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드의 빌런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스포츠

새글

블루티풀
작품등록일 :
2024.09.07 01:00
최근연재일 :
2024.09.19 23:20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10,577
추천수 :
336
글자수 :
130,512

작성
24.09.19 23:20
조회
76
추천
7
글자
12쪽

필드의 빌런 23

DUMMY

중앙의 신해성과 좌측 측면의 루이스 마르티네스를 중심으로 견제하다 보니 한 방향으로 치우쳤던 골키퍼는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공중에서 떨어지는 공을 딱 한차례 터치만으로 반대편에 있는 선수에게 정확히 보내버리고, 또 그 공을 지면에 닿기 전 후리는 발리(Volley) 칩슛으로 마무리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야말로 완벽한 패스에 이은 슈팅이 아닐 수 없었다. 다만 그 스스로도 얼떨떨한 슈터, 재스퍼 랭포드만은 한 가지 사실을 절감하고 있었다.


‘패스가 그냥 발에 얹혔어. 우연인가? 그렇겠지?’


하나 우연이라 해도 정확도가 말도 안 되는 수준이다. 심지어 원터치로 상대 수비수들을 모조리 바보 만들다니!


생애 가장 멋진 골을 선물 받은 재스퍼 랭포드가 괴성을 지르며 신해성에게 달려들었다.


“보스!”


냅다 바닥을 박차고 뛰어오른 그를 신해성이 받아 안았다. 그들을 중심으로 다른 피터버러 선수들 역시 하나둘 달려와서 머리를 만지거나 소리를 질렀다.


“동점이야! 동점!”


하지만 서로 하는 이야기가 모두 들리진 않았다. 그들이 이렇게까지 흥분하는데도 전혀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 이유.


더 흥분한 관중석 스탠드의 피터버러 서포터즈가 있기 때문이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극적인 동점골은 언제나 이처럼 관객들을 열광시키기 마련이다.


그 골을 넣은 팀이 진절머리가 날만큼 연패를 거듭하며 몇 시즌을 통으로 말아먹은 팀이라면?


그럼에도 떠나지 못하고 미련한 일말의 희망을 가진 채 이 경기장까지 찾아온 열성팬들 입장에선 다른 때와 정반대의 이유로 돌아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는 피터버러, 피터버러 FC!


우리는 세계에서 본 적 없는 가장 위대한 팀!


팬들이 전율하며 응원가를 불렀다.

너무나 오랜만에, 홈구장 런던 로드에 욕설이 아닌 응원가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오늘만큼은 ‘위대한 팀’이라는 가사가 부끄럽지 않으므로.


이를 듣고 있는 피치 위의 피터버러 유나이티드 1군 선수들 몇몇은 가슴 뭉클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세상 어떤 선수가 응원받으며 뛰고 싶지 않겠는가?

누가 경기에서 지고 싶을 것이며, 야유와 비난을 받으며 공을 차고 싶겠는가?

그들의 전부요, 사랑하는 축구가 두려워지고 싫어질 만큼 지긋지긋한 연패와 슬럼프의 악순환을 끊어내지 못했던 선수들은 신해성을 바라봤다.


그 지독한 사슬고리를 끊어준 인물이 바로 신해성이기에. 그가 부임하면서부터 피터버러 유나이티드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한편, 이들과 전혀 공감은 못 하지만 비슷한 강도의 영향을 받은 사람은 또 있었다. 루이스 마르티네스, 그는 선수 생활을 시작한 이후 가장 큰 충격을 받았다.


-네가 이 팀에서 해야 할 일이 뭔지 알려주마.


신해성이 그렇게 말한 이후 보여준 것들은, 그가 생각하던 것처럼 독주하는 플레이가 아니었다.


분명 그전의 독주가 선덜랜드 선수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딱 거기까지.


신해성은 미친 독주 실력을 뽐내는 데 쓰는 게 아니라 팀의 승리를 위한 미끼로 썼다.


그 후 신해성이 보여준 플레이는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힘들게 선덜랜드 선수들을 제쳤을 때와 달리, 터치 한 번으로 똑같은 한 골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 간결한 움직임은 어떠한 공격수의 퍼포먼스보다 아름답고 수준이 높았다. 차라리 예술이라고 불러야 할 패스였다.


“내가 이 팀에서 해야 할 일······.”


때로는 주인공이 되고, 때로는 주인공보다 빛나는 조연이 되는 것.


“나는 그동안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루이스 마르티네스는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실소가 나왔지만 결코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왜 감독들이 자신을 기대만큼 중용하지 않는지, 어째서 다른 선수들이 자신을 실력만큼 인정하지 않는지 항상 불만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언제나 너무 답답해서 인간관계까지 버리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늘 고독했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그 이유를.


어째서 신해성 감독이 자신을 처음 만난 날 내기에서 이기고 ‘축구가 아니라 공놀이나 하고 있으니 그 수준을 못 벗어나지’라고 이야기했는지.


어느새 다가온 신해성이 어깨를 툭 쳤다.


“감독과 팀원들한테 인정받는 것도 실력이다.”

“아!”

“기술이 좋아도 그 기술을 쓸 줄 모르면 무용지물이지.”

“예, 보스······.”

“팀 스포츠에서 기술은 널 뽐내는 것만이 아니라, 팀원들을 빛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반쪽짜리 선수에서 벗어날 수 있어.”


루이스 마르티네스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이게 바로 신해성이 그를 말로 다그치지 않은 이유였다. 서둘러 변화시키려 하다간 역효과만 날뿐이다.


많은 정상급 선수들을 봐왔던 신해성은 변화의 시작이 인정이고,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것이어야 하기에 그를 먼저 감화시킨 셈이다.


“루이스, 보여줘라.”


루이스 마르티네스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는 인정욕구가 충만한 남자니까.


“예, 보스! 마지막 한 골은 전반전에 대한 만회 골이 될 겁니다.”

“그래, 파이팅이다.”

“그럼 같이 한번 역전 골을 만들어보죠.”


루이스가 의욕 넘치는 한마디를 던졌지만 신해성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숟가락 쥐여줬으면 됐지, 떠먹여 달라고? 어림없지.”

“예? 그게 무슨······.”

“메이슨!”


신해성은 더그아웃에 앉아있는 메이슨 로이스턴을 큰 소리를 호명한 뒤 엄지로 피치를 가리켰다.


그 모습에 더그아웃에 있는 선수들이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오죽하면 지목당한 메이슨 로이스턴조차 두리번거리다 자기 가슴을 가리키며 “저요?” 물었을 정도니까.


하지만 신해성은 거침없이 터치라인을 벗어나며 테크니컬 에어리어로 나갔다.


당연히, 관중석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뭐야?”

“이봐! 지금 뭐하는 건데?”

“역전이 아니라 동점이라고!”

“아니, 대체 무슨······ 왜 나오는 건데?”

“돌아가! 다시 들어가라고!”


분명 신해성이 감독 의상을 벗고 피치 위로 나올 때까지만 해도 손가락질하며 절규하던 피터버러 유나이티드 팬들이, 이제는 신해성에게 피치로 돌아가라 외치고 있었다.


막 동점을 만들며 흐름을 잡은 이 시점에 등판하자마자 이 같은 기적을 일으킨 장본인이 떠난다니 팬들이 아우성인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나가라고 하면 더 뛰고 싶고, 더 뛰라고 하면 비싸게 굴며 튕기고 싶은 청개구리가 바로 신해성이 아닌가. 그는 대충 팬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말했다.


“뭐 빠지게 뛰었더니 힘들어요. 마지막 골은 저 없어도 선수들이 만들어줄 겁니다.”


물론 귀가 먹먹할 정도로 시끄러운 스탠드까지 그 목소리가 전해질 리 만무했다.

하나 어쩔 수 없다.


혼자 인터셉트 하랴, 몇 놈을 순식간에 돌파하랴, 눈썹 휘날리게 침투해서 위치 잡고 결정적인 패스 넣으랴,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은 활동량을 가져가느라 보통 힘든 게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앞으로도 계속 호흡을 맞추게 될 메이슨 로이스턴과 각성한 루이스 마르티네스의 호흡이 궁금하기도 하고.


이러한 연계나 경기 흐름이 가장 잘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이 피치 안이 아닌, 디렉터 박스였다.


“저 하필 감독님이랑 교체돼서 진짜 잘해야겠는데요. 혹시 저도 다음 경기 선발명단에 확정되지 않은 겁니까?”

“아니, 확정이야. 아직까진. 근데 앞으로 몇 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실수를 저지르면 바뀔 수도 있지.”


메이슨 로이스턴이 쓴웃음을 지었다.


“감독님은 정말이지, 악마적이시네요.”


신해성이 어깨를 으쓱였다.


“이렇게 착한 악마도 있냐? 헛소리 말고, 애들이랑 하나 만들어봐. 그동안 일 대 일 훈련에서 배운 것들로 루이스를 잘만 활용하면 금방 만들 수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메이슨 로이스턴은 경기가 더 지체되기 전에 피치 안으로 들어갔다.


그와 교대한 신해성은 더그아웃에 편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양말에서 신가드를 꺼냈다. 이어서 편하게 발을 걸치고 경기장을 주시했다.


삐익!


다시 경기가 시작됐다. 공이 움직이고, 선수들이 푸른 잔디를 이리저리 내달렸다.


참으로 경이로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이게 행복이지. 공 차면서 사랑받고 부자 되고, 얼마나 좋아.”


뜬금없는 심상을 중얼거리는 신해성을 코치들이 돌아봤다. 그들은 이쯤 되니 신임 감독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가 없었다.


“끝까지 경기를 뛰셔도 됐을 텐데 왜 나오신 겁니까?”


아니나 다를까, 수석코치 이안 윌러비가 다른 코치들을 대신해서 물었다.


신해성은 고민할 것도 없이 간단히 대답했다.


“선수들을 믿으니까요.”


이어서, 그가 말을 이었다.


“드레싱룸의 연장선입니다. 우리 팀은 선덜랜드보다 강하고, 여기에는 일말의 의심도 없어요. 그저 우린 정상화가 필요했을 뿐이죠. 우리 선수들에게 이런 믿음을 전파하고 싶어요. 선수들에게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이안 윌러비를 비롯한 코치들의 팔에 닭살이 돋았다. 신해성은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실로 소름 끼치는 리더십이 아닐 수 없었다.


“너희를 믿는다고 백번 말하는 것보다 지금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선수들을 한번 믿어주는 게 그들의 자존감 회복이나 신뢰 관계에 훨씬 효과적이겠죠. 과연 선수들을 믿고 어렵게 동점까지 온 경기를 맡길 수 있는지, 그것부터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코치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신해성은 별 게 아니라는 듯 대꾸했다.


“경기는 지고 이길 수 있지만 신뢰가 없으면, 그 팀은 절대 성적 못 냅니다. 지더라도 필요한 일이에요. 물론, 이기겠지만.”


신해성이 턱짓했다.


관중들의 함성 속, 피치 위에선 한 편의 기적이 펼쳐지고 있었다.


어린 선수가 선덜랜드 베테랑 공격수의 공을 빼앗았고.


그의 패스를 받은 재스퍼 랭포드가 오버래핑 후 메이슨 로이스터에게 공을 성공적으로 연결했으며.


메이슨 로이스터가 공을 잡기 무섭게 사방에서 덮쳐오는 선덜랜드 선수들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침착하게 간단한 바디페인팅으로 공간을 내더니 신해성과 수없이 연습한 궤도로 롱볼을 배달했다.


퉁!


그 공은 환상적인 궤적을 그리며 측면에서 중앙으로 파고드는 루이스 마르티네스에게 연결되었고.


루이스 마르티네스가 순두부 터치로 공을 받는 순간, 선덜랜드 선수들이 눈에 불을 켜고 그에게 달려드는 그 찰나지간 그는 골 욕심을 부리는 대신 컷백(Cut back)을 내주었다.


자신보다 더 좋은 선수가 아닌, 공간적 여유가 있는 위치에서 더 넓은 슈팅각을 가진 선수에게 기회를 선물한 것이다.


단순히 양보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을 받은 어린 선수는 슈팅을 때리는 대신 좀 더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그러자 선덜랜드 수비수들이 붙었다. 동시에, 패스 앤드 고(Pass and go)를 몸소 실천하며 공을 받으러 들어온 루이스 마르티네스가 눈에 띄었고.


툭!


어린 선수는 상대 수비수 가랑이 사이로 공을 밀어주었다. 그리고 그 공은 끝끝내 공격 본능을 놓지 않고 골문 코앞까지 들이닥친 루이스 마르티네스의 발치로 굴러들어갔다.


이 지점에서 루이스 마르티네스를 막을 수 있는 골키퍼는 흔치 않았다. 그는 골문 앞에서도 침착성을 잃지 않았고, 골키퍼를 피해 가볍게 공을 밀어넣었다.


툭―.


골망이 시원하게 흔들리는 소리 따위는 필요 없었다. 그보다 훨씬 더 거대한 함성이 해일처럼 그들을 휩쓸었기 때문이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여기는 피터버러, 피터버러 FC!


우리는 세계에서 본 적 없는 가장 위대한 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필드의 빌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필드의 빌런 23 NEW +1 8시간 전 77 7 12쪽
22 필드의 빌런 22 +1 24.09.18 175 16 12쪽
21 필드의 빌런 21 +1 24.09.17 237 13 12쪽
20 필드의 빌런 20 +1 24.09.16 267 15 12쪽
19 필드의 빌런 19 +2 24.09.16 275 14 17쪽
18 필드의 빌런 18 +2 24.09.15 307 16 12쪽
17 필드의 빌런 17 +1 24.09.14 323 14 12쪽
16 필드의 빌런 16 24.09.14 346 16 14쪽
15 필드의 빌런 15 24.09.13 377 16 12쪽
14 필드의 빌런 14 +2 24.09.13 404 14 14쪽
13 필드의 빌런 13 24.09.12 404 15 14쪽
12 필드의 빌런 12 24.09.12 411 11 12쪽
11 필드의 빌런 11 24.09.11 411 13 13쪽
10 필드의 빌런 10 +3 24.09.11 428 16 12쪽
9 필드의 빌런 9 24.09.10 439 14 12쪽
8 필드의 빌런 8 24.09.10 466 14 11쪽
7 필드의 빌런 7 24.09.09 472 12 13쪽
6 필드의 빌런 6 +2 24.09.09 507 13 12쪽
5 필드의 빌런 5 +1 24.09.08 543 14 12쪽
4 필드의 빌런 4 24.09.08 552 11 12쪽
3 필드의 빌런 3 24.09.07 611 17 14쪽
2 필드의 빌런 2 24.09.07 873 22 14쪽
1 필드의 빌런 1 +5 24.09.07 1,673 23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