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급 흑마법사가 용사를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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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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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0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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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성녀를 구하다.

DUMMY

불의 성녀 베스페라 애쉬와일드.


한동안 실종되었던 그녀가 다시 무사히 귀환하자, 밖은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다.


그리고 그녀는 덤덤히 자신을 납치한 배후를 밝혔다.


“불의 대주교 말코르 발레리우스와 그의 딸 갈레나 발레리우스, 그 두 부녀가 저를 이단이라는 이유로 감금하여 사적으로 고문을 가했습니다.”


그녀의 증언으로 대주교를 살해하고 대성당을 한바탕 휘저었던 이반은,


“그러나 때마침 이반 하크우드 공자께서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시고, 단독으로 조사를 진행해 저를 구출하시고 대주교를 단죄하셨습니다.”


졸지에 악랄한 대주교로부터 경각에 달했던 성녀의 목숨을 구한 영웅이 되었다.


이 일은 대자만 한 제목으로 하크우드의 영지는 물론이고, 순식간에 제국 너머로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하크우드의 망나니 서자 이반, 불의 성녀를 구하다.’


“캬. 제목 기깔난거 보소.”


물론 어느 정도 베스페라와 이반이 미리 합의하여 그렇게 입을 맞춘 것도 있지만.


베스페라는 밖으로 구출되고 이반에게 자세한 내막을 묻지 않았다. 하크우드의 본가에 돌아간 이후로는 그저 입을 다물고 조용히 휴식을 취할 뿐.


그렇기에 가주 카이로스는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도대체 네가 무슨 수로 성녀님을 구했다는 말이더냐?”


불의 대주교를 비롯한 그를 호위하는 사제들은 적어도 상급의 경지에 도달한 성법사.


집에서 온종일 술이나 퍼마시던 이 주정뱅이로는 그들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터.


“예, 제가 또 가주님 몰래 틈틈이 남는 시간을 활용하여 마법을 스스로 연마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이반은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대꾸할 뿐.


“어젯밤 정말 ‘우연히’ 성당에 갔다가 성녀님이 안 계신 걸 이상하다 싶어 미행했는데, 세상에 그 쓰레기 같은 놈이 성녀님을 고문하고 있던 게 아닙니까! 그래서 단숨에! 놈을 때려눕혀 버렸죠.”


그가 믿지 않을 때는 이반은 보란 듯이 한술 더 떠, 추임새를 넣고 연극 조로 답했다.


“······그래 수고했다.”


“별 황송한 말씀을.”


떨떠름한 카이로스의 칭찬.


사실 카이로스도 말코르가 성녀를 납치한 것을 어느 정도 방관했기 때문이었다.


베스페라는 자신의 적자인 펠릭스에게 축복을 내리는 것을 거부했다. 그렇기에 그도 내심 자신에게 우호적인 말코르의 딸이 다음 성녀가 되기를 바랐는데.


하지만 이를 대놓고 드러낼 수도 없는 노릇, 울며 겨자 먹기로 그는 공을 세운 이반을 치하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사건이 어느 정도 수습되고 일주일 후.


“성녀님을 뵙습니다!”


교황청에서 파견된 사제들이 성녀를 모시기 위해 하크우드의 영지에 도착했다.


사제들의 새하얀 망토에 새겨진 문양은 모두 하나로 통일되어있었다.


‘빛의 문양.’


이반은 그것을 보고 조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구성원은 모두 하나 같이 빛의 신자였기에.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성녀님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어서 교황청으로 돌아가 상처를 치유하시고 심신의 안정을 취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교황청으로 성녀의 신변을 옮겨 말코르가 했던 것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다시 감금하는 것.


지금은 저렇게 울며불며 그녀를 데리고 가려 하지만, 그들이 ‘휴거’의 반대파인 불의 성녀를 가만히 놔둘 리가 없을 터.


‘지금 돌아간다면 성녀님은 무조건 죽을 겁니다.’


이반 또한 여기서 내부자가 될 수 있는 베스페라를 잃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베스페라에게 그렇게 말해두었고 미리 각본을 짜 맞춰뒀다. 남은 건 그녀가 그대로 읽어주기만 하면 된다.


“아뇨, 그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베스페라는 고개를 저으며 사제들의 손을 뿌리쳤다.


“해야 할 일이라뇨? 성녀님의 건강이 우선입니다! 우선 먼저 돌아가신 다음에···.”


“이그니우스님이 신탁을 내리셨습니다.”


그 말에 순식간에 내려앉은 정적.


“저의 주는 이번 이반 공자의 활약에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그의 공을 인정하시어 직접 포상을 내리시길 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포상이라뇨···?”


성녀는 시선을 돌려 이반을 바라본 채 그를 척 가리켰다.


“이반 하크우드에게 자신의 축복을 내리는 것을 허가하겠다고.”


물론, 이건 새빨간 거짓말.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베스페라에게는 이그니우스의 가호만이 남아 있을 뿐, 신과의 연결이 끊겨 있었다.


그렇기에 이반은 성녀에게 거짓으로 그렇게 자신에게 축복을 내리도록 부탁했다. 그녀를 어떻게든 이곳에 붙잡아 두기 위해.


축복이라는 말에 장내의 분위기는 미친듯이 술렁였다. 축복이라니, 그 망나니 이반에게 축복이라니!


“하하, 성녀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비록 제 자식이지만, 이반은 하자가 많고 부족한 아이입니다. 감히 축복받을 그릇이 되질 못합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필사적으로 만류하는 카이로스.


“그, 그렇습니다. 성녀님. 이런 중대한 문제는 여기서 당장 결정할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제들 또한 뜻을 거두어 달라 애쓰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성녀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주께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이그니우스의 말씀을 어길 생각이십니까?”


불의 성녀가 이렇게 나온다면 그들도 당장 그녀를 명분이 없었다.


물론 그들이 모시는 신은 다른 신이었지만 이그니우스 또한 칠대교의 일원, 어찌 신자 된 자로써 감히 신의 말을 어길 수 있을까.


할 수 없이 그들은 고개를 숙이고 물러날 뿐이었다.




***


그날 밤, 가주의 집무실.


“이게 대체 어찌 된 것이냐!”


카이로스는 혼자 씩씩 성을 내며 책상을 쾅 하고 내리쳤다.


분명 별 볼 일 없던, 버린 것과 진배 없는 자식이었을 텐데.


“놈이 대체 무슨 수로! 큭!”


그런 놈에게 이대로라면 응당 적자에게 가야 할 이그니우스의 축복을 정말로 빼앗길 판이었다.


이렇게 일이 꼬여도 제대로 꼬이다니, 그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주인님, 사제분께서 주인님을 뵙기를 청합니다.”


그때 바깥에서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들리는 집사의 말소리.


사제라면 분명 오늘 낮에 성녀를 데리고 가기 위해 찾아온 자들 아닌가.


“안으로 모시거라.”


허락이 떨어지자, 문을 열고 들어온 흰 제복의 사내.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카이로스 남작. 아까는 미처 인사를 드리지 못해 송구하옵니다.”


가지런히 정리한 노란 곱슬머리와 황금빛 눈동자가 인상적인 남자였다. 특히나 그의 눈은 보고만 있어도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깊은 골을 지닌 듯했다.


카이로스도 물론 이 남자를 알고 있었다.


“자네가 바로 엘드릭 경인가.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훨씬···미남이구먼 그래. 나도 이해하네, 그대들도 워낙 정신이 없었을 터.”


엘드릭 에버라이트. 


무려 교황의 넷째 아들이자, 자식 중 가장 재능이 뛰어나다고 평가받은 청년.


고작 열일곱의 나이에 고위 성직자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일찌감치 빛의 신의 축복을 받아 올해 칼리지에 입학할 예정인 장래가 촉망되는 인재였다.


“과찬이십니다. 거두절미하고 여기 찾아온 본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겉치레는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


“당신의 자식인 이반 공자를 체포해도 되겠습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말을 카이로스에게 덤덤히 말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내···아들을 체포해가겠다고?”


“기밀이지만 일단은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불의 성녀 베스페라 애쉬와일드는 사실 이단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뭐, 뭐라?!”


눈에 띄게 당황한 카이로스였지만, 엘드릭은 소리를 낮추라는 듯 검지를 입에 대었다.


“물론 대주교가 가한 심문이 그 정도가 지나친 건 사실입니다만, 원래라면 그녀를 체포하여 재판대에 세워야 합니다. 하지만 신의 이름을 꺼내고 축복을 내세운 이상.”


“그대들이라도 함부로 성녀를 어떻게 하지 못하겠군.”


그 말에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엘드릭.


다시 말해 그들은 이반을 체포해 축복 자체를 없었던 일로 만들려 하는 것이다.


카이로스 또한 바라마지 않은 소식이었지만 일단은 내색하지 않은 채, 흠흠 헛기침하며 그에게 물었다.


“하지만 성녀를 구한 자에게 상을 줬으면 줬지, 무슨 수로 이반을 체포한다는 말인가?”


“죽은 말코르 대주교의 딸 갈레나 발레리우스와 그의 휘하 사제들을 심문하는 도중, 결정적인 증언이 하나 나왔습니다.”


“결정적인 증언?”


이때 엘드릭의 표정이 잠시나마 찌푸려진 것은 기분 탓인 걸까.


“그가 성녀를 구조할 때 흑마법을 사용한 정황이 발견되었습니다. 사술을 사용한 혐의로 이반 하크우드 공자를 체포하려 합니다.”



***



“이런 이유로 저는 아마 곧 흑마법 사용 혐의로 체포 될 겁니다.”


그 시간, 이반 또한 동시에 성녀의 방에 몰래 들어가 곧 일어날 일에 대해 베스페라에게 말했다.


“뭐 그렇게 된다면 성녀님도 당연히 안전하지 못하겠죠? 그러니 이번에도 또 협조해주셔야겠습니다.”


“···또 나보고 무슨 거짓말을 하라는 거야?”


내키지 않은 듯 게슴츠레 이반을 바라보는 베스페라.


“간단합니다. 아까 하신 것처럼 저들이 저를 체포하기 전에, 신의 이름을 앞세워서 저를 다시 구해주시면 됩니다. 뭐, 대충 자신의 성녀를 구하기 위해 사용한 흑마법이니 특별히 용인해주겠다. 정도면 되지 않을까요?”


그 말에 베스페라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 짓는다.


“이미 아까 축복을 들먹이면서 신의 이름을 거짓으로 참칭해놓고, 간도 크구나 너는.”


“뭐 한 번 팔아먹었는데 두 번이라고 팔아먹지 못한다는 법이 있나요. 이제 와서 설마 양심에 찔리시는 건가요?”


망설이는듯한 그녀에게 이반은 가까이 다가와 고개를 숙여 눈을 마주한다.


“이미 당신도 한배를 탄 몸이 아니지 않습니까. ‘휴거’에 반대해서 당신도 그 꼴이 되었던 거 아니에요?”


그 말에 베스페라는 분하다는 듯 살짝 입술을 깨물었지만, 이내 허탈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서 이렇게 헌신짝처럼 내버려졌잖아. 아까도 말했지만 말이야, 나는 이미 진작에 이그니우스와 연결이 끊긴 상황이야. 그런 내가 계속 신의 이름을 빌려 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이대로면 안 된다. 성녀가 자포자기해 버리면 여기서 모든 게 끝나버린다.


“그러면 저들에게 가서 말할 거야? 지금 더 이상 주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불의 성녀라는 자격을 잃은 당신을 저들이 가만둘 거 같아?”


미안하지만 그 망설임을 억지로라도 부숴야 했다.


“어차피 당신이 아니더라도 대체제는 많아. 당신이 죽으면 저들은 말 잘 듣는 꼭두각시를 성녀의 자리에 앉혀서 제 입맛대로 휘두르겠지. 그리고 세상은 곧 지옥이 될 거고.”


베스페라의 어깨를 거칠게 붙잡고, 언성을 높이며 소리쳤다.


“너도 그 개 같은 미래가 싫어서 대들었다가 이렇게 된 거 아냐? 그러면 계속 끝까지 싸워. 이도 저도 아니게 행동하다가 헛된 목숨을 낭비하지 말고.”


“······.”


이반의 말에 세차게 흔들리는 베스페라의 눈동자.


“그리고 말이야. 교황청과 다른 신들은 몰라도 이그니우스만큼은 너를 아직 완전히 아직 버리지 않았어.”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설교는 이제 됐다. 이제 결정적인 한 방이 필요하다.


경악하며 그의 소매를 잡고 되묻는 그녀에게 이반은 손을 내밀었다.


“직접 봐봐.”


그리고 베스페라에게 옮겨붙는 시커먼 불길.


“진짜 죽는지 말이야.”


“꺄아아아아악?!”


 거대한 불꽃이 아가리를 쩍 벌리며 그녀를 덮쳤다.


작가의말

어느덧 6화입니다. 다들 연휴 기간을 한껏 만끽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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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 신을 불러내다. 24.09.16 77 19 12쪽
» 6. 성녀를 구하다. 24.09.15 90 18 12쪽
5 5. 짐승들 쪽쪽 빨아먹기 24.09.14 91 19 12쪽
4 4. 성녀 어디 숨겼냐? 24.09.13 111 18 11쪽
3 3. 놈들을 모조리 없애버리기 위해. +1 24.09.12 125 17 12쪽
2 2. 새로이 살겠다. +1 24.09.11 163 19 12쪽
1 1. 몸이 바뀐 용사 +2 24.09.10 231 2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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