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드의 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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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티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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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7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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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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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의 빌런 20

DUMMY

*******


런던 로드 스타디움의 현장감을 즐기기 위해 이그제큐티브 박스 대신, 더그아웃 뒤편 적당한 높이에 위치한 디렉터 박스 좌석에 앉은 이서윤이 눈을 빛냈다.

그녀가 구단 경영을 맡기로 결심한 이유 중 하나가 피치 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데이빗. 감독님이 뛰는 걸 본 적 있어요?”


기대감 어린 질문에 나란히 앉아있던 데이빗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 없습니다.”


그는 “우우우우우······” 경기장을 향해 야유를 퍼붓고 있는 관객들의 눈치를 보며 전광판의 점수차를 확인했다. 절로 한숨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죄송합니다.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는데 끔찍하군요.”

“전반이잖아요. 아직 모르는 거죠.”


이서윤은 이 지경에도 전혀 기복을 내비치지 않고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저는 그보다 감독님이 이 상황에 뭘 할 수 있는지 그게 더 궁금한데요. 축구는 팀 스포츠잖아요.”


이서윤은 신해성이 피터버러 유나이티드 FC에 부임 직후 두 달 간 포시 아카데미의 문을 걸어 잠그고 출퇴근도 없이 해낸 일들을 떠올렸다.


먼저 경력도 적고 나이도 새파랗게 어린 동양인 감독이 취임과 동시에 문제가 될만한 선수들을 잘라버리고 선수단을 완벽하게 장악한 뒤 코칭스태프들까지 사로잡았다.


이것만 해도 부족한 시간인데 훈련과 경기 외적으로도 관련 부처와 이야기를 나눠 선수들의 건강 관리 및 개인적인 문제들을 해결해주고, 아프리카 담당 스카우터 등 구단에 실망해서 떠났던 유능한 직원들을 다시 불러들였다.

더군다나 어떻게 된 일인지 세계 최고의 에이전트가 이끄는 회사를 통해 1-2부 리그 레벨로 평가되는 선수를 3부 리그 몸값에 공수했다. 당장은 문제가 좀 있는 선수지만 그것만으로도 팬들의 기대감을 키우기에는 충분했다.


뿐인가?


구단의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그녀의 아버지에게 줄을 대고 결국 자신을 이 자리까지 불러들였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시종일관 당당하게 우승을 이야기 한다.


“이미 경이로운 일을 해낸 사람이니, 뭐가 달라도 다르겠죠.”


이서윤은 신해성이 보고서 몇 장으로 알 수 없는 인물이란 직감이 들었다. 게다가 아버지는 그의 감독으로서 능력에 반한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축구 실력 하나만 보고 구단 인수를 결정했다.


부채까지 350억 원가량의 금액을 쾌척했다는 것은 신해성의 실력에서 그 몇 배의 가치를 봤다는 뜻.


이서윤은 축구팬으로서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경기장을 주시했다.


*******


한편, 피치 위로 나선 신해성은 3 대 0이라는 점수 차를 발생시킨 일등공신을 바라봤다.


그는 바로 얼마 전 계약서에 사인한 루이스 안토니우 마르티네스였다.


이 팀의 가장 강력한 공격자원이지만, 동시에 팀워크를 해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마치 지금처럼.


“패스!”


어린 선수가 괜찮은 위치를 잡고 외쳤지만 루이스는 패스하지 않았다.

팀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수비수들 틈에서 공을 끌던 그는 직접 슛팅을 시도했다.

그리고 지금껏 계속 그래왔듯이.


뻑!


발을 뻗은 상대 수비수에게 막혀 공을 잃고 말았다.

그렇다면 즉시 다시 공을 되찾으려 노력해야 하지만 루이스는 그러지 않았다.


“내려, 내려!”


본인이 상대팀에게 역습의 단초를 제공하고서 팔을 들며 미드필더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는 피터버러 유나이티드에서도 중요한 찰나에 나타나 골을 넣는 모멘트 플레이어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신해성은 그를 단순히 골잡이로 영입하지 않았다.

피터버러 같은 약팀이 강팀을 이기기 위해선 선수 전원이 수비하고 공격해야 한다.

누구 하나 활동량을 크게 줄여선 안 된다.

그게 곧 구멍이 될 테니.


아니나 다를까, 루이스에게 공을 탈환한 직후 아무런 압박을 받지 않은 선덜랜드 AFC의 수비수가 피터버러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라인을 내릴 틈을 주지 않고 공을 찼다.


뻥!


신해성은 그가 공을 차는 순간, 공이 이륙한 방향을 따라 시선을 이동하며 한 눈에 선덜랜드 선수들의 위치를 인지했다. 더불어 그는 공의 구질로 하여금 낙하지점을 파악하고 빈 공간, 포켓으로 달려 들어갔다.


파바박······!


달리는 와중 목 아프게 돌아보며 공의 위치를 확인할 것도 없었다. 이곳과 다른 세상에서 훈련할 당시 선수들끼리 재미로 크로스를 올리면 눈을 감고 받는 연습을 했던 적이 있는데, 신해성은 그때도 예지력에 가까운 예측력을 발휘했다.


지금도 그는 미리 공이 떨어지는 찰나, 공에 집중하느라 그를 놓친 선덜랜드 선수 뒤로 접근해서 확 튀어 나갔다. 더불어 한쪽 팔을 펼쳐서 상대의 전진을 막으며 오히려 추진력을 받았다.


“아니······!”


상대의 당혹성을 한 귀로 흘린 그가 떨어지는 공에 발을 가져다 댔다.


툭.


그대로 정지하는 공. 그 상태에서 상대를 등진 신해성이 공이 날아온 곳을 향해 다시 패스를 찔렀다.


팍!


흐름이 바뀌자 역습하러 내려오던 선덜랜드 AFC 선수들이 공을 따라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수비하러 내려오지 않고 체력을 보존하고 있던 루이스가 있었다.


“젠장!”

“저놈 막아!”


선덜랜드 선수들이 외쳤다.


한편 상대 진영을 걸으며 산책 중이던 루이스는 자석처럼 날아오는 패스에 씩 웃었다.


‘역시!’


이런 패스를 원했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

감독만큼은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을 이해하고, 나아가 존중해주는 것이다.

직전까지 세 골을 먹혔음에도 급이 맞는 선수가 들어오니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발밑으로 날아든 공을 툭 치고 돌았다.

선덜랜드 수비수가 앞을 막아섰으나 루이스 마르티네스는 공을 발바닥으로 컨트롤하며 상대를 속였다.


팍!


그렇게 치고 나가는 순간, 사방에서 에워싸는 선수들이 보였다.


‘이런.’


한 놈 제치려고 개인기를 하는 동안 무려 세 명의 선덜랜드 수비수들이 압박을 나온 것이다.


분명 후방에 피터버러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있었지만, 이 와중에도 루이스는 공을 넘겨주고 싶지 않았다. 상대 진영의 2선과 3선 사이, 이 공간은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위치니까.


‘그래, 3부 리그인데. 제칠 수 있어.’


세 명이 붙든 네 명이 붙든 돌파하면 그만이다. 뒤따라 올라오는 어설픈 녀석들에게 공을 주는 것보단 그 편이 더욱 성공률이 높을 터였다.


그리 생각하며 드리블을 하려는 찰나, 바로 등 뒤에서 쩌렁쩌렁한 목청으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패스해, 이 어리바리한 새끼야!”


너무 가까이서 들려온 난폭한 호통에 화들짝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인 루이스가 뭔가에 홀린 듯이 공을 보냈다.


파악!


동시에 그는 생각했다.

소리를 지른 게 감독이니까.

그만한 실력과 자격을 갖춘 인물이니 믿을 수 있다고.

왜 욕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화끈한 성격이니 경기 때 더 달아오를 수 있다.

어쨌거나 그 결과를 보라.


툭!


신해성이 일 대 일 패스를 받아서 치고 나가자, 루이스를 둘러쌌던 수비수들이 일제히 몸을 돌리며 라인을 내렸다.


이제 한 명이 아닌 두 명을 막아야 하니 서로 공간이 벌어진 것.


루이스가 다시 그 공간으로 송곳처럼 파고들며 크게 외쳤다.


“다시!”


그를 포착한 선덜랜드의 수비수들이 신해성과 그 사이에 자라를 잡으며, 신해성을 서서히 골문과 먼 바깥쪽으로 몰아가려 했다.


‘수비를 더 바짝 끌어서 공간을 내려는 건가?’


저러다 컷 날까 봐 좀 불안하긴 했지만 수비수들 사이 공간을 벌려주면 이쪽이 편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 순간 바깥쪽에 있던 풀백까지 엉겨 붙자, 수비수들의 압박에 더는 못 버티겠던지 신해성이 마침내 패스를 했다.

그런데, 몸을 돌리거나 달리는 속도를 줄이지도 않고 발뒤꿈치로 과감한 힐 패스를 해버리는 것이 아닌가?


팍!


신해성과 함께 달리던 수비수들이 새된 것은 당연했다.

그 패스를 받기 위해 달리는 루이스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패스 한번 예술이군.’


그렇긴 한데,


‘좀 길다······!’


잔디를 타고 흘러온 공은 마치 격류에 떠밀린 듯 거칠고 빨랐다.

루이스는 이를 잡기 위해 잔디에 미끄러지며 힘껏 다리를 뻗었으나.


“아!”


닿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빠진 공을 쫓고.

고개를 돌린 루이스는 눈을 부릅떴다.

자신 너머 공터에 피터버러 유나이티드의 어린 선수가 있었던 것이다.

루이스마저 속았는데, 상대 수비수들은 오죽할까.

선덜랜드 선수들이 외쳤다.


“안 돼!”


노 마크.

슈팅 각이 열려있는 패널티 에어리어 좌측 외곽에서, 피터버러 어린 선수의 왼발이 공을 향해 휘둘러졌다.


뻥!


애초에 신해성의 패스 목표는 루이스가 아닌, 그 너머에서 들어오는 노 마크 상태의 어린 선수였던 것.

루이스도, 심지어 신해성 자신마저도 상대 수비수들을 현혹시키기 위한 미끼에 불과했던 셈이다.


이 순간, 본의 아니게 어린 선수를 위한 조연이 되어버린 루이스의 앞에 그 결과물이 한 장면으로 펼쳐졌다.

어린 선수가 왼발로 감아 찬 공이 골대 안쪽 모서리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철썩!


“우와아아아아아아아!”


피터버러 유나이티드 FC의 이름을 달고 측면 미드필더로 뛰는 첫 경기에서 데뷔골을 터뜨린 어린 선수가 목이 쉬어라 고함을 지르며 팀원들과 얼싸안았다.


하지만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루이스 마르티네스는 그들에게 합류하지 않았다. 그는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폭우처럼 쏟아지는 함성 속에 외로이 서서, 전광판을 보며 구시렁거렸다.


“이제 겨우 한 골인데 뭐 좋다고······.”


그때.


빠악!


갑자기 뒤통수를 후려치는 손길에 루이스가 쌍심지를 켜고 고개를 홱 돌렸다.


“어떤 미친놈이······!”


신해성이었다. 배구 하듯 스매싱을 날린 것은 아니었지만 남자의 자존심인 헤어스타일을 망가뜨린 것만은 사실.


“뭡니까? 지금 화낼 사람이 누군데······.”

“방금 찬 녀석이 지금까지의 너보다 골 결정력이 좋은 것 같던데?”

“그건 마크하는 놈들이 없었잖아요!”

“그러니까.”

“예?”


루이스가 못 알아듣자, 신해성이 덧붙였다.


“지금처럼 마크하는 사람이 없게끔 만들면 되잖아. 관심받고 싶거든 관중이 아니라 너랑 피치 안에 있는 상대팀 수비수들 관심 끌 생각을 해. 그게 네 일이니까.”


신해성은 루이스 마르티네스의 눈을 똑바로 응시한 채 말을 이었다.


“경기를 하다 보면 어떤 골에 있어서 때로는 조연이 되어야 할 때도 있는 거다. 그땐 조연이 할 일을 잘하는 게 팀에서 주인공이 되는 법이야.”

“글쎄요. 스트라이커가 다소 이기적이라도 골 욕심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팀이고 뭐고 저는 매 경기 해트트릭을 하고 싶다고요.”


피식 웃은 신해성이 전광판을 턱짓했다.


“그래. 했네, 해트트릭.”

“예?”


루이스 마르티네스가 고개를 돌리며 되묻자, 신해성이 아무렇지 않게 일침을 날렸다.


“선덜랜드가 넣은 세 골은 전부 네가 공 뺏기거나 홈런 쳐서 만들어준 거니까 해트트릭이지. 남은 시간도 지금처럼 패스하면 죽는 병에라도 걸린 것마냥 굴다간 다시는 피치 밟을 일 없을 줄 알아라.”

“이래도 되는 겁니까?”


루이스가 서러운 표정으로 물었지만 신해성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뭐가? 팀원들의 신뢰를 잃으면 끝이야. 우리 팀 아무도 너한테 공을 안 주는데 너를 어떻게 쓰겠어? 그건 불가항력이야.”


루이스 마르티네스는 할 말을 잃었다. 신해성의 논리에 오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팀 성적이 잘 안 나오면야 계약상 자신이 털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팀 성적이 잘 나오는 가운데 계약 기간 동안 벤치만 지켜야 한다면?

그건 최악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루이스는 그를 지나쳐서 멀어지는 신해성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소름이 끼쳤다.


‘안 돼.’


감독에게 자신을 쓰지 않을 합당한 명분을 줄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자신을 내보내지 않아도 귀책 사유는 자신에게 있는 셈이니까.

루이스는 불현듯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 순간 잘 보여야 하는 쪽은 팀원들이 아닌 자기 자신임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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