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BM도 고려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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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더밥
그림/삽화
AI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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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9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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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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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4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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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BM도 고려 하세요. ②

DUMMY

서경(西京, 양평)


유신은 가족들이 머물 곳을 마련하기 위해 떠나고, 왕소중은 서경 유수께 먼저 인사를 드리기 위해 발길을 서두른다. 자고로 출필고 반필면만 잘해도, 반은 먹고 들어가는 것이 예의범절 아니던가? 인사는 잘하고 다녀서 손해 볼 것이 없다. 


넓은 서경성의 내부를 가로질러, 유수께서 머무시는 곳에 도착했다. 가져온 선물을 확인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서경 또한 제2의 수도이기에 처리할 서찰이 많아, 바쁘게 정리 중이신 유수께 인사를 드린다.


“험험, 어르신. 공부시랑 왕소중 인사드립니다. 늦어져, 송구합니다.”

“···음? 오! 도망간 것이 아니었어! 그래! 어서 이리 오게나. 잠시만 기다리게”


그가 빠르게 수결을 남기고, 차를 권한다.


“일단 차부터 드시게나. 영작원(개경 상서공부와 동일)의 일을 할 것인가? 다른 일도 맡아주면 좋겠네만.”

“공부 소속이니 영작원 일은 당연히 하는 것이겠습니다만···어떤 일을 맡기시려는지요.”


“자네도 아시겠으나, 서경은 사람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네. 이곳의 향직(현지 채용인들)들을 실무에는 부리나, 그를 확인하는 일이 골치가 아프이.”

“아, 그렇겠습니다···"


유수관을 최상위에 두고 그 아래 4부가 운영되지만, 고려 특유의 겸직 덕에 실제로 관리가 와 있는 경우는 드물다. 


현대에도 서류를 보고해 본 사람은 알 것이나, 팀장이나 높은 직위의 사람들이 하는 것이 없어 보여도. 전체 자료의 얼개와 논리가 맞는지를 검토 후 위로 보고하는 일을 한다. 절대 그저 놀고먹는 게 아니라는 말씀.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라면, 일을 돕겠다 하니. 바로 호부(戶部)와 공부(工部)에 해당하는 영작원의 장으로 일하라 한다. 특급 승진인가?


유수께서 웃으시며, 얼른 나가 보라기에 밖으로 나왔다. 이거 뭐 또 일을 떠맡은 것 같지만, 일단 잘 보여야. 여기에서 세를 만들 수 있을 것 아닌가? 

일단 가본다.


“여긴가···? 말 좀 묻겠소이다. 영작원이 이곳이요?”


관원으로 보이는 이에게 물으니, 그가 나를 한번 훑어보고 웃으며 답한다.


“오호라! 드디어 오신 게요? 유수께서 오신다 하셨거늘, 왜 안 오는 것인가. 또 도망간 것인가. 하였는데 잘 오셨소이다! 안으로 드시지요!”

“···허? 그, 그럽시다. ”


안으로 들어가니, 이건 개판이다. 


서책들은 쌓여있고, 다들 바쁘게 움직이며 일을 처리하는 중이다. 서경이 세월이 지났는데도 계속해서 건축이 진행되기에 관련 업무로 바쁜 것


한숨을 쉬며, 관원이 상서에 준하는 이들이 앉는 자리로 나를 안내한다. 그가 옆에 쌓인 서책을 툭툭 두드리며 말한다.


“자! 이것들부터 어찌 수결을 해주시지요. 반년여가 밀려, 이리되었소이다!”

“헐··· 이 많은 것들을 수결은 받지 않고 그저 진행만 한 것이오? 어찌 그럴 수 있소이까.”

“서경 아니겠습니까. 알아서 하라는데, 상관은 안 계시고··· 놀 수는 없으니, 일은 계속되고 뭐 그런 것이지요. 어서-”

“허허, 말은 되는구려. 잠시 보겠소.”


서책들을 쭉 읽어 보니, 일은 잘 처리해 두었다. 몇 가지 수가 이상한 것들은 재검토해 볼 것을 요청하고 그에게 묻는다.


“자네는 나와 연배는 비슷해 보이는데, 어찌 불러야겠소?”

“흠, 나란 사람은 황수겸(黃壽謙)이라 하외다. 한데 이것이 동정직(同正職, 현대로 치면 인턴)이라 관직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지요. 하하!”


“서경이라 하더니, 관직은 주지 않고···쯧. 그리하더라도 전시과는 지급되는 것이오?”

“이 서경이 땅은 남아도니, 주기는 하지요. 신경 쓰지 마시오. 다들 알아서 살아가니.”

“허허, 거참···”


동정직이라도 땅은 지급되니 다행이다.

현대로 치면 인턴급 정도 되는 것이 동정직인데, 간단히 알아보면


산직이라 불리는 실제 관등은 없는 직위가 있다.

동정직(同正職)·첨설직(添設職)·검교직(檢校職)이 대표적인데, 검교직은 5급 이상, 동정직은 6급 이하 정도의 양반에게 주어지는 산직이다.

딱 맞춰서 진행되는 것은 아니기에 구분이 모호하나, 예를 들어 ‘검교태자첨사’라는 무엇인가 있어 보이는 이 직책도 사실은 그냥 명예직에 가깝다.


일은 하는데 그놈의 겸직이 하도 많다 보니, 검교라는 명예직으로 아예 임관하고 승진하는 경우도 많다. 산직은 수의 제한이 없기에 그렇다. 이 정도만 알아도 된다.


고생하는 그에게 조금의 포상도 하고, 이곳의 사람들과도 가까워지기 위해 제안해 본다.


“자네와 주변 사람들에게 오늘 내가 한턱내겠네. 어떠한가?”

“어이쿠, 그러시겠소? 나 황수겸이 말술이거늘. 어찌 감당하시겠소이까? 하하!”

“걱정하지 말게나, 이래 봬도. 왕 씨 아닌가? 하하, 금전은 걱정 말고 다 불러오게나.”

“후회하지 마시오?! 여보게! 여기 새로 부임하신 왕 상관께서 오늘 거나하게 한턱 내신다 하시네!”


다들 뭐? 이게 웬 떡?! 이런 표정을 지으며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다가와 어서 가자고 소리친다.

대낮부터 마셔도 되는지 모르겠으나, 욕 좀 먹으면 되겠지 싶어 그들과 함께 밖으로 향한다.


***


서경 시전을 조금 지나, 포구로 향하는 길에 위치한 주루에 들른다. 이 술집을 고려 시대에는 주점, 주루 등으로 불렀는데 초기에는 관에서 운영하는 주점만을 허가하였다. 이후 몇번의 화폐를 유통하고자 하는 시도와 함께 민영 주점과 다점들 또한 큰 고을을 위주로 생겨난 상태다. 지금 이곳은 ‘주루’이기에 규모가 매우 크다.


“워, 이건 돈 좀 있는 양반이 운영하나 보네··· ”

“왕 상관! 어서, 어서 드시오. 아무도 없느냐! 새로이 부임하신 높은 관리분이시다!”


안에서 색기가 가득한 이가 총총 뛰어나와, 황수겸의 팔을 끼며 웃는다.


“아잉, 왜 이제 오셨어요. 이 화영이가, 한참 기다렸답니다.”

“하하! 그랬더냐, 오늘 전주는 여기 이분이니. 여기에 붙거라.”

“허? 하하. 그래, 어디로 들어가면 되겠소?”

“아이, 몸이 참 좋으십니다. 이쪽으로~”


살랑거리며 우리를 이끌어 가장 큰 방으로 안내한다. 아예 기둥뿌리를 뽑아버릴 생각인지, 함께 온 수십에게 여인들이 하나씩 다들 붙고 술판이 벌어졌다.


황수겸이 신이 나는지, 일어나 꿀렁거린다.


“놀아야~ 인생이요. 즐겨야 삶이로다!”

“얼쑤!”

“즐기세나, 인생이 짧더이다~ 마시어!”

“마시고 죽어!”


과거나 현대나 술 마시면 다들 개가 된다. 아주 그냥 개판이다. 부임 첫날부터 정신을 잃을 수는 없기에 잘 버텨본다. 


그러다 노래를 한 곡 하라기에 사양하다가 어쩔 수 없이 한 번 불러 본다.


“험험, 알아듣지 못하는 부분이 있더라도 그러려니 하시오.”

“알겠소이다! 불러보시오! 박수!”

“와! ”


아는 노래가 별로 없기에, 노래방 가면 항상 부르던 노래를 불러 본다.


“해 저문 어느 오후, 오늘 하루도 흐~리겠지. 힘든···일도 있지~ 드 넓은 세상 살다 보며 언~ 하지만 앞으로 나가! 네가 가는 곳이~ 길이~다!“


부르기 시작하니, 나름 필을 받아 끝까지 불러 본다. 어쩌다 여기 오게 되어, 살자고 아득바득거리는 내 모습이 노래와 겹친다.


“브라보! 당신에 인! 생!”


브라보를 알까? 노래를 다 부르고 나니,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관원들이 보여 어색하게 웃는다. 잠시 후 황수겸이 먼저 정신을 차리고 손뼉을 친다.


“자자! 처음 들었으나! 뭔가 인생이 담긴 것 같소이다! 박수!”

“한가락 하시는구려! 제 술도 받으시지요.”

“하하, 고맙네.”


밤이 깊도록 주거니 받거니 술을 마시고, 이제 하나둘 집으로 떠나간다. 나도 집으로 가려고 생각해보니···살 집도 안구하고 술을 마시고 있다.


정신이 번쩍 들어, 이마를 탁 친다.


“아이! 등신··· 어디서 자냐!”

“흠냐음···왜 그러시오? 왕 상관··· 처소를 아니 구한 것인 게요? 딸꾹!”

“으···그러하다네. 유수께서 이리로 보내시기에 바로 와버렸어···아.”

“딸꾹! 하면, 소인의 집으로 가시지요. 한 명은 더 자도 문제없을 것이오. 가좌~”


비틀거리는 그를 따라가 본다. 

한참을 걸어 그의 집 앞으로 왔다. 생각보다 집이 훌륭하다. 하인의 안내를 받아, 별채에 몸을 뉜다. 


“끄아, 골이야···꿀물이나 한 잔 하고 싶은데 있으려나. 여보게나, 여기 시원한 물 한 잔 주게-”

“예, 어르신.”


그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정신을 조금 차리려 밖으로 나와 걸터앉아본다.

술자리에서 들으니, 황수겸은 과거 이곳의 서경부유수로 머무르신 황종각 어르신의 아들이라 한다. 개경에 머무는 부친과는 달리, 그는 탁 트인 이곳이 좋다며 서경의 산직으로 머무르고 있다는 말도 더했다. 

잠시 후, 센스 있게 꿀을 조금 탄 물을 한 번에 마시고 멍하니 하늘을 본다.


“허, 하늘에 별은 엄청 많네···”


주변이 칠흑같이 어둡기에 별은 더 빛나 보인다. 이건 장점이겠다. 뭘 해야 잘했다고 소문이 날까 고민을 하는 중에 또 술에 취한 이가 들어온다.


“에이 퉷! 딸꾹! 은제까지 딸꾹! 검교 나부랭이로 살아야 하는가! 으이”


검교직이라, 서경은 확실히 산직에 해당하는 이들이 많은가보다. 그가 위태롭게 휘청거리기에 다가가 부축한다.


“괜찮으시오? 술을 많이 자셨구려··· 거기 미안하네만, 꿀물 한잔 더 타다 주게나.”

“예, 어르신.”

“딸꾹! 뉘시오? 개경에 발도 못 붙이는 수겸 나부랭이와 친우가 될 이가 나 말고 또 있는가? 끄윽-”

“휘- 썩은 내··· 서경도 어찌 노력하다 보면 개경처럼 되지 않겠소. 꿀물 한 잔하시고 정신 차리시오.”


그를 마당에 있는 평상에 눕히고, 나도 옆에 걸터앉는다. 하인이 가져온 꿀물을 건네니, 꿀떡꿀떡 먹고는 드러누워 한참을 가만히 숨만 쉰다.

그가 부스럭거리더니, 옆에 앉아서 별을 보고 있는 내게 말한다.


“거, 문반 어르신. 이 서경에는 왜 온 것이요? 여기 있다가는 출사길이 막혀···그러니 돌아갈 수 있을 때 가시오.”

“허허, 선조 대에 박수겸 어르신 일가가 제거된 것 때문에 그러시오? 그야, 세력 싸움에서 밀려나 그런 것이 아니겠소···다 하기 나름일 것이오.”

“파하하! 그리 생각하오? 순진하구먼···”


현대에서 내 나이도 사십대였는데, 순진하다니···칭찬인가? 아니겠지. 나도 안다. 여기서 지낸 기간이 있으니 말이다.

고려는 호족과의 연합이 중요하고 그로 인해, 왕좌에 누가 오르느냐에 따라 출사길이 막힐 수도 열릴 수도 있다. 황수겸이나 이 사람이나 어쩌다 보니 줄을 잘못 탔나 보다.


“그래, 거 세상 다 산 듯한 분은 함자가 어찌 되시오? 나란 사람은 왕소중이라 하지요.”

“왕···왕?! 허! 몰라뵈었소. 실언이니 신경 쓰지 마시오.”

“그저 왕 씨일 뿐 그리 대단한 이가 아니니, 그래 이름이 뭐요?”

“유고성(庾告成)이라 불러주시지요. 허울뿐인 검교직을 받아, 방어진사를 대신하고 있소이다.”


방어진사(防禦鎭使)

동북면과 서북면의 방어를 담당하는 성채의 장급에게 붙는 호칭이다. 본래라면 5품 이상의 사(使)를 파견해야 하지만, 유고성이 담당하는 곳은 검교직을 주고 대리하게 했나 보다.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방어진사를 산직을 맡긴 것을 보니, 부사나 판관은 아예 보낼 생각이 없나 보구려. ”

“요나라와 통교를 하게 되니, 동북면으로 보내는 것이겠지요. 말이 좋아 서경이지···대접이 좋지는 않소이다.”

“흠, 보아하니 그런 것 같소. 어쩌다 보니, 사람이 부족해 호부, 공부의 일을 돕게 되었으니. 필요한 것이 있거든 말씀하시오. 내 돕겠소.”

“참이오?! 이전의 관리들과는 조금 다르구려. 고맙소이다!”


이전 관리들이 어찌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나란 사람은 이곳에서 세를 만들고자 하기에 누구든 환영이다. 함께 갈 수만 있다면 최대한 끌어모아 본다. 

그와 대화를 나누며 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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