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자들이 막 다 퍼줌!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새글

빈수박
그림/삽화
DDD
작품등록일 :
2024.09.05 23:46
최근연재일 :
2024.09.19 12:20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11,556
추천수 :
471
글자수 :
89,698

작성
24.09.14 12:20
조회
678
추천
33
글자
12쪽

10화. 사랑스러워

DUMMY

검.


건우가 그 단어를 외치자마자 장내는 초월자들이 내뱉는 탄식으로 가득 찼다.


“아······.”

“무슨 검이야······.”

“당연히 마법 고를 줄 알았는데······.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한 거야. 상식적으로 그게 맞는데.”

“상식은 무슨 상식. 우리 건우는 예전부터 활 쓰고 싶어했다고. 그치 건우야?”

“무슨 소리. 다이나믹 월드 할 때도 마법사가 진짜 센 거 같다면서, 나한테 ‘누나. 저 마법사로 직업 바꿀까요?’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지 알기나 해?”

“아니거든? 활 배우고 싶다고 했거든? 네가 뭘 알아?”

“이 몸이 잘 알지. 너야말로 뭘 모르는구나. 하긴, 귀쟁이 엘프가 알면 얼마나 알겠어. 삶을 오래 살지도 못한 것이. 쯧쯧.”

“흥. 늙어서 참 좋겠네. 늙은 도마뱀 아줌마야.”

“······뭐라?”


여기저기서 아쉬움의 한숨이 쏟아졌다. 누군가는 갑자기 멱살을 잡고 싸워대기도 했다. 이제까지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성큼 다가와서는 건우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자기 기술을 배우라며 간청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야말로 난장판. 건우는 난처함에 머리만 긁적이고 있었는데, 아델리아가 나서서 그 상황을 중재했다.


“아니, 이 사람들이 어디다 대고 징징거리는 거야? 다들 그만하지 못해? 다 큰 어른들이 말이야.”

“아델리아. 너는 아무렇지도 않아? 안 아쉬워? 건우가 네 신성 마법을 안 배우겠다는데!”

“아쉬울 게 뭐가 있어? 안 배운다는 게 아니고 나중에 배운다는 건데.”

“그치만······,”


급기야는 훌쩍이기까지 한다. 아델리아는 그 모습이 어이가 없어서 잠시 가만히 있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그리고, 내 힘은 어차피 주가 될 수도 없어. 전투 기술이 아니잖아. 그래서 난 기대도 안 했어.”

“쳇. 뭐야. 어차피 힐러 따까리라서 기대도 안 했다는 거잖아. 그거와 이건 다르지. 넌 고작 힐셔틀에 불과하지만 나는 마법이라고. 마법은 세상에서 제일 위대해. 우리 건우가 제일 좋아하는 마법 말이야.”

“뭐? 힐셔틀? 너 힐셔틀 따까리한테 맞아볼래?”

“때릴 수나 있고? 연약한 성녀 따위의 주먹엔 맞지 않을 텐······ 으악!”


우당탕!


건우는 눈을 흘겼다. 중재하다가 말고 갑자기 본인이 싸우는 건 또 뭐란 말인가.


‘다 큰 어른들이 왜 이래.’


건우는 이 형들과 누나들이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이처럼 제자리에 푹 주저앉아 엉엉 울어대질 않나. 마치 전재산이라도 잃어 낙담한 사람처럼 땅이 꺼져라 푹 한숨을 쉬질 않나.


도무지 왜 이런단 말인가. 과연 이게 초월자가 맞단 말인가? 일신의 무위가 하늘에 닿아 신과도 견준다는 경천동지할 이들이라고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모습이다.


하지만 건우의 입가엔 옅은 미소가 자리 잡았다. 뭐, 그래도 기분만은 나쁘지 않았다.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 좋아해 준다는 게 참 좋았으니까.


가족도 친구도 없이 혼자가 된 지 너무나 오래되었던 건우로선 이런 그림조차 참 좋았다.


한편, 진 라이온하트는 조용히 투덜대고 있었다.


“쳇. 이래서 동생 새끼 키우면 안 된다니까. 은혜 갚을 줄을 몰라요.”


그가 다가와서 건우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난 네가 당연히 주먹을 고를 줄 알았는데. 자고로 남자는 주먹이잖냐.”


진의 말에 건우는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마지막에 검과 권각술 중 중에 고민을 좀 했었다.


검이냐 주먹이냐. 둘 다 매력적이었지만, 아무래도 검이 좀 더 베이직하잖은가.


“근데 뭐, 검도 나쁘지 않지. 오히려 잘 선택했어. 현존하는 수많은 전투 기술 중 가장 균형 잡힌 힘이 바로 검술이지. 동시에 파괴력도 상당해. 검술부터 배우는 게 네 기초를 더욱 튼튼하게 해줄 거다.”


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멋있고 끌린다는 걸 제외하더라도 검을 선택한 데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괜히 만병지왕이라는 말이 있겠나.


“근데, 그럼 검은 누구한테 배워요?”

“엉? 누구한테 배우냐고?”

“예.”


사실 건우는 아직 누가 어떤 분야를 전공했는지 잘 몰랐다. 그도 그럴 게, 각자 밝히지를 않아서.


대략적으로 몇 명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진 라이온하트는 무투가.

아델리아는 사제.

라비나는 마법사.


“아, 모르고 있었구나? 쟤야.”


진이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그 방향의 끝엔 무복 차림의 한 여인이 있었다.


구석에 박혀서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던 무뚝뚝한 여인.


천화영.


“화영 누나? 누나 검사였어요? 아닌가? 좀 무협틱하니까 검객이라고 해야 하나?”


그녀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건우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누나는 서포터 계열 아니었어요?”

“그건 게임에서 그런 거고, 쟤 검 써.”

“게임에서 그랬으니까 현실에서도 서포터 계열 클래스인 줄 알았는데.”

“게임과 현실의 클래스가 같으리라는 법은 없지. 그건 어디까지나 시뮬레이션이었으니까.”

“아아.”


대답은 천화영이 아닌 진이 대신하고 있었다. 그게 답답했는지 진이 가슴을 두드렸다.


“아오, 답답해. 네 대답을 왜 내가 하고 있냐. 와서 빨리 막내랑 놀아주기나 해라. 이제부턴 네 차례잖냐. 왜 그렇게 뒤에서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냐?”

“안 불러서.”


말인즉, 호명을 안 해서 지켜만 보고 있었다는 뜻이다. 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여튼, 재미없는 년이라니까. 아무튼, 건우. 검은 쟤가 잘 가르쳐 줄 거니까, 쟤한테 배우면 돼. 난 이만 들어가련다. 너무 오래 집을 비웠어.”


진이 손을 휘휘 젓고선 멀어졌다. 그의 신형이 깜빡이더니 이내 팟 하고 사라졌다. 이곳, ‘던전: 공동 모임 장소’에서 나간 것이다.


‘아, 맞다. 여기 던전 내부였지.’


잊고 있었다. 워낙 침대가 아늑해서. 꼭 안방 같다니까.


“에이, 나도 가서 잠이나 퍼질러 자야겠다.”

“나도.”

“건우야. 또 보자.”

“정신 연결 차단해 놓지 마라. 집 가서 볼 거니까.”


이내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씩 던전을 나갔고.


현장엔 건우와 천화영만이 남았다.


“······.”


흐르는 적막감.


천화영은 한 마디 말도 없이 건우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어찌나 뚫어져라 쳐다보는지 건우가 민망할 정도였다.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근골 최상, 내구 최상. 진이 기초는 잘 만들어 놓았어. 수련 효율이 좋겠어.”

“예?”

“따라와.”


가타부타 설명도 없이 몸을 돌리는 천화영.


자기 페이스대로 말만 하는 저 모습이 별로 놀랍지는 않았다. 천화영은 원래 그랬기 때문이었다.


사실 3년 동안 별로 말을 섞어보지도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워낙 무뚝뚝해서.


인게임에서도 저랬었지.


어찌 모든 길드원과 친밀하게만 지냈겠나. 사람이 20명이 넘는데. 친밀함의 정도가 차이나는 건 당연할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우는 모든 길드원을 똑같이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긴 했다.


짐꾼 동료들을 제외하면, 길드원들이 거의 유일하게 친한 이들이었기에.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이 빨랐다. 건우는 허겁지겁 그녀를 따라갔다.




*




시야가 암흑으로 물들었다. 건우는 눈을 잠시 감았다가 떴다. 어느새 시야가 바뀌었고, 다른 세상이 건우의 앞에 펼쳐져 있었다.


[던전: 수련장에 입장합니다.]


내부는 넓지 않았다.


아마 진의 ‘리푸아 대수림’처럼 천화영이 설계한 던전인 듯한데.


일단 실내다.


마치 헬스장처럼 생긴 곳.


벽에 전신거울이 커다랗게 설치되어 있고, 바닥은 딱딱하다.


문도 여러 개 있다. 하나하나 열어보니 창고와 침실, 다용도실 등이었다.


‘있을 거 다 있구만.’


그렇게 내부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는데, 천화영이 무언가를 휙 던졌다. 목검이었다.


“억, 이거 엄청 무거운데요?”


짐꾼 일을 하면서 이런저런 장비를 꽤나 많이 만져봤던 건우였다. 당연히 검도 만져봤다. 그런데 이 검은 건우가 만져봤던 검들보다도 더 무거웠다. 무슨 통짜 쇳덩이를 들고 있는 것 같잖은가.


“합격.”

“예?”

“보통 사람은 그거 들지도 못해.”


앞뒤 잘라먹고 말하는 저 특유의 화법은 건우도 제법 익숙했다. 그러니까, 겁나 무거운 목검이라 이거다.


“첫경험이야?”

“예?”


뭐라고?


귀를 의심했지만, 천화영의 표정이 너무나 진지했다.


“아, 혹시 검 말하는 거예요?”


끄덕끄덕.


“아예 처음은 아닌데요. 사실 처음이라고 봐야죠. 헌터들이 몹 흘렸을 때 가끔 휘둘러본 거 말고는 없어서.”


끄덕끄덕.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천화영.


놀랬네. 아니, 이 사람아. 다짜고짜 그렇게 물어보면 어떡해. 누가 들으면 오해할라.


하지만 천화영은 그런 건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특유의 무표정으로 건우의 몸 이곳저곳을 만지기만 할 뿐이었다.


“역시 근골 상태가 좋아. 훈련 강도를 조금 높여도 될 것 같아.”


주물럭주물럭.


“근력 훌륭. 복근 탄탄. 평소에 운동 게을리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


주물럭주물럭.


어찌나 노골적으로 건우의 온몸을 주물럭대면서 만져대는지, 건우의 낯이 화끈해질 지경이었다.


물론 천화영은 낯빛조차 변하지 않았다. 애초에 건우는 천화영의 낯빛이 변하는 걸 3년 동안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다이나믹 월드 최초로 재앙급 월드 보스 레이드를 처음 성공시켰을 때조차도 입꼬리가 약간 올라갔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고 봐야 했다.


“아니, 누나. 너무 주물러대시는데요······.”

“괜찮아. 안 아프게 하고 있어.”


아니, 그런 게 아니잖아. 이 사람아.


좀 민망하다고.


천화영은 계속해서 건우의 이곳저곳을 주물러댔다. 마치 진지하게 환자의 상태를 살피는 의사처럼.


그 손짓을 멈추지 않으며 그녀는 생각했다.


‘정말 검을 잡아본 흔적이 없어. 아예 생판 초보자야.’


검의 문외한이다. 그 말인즉 처음부터 일일이 다 가르쳐야 한다는 소리다.


검을 가르치는 자라면 당연히 난감해할 것이다. 초보자를 처음부터 가르치는 게 어찌 쉽겠나.


당연히 경력자를 가르치는 게 훨씬 쉽다. 그게 정상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프로다.


검에 한에서는 그 누구도 그녀를 넘볼 수 없다.


오로지 검 한 자루만으로 세계를 평정하고 감히 신의 이름을 넘볼 위치에 섰다.


그런 그녀이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이게 더 낫다고.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검을 잡게 했었나.


얼마나 많은 이들을 지도했었나.


그녀에겐 그 숱한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그 경험이 말하고 있었다.


오히려 이게 좋다고.


그리고 이게 더 재밌고 짜릿하다고.


순백의 도화지를 채우는 이 경험이.


의미가 퇴색된 절대자로서의 삶이다.


초월자이나 초월자라고 할 수 없는 반쪽짜리 삶이다.


세계에 혼자 유리되어 쓸쓸히 삶을 살아가는 반쪽짜리 승리자이자 반쪽짜리 패배자.


그런 그녀의 삶 앞에 새로운 자극이 들어왔다.


최상급의 근골과 검술 문외한이라는, 참을 수 없는 조합의 뉴비가.


이걸 어찌 참나?


‘오히려 좋아.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게 백 배는 나아. 나쁜 버릇이 없을 테니까. 어설프게 그림을 그려놓아 흰 도화지를 망치는 것보다는, 아무것도 없는 순백의 도화지가 훨씬 낫겠지. 게다가 이렇게 근골이 최상인 녀석은 나조차도 거의 본 적이 없어. 이건 정말······ 최고야. 사랑스러울 정도야.’


그녀는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 모든 생각을 한 단어에 압축하고 또 압축했다. 그녀는 건우의 팔뚝을 쓰다듬으면서 그 모든 생각을 압축한 단어를 내뱉었다.


“최고야.”

“예?”

“사랑스러워.”

“예??”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초월자들이 막 다 퍼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시간은 낮 12시 20분입니다. 24.09.13 278 0 -
15 15화. 오리할콘 허수아비 NEW 1시간 전 79 1 13쪽
14 14화. 렉카 +2 24.09.18 333 14 12쪽
13 13화. 변종 리자드맨 +1 24.09.17 456 20 13쪽
12 12화. 관조 +2 24.09.16 549 21 14쪽
11 11화. 무아지경 +1 24.09.15 610 25 13쪽
» 10화. 사랑스러워 +3 24.09.14 679 33 12쪽
9 9화. 기틀을 완비하다. +1 24.09.13 756 29 14쪽
8 8화. 업적 개방 +2 24.09.12 799 37 16쪽
7 7화. 샤벨 타이거 +3 24.09.11 830 35 13쪽
6 6화. 리푸아 대수림 (2) +1 24.09.10 890 38 13쪽
5 5화. 리푸아 대수림 (1) +1 24.09.10 967 41 12쪽
4 4화. 뉴비 폐사시키지 않고 잘 키우기 대계획 +3 24.09.09 1,084 44 14쪽
3 3화. 시작부터 소매넣기 24.09.08 1,127 43 13쪽
2 2화. 우리 길드원들이 실은 초월자였다. +2 24.09.07 1,158 46 13쪽
1 1화. 섭종 기념 정모 24.09.06 1,240 44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