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피디는 천재배우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새글

파란후드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9.07 01:12
최근연재일 :
2024.09.20 21:20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1,170
추천수 :
38
글자수 :
64,113

작성
24.09.16 12:50
조회
121
추천
4
글자
18쪽

판이 계속 깔리네? (3)

DUMMY

<006. 판이 계속 깔리네? (3)>






“고생하셨습니다!”


발표를 마치니 속이 후련했다.

역시 첫 빠따로 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니까.

팀원들의 얼굴도 개운해 보였다.


“이따 깐붕치킨에서 모일게요. 뒷풀이 갑시다!”


내 드립에 다들 웃음이 터졌다.


“개웃겨. 우리 누가 보면 공연한 줄 알겠어.”

“콜! 진짜 가는 거지?”


화기애애하니 좋구만.

자리에 돌아오는데 시선이 느껴졌다.

모두가 날 쳐다보고 있었다.

인정 가득한 눈동자였다.

바닥에 앉자마자 동기들이 몰려들었다.


“상우야! 발표 재밌게 봤어. 너 진짜 멋있다.”

“짱 재밌었어! 어떻게 아이디어가 그렇게 빨리 나와? 비법 좀 알려줘!”


짜식들. 뭘 이 정도 가지고.

앞으로 놀랄 일 투성이일 텐데.

그나저나 다들 어려서 풋풋하다.

가끔 그리운 감성이었는데.

기분 좋구먼.


“고마워. 다들 뭐 먹고 싶어? 나 방금 은행 털어서 돈 많으니까 말만 해!”

“푸하하!”


칭찬은 위트 있게 받아쳐 주어야 제맛이지.

겸손이 미덕이라지만 뭐든지 지나치면 보기 안 좋거든.

적당히 수용할 줄도 알아야 하는 법.


이 때 간신 김민우가 옆으로 바짝 다가왔다.


“상우야, 너 천재지? 진심 개쩔더라! 나 보는 내내 소름 돋았어!”


잔뜩 과장된 말투와 제스처.

희번덕거리는 눈에 공룡처럼 벌어지는 입까지.

이 놈은 가식과 부담의 결정체였다.


“뭐래. 오버하긴.”


받아주면 끝이 없어서 초장에 잘라놔야 해.

이래놓고 뒤에 가선 또 딴소리 할 놈이거든.

최대한 상대를 안 하는 게 상책이다.


“연기도 미쳤는데 연출까지 잘 하잖아. 그게 천재가 아니고 뭔데? 니가 내 동기라는 게 자랑스럽다!”


어깨동무를 하려고 뻗는 손이 보였다.

나는 스무스하게 옆으로 피했다.


“그래. 고맙다.”


눈치라는 게 있으면 좀 가라.

거머리야?

이 때 들려오는 신경질적인 목소리.


“뭐하냐. 준비 안 해?”


강현성이었다.

김민우가 황급히 일어났다.


“어어, 해야지. 가자!”


둘의 관계는 일진과 부하나 다름없었다.

동기를 그렇게 대하는 놈이나,

그 대접을 자처하는 놈이나.

둘 다 어질어질하다.

중학생도 아니고.


“상황 쉬운 거 걸려서 꿀 빠니까 좋냐?”


강현성이 갑자기 나에게 시비를 걸었다.

얼굴에 심술이 가득하네.

열등감 느낀다고 광고하고 있구만.

이 놈도 최대한 상대를 않는 게 상책이지만,

계속 까부니까 좀 성가시네.

적당히 돌려볼까.


“우리가 쉬워보이게 잘했다고 칭찬하는 거지? 현성이가 우리 거 재밌게 봤나 본데?”


나는 팀원들을 쳐다봤다.

무언의 토스지.

눈치챈 팀원들이 바로 스파이크를 날렸다.


“하는 우리도 재밌었는데 보는 입장에선 얼마나 재밌었겠어.”

“현성이도 은행 털고 싶었구나? 푸하하.”


강현성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스파이크의 효과는 아주 강력했던 걸로.


“칭찬 고맙다, 현성아. 발표 기대할게!”


나는 미소와 함께 마무리 빅엿을 선사했다.

눈치를 보던 김민우가 급하게 자리를 마무리했다.


“현성아···! 가자. 우리 준비해야지.”


간신배라 눈치 하나는 빠르네.

저게 좋은 쪽으로 발현되면 얼마나 좋을까.


“존나 띠껍네.”


강현성은 똥 씹은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

박두영이 뒤늦게 분개했다.


“저 싸가지 없는 새끼. 상우야, 넌 화도 안 나?”

“됐어. 놔둬.”

“너한테 열등감 있는 게 분명해. 네가 수석이고 지는 차석인 게 배가 아픈 거야. 게다가 애들도 다 너 좋아하니까 부러운 거지. 한번만 더 저러면 그땐 내가 조진다.”


정작 나는 괜찮은데.

나보다 더 씩씩대네.

이 형이 이런 면이 있었어?




* * *


나는 강현성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역시 인성이 중요해.’


부족함 하나 없이 자란 놈이 뭐가 아쉬워서 저럴까.

외모도 훌륭하고 연기도 곧잘 하면서.

저건 자의식 과잉에 비해 낮은 자존감이 빚어낸 비극이다.

나는 별로 싸우고 싶지 않은데.

왜 자꾸 건드려서 피를 봐?


‘미련한 놈.’


강현성은 저 더러운 성질머리를 못 고쳐서 빛을 보지 못한다.

데뷔 초 훤칠한 외모와 강대웅의 손자라는 것이 알려지며 화려하게 떠올랐지만,

저런 불량한 태도는 금방 소문이 나고 말았다.


이 바닥에 소문이 얼마나 빠른데.

입과 귀 빼면 시체인 곳이 연예계니까.


주연을 맡자마자 갑질 논란으로 하차하게 된 이후 강현성을 찾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결국 배우 은퇴 선언 후 카페 창업을 하게 되지.

난 저 놈의 운명을 알고 있기에 굳이 상대하고 싶지 않은 거야.

알아서 침몰하는 배에 돌을 던질 필요 없잖아?


“두 번째 팀 준비되면 바로 시작해 주세요.”


다른 사람들 발표나 재밌게 봐야지.

다들 어떻게 할지 궁금하군.

목 스트레칭 한번 하고 집중해서 봐야겠다.


“후우!”


고개를 돌리다가 함수빈과 눈이 마주쳤다.

예상치 못한 아이 컨택트에 동공이 흔들렸다.


‘깜짝이야.’


나는 황급히 고개를 반대로 돌렸다.

왜 나를 보고 있지?

우연인가?

그래. 우연이겠지.

그런데 이 때


“야.”


함수빈이 딱딱한 말투로 나를 불렀다.

뭐지. 나 뭐 잘못했나?


“어?”

“왜 피해?”

“뭐가?”

“방금 눈 마주쳤는데 피했잖아.”


아. 피한 게 아닌데.

대충 둘러대야겠다.


“아닌데? 그냥 스트레칭 한건디?”

“뻥 치시네. 못 볼 거 본 것처럼 고개 돌렸으면서.”


그건 더더욱 아닌데.

네가 너무 예뻐서 놀랐다고 할 수도 없고.

화난 건가?

뭐라고 말해야 하지.

큰일이네.


수빈의 표정은 진지했다.


“너 내가 불편해?”

“에? 불편하긴 무슨. 동기인데 불편할 게 있나.”

“그럼 됐어.”


언제 그랬냐는 듯 풀어지는 안면 근육.

얼떨떨했다.

갑자기 수그러드니까 더 당황스럽다.

사람을 쥐락펴락하는 재주가 있네···.

막상 배우 활동할 때는 되게 활발하더니만.

지금은 왜 이렇게 까칠해?

사람 일 모른다니까···.




* * *


모든 발표가 끝나자 딱 수업 종료 시간이 됐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재치와 표현력에 놀라는 시간이었어요.”


김철수 교수는 생기가 가득했다.

학생들의 태도가 마음에 든 게 분명해.

전체적으로 발표의 퀄리티가 좋긴 했어.

나도 몇 번 놀랐으니까.


“다음 주부턴 작품 선정 및 팀 편성을 진행할 겁니다. 연출전공 분들은 작품 골라오시고 배우 캐스팅도 진행하겠습니다.”

““넵, 알겠습니다!””


장면실습 첫 수업은 아주 재밌었다.

다른 수업들도 빨리 듣고 싶군.


“상우야, 저녁 먹자!”

“좋지. 뭐 먹을래?”


발표도 끝났겠다, 맛있는 게 먹고 싶은 걸.

박두영과 함께 건물을 나와 이동하려는데,

흡연장에 복학생 선배들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동기들이 우르르 달려가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중헌대학교 예술대학 연극영화과 49기 연기전공 강현성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중헌대학교 예술대학···”


FM 기수 인사 소리가 캠퍼스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아오, 시끄러워.

그 놈의 기수 인사.

무슨 조직도 아니고. 부끄럽지도 않나?


“어어, 그래. 안녕.”


선배들은 거들먹대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난 알고 있었다.

저들이 일부러 1학년 수업 끝나는 시간 즈음에 나와 담배를 태우고 있다는 것을.

예쁜 신입생 꼬시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거지.

이제 막 군대 전역하고 돌아왔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현성이 이제 뭐하냐? 한잔 할까?”

“좋아요, 형! 애들 모아볼까요?”

“좋지.”


강현성은 권력욕이 있는 놈이다.

선배들과 친해져서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 싶어한다.

어찌 보면 김민우보다 더 아첨꾼이라고 할 수 있어.

예쁨 받으려는 심산이 훤하다.


“인간적으로 웬만하면 다 모이자. 좋은 형들이야! 이럴 때 선배들하고 친해지는 거지.”


강현성이 무대뽀로 동기들을 끌어들였다.

정말 별로다.

어서 벗어나야겠어.

인사만 후딱 하고 빠지자.


나는 흡연장으로 다가가 우렁차게 인사를 갈겼다.


“안녕하십니까! 중헌대학교 예술대학 연극학과 49기 연기전공 김상우입니다!”


나보다 열댓살은 어린 놈들한테 이래야 하나 싶지만.

사회력 만렙을 찍고 왔으니 내가 이 정도는 해준다.

액션 취하는 데에 돈 드는 것도 아니니까.


“네가 김상우구나? 49기 수석 맞지? 반갑다야!”


오티도 안 갔으니 얼굴을 모르는 건 당연지사.

선배들은 나를 반겨주었다.


“와꾸 좋네. 훈남 스타일인데?”

“그러게. 여자한테 인기 많겠다.”

“아닙니다! 칭찬 감사합니다!”


일단 첫인상은 나쁘지 않게 남겼다.

친하게 지내진 않더라도 적당히 잘 지낼 필요가 있어.

적 만들어서 좋을 거 없잖아?

이제 슬슬 빠져야지.

그런데 이 때


“상우 약속 있어? 없으면 같이 가자!”


김민우가 내 발목을 잡았다.

임아현까지 가세했다.


“맞아. 상우도 있으면 재밌겠다!”


하필 잡혀도 얘네 둘이냐.

49기 대표 호들갑쟁이들인데.

조용하게 빠지긴 텄다.


참석을 망설이던 여자 동기들이 내 얘기가 나오자 얼굴이 환해졌다.


“상우 가면 나도 갈래!”

“나도! 나 상우랑 얘기 별로 못 해봤어.”


아···. 이러면 나가린데.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가 않는다.

어쩔 수 없지.

분위기 상 가야 맞는 상황이다.

가야지, 뭐.


“그래. 나도 갈게.”

““꺄! 좋아!””


여자 동기들의 돌고래 샤우팅이 이어졌다.

나는 곧바로 박두영을 쳐다봤다.

박두영 역시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도 가야지.”


강현성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나도 너 생각하면 가기 싫어, 새끼야.

반면 선배들은 인원이 늘어나 흡족해했다.

엄밀히 말하면 ‘여자’ 인원이 늘어난 게 좋은 거지.


“이야. 좋다! 수빈이는 안 갈래?”


46기 정성우가 함수빈을 콕 집었다.

그래. 너의 궁극적인 목표는 수빈이지.

정성우는 모두가 알아주는 여미새이다.

수빈이를 한참 쫓아다녔던 걸로도 유명하지.


그래봤자야.

결국 수빈이는 공대생과 오래 연애하게 돼.

더 웃긴 건, 강현성도 수빈이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 사람도 많은데 같이 가면 좋잖아.”


강현성의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머리가 복잡하겠지.

함수빈과 같이 있고 싶으면서도 정성우가 들이대는 꼴을 보고 싶진 않고.

그렇다고 안 간다고 하면 아쉬울 것 같고.

굳은 얼굴에서 속마음이 다 읽힌다.


‘저렇게 티가 다 나서 어쩜 좋냐.’


다르게 생각하면 그만큼 순수한 건가?

하여간 너무 어려.


“네. 잠깐 있다가 갈게요.”

“나이스! 좋다!”


정성우의 입이 귀에 걸렸다.

강현성은 기쁨과 불안함이 공존했고.

근데···. 왜 날 보고 얘기하지?


함수빈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눈빛은 차가운 듯하면서도 따뜻했다.

그러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재밌을 것 같아요.”




* * *


우리는 학교 근처에 있는 호프집에 입성했다.

나는 아까 함수빈의 플러팅에 웃음이 났다.

나를 보면서 다른 사람한테 크게 말하던 모습.


“재밌을 것 같아요.”


함수빈은 남의 시선 의식할 때 눈썹이 올라가는 특징이 있지.

아까는 잔뜩 올라가던데.

그러면서 속으로 나름 고단수라고 생각했겠지?

그 마음이 이제는 훤히 보인다.

왜 이 때의 나는 플러팅이라고 눈치채지 못했을까.

진짜 어렸구나.


‘귀엽네.’


예쁜 애들이 수두룩한 중헌대 연영과에서도 함수빈의 존재감은 독보적이었다.

특유의 차가우면서도 청순한 분위기에 모든 남자들이 반했지.

근데 씨씨를 한번도 안 했어.

연기하는 사람은 싫대나 뭐래나.

자긴 지적이고 차분한 사람이 좋다면서.


“저는 멍청하고 설치는 건 딱 질색이에요.”


지금 생각해 보면 2학년 때 소개로 만난 공대생과 6년 연애했으니 신빙성 있는 말이었네.

그 뒤로 연애를 오래 쉬었지.

함께한 미니시리즈 쫑파티 때가 생각이 난다.

드라마가 대박이 나서 탑스타가 됐는데도 수빈이는 애인이 없었어.

“상우야. 왜 나는 마음에 맞는 짝이 없을까?”

“네가 눈이 너무 높은 거 아니냐? 눈 좀 낮춰봐.”

“지는. 너도 눈 겁나 높잖아! 너는 왜 연애 안 해?”

“연애는 뭔 연애야. 일하느라 바빠.”


그냥 푸념하나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플러팅이었던 것 같다.

그때도 눈썹을 은근히 올렸었네.

멍청한 놈. 신호를 아무리 줘도 못 알아들었네.

이후 수빈이는 사업가와 결혼을 하게 되지.

참. 지나고 나니 보이는 게 많네.


이 때


쿵!


“깜짝이야.”

“혼자 뭔 생각을 그렇게 하냐?”


강현성이 내 앞에 맥주잔을 강하게 내려놨다.

재수 없게 마주보고 앉게 됐네.

으으. 싫다.


“별 생각 안 했어. 잠깐 멍 때린 거야.”

“선배들이랑 있을 땐 집중하는 게 예의야.”


미친 놈이.

이젠 가르치려 들기까지 하네.

사람들 앞에 있다고 가오가 정신을 지배했구만?

이 새끼가 좋게 넘어가 주니까 선을 넘네.

내 빡친 표정을 본 정성우가 중재에 나섰다.


“왜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너 예민하다?”

“죄송합니다. 형들 앞에 계신데 얘가 분위기 망치는 것 같아서.”

“니가 그렇게 나서는 게 더 이상한 거야. 잠깐 술 나오는 사이에 딴 생각할 수도 있지. 상우 방금까지 우리랑 대화 잘 하고 있었잖아.”

“죄송합니다···.”


아오. 저 새끼 때문에 분위기 또 이상해지네.

이럴 때 필요한 건 뭐? 센스!

유머 섞인 사과로 후딱 넘기자.


“죄송합니다, 형. 사실 제가 치킨을 손으로 뜯어먹을지 포크로 먹을지 고민하느라 잠깐 생각에 잠겨있었습니다.”

“푸하하. 그걸 고민했다고? 웃기는 놈이네. 먹고 싶은 대로 먹으면 되잖아.”

“손에 기름기랑 양념이 묻는 게 불편해서요. 그렇다고 포크로 먹으면 또 뜯는 맛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심각한 난제였어요.”


내 진지한 말투에 모두가 웃음이 터졌다.


“그래서, 어떻게 먹을지 결정했어?”

“넵. 뜯는 맛은 즐기면서 손에는 안 묻는 방법을 찾았어요. 여기요! 비닐장갑 좀 주시겠어요? 인원 수대로 주세요!”

“키야. 상우 센스 좋은데? 다들 박수!”


짝짝짝짝짝-


정성우는 나를 마음에 들어했다.

다른 선배들도 마찬가지였고.

사실 이걸 고민하던 건 아녔지만.

치킨 시키면 항상 고민되는 난제잖아?

자칫 싸해질 뻔한 분위기를 잘 넘겼다.


“자, 반갑습니다!”

““예에!””


술자리는 생각보다 즐거웠다.

선배들도 여미새 모드가 아니었고 강현성도 꽤 얌전했다.

아마 아직 1차라서 조심하고 있는 거겠지.

술 좀 들어가면 달라질 거야.


잠시 후 선배들끼리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하, 그나저나 이번 주 축구 어떡하냐.”

“그니까. 한빛대 새끼들 존나 얄밉다니까.”


축구? 한빛대?

무슨 소리지?


“3년째 못 이기고 있는 건 좀 쪽팔리긴 해.”

“근데 걔네는 예술대랑 체육대가 같이 있잖아. 체대 애들 껴서 나오는데 무슨 수로 이겨?”

“최경호 교수님이 이번 체육대회까지 지면 가만 안 둔다고 하셨는데.”


정성우가 맥주 원샷을 때리더니 우리에게 말했다.


“얘들아, 우리가 매년 9월마다 연영과 5대 천왕이 모여서 체육대회를 하거든? 근데 항상 한빛대가 1등을 해서 우리 자존심이 말이 아닌 상황이야. 그래서 우리도 빡세게 연습하고 있는데, 이번 주에 한빛대랑 연습 게임 하기로 했거든. 혹시 공 좀 차는 사람 있어? 그 새끼들 콧대 좀 눌러놓고 싶다.”


정성우의 얼굴은 시뻘개져 있었다.

술이 오른 건지 빡이 오른 건지.

다른 선배들도 거들었다.


“걔네는 예술체육대학이라 체대생 애들도 같이 껴서 나와. 존나 빡치지 않냐? 연영과도 아니면서. 체대 애들 끼고부턴 3년 연속 걔네가 1등이야.”

“이게 자존심 싸움이라 지면 교수님들도 엄청 화내셔. 우리가 연영과 1등인데 지는 게 말이 되냐 이거지.”


오호, 이런 문화가 있었단 말이야?

재밌네.

명문들의 집안 싸움만큼 흥미진진한 게 없지.

게다가 축구라면 내가 빠질 수 없는데.


“형! 저 영등고 즐라탄이었습니다!”


강현성이 자리를 일어나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키 큰 건 비슷하네.


“오, 그래? 이번 주에 시간 돼?”

“당연하죠. 제가 골 박을게요.”


풉.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게 귀엽다.

이어서 김민우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저 골키퍼 잘합니다!”


키퍼 하기에는 키가 너무 작은데.

카시야스 느낌이려나.


“오! 우리 키퍼 없었는데. 좋아. 민우도 들어와!”

“49기, 뭐하냐! 우리가 한빛대한테 지면 되겠어? 다들 참여해야지! 여자 애들도 응원 오고!”


강현성이 행동대장 노릇을 자처했다.

그리고 다음 시선은 자연스레 나에게 향했다.


“너 공 좀 차냐? 운동 신경 존나 없을 것 같은데.”


강현성은 웃고 있었다.

드디어 나를 깔아뭉갤 건덕지를 찾았다고 생각한 거지.

멍청한 놈. 너 사람 잘못 봤어.

도발도 사람 봐가면서 해야지.


“너보단 잘할 걸?”


나의 맞도발에 모두 놀랐다.

그만큼 예상에 없던 행동이니까.

난 그냥 조용조용한 존재였으니 그럴 만도.

강현성의 얼굴이 구겨졌다.

정성우와 선배들이 내게 관심을 보였다.


“말하는 게 왠지 고수 삘이 나는데? 상우 포지션 어디야?”

“저 메인은 수비형 미드필더인데 다 가능합니다.”

“오오. 멀티!”


이 사람들이 남자한테 초롱초롱한 눈을 뜨는 건 처음 본다.

기대감 만땅이구만.


“찐으로 잘하는 거 맞아? 그냥 땜빵으로 멀티인 거 아니야?”

“저 고 2까지 축구했어요. 동복고 나왔습니다.”

“와. 동복고?!?!”


정성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축구 골수 팬인 정성우는 동복고가 어떤 곳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야! 됐다! 우리가 이겼어!”


다른 사람들은 아직 파악이 안 된 눈치였다.


“동복고가 뭐하는 곳인데?”

“뭐 선출 그런 거야?”

“씨바. 동복고도 모르냐? 축구 천재들만 들어가는 게 동복고야. 홍명준, 김은종, 손형빈 다 동북고 출신이라고!”

“미친. 그럼 상우가 축구 천재라는 소리네?”


정성우가 내 손을 잡으며 간곡하게 부탁했다.


“상우야. 이번 주 토요일에 나와줄 수 있어? 제발, 안 돼도 된다고 해주라!”


우주의 기운이 나를 향하고 있다.

이건 완벽한 판이다.

내가 편하게 놀 수 있는 놀이판.

놀으라고 깔린 판을 거르면 그것도 예의가 아니지.

내 클래스를 확실하게 보여줄 때다.


“가시죠. 한빛대 부수러.”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스타피디는 천재배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0 판이 계속 깔리네? (7) NEW 4시간 전 30 2 12쪽
9 판이 계속 깔리네? (6) 24.09.19 62 2 12쪽
8 판이 계속 깔리네? (5) 24.09.18 94 3 13쪽
7 판이 계속 깔리네? (4) 24.09.17 118 3 15쪽
» 판이 계속 깔리네? (3) 24.09.16 122 4 18쪽
5 판이 계속 깔리네? (2) 24.09.15 127 3 17쪽
4 판이 계속 깔리네? 24.09.14 142 4 13쪽
3 가슴 속의 열정 (3) 24.09.13 139 6 13쪽
2 가슴 속의 열정 (2) 24.09.12 150 5 13쪽
1 가슴 속의 열정 24.09.11 187 6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