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급 흑마법사가 용사를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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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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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0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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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신을 불러내다.

DUMMY

베스페라에게 냅다 갈겨버린 검은 화염은 오래도록 활활 타올랐지만,


“봐봐 멀쩡하지?”


“······대체 어떻게.”


베스페라는 그 불꽃 속에서 그을림 하나 없이 멀쩡했다. 


그녀가 화염 속에서 무사하다는 의미는 명확했다.


“어떻게는 뭘 어떻게야. ‘화염의 가호’가 있으니까 그렇지.”


아직 베스페라는 ‘불의 성녀’라는 것.


“만약 이그니우스가 진짜 너를 버렸다면, 교황청에서는 너를 모시러 사제들을 보낼 게 아니라 잡아 가두려고 이단 심문관이나 성기사단놈들을 보냈겠지. 보아하니 아직 불의 신은 네게 미련을 버리지 못한 모양이야.”


사실 일반 사제들만 온 건 아니었다. 그들 사이에 이반도 무시 못 할 거물이 한 명 있었다.


‘젠장 하필이면 엘드릭 그놈이 오다니. 성가시게 됐네.’


훗날 세현이 완전한 용사로 거듭나고, 전장에 뛰어들 즈음에 정식 교황으로 취임하게 되는 자.


엘드릭은 누구보다도 독실한 빛의 신자였고, 자신이 아는 한 가장 뛰어난 성법사였다.


조금 전, 진실의 눈으로 그를 확인했을 때.


‘마력이 83이라니 이런 미친 개사기캐를 봤나.’


아직 다 여물지도 않은 유망주임에도 엘드릭의 마력은 이미 어지간한 대마법사 수준이었다.


그 정도면 자신은 후 불기만 해도 날아갈 정도.


당장은 자신을 건들지 않겠지만, 그는 미래의 가장 위험한 적중 하나였다. 아마 그가 자신의 체포를 집도할 게 분명할 터.


그러니 우선은 이 성녀와 함께 그의 포위망을 빠져나가는 것이 우선이었다.


“감사합니다. 주여···. 아직 당신은 이 어린양을 버리지 않았군요···.”


한창 도망갈 방도를 궁리하고 있을 때, 성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눈물을 훔치는 베스페라.


그걸 본 이반은 어이가 없었다. 그게 그렇게 막 질질 짤 정도로 감격스러운 일인가?


“이 세상에 강림한다면 가장 먼저 세상을 태워 먹을 놈을, 너는 아직도 믿고 있는 거야?”


그녀가 숱한 고문을 당할 때도 끝까지 나타나지 않던 이그니우스였다.


솔직히 왜 그때 자신을 구하지 않았는지 신을 향해 원망을 쏟아낼 줄 알았는데.


그런 이반에게 베스페라는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내가 우는 건···아직 세상을 구할 희망이 남아 있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야.”


“뭐?”


“네가 어떻게 신들의 강림을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는 아직 잘 모르고 있어. 네가 알고 있는 건 극히 일부분뿐이야.”


그게 대체 무슨 말인가.


어리둥절한 이반에게 그녀는 자기 가슴에 걸린 이그니우스의 증표를 가리켜 보였다.


“적어도 신들 모두가 세상의 휴거를 찬성했던 건 아니야. 아직 칠대신 중 반대하는 신들이 두 분 계셔. 그중 하나가 나의 주 이그니우스시고.”


“······!”


그 충격적인 진실에 찢어질 듯 커지는 이반의 눈동자.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은 분명 전회차 때 온 세상을 불바다로 만드는 이그니우스를 분명 보았는데, 그게 대체 무슨 말인가.


그대로 경악한 채 굳어버린 이반을 잠시 보더니, 베스페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을 크게 한껏 벌렸다.


“신들께서 궁극적으로 원하시는 건 영생이야. 영계의 문을 열어 현계와 영계를 연결한 다음, 두 세상을 합치려 하시는 거지.”


“···대체 뭐 때문에?”


“그렇게 된다면 신들께서도 본연의 모습을 유지한 채, 현계를 영원히 활보할 수 있기 때문이야.”


신들은 기본적으로 영체이자 영계에 머무는 자들.


그렇기에 그들은 현계에 간섭할 수 없었고, 목소리나 강림 같은 간접적인 수단으로 뜻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대로 정말 현계와 영계의 구분이 사라진다면, 그 세상에서 그들은 정말로 불멸 자가 될 것이다.


영체는 수명 자체가 없기에.


“하지만 그건 평범한 사람도 마찬가지지. 그들 또한 육신이 죽는다고 하더라도, 영체인 채로 신들과 진배없이 영생을 누릴 테니까.”


“그렇겠지?”


“휴거를 찬성하신 신들께서는 그걸 싫어하신 거야. 그렇게 된다면 신들은 더 이상 인간과 다를 게 없어지니까.”


한 마디로 그들은 여전히 그 세상에서 자신들은 특별한 존재로 남기를 바랐기에, 세상의 모두를 완전히 멸하기로 했다는 말이었다.


이반은 잠시간 벙쪄 우두커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겨우 그런 이유로 세상을 그 꼬락서니로 만들었다고?


마왕이 숨어있는 이반의 바지춤 또한 그 말을 듣더니 격하게 꿈틀거렸다.


‘이런 천인공노할 쓰레기 같은 놈들 같으니라고!’


그녀의 분노로 인해 이반의 하반신 전체가 들썩인다.


“하지만 그 두 분 만큼은 그걸 원하시지 않으셨어. 그분들은 아직 여전히 자신들의 자식들을 사랑하셨고, 우리에게 피해가 간다면 세상에 발을 내미는 것조차 원하지 않으셨지.”


멍하니 서 있던 이반에게 베스페라는 두 손가락을 펼쳐 보였다.


“하지만 최고신인 ‘빛’을 비롯한 나머지 다섯의 신들에게 기가 눌려 그 뜻을 펼치지 못하고 계셔.”


이내 힘없이 다시 그 손을 잡으며 그들의 상태를 비유했다.


그래도 단서는 얻었다. 어쩌면 든든한 협력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자의 정보를.


“그러면 나머지 반대했다는 그 신은 누구지?”


“한동안 이그니우스와 연결이 끊겨 있었기에, 나도 그건 몰라. 사실 이그니우스 조차··· 진짜 휴거를 막으려 했던 게 아니라 오로지 내가 반대했기에 그 뜻을 존중해주었을 뿐이야.”


“그걸 알아야 하는데 말이지···.”


그래도 그녀의 그 말을 듣고 이반은 드디어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왜 그렇게 교황청이나 대주교가 이 여자를 죽이려 했고, 전회차에서도 그녀가 보이지 않았는지.


“그 변태 신은 도대체 얼마나 너를 좋아하는 거야.”


이그니우스의 마음을 돌아 세우려면 이 성녀가 없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 갑작스레 이반의 어깨를 덥석 잡는 앙상한 두 손.


힘이 들어간 탓에 잡은 부위가 아려왔지만, 부릅뜬 두 눈동자에 저도 모르게 그녀를 마주했다.


“그러니 이반 네가 막아줘. 남은 한 신의 사도와 함께 힘을 모아 곧 닥쳐올 휴거를 말이야.”


그리고 베스페라는 그대로 고개를 한껏 숙였다.


솔직히 놀랐다. 그 성녀가 자신에게 이렇게 부탁을 해오다니.


“근데 그런 말을 해도 말이야···. 그 신이 누군지도 모른다면서? 그러면 그 사도는 어딨는지, 누군지 어떻게 알아.”


“휴거를 막으려면 적어도 영계의 문에 도달해야 하니, 그 신의 사도는 필연 용사가 되기 위해 칼리지에 입학했을 거야. 너도 그 칼리지에 입학해.”


“뭐···? 너 그 말은···.”


“그래. 가짜가 아닌 진짜 이그니우스의 축복을 받아.”


그녀는 가슴팍에 걸린 성녀의 장식물을 세게 움켜쥐었다.


“내가 아직··· 정말 성녀의 자격이 있다면 너에게 축복을 내려줄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정식으로 용사 후보가 돼서 칼리지에 들어가서 찾아봐.”


이거 참 난감한 노릇이었다. 이반은 이미 어둠의 여신의 사도가 된 몸이었기에.


“정말 미안한데 말이야. 나는 이미 어둠의 여신과 계약했어···. 두 신의 축복은 한꺼번에 못 받는 걸로 아는데?”


“···그래 이제 알겠네. 흑마법을 어떻게 사용하나 했더니, 그렇게 된 거였구나.”


살짝 눈이 동그랗게 커졌지만, 베스페라는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둠의 여신은 타락해서 칠대교에서 추방되었다고 전해지는 여신.


만약 이반이 어둠의 사도였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칼리지는커녕 이단으로 몰려 죽을 수도 있었다.


전회차에서는 마물이 먼저 인계를 침공해왔고 긴급한 전시였기에, 흑마법사였던 이반이 기용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아니었기에, 당장 지금 위기를 헤쳐가는 거부터 급한 상황.


“잠깐.”


근데 생각해보니 이반 또한 딱히 흑마법을 대놓고 사용하진 않았다. 그는 분명···.


“혹시 이건 가능하려나?”


불현듯 떠오른 기발한 아이디어를 이반은 베스페라에게 말했다.


“가능···은 한데 이건 신성모독이 아닐까?”


그녀 또한 듣고 화들짝 놀랐지만 딱히 부정하지 않는 하나의 가능성.


성녀의 확답을 듣고 이반은 씩 사악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뭐 어때, 어차피 나중에 더한 모독도 저지를 텐데.”



***


다음 날 아침이 되자마자 사제들은 방문을 박차고 이반을 에워쌌다.


“이반 하크우드. 당신이 흑마법을 사용한 정황이 포착되었소! 그대를 이단 혐의로 체포하오!”


“이런 못된 놈! 어찌 사술 따위에 겁도 없이 손을 대느냐! 내 너를 잘못 보았구나!”


그 와중에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는 척 연기하는 카이로스는 덤.


이반이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이며 그들의 오라를 얌전히 받을 때였다.


“무엄합니다! 이미 이그니우스의 간택을 받은 자에게 다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쩌렁쩌렁 방 안을 울리는 불의 성녀의 성난 호통.


흔치 않은 성녀의 분노에 사제들은 모두 당황하여 얼어붙었지만, 선두에 선 엘드릭이 침착히 나서 베스페라를 달랬다.


“성녀님. 그때 주변인들의 진술을 통해 저자가 흑마법사라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성법에 따라 그가 이단임이 밝혀진 이상, 이단 심문관에게 인도하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의 말대로 이단은 중죄였기에, 엘드릭은 고위 성직자의 직속 권한으로 그를 체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듣고도 베스페라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코웃음 쳤다.


“하! 지금 경께서는 신보다 법이 위에 있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당치도 않는 말입니다. 어찌 피조물의 법 따위가 주보다 위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어찌 경은 지금 이그니우스께서 직접 교화를 허락하신 분께 인간의 잣대를 들이미시는 겁니까?”


그 말에 방 내 모든 인원은 물론이고, 그 엘드릭마저 침착함을 무너뜨리고 당황한다.


“확실히 흑마법은 칠대교의 교리에 거스르는 마족들이 사용하는 사술입니다. 하지만 그 마족의 죄마저 사할 수 있는 게 교화가 아닙니까?”


교화. 신이 직접 나서 죄인의 죄를 사해준다는 것.


정말로 이반이 이그니우스에게 교화를 허락받았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들은 쉽사리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믿지 못하는 눈치시군요.”


그것은 신이 성녀의 몸으로 직접 강림하여 죄를 사해줘야 하는 의식이기에.


아무리 이반이 공을 세웠다고 하더라도 아직 자기 신도도 아닌 자에게, 그것까지 허락을 내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겉옷을 훌렁 내던지며 이반에게 다가서는 베스페라.


“그럼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이그니우스의 뜻을 말이죠.”


그녀는 이반의 손을 잡고 번쩍 들어 보였다.


이것이 바로 어제 미리 둘이서 맞춰 두었던 신호.


그 순간 이반은 곧바로 아무도 들키지 않게 그녀의 힘을 드레인했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너와 이그니우스의 연결은 끊겼지. 하지만 말이야, 그래도 여전히 가호는 거두지 않고 있어. 이게 무슨 말일까?’


‘······아직 나를 지켜보고 있다고?’


‘그래, 아직 이그니우스는 여전히 너를 계속 지키고 있어.’


물론 말코르 집단들이 고문을 가했을 때도 나타나지 않을 걸 보면, 정말 연결이 완전히 끊겼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달리 말하면 그들이 성녀가 정말 죽을 정도로 위해를 가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어제, 이반이 성녀를 죽일 정도의 위력으로 사용한 화염은 가호로 막아내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 너의 그 가호 자체를 흡수할 거야.’


그런데 이제 성녀를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힘인 가호마저 흡수하려 든다?


‘그러면 그놈이 안 나오고 배기겠어? 계속 버티고 있으면 네가 죽어버릴 텐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는 미친놈이야.’


그렇게 되었기에 이반은 가호를 넘어, 성녀의 생명력까지 흡수할 기세로 미친 듯이 힘을 빨아들였다.


작가의말

풍요로운 한가위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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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 불의 신의 사도가 되다(뻥) 24.09.18 54 15 11쪽
8 8. 딸깍 한 번 이면 족하다. 24.09.17 71 20 12쪽
» 7. 신을 불러내다. 24.09.16 77 19 12쪽
6 6. 성녀를 구하다. 24.09.15 89 18 12쪽
5 5. 짐승들 쪽쪽 빨아먹기 24.09.14 91 19 12쪽
4 4. 성녀 어디 숨겼냐? 24.09.13 111 18 11쪽
3 3. 놈들을 모조리 없애버리기 위해. +1 24.09.12 125 17 12쪽
2 2. 새로이 살겠다. +1 24.09.11 163 19 12쪽
1 1. 몸이 바뀐 용사 +2 24.09.10 231 2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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