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급 흑마법사가 용사를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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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0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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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몸이 바뀐 용사

DUMMY

요동치는 천지와 붉게 타오르는 대지.


거대한 문을 열어젖히고 신들이 한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세상은 그들의 신력을 견디지 못한 채 바스러져 간다.


“수고했다. 용사여. 그대가 마왕의 목을 벤 덕분에 우리는 비로소 세상에 강림할 수 있었다.”


신들의 무리 중, 가장 선두에 선 이가 쓰러져 있던 세현의 공적을 치하했다.


그러자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는 강력한 열기. 최고신이자 빛의 신인 그의 휘광은 작은 움직임만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녹이기 충분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비원은 이뤄졌다. ‘영계의 문’이 열린 이상 이제 세상은 더 이상 우리를 거부하지 못 하리라.”


승리를 자축하듯 빛의 신이 팔을 활짝 벌리며 그리 외치자, 다른 신들의 커다란 환호성이 뒤따른다.


“경하드리옵니다. 나의 주여. 이제 현계에서 영생을 누리소서.”


모든 것을 불사르는 뜨거운 기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 소녀가 그에게 다가와, 무릎을 꿇고 빛을 경배한다.


“오 베로니카, 나의 가장 친애하는 성녀여. 그대가 용사를 마왕에게 인도하지 않았으면 우리도 이 땅에 발을 들이지 못했으리라.”


“아아···. 과찬이시옵니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이 한 몸 기꺼이 바치겠나이다.”


진심으로 기쁜 듯,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두 손을 마주하는 베로니카. 그 뒤를 따라 다른 원정대원들도 땅에 머리를 박으며 신을 예찬한다.


간신히 고개를 들어 올린 세현은 그 모습을 보고, 비로소 자신이 배신당했음을 깨달았다.


처음 소환되었을 때 마왕을 처치하면 돌려보내 주겠다는 약속도.


피 흘리며 쌓아 올렸던 힘과 공적들도.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내며 전장을 해쳐왔던 동료들도.


그 모든 것이 거짓이었음을 그는 비로소 체감했다. 그 누구도 자신을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신들만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었기에.


“하하···씨발 다 좋다 이거야···. 기껏 새빠지게 마왕이라는 놈을 잡아놨는데 이렇게 유기하는 건 그렇다 치고, 너희들은 이렇게 우르르 떼거리로 몰려서 대체 뭘 할 생각이지?”


세현은 성검을 지팡이 삼아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치열한 격전 끝에 검게 타 숯덩이가 된 사지와, 텅 빈 한쪽 어깻죽지. 세현은 이미 더 이상 정상이라 부를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그의 상태를 걱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함께 등을 맞대고 싸워왔던 이들조차 오히려 불쾌한 시선으로 세현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래, 그대가 세운 공을 생각하면 충분히 알 권리가 있지.”


빛의 신은 고개를 끄덕이고, 팔을 들어 저편을 가리켰다. 그의 손이 향한 방향으로 멀리 자그마한 도시가 보이는 듯 했다.


기억나는 것 같았다. 아마도 원정을 출발하기 전 원정대의 보급을 도와준 곳일 터였다.


“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은 이들이 산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때 그의 손가락 끝에서부터 한 점 눈부신 광원이 맺혔고.


“잠, 잠깐···!”


“우리가 머물 신세계는 좀 더 깨끗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 다시 새로이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결정했네.”


그대로 눈 깜짝할 새 저 너머로 뻗어나가 순식간에 마을을 불살랐다.


“이른바 ‘휴거’지. 우선 세상을 깨끗이 치울 필요가 있네.”


신이라는 작자가 아무렇지 않게 적어도 수만의 이들이 사는 터전을 한순간에 지워버렸다.


그는 진심이었다. 이대로라면 신은 정말로 온 세상의 생명체를 없애버릴 터.


“이, 이 미친 새끼! 당장 멈추지 못해!”


세현은 남은 한쪽 팔로 젖 먹던 힘을 다해 성검을 들어 올려 빛의 신에게 몸을 던졌지만,


“컥!”


“얌전히 있으세요. 용사···아니 차세현.”


성녀의 성마법이 세현의 육신을 짓눌러 깔아뭉갰다. 


“베로니카···! 명색이 성녀라는 년이···! 이런 개 같은 짓거리에 찬동해?!”


“성녀라···. 그래서 오히려 신의 뜻을 따르는 게 맞지 않을까요?”


평소 온화한 얼굴로 세현을 맞이하던 성녀는 이제 없었다.


그저 비릿한 조소만을 머금은 채 자신을 비웃는 신의 충실한 종만이 있을 뿐.


“아직도 모르시겠나요? 당신은 그저 이 원대한 유토피아를 위해 쓰였을 뿐인 장기 말일 뿐이었답니다. 그래도 부디 자랑스러워하시길. 당신은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룬 거랍니다?”


세현은 어이가 없어 실소를 흘렸다. 자기 일 아니라고, 마음대로 지껄이기는.


“결국 자기들은 수억명의 목숨을 대가로 살아남는 주제에 똥폼을 잡고 지랄이야.”


다가가기만 하여도 짓눌릴 것만 같은 신들의 신성력이었지만, 주위의 원정대들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그 말인즉슨 그들은 신들에게 이 세상을 팔아넘긴 대가로 어떤 방식으로든 안전을 보장받았다는 의미다.


세현의 말을 들은 이들의 표정이 구겨졌지만, 성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생긋 미소 지어 보였다.


“만약 ‘휴거’를 마치고도 세상이 지저분하다고 주께서 말씀하신다면, 저는 기꺼이 제 목숨을 내놓을 겁니다.”


그녀야말로 광인이었다.


세상이 불타든,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죽어 나가든 오로지 신들의 기쁨이 곧 자기 행복인 자.


신의 대리자였던 그녀가 세상에 등을 돌린 이상, 이제 더 이상 어디에도 희망은 없었다.


‘끝인가···.’


모든 것을 체념하고 눈을 질끈 감은 그때.


“그럼 먼저 모범을 보여줘라 베로니카.”


한줄기의 검은 광선이 성녀의 어깨를 꿰뚫고 지나간다.


“큭! 무, 무슨?!”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모두가 당황해 반응하지 못할 때, 백발의 사내가 세현의 앞에 나타났다.


“이, 이반?! 살아 있었어?”


“안타깝게도 말이야. 이 꼬락서니가 나기 전에 진작에 막았어야 했는데.”


마왕을 상대하기 위한 원정대 내에서 유일하게 흑마력을 다루던 자, 지금 유일하게 신들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 남자.


흑마법사 이반 하크우드는 세현의 손을 잡고 일으켰다.


“설명할 시간이 없다. 세현, 혼란스럽겠지만 지금 서둘러 해야 할게 있다.”


“뭐, 뭘 말이야?”


“나와··· 영혼을 서로 바꿔줘야겠다.”


그 말에 순간 세현은 황당해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영혼을 바꾸라니? 그건 흑마법 중에서도 금기가 아닌가? 도대체 무슨 이유로?


“당장 시작하겠다. 내 몸에 네 영혼이 정착한다면 바로 주술이 발동할 거고 너는 떠날 거다.”


그 말과 함께 세현과 이반의 주위에 검은 기운이 몰아치며 둥근 마법진이 생겼다.


“이, 이게 무슨.”


“···! 당, 당장 막으세요!”


무언가 깨달은 듯 성녀는 주위의 이들을 바삐 재촉했지만.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시커먼 소용돌이가 나타나, 둘을 집어삼켰고.


“무운을 빈다, 부디 다시 돌아가 이 참혹한 미래를 바꿔 다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세현의 의식은 아득한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


“도련님! 기침하시지요 도련님! 벌써 해가 중천입니다!”


“······!”


등에서 느껴지는 푹신한 매트리스의 감촉. 그리고 자신을 재촉하는 익숙한 목소리에, 그는 벌떡 일어났다.


낯선 방이었다.


평소 자신이 쓰던 방과는 완전히 다른 구조의 장소였다. 훨씬 넓고, 한 눈에 봐도 사치스럽게 보이는 가구와 의류가 눈에 들어왔다.


“밤새 또 얼마나 음주를 하신 겁니까···. 가주님을 알현하기 전에 냄새라도 어떻게 좀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세현의 눈앞에 선 초로의 남자는 정신을 차린 세현에게서 지독한 악취가 난다는 듯, 코를 부여잡고 인상을 한껏 찡그렸다.


“한?”


낯선 존재다. 하지만 세현은 이 남자를 알고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하크우드 가를 섬겨왔고, 그곳의 도련님이었던 이반을 보필했던 그를 어찌 잊을 수가 있을까.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세현은 천천히 기억을 더듬어 봤다. 자신은 분명 아까까지 마왕의 성채에 있지 않았나.


성녀와 동료들에게 배신당했고, 빌어먹을 신들은 세상을 멸망시키려 했다.


그리고.


‘이반···!’


이반은 영문 모를 소리를 늘어놓으며 자신과 세현의 몸을 바꾼다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 도대체 여기는 어디 인가.


이반은 어디 갔고, 이미 오래전 마왕군에 죽었을 한이 여기 있냐는 말이다.


“지금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왜 여기 있긴요. 또 술에 잔뜩 취해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도련님을 하인들이 데려왔겠지요.”


“···술?”


그러고 보니 몸에서 지독한 술 냄새가 올라왔다. 독한 알콜 향이 세현의 코를 찔렀다.


또 물먹은 솜처럼 팔다리가 무거웠고 잘 움직이지 않았다. 


가장 골치 아픈 것은 지끈거리는 두통. 세현은 이 몸살 기운이 숙취임을 알아챘다.


당장이라도 깨질 것만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세현은 한에게 물었다.


“한, 혹시···여기가 대체 어디지···?”


“예? 아직 술이 덜 깨셨습니까? 그럼 도대체 여기가 어디겠습니까? 도련님. ”


자신이 알 턱이 있나. 과거에도 한 번도 발을 들여본 적이 없는 방인데.


잠깐, 그보다 한은 왜 자꾸 자신을 도련님이라 하는가.


“설마··· 하크우드가의 본가?”


“···마치 남의 집인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잠꼬대는 그만하고 이만 나오시지요 가주님이 기다리십니다.”


그 말을 끝으로 한은 등을 돌려 세현을 내버려 두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세현은 잠시간 멍하니 있다, 저편 탁상 위의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확인했다.


붉은 눈동자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백발의 사내.


전체적으로 눈가에 짙은 다크서클이 드리워 있었지만, 그런데도 유독 흰 피부가 눈에 띄었다.


기억하는 것보다 좀 더 앳되어 보였지만, 세현은 그 얼굴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자신이 마지막으로 봤던 얼굴이기에.


“이반···?!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지금 자신은 어찌 된 영문인지 이반의 몸에 빙의하여 있었다.


그래. 그것까지는 분명 이해할 수 있었다.


마지막 순간, 이반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신과 영혼을 바꾸겠다고 하였기에.


하지만 여기는 하크우드가의 본가가 아닌가.


분명 이반은 예전에 자기 집은 마왕 군에게 공격당해, 동생을 제외한 모든 가족이 몰살당했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멀쩡하다고? 아니 그 이전에 이미 예전에 죽었던 한이 살아 있지 않은가.


“과거로 돌아온 건가···?”


“그걸 이제 알아채다니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


“······?! 누구···?!”


문득 중얼거린 혼잣말에 답한 어디선가 들려온 말.


고개를 급히 돌려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이런 얼빠진 놈 같으니라고. 밑이다.”


세현이 고개를 숙이자, 바닥에는 웬 한 마리의 검은 쥐가 찍찍대며 그에게 성을 내는 게 아닌가.


“이, 이런···이건 또 무슨?”


“지금 너에게 느껴지는 기운··· 너는 그 흑마법사 놈이 아니군? 넌··· 용사인가?”


하지만 목소리는 어딘가 익숙했다. 친숙하지는 않지만 묘하게 자신을 아는 것만 같은 기분.


“나를··· 어떻게 알지? 넌 도대체 누구지? 그리고 이건 또 무슨 상황이고?!”


“짐의 목을 날려놓고 벌써 잊어먹은 게냐?”


“뭐···? 내가 목을 날렸다고? 그리고, ‘짐’이라니...그럼...넌 설마 마왕···?”


찍! 거리며 통통한 몸매의 검은 쥐는 팔짱을 끼며 세현을 가리켰다.


“사정이 있어 이런 볼품없는 몸을 잠시 쓰긴 했지만, 짐의 고귀한 기운까지는 감출 수 없었거늘. 이제야 눈치채다니. 이런 얼빠진 놈이 회귀할 줄이야.”


“회귀···?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과거라도 돌아왔다는 말이야?”


쥐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한다.


“아무래도 용사 네놈은 그 흑마법사 놈 대신 회귀한 것 같구나.”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신인 작가 화투입니다.






모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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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 불의 신의 사도가 되다(뻥) 24.09.18 54 15 11쪽
8 8. 딸깍 한 번 이면 족하다. 24.09.17 71 20 12쪽
7 7. 신을 불러내다. 24.09.16 77 19 12쪽
6 6. 성녀를 구하다. 24.09.15 90 18 12쪽
5 5. 짐승들 쪽쪽 빨아먹기 24.09.14 91 19 12쪽
4 4. 성녀 어디 숨겼냐? 24.09.13 111 18 11쪽
3 3. 놈들을 모조리 없애버리기 위해. +1 24.09.12 125 17 12쪽
2 2. 새로이 살겠다. +1 24.09.11 163 19 12쪽
» 1. 몸이 바뀐 용사 +2 24.09.10 232 2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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