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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후드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9.07 01:12
최근연재일 :
2024.09.20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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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5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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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판이 계속 깔리네? (2)

DUMMY

<005. 판이 계속 깔리네? (2)>






“우선 결말은 성공하는 걸로 하자. 대신에 과정이 우당탕이라 쫄리면서도 웃음이 나게 하는 거야. 어때?”


연습실에서 발표하는데 진지하기만 하면 짜쳐.

적당히 코미디 요소를 섞어줘야 보는 맛이 쏠쏠해.


“오, 좋아. 근데 어떻게?”

“각자 캐릭터만 확실하면 돼. 일단 나랑 두영이 형이 금고 딸게. 영준이가 입구에서 망 보고, 형이랑 누나는 사람들 감시하자.”

““오케이!””


나는 능숙하게 연습을 리드했다.

일단 캐릭터만 잘 잡아도 70%는 성공이다.


“두영이 형은 소문난 문 따기 고수인데 긴장을 많이 하는 사람이야. 나는 형을 비싼 돈 주고 고용했는데 못하니까 화가 나는 거지.”

“오오, 좋은데? 개꿀잼이겠다!”


두영의 눈이 밝게 빛났다.


“영준이는 신참인 걸로 하자. 군기 바짝 든 상태로 망 보면서 긴장감을 주는 거지.”

“알겠어. 잘 해볼게.”

“그리고 감시할 때 재현이 형은 포악하게 겁 주는데 민아 누나는 마음이 약해서 둘이 삐걱대면 재밌을 것 같아.”

“우와. 상우 리더십 장난 아니다!”


당연히 장난 아니지.

피디 짬밥이 몇 년인데.

남은 건 상황 세팅이다.


“오케이. 이제 상황을 더 확실하게 굳히자. 발표 시간이랑 똑같이 리얼 타임으로 가자고.”

“에에, 리얼 타임? 너무 어렵지 않아?”


모두가 화들짝 놀랐다.


“집중하면 5분 금방 가. 소품실에 디지털 타이머 있거든? 벽에 세팅하자. 그리고 초침 소리를 배경으로 깔아두는 거지. 시간 족쇄를 시,청각적 요소로 활용해서 관객들이 몰입하게 만드는 거야.”

“우와. 대박!”

“영준이가 1분 단위로 외치면서 상기시켜 줘.”

“알겠어!”


그림도 다 그렸으니 결말 큐 싸인만 정하면 된다.


“두영이 형은 1분 남았을 때 금고 따는 걸 성공해. 닥치는 대로 돈 쓸어담고 10초 남겨두고 탈출하자.”

“굿. 다 열어줄게!”


연습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렇게 스무스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나는 연기를 하는 이 순간이 정말 행복했다.


“엎드려, 엎드려!”


엎드리라는 말이 이렇게 기분 좋은 말이었어?

이런 기분이라면 하루종일 뱉을 수 있어.


“형, 방금 호흡 좋았어. 굿!”

“와, 상우야. 너랑 연기하는 거 개재밌다. 저절로 막 뭐가 나와!”


박두영과의 호흡은 찰떡이었다.

그래, 연기는 이 맛이지.

호흡을 주고 받으며 형성되는 그 근사한 공기,

그 공기를 온몸으로 맞이할 때의 희열.

지금 이 순간, 나는 살아있다!


띵-!


연습 종료 알람이 울렸다.


“자, 15분이 지났습니다. 연습 멈추시고 모이세요!”




* * *


즉흥 연기는 배우에게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분야다.

순발력, 집중력, 표현력의 총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짧은 시간 안에 상황을 흡수하고 파악해야 하며,

그 세계에 온전히 집중해야 한다.

관객에게 닿을 수 있게 표현하는 힘도 필요하고.

잘해도 본전이고 좀만 어설퍼도 마가 떠서 배우들이 두려워하는 게 즉흥연기이다.


이 수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먼저 발표할 팀 없나요?”


다들 김철수 교수의 눈을 피했다.

그렇다면,


“저희가 하겠습니다!”


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원래 발표는 첫 빠따로 하는 게 근본이야.

잘하든 못하든 1번이라는 이유로 플러스 요인이거든.


“매를 먼저 맞겠다고 자처하다니. 기대가 되는데요? 바로 준비해 주세요.”


김철수 교수의 들뜬 목소리,

교수님이 흥미를 느끼셨을 때의 톤이다.


탁-!


째깍째깍-


“오케이, 됐다.”


우리는 벽에 타이머를 걸고, 시계 소리까지 세팅을 마쳤다.


““오오~””


동기들은 그럴싸한 준비에 기대를 품었다.


“준비되면 바로 들어오세요.”


우리는 퇴장과 동시에 재빨리 환복했다.

올 블랙 트레이닝복 셋업에 복면,

총과 돈 가방까지 완벽하게 세팅을 마쳤다.

몸에서 아드레날린이 들끓고 있었다.

나는 기합을 넣었다.


“다들 뭐 하려고 강박 가질 필요 없어. 각자 임무에만 충실하면 돼. 보여주자고!”


자, 게임을 시작하지.

나는 강도다.

은행을 털어서 한탕 크게 챙긴다!




* * *


쿵!


나는 은행 문을 힘껏 걷어차며 들어갔다.


“엎드려! 엎드려!!”

““꺅!””


총을 든 나를 보자마자 경악하는 사람들,

은행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나는 총구로 바닥을 가리키며 말했다.


“손 머리 위로 올려. 엎드리라고!”


뒤이어 팀원들도 들어왔다.


“씨팔..! 뒤지기 싫으면 가만 있어!”


두영은 상당히 흥분해 있었다.

겁을 주지만 긴장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고개 숙여, 숙이라고!”

“무릎 꿇어! 고개 들면 뒤져.”


막내와 감시조까지.

모두 계획대로 각자의 위치로 이동했다.


째깍째깍째깍-


“4분 남았어요!”


막내 영준의 외침에 마음이 급해졌다.

젠장. 통제하는 데에만 1분을 쓰다니.

나와 두영은 금고로 향했다.

그 사이 재현과 민아는 사람들을 감시했다.


“아저씨, 고개 드는 순간 머리 날아가는 거야. 숙여!”


재현이 꿈틀대는 직원을 위협했다.

재현은 민아를 나무랐다.


“야, 정신 안 차리냐?”“

“하고 있어. 그치만 무서운 걸 어떡해.”


민아가 쥔 총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지랄하고 있네. 놀이공원 왔냐? 너 때문에 일 망치면 책임 질거야? 감시 똑바로 해!”


손발이 착착 맞아도 모자를 판에 티격태격이라니.

우리를 퍽이나 무서워하겠다.


툭-


돈 가방을 놓고 본격 작업에 착수했다.

두영은 금고를 만지고 나는 짜잘한 돈들을 챙겨 넣었다.


째깍째깍째깍-


“3분 남았어요!”


벌써 2분이 지났다고?

빨리 털고 떠야 하는데.

슬슬 똥줄이 타기 시작했다.

이 때,


위이이이이잉!


경보음이 울렸다.

아까 꿈틀대던 직원이 기어코 비상 벨을 누른 것이다.

재형이 격노했다.


“이 새끼가! 뒤지고 싶어?”

“으아악! 살려주세요!”


퍽!


재형은 직원을 걷어찼다.

그리고 민아에게 호통쳤다.


“내가 감시 똑바로 하라고 했지! 아오, 개폐급 새끼.”


나 역시 분노가 치밀었다.


“감시 하나 똑바로 못해? 얼 빠진 놈들.”


위이이이이이잉!


경보음은 계속해서 내 심장을 조여왔다.

나는 두영을 재촉했다.


“염병. 아직 멀었어?”

“헉···. 헉···. 하고 있어. 기다려 봐.”


아무리 돌려대도 금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트르륵- 트르르륵-


“헉···. 헉···.”

“빨리 열어. 시간 없어!”


두영의 복면 사이로 땀을 줄줄 흘렀다.

시간 없어 죽겠는데, 왜 이렇게 못 따?

두영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잠시 후 복면을 당기더니 쏟아지는 땀을 닦아냈다.


“염병, 얼굴 가리니까 확 취하네.”

“뭐? 너 술 마셨어?”

“너무 긴장돼서 아까 차에서 한 모금 마셨어.”

“텀블러에 든 게 술이었어? 미친 놈인가, 술을 왜 마셔!”

“긴장되는 걸 어떡하라고!”


이런 정신 나간 놈을 봤나.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다.

어쩐지. 차에서 술 냄새가 나더라니.


째깍째깍째깍-


“2분 남았어요!”


영준의 목소리가 점점 다급해지고 있었다.


“내가 너 술 처먹고 얼 타라고 돈 준 줄 알아? 어떻게든 열어, 이 새끼야!”


잘 한다고 해서 비싼 돈 주고 데려왔더니만.

제대로 따지도 못하고, 긴장된다고 술이나 처먹고 있고.

실패하면 이 새끼는 죽이고 간다.


“1분 남았을 때도 못 따면 넌 내 손에 뒤질 줄 알아.”


두영의 머리에 총을 겨누며 말했다.


“미안해. 딸게, 딸게! 딸 수 있어!”


겁 먹은 두영의 손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금고에 귀를 더욱 가까이 대고 만지작거렸다.


트르륵- 트르르륵-


“뒤지기 싫으면 빨리 따!”


1초가 1년 같았다.

이대로 가다간 한 푼도 못 건지고 철창행이야.

멀쩡한 내 차 놓고 경찰차에 탈 수는 없어.


째깍째깍째깍-


“1분 남았어요!”


젠장. 조졌다.

가망 없어.

이 새끼 때문에 모든 계획이 어그러진 거야.


나는 두영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붙였다.


“죽어, 이 쓰레기 같은 새끼야!”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철컥-


금고의 문이 열렸다.


“됐다!”


금고 안에 가득한 돈 뭉치들이 나를 반겼다.

분노는 금세 환희로 바뀌었다.


“담아!”


신이 난 두영이 술 냄새를 풍기며 말했다.


“내가 딸 수 있다고 했잖아!”

“닥치고 담기나 해!”


술 냄새가 진동을 하네.

땄으니까 봐준다.


푹! 푹!


나와 두영은 돈 뭉치를 닥치는 대로 쓸어 담았다.

지금 필요한 건 오로지 돈이다.

이성이고 뭐고 필요 없어.

가방은 어느새 사랑스러운 아이들로 가득 찼다.


“형님! 20초 남았어요! 나오세요!”


젠장. 아직 남은 돈이 넘쳐나는데.

가방이 더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최대한 욱여넣어. 하나라도 더!”

“씨팔. 이게 다 얼마냐! 술이 확 깨네!”


나와 두영은 이미 꽉 찬 가방에 꾹꾹 눌러 담았다.


“형님! 10초! 이제 진짜 가야 돼요!”

“나갈게!”


터질 듯 빵빵한 가방들을 챙겨 나왔다.

움직일 때마다 조금씩 삐져나와 떨어지는 돈들조차 아까웠다.

내 피 같은 돈!


“움직이지 마! 가만 있으라고!”


재현은 우리가 다 나갈 때까지 사람들을 통제했다.

그 사이 모두 트렁크에 가방을 싣고 탑승했다.


“형! 타세요!”


영준이 시동을 걸자 재현이 자리를 정리하고 나왔다.


“가자, 우린 이제 부자다!”

““예에!””


세상에서 가장 쫄깃한,

그리고 비싼 5분이었다.




* * *


발표가 끝나자 박수가 쏟아졌다.


짝짝짝짝짝-


“우와. 대박. 퀄리티 뭐야?”

“15분 준비해서 이 정도가 나온다고?”


감탄하는 소리가 연습실 밖까지 들렸다.


“다들 고생했어,”


나는 복면을 벗고 팀원들을 다독였다.

모두 땀에 절어 있었다.


“야, 상우야. 개꿀잼이었다, 진짜.”

“술 먹고 온 설정 나이스였어, 형. 굿!”


연습실에 다시 입장하자 함성이 우리를 반겼다.


““와아아아아아아!””


우리는 고개 숙여 인사하며 감사를 표했다.


“첫 팀부터 강력한 퍼포먼스를 보여줬네요. 뒷 사람들 아주 부담되겠는데요?”


김철수 교수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 이제 상황 맞히기를 해봅시다. 너무 뚜렷하게 잘 보여줘서 이미 다들 알 것 같긴 한데. 무슨 상황 같아요?”

““은행 터는 강도들이요!””


이구동성으로 정답이 나왔다.


“어때요, 맞았나요?”

“넵, 맞습니다.”

“급조된 팀이 15분의 연습으로 만든 장면이라고 하기엔 퀄리티가 훌륭했어요. 명확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살리기 더 쉽지 않았을 텐데, 대단합니다.”


김철수 교수가 안경을 올리더니 말을 이어갔다.


“몇 가지 질문을 드리자면, 박두영 군이 술을 마신 건 합의된 설정이었나요?”

“아뇨. 상황이랑 각자 역할만 합의했고 나머진 전부 즉흥입니다. 갑자기 술 마셨다고 해서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헤헤. 저 혼자만 생각하고 있었어요. 상우가 어떻게 받아칠지 궁금했는데, 너무 잘 받아줘서 재밌었습니다.”


이게 즉흥연기의 맛이지.

나도 처음에 듣고 당황했는데, 그 당황이 캐릭터의 당황으로 연결돼서 오히려 좋았어.


“각각의 캐릭터가 분명하게 보여서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캐릭터는 어떤 식으로 짰어요?”

“모든 게 상우의 아이디어였어요. 상우가 결말부터 정한 다음에 저희에게 맞는 캐릭터를 잘 짜줬습니다.”

“맞아요. 그래서 저희는 편하게 놀 수 있었습니다! 타이머랑 시계도 상우 아이디어였어요.”

““오오~””


김철수 교수가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인정한다는 눈이었다.

원생에서도 교수님께 인정 받기 위해 열심히 했었는데.

은사님께 인정 받으니 짜릿하군.

쑥스럽기도 하고.


“제가 크게 한 건 없습니다. 팀원들 역량이 훌륭해서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겸손함을 내비쳤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맞고.

두영이 형의 술 마신 설정이 진짜 기가 막혔어.

재현이 형이랑 민아 누나 케미도 좋았고.

영준이도 신참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 주었지.


“모두 캐릭터가 확실하게 보였고 생동감 넘쳤습니다. 특히 김상우 군이 시간이 줄어들수록 폭발하는 감정 변화가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게다가 장면 전체를 지휘하기까지 했다니. 대단합니다. 수고했어요, 재밌게 봤습니다."


김철수 교수가 나에게 따뜻한 박수를 보냈다.




* * *


김철수 교수는 중헌대 연영과에서 야인으로 불린다.

1972년생으로 뉴욕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그는 4학년 때 우연히 연극 제작을 경험한 후 연극에 빠져 이 길에 들어섰다.

졸업 후 한국에 돌아와 극단 ‘접촉’을 창립, 실험적인 작품들을 선보이며 공연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김철수는 각종 대회에서 수상을 휩쓸고,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초청되기도 하는 등 입지가 탄탄해져 2009년에는 중헌대 연극영화과 교수 자리까지 앉게 된다.


“안녕하세요, 올해부터 여러분을 수업에서 만나게 된 김철수입니다.”


김철수는 중헌대가 대한민국 최고의 연영과인 만큼 학생들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김동현, 또 결석인가요?”


이름값에 비해 학생들의 태도는 실망스러웠다.

게으르고, 나태했으며, 오만하기까지 했다.

많은 학생들이 이 곳에 합격한 것을 인생 최고의 훈장이라 여기고 있었다.

중헌대에서 학교 생활을 열심히 한다는 건,

매일 술을 마시고 후배들을 괴롭히는 것에 취해있는 것을 뜻했다.

불성실할수록 학교 열심히 다닌다는 이야기를 듣는 아이러니였다.

물론 그 이야기를 하는 것도 그들끼리의 평판이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이미 대단한 배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고작 대학교 붙은 것 가지고 뭐가 된 줄 알다니.’


교수들의 세계 역시 고여있었다.


“김 교수님은 철학과 출신이라 연영과 학생들을 가르치기에는 좀 어려운 부분이 있지 않나요?”


연영과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자신을 깔보는 시선도 있었다.

같잖은 소리.

연극계에 몸담은 게 몇 년인데.

그리고 연극과 철학이 얼마나 밀접한 사이인데.

김철수 교수는 환멸을 느꼈다.


‘도저히 봐줄 수가 없구만.’


김철수 교수는 점점 냉소적으로 변해갔다.

원래도 냉철하고 이성적인 편이었지만,

조금이나마 있었던 낭만조차 버려가고 있었다.

김철수는 더 이상 중헌대에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게 됐다.


‘그냥 이건 일이야. 일이라고.’


새학기가 되어도 김철수는 전혀 설레지 않았다.

해가 바뀌어도 들어오는 사람은 바뀌지 않아.

어차피 누가 들어와도 방탕한 녀석들뿐.

이 곳은 더 이상 예전의 중헌대가 아니야.

그냥 내가 준비한 것만 하고 끝내자.


“여러분과 함께 이번 학기 장면실습을 만들어 갈 김철수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김철수는 인사와 함께 신입생을 맥없이 둘러보았다.

그런데, 한 소년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그 눈은, 썩은 동태 눈깔로 가득했던 이곳에서 볼 수 없었던 눈이었다.


‘입학 직후니까 그럴 수 있지.’


기대했다가 뒷통수를 수없이 맞은 김철수는 애써 덤덤하려 했다.

하지만,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김상우입니다. 저는 연기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내면의 성숙함이 곧 연기에도 배어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소년은 무언가가 달랐다.

스무 살에게서 느낄 수 없는 단단함이 있었다.


‘김상우. 재밌네.’


김철수는 김상우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우선 결말은 성공하는 걸로 하자. 대신에 과정이 우당탕이라 쫄리면서도 웃음이 나게 하는 거야. 어때?”


“형, 방금 호흡 좋았어. 굿!”


김상우의 에너지는 인상적이었다.

정말로 이 순간에 흠뻑 빠져있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팀원들을 이끄는 통솔력도 뛰어났다.


‘머리도 좋네.’


이 소년은 게다가 패기 넘치기까지 했다.


“먼저 발표할 팀 없나요?”


김철수는 아무도 손을 들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형식상 던진 질문일 뿐.

즉흥 상황극은 그만큼 부담스러운 일이니까.

그런데 이 때,


“저희가 하겠습니다!”


김상우가 자신 있게 손을 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발표,


“엎드려!! 엎드려!”


복면을 쓴 사내가 연습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순식간에 공기를 뒤바꾼 사내는 김상우였다.


“손 머리 위로 올려. 엎드리라고!”


위협적인 말투와 제스처, 모든 게 영락없는 험악한 강도였다.

방금 전까지 쾌활했던 소년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연기까지 잘하잖아···?’


등장부터 좌중을 압도했으니 이 발표는 이미 성공이야.

관객은 이들이 가는 대로 따라가게 되어 있어.


“내가 너 술 처먹고 얼 타라고 돈 준 줄 알아? 어떻게든 열어, 이 새끼야!”


버럭하는 김상우의 목소리에는 긴박함이 담겨 있었다.

이 상황이 주는 극적인 강도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상대 배우의 호흡을 흡수하는 능력까지 뛰어나. 이건 재능이야.’


[배우는 액션보다 리액션이 더 중요하다.]

김철수의 오랜 지론이다.

김상우는 그의 지론을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가자, 우린 이제 부자다!”


김상우는 흐트러짐 없이 발표를 마무리했다.


‘이게 15분 동안 준비한 즉흥 상황극이라고···?’


김철수는 충격에 빠졌다.

발표를 마치고 재입장한 김상우는 쾌활한 소년으로 돌아와 있었다.


‘대단한 물건이 들어왔군.’


명석한 두뇌에 뛰어난 연기력,

훌륭한 리더십까지.

대단한 인재임에 분명하다.


김철수는 노트에 펼쳐 메모를 남겼다.


[김상우: 49기 신입생, 다재다능함. 오디션 추천 고려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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