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드의 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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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티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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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7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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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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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의 빌런 1

DUMMY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피터버러 유나이티드의 홈구장, 런던 로드 스타디움(London Road Stadium)의 1만 5천 관중석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울려퍼졌다.

하지만 그것은 하늘색 유니폼을 입은 피터버러 팬들의 함성이 아니었다. 그것은 원정팀 선덜랜드 AFC 팬들의 함성이었던 것이다.


이를 등진 한 사람, 피터버러 유나이티드 측 테크니컬 에어리어에 서 있던 검은 머리 동양인이 구시렁거렸다.


“후우, 이런 멍청한 새끼들. 공을 발바닥으로 차나? 발바닥으로 차도 저것보단 낫겠다.”


현재 스코어는 3대 0, 피터버러 유나이티드가 한 골도 못 넣은 채 세 골을 때려맞은 상황. 그는 이러한 상황에서 재킷을 벗어던졌다.


남자의 돌발행동에 피터버러 유나이티드 팬들이 얼굴을 감싸거나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신음했다.


“저 미친놈, 또 뭘 하려고?”

“누가 저 자식 좀 막아봐!”

“대체 뭐하는 짓이야? 제기랄!”


격한 반응에, 오히려 선덜랜드 AFC 팬들이 당황할 지경이었다.

물론 그들도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스물다섯 살의 무명 감독이 3부 리그까지 강등된 피터버러 유나이티드의 새 사령탑이 됐다고.

그런 자가 팀을 이끌며 시즌 첫 경기에서 세 골이나 얻어맞은 것 자체가 열 받을 만하긴 하지만, 경기 중에 재킷을 벗어던진 정도로 이런 집중포화를 받는다고?

하나 그의 기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어?”

“뭐야?”

“스트립쇼라도 할 생각인가?”

“무슨······.”


선덜랜드AFC의 팬들은 당혹성을 내뱉었고.


“아, 제발.”

“그만해, 그만. 이 미친놈아······.”

“더 이상 우릴 쪽팔리게 하지 말라고.”

“젠장······ 다음 장면이 궁금해서 집에 갈 수도 없잖아.”

“빌어먹을!”


피터버러 유나이티드 팬들은 눈을 질끈 감거나 뭉크의 초상화 같은 표정으로 절규했다.

방금 재킷을 벗어던진 테크니컬 에어리어의 동양인 감독이 셔츠와 바지까지 마저 벗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속옷이 노출되는 참사만은 벌어지지 않았다.

마치 슈퍼맨처럼, 그 안에선 놀랍게도 피터버러 유나이티드의 유니폼이 출현했다. 등 번호는 13번. 그러고 보니 신발도 운동화나 구두가 아닌 축구화였다.


“아니, 신 감독.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주심의 질문에 이러한 기행을 벌인 동양인 감독, 신해성은 검지를 까딱거렸다.


“노우, 노우. 감독 말고 선수.”

“뭐라고요?”


주심이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다시 묻자, 신해성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 선수등록 했걸랑요. 그러니까 비켜요. 야, 조니! 나와!”


터치 라인 근처에 있다가 눈에 띈 조니가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자, 이를 돌아본 주심이 신해성에게 말했다.


“자꾸 이상한 소리 하면서 난동을 피우면 퇴장 조치할 수밖에 없습니다. 벤치로 들어가세요.”


하지만 신해성은 눈 하나 깜짝 안 했다.


“조니! 항명이냐?”


그제야 한숨을 푹 내쉰 조니가 터덜터덜 터치 라인 밖으로 나온다.

그 광경을 보며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는지, 표정이 일그러진 주심이 물었다.


“피터버러 명단에 있던 한국인이 그럼······?”

“네. 접니다. 제가 플레이어-매니저거든요. 케니 달글리시 같은······ 요즘 드물긴 해도 감독이 선수로 뛰는 건 규칙 위반이 아니잖아요?”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관중석에서는 끔찍한 야유가 쏟아지고 있었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당연히 피치 위 선덜랜드AFC 선수들 표정도 대부분 구겨져 있었다.

하지만 묘한 점은, 정작 피터버러 유나이티드 선수들과 야유의 대상인 신해성만은 아무렇지 않다는 점이었다.

아니, 되레 피터버러 선수들의 생기 없는 눈동자에 알 수 없는 빛이 맺혔다. 시커멓게 물들었던 안색에도 홍조가 떠올랐다.


“심판 경력 15년에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네······ 대체 뭡니까?”


주심이 묻자 신해성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제가 묻고 싶은 말입니다. 이게 다 무슨 지랄인지. 젠장, 하지만 분명한 건 내가 이 경기를 이겨야 한다는 거겠죠. 그러니까 비켜요. 직접 뛰어서라도 승점을 가져와야겠으니까.”


그는 심판을 밀어내고 경기장을 가득 메운 야유 속 피치로 걸어나가며 못난 생각을 했다.

만약 저들이 이곳에 오기 전, 내 명성을 알았더라면 지금의 야유가 환호로 바뀌었을 텐데, 라고.

하지만 상관없다.

실력이 사라진 것도 아니고, 추억팔이는 현재가 별 볼 일 없을 때나 하는 거니까.

다시 증명하면 된다.

그래서 살아남고, 원래 삶으로 돌아가리라.


“니미.”


낮게 중얼거린 신해성은 조니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터치 라인을 넘었다. 그의 뇌리로, 얼마 전 있었던 일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


그날 아침도 별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


삐리리릭, 삐리리릭.


지겨운 알람 소리를 듣고 눈을 떴고.

품에 안긴 엠마가 깨지 않도록 조심해서 이불을 빠져나왔다.

시즌 중에 가볍게 뛰려면 체중관리가 필수였기에 식단을 섭취하며 감독님 전화를 받았던 것 같다.


-야, 이 미친 새끼! 감히 훈련을 빼먹어?

“아, 요새 무릎 느낌이 좀 쎄한 게 조심해야 할 때라고요. 자만하고 조심하지 않으면 운명이 바뀐다고 사주에도 나왔어요.”


하지만 돌아온 것은 호통이었다.


-자만은 지금 네가 하는 짓이 자만이고. 팀닥터가 괜찮다는데 무슨 헛소리야? 넌 너 좋을 때만 열심히 하고 싫으면 훈련도 마음대로 제끼냐?

“영감 기운도 좋아. 무슨 목청이······.”


신해성이 수화기를 떼고 귀를 후벼 파며 한국말로 구시렁거리자 감독님이 귀신같이 되물었다.


-지금 뭐라고 했어? 이 빌어먹을 자식!

“훈련 빼달라고 했는데 안 빼주셨잖아요.”

-네놈이 의사야? 훈련 빠지고 싶으면 진단서라도 떼오든지, 제기랄 놈! 프로라는 놈이 자꾸 이렇게 너 혼자 튀면.


감독님의 고함은 이어지지 못했다. 신해성이 전화를 끊어버렸으니까.


“아우, 시끄러워. 또 이놈의 잔소리. 이놈의 협박. 씨알도 안 먹힐 거 아시면서.”


전 세계 모든 구단이 눈에 불을 켜고 노리는 카드를 내다 버릴 수 있는 감독은 없다. 그런 감독이 있다면, 구단에선 감독의 자질을 먼저 의심할 것이다.

게다가······.


“나보다 팀내 신망 높은 선수가 어디 있고, 평소에 나보다 열심히 하는 놈이 어디 있다고.”


혀를 찬 신해성은 고개를 돌렸다. 그 노력의 결과물이 진열장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발롱도르 수상, UEFA 챔피언스리그 최우수 선수, UFFA 올해의 선수, 유러피언 골든슈, FIFA 골든볼, 프리미어리그 골든부츠, 도움왕과 득점왕, MVP,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에서 최우수 선수로 꼽히기까지······.


그리고 이 모든 수상내역이 전부 역대 최연소 기록을 동반하고 있었다.

이처럼 신해성의 족적(足跡)은 스물다섯 살 어린 선수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위대했다.

실제로 그가 혜성처럼 등장하기 전까진 소설에 썼어도 개연성 없다며 까였을 업적이긴 했다.

하지만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월드컵 우승을 제외한 모든 업적을 이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천재가, 그것도 동방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탄생한 것이다.


“또 보니까 공 차고 싶네.”


신해성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한 번도 빗나간 적 없는 직감을 믿었다.

그래서 훈련장에 나가는 대신, 얼마 전 출시 예정이라며 게임회사에서 보내준 신작 축구 게임 ‘아더월드리 풋볼(Otherworldly Football)’을 켰다.

자신의 경기 중 모습이 커버에 떡하니 찍혀 있었다.


“크, 멋지구만.”


야심작으로 준비했다가 왜인지 폐기했다는 것이 재수 없긴 하지만 로열티는 받았으니 회사 내부 사정까진 알 바 아니고, 게임을 즐기는 데 충실했다.

자기애가 넘치므로 유저 프로필의 신상정보는 자신과 똑같이 설정하고 잘 나온 사진까지 박은 후 이제 팀을 선택할 차례.


“그래도 내가 축구 짬이 있는데.”


게임은 공 차는 것보다 재미가 없어서 어렸을 때 스타크래프트 몇 판 해본 것 빼고는 해본 적 없지만 이건 현실 기반의 축구 게임 아닌가?

비록 선수가 아닌 감독이 주인공이라고 할지라도 빅리그 빅클럽을 고르면 너무 쉬울 것 같았다.


“남자의 인생은 도전이고 야망이지.”


인생을 걸고 배팅하긴 쉽지 않으니 게임으로라도 못 다 이룬 꿈을 이뤄보자.

얼마 전에 넷플 다큐멘터리 ‘죽어도 피터버러’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으니 팀은 피터버러 유나이티드로······ 어려운 팀이긴 하지만 시련이 깊을수록 환희는 짜릿한 법.

무명으로 3부 리그 클럽에 가서 프리미어리그, 챔스 우승까지 가는 거다. 그렇게 유럽에서 명성을 쌓고, 선수로서는 못 이룬 대한민국 월드컵 우승의 꿈도 감독으로 한 번 이뤄보자.

현실에선 불가능하니, 게임에서라도······.

그렇게 원대한 야망을 품은 신해성은 ‘게임 진행’을 클릭했다. 하지만 그때까진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데이터베이스를 불러오는 중입니다······ 동화율 100퍼센트······ 로직이 일치합니다.


-해당 데이터베이스와 연동된 평행세계로 전이됩니다.


-내장 에디터가 적용됩니다. 전세계 축구 협회에 등록된 모든 선수 및 스태프, 관계자들과 접촉할 경우 ‘숨겨진 정보’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암전된 암흑 속에서 이같은 메시지들을 보게 된 신해성은 ‘무슨 개소리야? 이거 뭐야?’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입 밖으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보기만 해도 끔찍한 경고 내용들이 추가로 떠올랐다.


-당신은 스스로 일생의 과업을 설정했습니다. ‘원대한 야망’을 달성해야만 복귀 선택권이 주어집니다.


-직접 선택한 리그1의 ‘피터버러 유나이티드’로 트래블을 달성하세요. ‘대한민국’으로 월드컵 우승을 달성하세요.


프랑스의 1부 리그의 그 ‘리그1’이 아니다.

피터버러 유나이티드가 있는 리그는 영국의 3부 리그를 뜻하는 ‘리그1’.

거기다 죽었다 깨도 가망이 없어 보이는 대한민국 월드컵 우승까지.

월드컵 우승 타이틀까지 얻으려면 귀화라도 해야 하나 장난 반 진심 반으로 고민하던 참에 장난해? 장난도 정도껏 쳐야지.

속에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지거리가 나오려는 찰나.


-실패시 당신의 영혼은 소멸됩니다.


“씨발?”


아무래도 이거 뭔가 크게 잘못된 것 같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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