이 훈련의 목적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저걸 부수려면 무조건 검기를 쓸 줄 알아야 한다 이거지?’
까짓거, 해내고 말리라. 못할 거 없지. 어차피 질긴 몬스터 가죽을 뚫어내려면 그 정도 공격은 쓸 줄 알아야 한다.
건우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마나 감각이 활성화되며 상승의 세계가 눈에 들어왔다.
적을 본다. 동시에 몸을 관조한다. 마나 호흡이 활성화되며 몸 안의 마나가 순환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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