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드의 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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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티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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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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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의 빌런 12

DUMMY

*******


오성 블루윙즈 관중석이 술렁이고 있었다.


“뭐야, 방금 그거······?”

“내가 뭘 본 거지?”

“택배······ 아니, 거의 유도탄이잖아.”

“미친 거 아니야?”


피치 위 선수들도 표정이 돌처럼 굳은 게, 다를 것이 없었다.

이는 이동우도 마찬가지였다.


“하아, 하······.”


피터버러 유나이티드 골문까지 갔다가 역습을 맞고 돌아와야 했던 이동우는 호흡을 골랐다. 상의를 뒤집어 뚝뚝 떨어지는 땀을 닦으며, 그는 이를 악물었다.


‘우연이 아니야.’


우연히 상대팀 수비수 사이로 패스미스가 났다고 치자. 그게 인사이드로 감겨 들어가며 뛰어 들어가던 최전방 스트라이커 발에 걸릴 확률은 0에 수렴한다.


갑자기 자신을 아는 체하며 무모하게 달려드는 병신 같은 수비를 보고 상대를 그저 이상한 놈이라 단정 지은 자신의 전두엽을 갈아치우고 싶었다.

3부 리그 팀과 친선 경기를 갖는다는 소식에 시간 낭비라고, 다치지나 말아야지 생각했던 스스로가 이렇게 부끄러울 수 없었다.


“멍청하긴.”


하긴, 3부 리그 어떤 선수가 저런 패스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챔스에서도 잘 나오지 않는 패스다.

아마 프리미어리그 선수들 중에도 그 같은 패스를 할 수 있는 선수는 손에 꼽을 터였다.

왜냐고?

실전에서 어떠한 기술을 써먹는다는 것은, 그 기술을 숟가락질하듯 손쉽게 성공시킬 수 있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축구는 혼자 하는 스포츠가 아니다.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변수가 생겼다 해도 기본적인 팀 레벨은 오성 블루윙즈가 우위.

이동우는 정신 차리고 팀 동료들에게 목이 쉬어라 외쳤다.


“아직 한 점 차야! 우리가 이기고 있어! 지켜야 돼!”


대표팀에서도 여러 차례 경험하지 않았던가?

괴물 같은 놈을 보고 충격받은 나머지 얼빠져 있다가는 순식간에 두들겨 맞을 수 있다는 것을.


몇몇 이동우를 고깝게 보는 고참들은 안 그래도 심란한데 넌 또 왜 나대냐는 식으로 눈살을 찌푸렸지만, 어쨌든 그 목소리를 듣고 정신을 번쩍 차리는 선수들도 있었다.


“13번! 내가 간다!”


이동우와 투톱을 서는 오성 블루윙즈의 세르비아 출신 외국인 공격수가 외쳤다.

그는 2미터를 육박하는 신장을 지닌 괴물 타겟맨으로, 피지컬을 이용한 공수 양면에 특화된 선수였다.

일례로, 이번 피터버러전만 해도 침투력이 좋은 이동우와 볼 경합에서 좀처럼 지지 않는 그 덕분에 두 골을 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전방 압박에 있어서 아예 13번 한 명에게 붙는다면 확실히 자물쇠를 채울 수 있으리라.

그때, 다시 경기 재개를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삑!


*******


코피 카마라의 리턴 패스로부터 신해성을 거쳐, 존 킬리언의 발등에서 터진 피터버러의 첫 골은 경기의 흐름을 단숨에 바꿔놨다.


공이 몇 차례 양쪽 진영을 오갔지만, 어느 쪽도 우위를 점칠 수 없을 만큼 팽팽한 공방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전반과는 다른 양상.


그동안 신해성은 중앙 수비수와 우측 측면 수비수 사이에 자리 잡았다.

즉, 센터백과 라이트백 사이 공간에서 가짜 라이트백 행세를 하고 있는 셈이다.

오성 블루윙즈 공격수들이 입에 거품 물고 전진 압박을 해오는 상황 속에서도 안전하게 공을 돌리기 위해서다.

2미터에 육박하는 백인 공격수의 압박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아무리 신해성이라도 부담스러운 일이니까.


툭!


그가 센터백 노아 콜드웰에게 공을 넘겼다.

그럼에도 백인 공격수는 공을 따라 내려가지 않고 신해성을 대인 마크했다.

대신 이동우가 노아 콜드웰을 압박하러 다가가는 광경을 일별한 신해성이 자신을 맡은 괴물 공격수를 향해 씩 웃어보였다.


“······?”


백인 공격수가 불길한 느낌을 받는 순간, 신해성이 오프 더 볼(Off the ball) 상태에서 스프린트를 했다. 순간적으로 가속하며 가까이 붙어서 귀찮게 구는 백인 공격수를 따돌린 것이다.


‘요한 크루이프가 말했지.’


그는 말했다.


통계적으로 봤을 때 선수들이 90분 동안 평균 볼을 소유하는 시간은 고작 3분 남짓. 나머지 87분간 무엇을 하는지에 따라 훌륭한 선수가 결정된다고.


지금 신해성의 오프 더 볼 움직임이 그러했다. 그는 노아 콜드웰이 패스를 주기 편한 위치로 향했다. 이어서 이동우가 그 방향을 막아서는 순간, 다시 반대로 움직였다.


그사이 센스 있는 노아 콜드웰이 골키퍼에게 패스를 주고, 골키퍼가 다시 신해성에게 공을 차주면서 이동우까지 따돌렸다.


공을 받기 전부터 공을 받으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미리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원활한 패스 연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툭.


이러한 패스연계를 통해 오성 블루윙즈의 전진 압박을 풀어낸 신해성은 공을 잡는 순간 확연히 약해진 압박 강도를 느낄 수 있었다.


오성의 최전방을 책임지고 있는 이동우와 백인 공격수는 속된 말로 왕따 축구라고도 알려진 론도(Rondos) 훈련법의 술래가 된 듯 꽁무니만 쫓다 공과 멀어져버렸고, 이제 2선인 오성의 미드필더들까지 센터서클을 넘어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패스 플레이에 흔들린 그들 사이사이 공간이 벌어진 지금이야말로, 신해성이 가짜 라이트백으로 내려와서 자리 잡고 있는 이유였다.

이 위치 덕분에 그는 탁 트인 시야로 경기장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이제 공을 중앙으로 줘도 되고, 사이드로 보내도 된다. 사이드만 해도 라이트백과 라이트 윙이 상대팀 진영으로 침투 중이었으니까.


“센터! 센터!”


신해성을 압박하러 달려오던 미드필더가 중앙으로 향하는 패스 경로부터 자르며 달려들었다. 지금껏 중앙이 털린 탓도 있지만, 중앙이 털리면 골문을 바로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그나마 사이드를 내주면 중앙까지 침투할 시간을 벌 수 있다.


다만 문제는, 신해성도 이러한 상대팀 움직임을 읽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가까운 라이트백에게 공을 보낼 수 있음에도 더 먼 거리에 있는 우측 측면 미드필더를 겨냥한 채 왼발을 휘둘렀다.


뻐엉!


“백, 백!”


오성 블루윙즈 선수들이 돌아서서 라인을 내렸다.

그 사이 공은 피터버러의 우측 윙어 카이 레이튼이 질주하고 있는 방향으로 떨어졌다.


“굿 패스!”


발이 빠른 그가 공을 쉽게 따라잡은 뒤, 해맑게 웃었다.


‘뭐야? 꽃밭이네?’


이게 바로 신해성이 더 멀리 있는 윙어에게 공을 준 이유다.

뒤쪽에 있는 윙백이 들어가며, 패널티 에어리어에 상대 수비보다 아군이 더 많아진 것이다.

이 정도면 아무렇게나 차도 아군 발이나 머리에 걸릴 것 같다.

그야말로 공이 넘어오기만 기다리고 있는 두더지들을 향해, 카이 레이튼이 크로스를 올렸다.


팍!


상대 선수들이 들어오기 전에 서둘러 차올린 공이 포물선을 그리며 우아하게 떨어졌다.


하지만 그 아래 상황은 그리 우아하지 못했다. 아군과 적군이 옹기종기 모인 채 볼 경합을 벌였기 때문이다.


“개판이 따로 없잖아!”


카이 레이튼이 아귀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패널티 에어리어로 달려들며 낄낄 웃었다.

하나 그가 도착하기 전에 상황이 끝나버렸다.

처음 공을 잡은 것은 오성 블루윙즈 센터백이었으나 졸지에 세 방향에서 둘러싸여 버렸고, 그가 넘어지며 공을 놓치는 순간 코비 카마라가 슛을 때려버린 것이다.


철썩!


골이 들어가자 뒤섞인 선수들 때문에 미처 반응도 못한 골키퍼가 외쳤다.


“파울!”


넘어진 선수 역시 상체를 일으키며 외쳤다.


“파울 안 줘요? 쓰러졌잖아!”


그러나 심판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선수가 혼자 넘어지는 것을 똑똑히 봤기 때문이다.


“제기랄!”


졸지에 동점 상황이 되어버린 오성 블루윙즈 선수들이 욕지거리를 뱉었다.


한편 반대쪽 멀리 떨어져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피터버러 유나이티드 측 역습의 트리거.

역전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후방 플레이메이커 신해성은 잠깐씩 뛰어가며 패스 몇 번으로 이 모든 상황을 창조한 장본인이기에, 땀이 다 식었다.

그는 그 상태로 전광판을 바라봤다.


‘38분.’


공이 몇 차례 오가니까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추가 시간 제외 남은 시간은 7분.

토너먼트가 아니다 보니 이대로 끝나면 동점이다.


‘그건 마음에 안 드는데.’


신해성은 불쑥 경기장 스탠드를 올려다봤다. 1, 2층 스탠드 사이 통유리로 된 VIP룸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 저곳에 오성그룹 막내아들, 그 축구에 미친 양반이 있을 터였다.

애초에 본인이 소유한 구단의 경기를 한 경기도 빠짐없이 일일히 다 챙겨보는 양반이기도 하거니와, 오성 블루윙즈 측으로부터 사전 VIP 명단을 공유받아서 확실하다.


“역시 이대로 끝내기에는 찝찝하지.”


신해성이 중얼거리는 동안 피터버러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공을 돌리며 오성 블루윙즈의 전진 압박을 풀어냈다.

상대가 지친데다, 아군이 상대 템포에 적응하며 슬슬 목적이 분명한 패스를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직 멀었지만 이 정도만 해도 장족의 발전이었다.


턱.


그렇게 신해성 발치까지 들어온 공.

신해성은 체력을 아끼기 위해 라인을 내리고 끝까지 압박하지 못하는 상대팀을 바라봤다.

심지어 그가 공을 잡자 몇 번이나 혼쭐이 났던 오성 블루윙즈 선수들이 지레 겁먹었다.


”내려!”

“커버! 커버!”


그들은 라인을 내리며 자신들 진영의 빈공간을 커버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들 모두 신해성의 패스가 압박하면 뒷공간을 찌르고, 뒷공간을 커버하면 짧은 땅볼 패스로 허를 찌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뿐인가?

중앙을 커버하면 사이드를, 사이드를 커버하면 중앙으로 공을 보내서 오성 블루윙즈의 진영을 뒤흔들어 놨다.

하지만 그들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현역 시절 세상이 주목했던 신해성의 가장 빛나는 무기는 패스가 아니라는 것을.


툭······.


그는 직접 공을 밀어내며 전진했다.

오성 블루윙즈 선수들이 라인을 내리며 넓게 퍼진 상태였기에, 센터서클을 넘는 것까진 아무런 방해도 없었다.


“직접 돌파?”


이동우는 신해성을 맞이하러 나가며 어처구니가 없었다.

빗장을 걸어 잠가 패스를 줄 곳 없게 만들어놨더니 직접 돌파 시도를 할 것처럼 액션을 깐다.

국대급이 포함된 K리거 열한 명을 눈앞에 두고 말이다.


“우리가 무슨 조기축구회냐?”


아무리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지만, 낚일 줄 알고?

저런다고 우리가 다시 라인간 거리를 벌리며 우르르 압박할 거라고 기대하는 건가?

지금껏 이리저리 휘둘리다 귀신같은 패스에 몇 차례나 간담이 서늘해졌던 오성 블루윙즈였기에, 같은 실수를 반복할 생각이 없었다.


“자리 지켜!”


그들은 지역 방어와 개인 방어가 혼합된 빗장수비로 맞섰다. 각자 맡은 선수에게 바짝 붙어서 패스를 차단하다가 공이 오면 여럿이서 압박해 공을 따낸 뒤 역습하는 방식이었다.

이들은 빗장을 풀 생각이 없었지만, 신해성 역시 그냥 ‘액션’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있는 위치에서부터 골대까지 마치 한 줄기 햇볕이 내리쬐듯 고고하게 펼쳐진 자신만의 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패스를 위한 길이 아니었다.


‘내 빤스 색깔까지 궁금하게 만들어주마.’


신해성은 지금쯤 VIP룸의 유리창 너머에서 눈알 빠지게 자신을 응시하고 있을 재벌집 막내아들의 시선을 느끼며 직접 발등으로 공을 차고 나갔다.


툭!


그가 갑자기 템포를 올리자, 발이 느려 몇 번이나 그를 놓쳤던 덩치 대신 대인 마크를 붙은 이동우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아아아아아아아아······!”


관중석에서도 보이지 않는 파도가 일어나는 듯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저 괴물 같은 피터버러의 공격수가 또 뭘 보여주려는 걸까?

오성 블루윙즈 팬으로서의 두려움과 적이지만 기대하게 되는 축구팬으로서의 설렘이 공존하는 교집합의 순간에, 피치 위로 모든 시선을 빨아들이는 단 한 명의 판타지스타가 강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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