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성우가 연기력으로 다 씹어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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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깡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9.11 12:00
최근연재일 :
2024.09.20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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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1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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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이거 대체 누굽니까?

DUMMY

규칙적 생활, 그 자체였던 군대였지만.

전역하자마자 내 생활 패턴은 다시 개박살이 났다.


“오늘은 외화 더빙을 한 번 해볼까.”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보고.

또 그 대사들을 따서 자체 대본을 만들고.

대본을 소리내어 읽으며 연기하다보면, 어느 새 아침해가 뜨고 있었으니.

그러고도 쉽사리 잠은 오지 않았다.

연기할 때 터져나오는 도파민이 몸 전체를 흥분시키니까.


그러다 나도 모르게 잠드는 날이면, 어느 새 꿈을 꿨다.

꿈속에서 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연기하고 있었다.

수없이 많은 카메라가 날 찍고, 대중들이 만 명은 족히 넘었지만.

나는 전혀 떨지 않고, 평소 연습하는 것처럼 연기했다.

행복했다.

하지만 그래서 꿈이라는 걸 단번에 눈치챘다.


“······후우.”


잠에서 깼을 땐 몸이 땀 범벅이었다.

누가 보면 악몽이라도 꾼 줄 알았을 거다.

악몽만큼 기분이 더러운 건 맞긴 했지만.


“이게 다 덕수 녀석 때문이야.”


갑자기 뭐 할 거냐느니, 배우 다시 할 생각은 없냐느니.

그러니까 이런 뒤숭숭한 꿈을 꾸지.

차라리 귀신이나 살인마가 등장하는 꿈이 훨씬 낫다.

이뤄지지 못할 꿈은, 그 어떤 공포 영화보다 잔인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휴대폰 카메라를 켜고 연기를 해보려했는데.

역시 안 된다.

하긴, 꿈 한 번 꿨다고 각성하면 개연성 없다고 욕먹는다.


“밥이나 차리자.”


결국 한숨을 내쉬며 부엌으로 향했다.

우리 집에서 식사 당번은 내 몫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내가 살림에 도움도 안 되는데 음식이라도 해야지.


밥을 짓고, 달걀 프라이를 하고, 된장국을 끓이고, 소시지를 꺼내 살짝 볶는다.

그 냄새에 이끌렸는지.


“오. 오늘은 쏘야 해주는 거야?”


이모가 헤벌쭉한 얼굴로 나타났다.


“얼른 씻고 와요. 준비 다 됐으니까.”

“네에에.”


마치 슬라임처럼 흐느적대며 화장실로 향하는 이모.

잠시 후.

우리는 오래된 식탁에 앉아 아침식사를 시작했다.


“크으. 우현이 네가 해주는 아침밥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몰라. 너무 좋다.”

“대체 저 군대 가있을 동안엔 밥은 어떻게 했어요?”

“아침은 굶고, 저녁은 대충 라면으로 떼웠지!”

“그걸 자랑이라고 말해요? 어쩐지, 2년 전보다 살 좀 찐 거 같더라니.”

“헉! 진짜?”

“얼굴 부은 것 좀 봐요.”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 이모가 다른 건 참 야무지게 잘 하는데, 음식을 못해서 문제다.


“그래도 우리 우현이 음식 먹으면 금방 살 빠지지 뭐.”

“너무 먹어서 더 찔 거 같은데.”


그래도 내 음식을 행복하게 먹어주는 이모를 보니 괜히 흐뭇하다.

오랜만이라 많이 그리웠나보다.

다만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는데.


“근데 오늘은 그 소리 안 하네요?”

“무슨 소리?”

“음식점 차릴 생각 없냐는 소리요.”


우리 이모는 내 음식을 상당히 좋아한다.

심지어 밖에서 사먹는 것보다 맛있다면서 도시락을 부탁하기도 할 정도.

그래서 틈만 나면 ‘나중에 음식점이나 차려, 분명 대박날 거야!’라고 말하곤 했는데.


“오늘은 별로 맛이 없나?”

“아니. 어차피 음식점 차릴 생각 없잖아?”

“그렇긴 한데.”


음.

솔직히 아예 생각이 없진 않았는데.

물론 우리 형편에 음식점을 차리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어디 음식점에서 요리라도 할까 생각하긴 했다.

어차피 뭘 해먹고 살지 막막한 상태기도 하니까.

언제까지 이렇게 이모 등골을 빼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래도 뭐라도 해서 빚 갚아야죠. 이모한테.”


이모에게 이 빚을 갚아야한다는 생각은 꾸준히 하고 있다.

부모도 키우기 싫어했던 나를, 친자식도 아닌데 마치 양자처럼 길러줬다.


그래서 때론 이모가 결혼하지 못하는 게 나 때문은 아닌가, 싶다.

나를 돌보느라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돈도 못 모으고.

애딸린 싱글맘 취급을 알게 모르게 받아왔을 테니.


“하하. 우리 우현이.”


곧 이모가 감동받았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럼, 그럼. 아주 좋은 자세야. 꼭 성공해서 이 이모에게 빚을 갚으렴.”


표정과 참 안 어울리는 대사다.


“빈말로라도 갚지 말란 소린 절대 안 하네요, 이모.”

“어허. 조카 교육을 그렇게 시키면 안되지.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립하려면, 어느 정도의 부채감은 있는 게 좋아.”


이모의 교육이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그래서 배우로 성공해서 이모를 호강시켜주고 싶었는데.

이게 참, 인생이라는 게 뜻대로 안 되지.


“흠흠! 그런데 우현아. 혹시 덕수한테서 뭐 연락 안 왔니?”

“덕수요? 안 왔는데요.”


생각해보니 저번에 같이 PC방 간 이후로 연락이 없다.

뭐, 우리야 연락을 해도 안 해도 어색함이 없는 사이라 상관은 없는데.

평소라면 이번 분기 신작 애니는 봤냐, 극장판 애니메이션 같이 보러가자.

먼저 연락을 몇 번은 해왔을 녀석이 좀 조용하긴 했다.


“그래? 덕수한테 연락오면 꼭 받아! 알았지? 분명 좋은 일이 있을 거야.”

“그게 대체 무슨 소리예요?”

“그런 게 있어.”


음.

‘우덕수’와 ‘좋은 일’은 공존할 수가 없는 단어인데.


우웅-! 우웅-!


그렇게 생각하기 무섭게.

식탁 위에 올려둔 휴대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당연히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덕수야? 응? 덕수니?”

“그렇긴 한데.”

“오케이! 얼른 받아. 아악, 시간이! 이모는 빨리 먹고 일하러 가야겠다!”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밥과 국, 반찬을 쓸어담은 뒤.

서둘러 출근 준비를 시작하는 이모.

대체 덕수랑 무슨 공작을 했으면 이모가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걸까?


“여보세요?”


그리고 내 궁금증은.


[······미안하다.]


대뜸 튀어나온 덕수의 사과 때문에 더욱 점입가경이 되었다.


*


“나 너한테 고해성사할 게 있다.”


대뜸 날 공원으로 불러낸 덕수 녀석은 고개까지 숙이며 그리 말했다.

똥고집은 더럽게 쎄서 뭘 해도 ‘내가 옳다’라는 스탠스를 취하는 게 바로 우덕수란 녀석이다.

그런 녀석이 갑자기 나한테 사과를 하다니.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지?


“대충 짐작가는 게 있는데.”

“지, 진짜?”


내 말을 듣자마자 당황해서는, 마른 침까지 삼키는 덕수 녀석.


“혹시 내 게임 계정 해킹했어? 아니면 내 지갑에서 5만원 권이라도 빼갔냐? 그것도 아니면 소개팅 상대한테 내 사진 보내고 너라고 사칭이라도 한 거냐?”

“······넌 대체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음? 아닌가.

이 세 개 중 하나는 정답일 줄 알았는데 의외네.


“그럼 뭐 내 흑역사라도 퍼뜨렸냐? 내가 학교에서 엎드려 자고 있던 사진이나 동영상 찍어서 올렸냐고.”

“뭐? 어, 음. 뭔가 비슷한 결이긴 한데.”


저렇게 말하니 나는 겨우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그냥 사실대로 말해. 소개팅 상대한테 내 사진 보내고 사칭한 거 맞잖아. 쪽팔리는 건 이해하지만, 그냥 사실대로 말하면 용서해줄게.”

“아니라고, 임마!”

“그럼 대체 뭔데?”


내가 대답을 종용하고 나서도, 덕수 녀석은 제법 길게 고민했다.

그러다 이내 곧.


“시, 실은. 얼마 전에.”


힘겹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얘기를 듣자하니 전말은 이러했다.

갑자기 우리 이모가 덕수 녀석을 카페에 불렀고.

컴퓨터에 저장된 내 음성 연기 파일을 들려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파일을 가지고 널 설득하거나 대중들에게 알릴 방법이 없냐고 하더라고. 이, 이모님은 네가 연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엄청 기뻐하고 계셨어.”


내가 방구석에서 혼자 소리 내어 연기한 것.

나름 숨긴다고 숨겼는데, 역시 들킨 모양이다.

아마 내 방정리를 하다가 컴퓨터를 건드린 모양이지.


“그래서?”

“그, 그래서. 내가 또 이모 부탁을 어떻게 거절하냐? 이모가 나한테 사준 피카츄 돈가스만 해도······.”

“쓸데없는 이야기는 빼고.”

“크흠! 아무튼, 그걸 좀 편집해가지고 넙튜브에 올렸거······든.”

“그게 무슨 파일이었는데?”

“······.”


아하.

즉, 나 몰래 내 연기 파일을 이모가 덕수에게 건넸고.

덕수는 그걸 편집해서 넙튜브에 올렸다는 거군.


“그래서?”

“응?”

“그 다음 이야기. 왜 사과한 건데?”


내가 이어 묻자 덕수는 되레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날 바라보았다.


“아, 아니. 네 멋대로 연기한 거 올렸잖아.”


아하.

그래서 사과한 거구나.


“신경 안 써.”

“엥?”


내 대답에 얼빠진 표정을 짓는 덕수 녀석.

와, 저 얼굴을 찍어놓으면 두고두고 놀림감으로 써먹을 수 있을 텐데.


“지, 진짜? 리얼로?”

“왜?”

“왜냐니. 아니, 나는 네가 상상 이상의 지랄을 떨어댈 걸로 예상했는데.”

“지랄 좀 떨어줘?”

“아니, 그. 어, 으.”


덕수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다만 내 심정은 매우 간단하다.


“이모 마음도, 이모 부탁 거절 못한 네 심정도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모두 날 생각해주며 한 일들인데.

왜 화를 내고 지랄을 떨겠어.


이 두 사람은 날 가장 오랫동안 지켜봐온 사람들이다.

부모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낸, 진짜 가족이나 다름 없는 존재들.

내가 연기를 처음 접하고, 소속사에 들어가고, 작품 3개 찍고 불명예 은퇴를 한 걸 바로 옆에서 지켜봐온 것이다.

그런데 연기를 접은 줄 알았던 내가 목소리로나마 연기를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으니.

당연히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 크겠지.


“그, 근데 너 사람들 앞에서 연기하는 거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싫어하는 건 아니야. 그리고 내가 무서워하는 건 카메라야. 그리고 대중들은······뭐, 어차피 아무도 안 볼 테니까.”


지금 세상에서 넙튜브는 곧 대중의 반응 그 자체다.

그런데 내 음성 파일 좀 편집해서 올렸다고 무슨 반응이 오겠나?


물론 내가 발연기를 했다고 욕을 오지게 먹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벌써 5년이나 지났다.

더럽게 연기 못하는 조단역 연기자를 기억할 만큼 대중들은 한가하지 않다.

게다가 얼굴이 드러난 것도 아니고


“아, 씨. 괜히 쫄았네.”


휴우, 하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덕수 녀석.

저 녀석도 은근히 눈치를 잘 본단 말이지.


“진짜 너한테 머리 박고 사죄해야하나 싶었는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긴 했어. 생각해보니 좀 화나는 듯?”

“지랄 노.”

“그보다도, 내 말대로 조회수 잘 안 나오지?”

“그게 말이지. 실은 나도 업로드만 하고, 차마 반응은 못 보겠더라.”


저놈은 지가 올려놓고 지가 반응을 안 보면 어떡해?


“그 정도로 내 연기가 형편없었냐?”

“그게 아니라! 오히려 네 연기는 좋았는데, 편집이 욕먹을까봐 그렇지. 솔직히 말할게. 네가 한 더빙 연기 진짜 오졌어, 진짜. 오졌다고!”


갑자기 급발진을 하며 흥분하는 덕수 녀석.


“진짜 원작 일본 성우보다 네가 훨씬 잘한 거 같아.”

“오버 좀 하지 마.”

“오버는 무슨! 엄마 죽인 놈한테 복수하겠다고 다짐하는 그 장면 연기, 그거 올렸거든. 근데 진짜 미쳤어. 일본 성우는 그냥 진짜 분노한다, 그런 느낌이었는데 네가 보여준 건 단순한 분노가 아니었어. 서늘하면서 독기가 바싹 오른, 진짜 이놈 복수심에 돌아버렸다! 그런 느낌이 팍 들었다고. 그러면서도 묘하게 이를 악문 듯한 대사 처리가······.”


그러고는 감상문인지 분석인지 모를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았다.

덕수 녀석의 특징인데, 자기가 아는 얘기가 나오면 묻지도 않았는데 줄줄이 늘어놓는다.

평소라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을 테지만.


“그걸 캐치했네.”


덕수 녀석이 내 연기에 대해 피드백을 해준 건 또 처음이라 제법 흥미롭다.

실제로 내가 의도했던 부분을 세심하게 캐치해주기도 했고.

음.

그 고집 쎈 오타쿠 덕수 녀석이 저렇게 말하는 걸 보면, 내가 연기를 못하진 않았나보다.


“네가 편집했다던 영상 좀 보자. 넙튜브 들어가봐.”


그래서 궁금했다.

덕수 녀석이 어떻게 영상을 만들어 올렸을지.


“아, 악플이라도 달려있으면 어떡해?”

“어떡하긴. 악플이 악플이지.”


악플이야 뭐, 실제 그 사람을 내가 대면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렇게까지 상처가 되진 않는다.

오히려 면전에서 눈을 흘기는 게 훨씬 가슴 아프다.


“채널명은 뭐라고 했냐?”

“’성우 현의 소리’.”

“진짜 네이밍 센스 봐라.”

“뭐 어때? 네 이름 성우현. 거기에서 성우라는 글자 딱 떼고, 악기 연주하는 현의 느낌까지 살려서······.”


덕수의 자화자찬을 뒤로하고.

나는 그 오그라드는 이름을 넙튜브에 검색했다.

그러자 바로 나오는 영상 하나.


[<최고의 아이> 명장면을 혼자서 더빙해보았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뭐야.”

“왜 그래?”

“조회수가 왜 이래? 이거 버그 아니야?”

“왜? 1밖에 안떠? 아니면 아예 0이냐?”

“그게 아니라.”


3일 전에 올라온 영상이다.

거기에 넙튜브에 흔하게 널리고 널린 팬더빙 영상.

그런데 그 조회수가.


[ 명장면을 혼자서 더빙해보았습니다

조회수 - 50,432

좋아요 1천]


너무도 높게 잡히고 있는 것이다.


“야, 야, 야!”


그걸 확인한 덕수 녀석이 갑자기 내 어깨를 붙잡았다.


“이거 알고리즘 제대로 탄 것 같은데?”


녀석의 얼굴엔 희열이 가득했다.


*


한편.

선유도에 위치한 ‘플레이 어택’이라는 녹음실.


“그러니까, 예산 증액 요청이 거절당했다고요?”


그곳의 사운드 엔지니어인 장호중은 다소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러자 맞은편의 상대방이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네. 저희가 아무래도 넉넉한 형편은 아니다보니······좀 빠듯하네요.”


바로 중소기업이자, 모바일게임 제작사인 일루닉게임즈 소속.

현재 <히어로즈 저니>라는 게임의 총괄 디렉터를 맡고 있는 김재민이었다.

그는 현재 녹음건으로 플레이 어택에 의뢰를 맡긴 참이었는데.


“그냥 더빙을 빼버리시는 건 어때요?.”

“더빙이 없으면 캐릭터성 표현하기가 쉽지가 않아서요. 풀더빙까지는 무리더라도, 캐릭터들 기본 대사 정도는 추가해야할 필요성을 절감했거든요.”


<히어로즈 저니>는 수집형 RPG 게임의 장르.

각기 다른 캐릭터성과 성능을 가진 캐릭터들을 뽑는 게 핵심적인 재미다.

그러니 캐릭터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더빙 작업은 필수.


“근데 이 정도 예산으론 절대 프로 성우들 기용 못해요. 캐릭터 하나 대사 다 따면 그걸로 끝일 걸요?”


문제는 할당된 액수가 그리 많지 않은 것.

일루닉게임즈는 그간 몇 개의 게임을 발표했지만, 게임성에선 호평을 받아도 매출은 그리 크지 못했다.

이 탓에 신규 프로젝트인 개발비도 한정적이고.

그에 들어가는 녹음비는 더더욱 적을 수밖에.


“그, 그럼 어떡하죠?”

“언더 써야죠, 뭐. 그런데 언더들은 실력이 워낙 들쭉날쭉이라······그래도 프로, 즉 공채 성우들은 페이 하한선이 정해져있는 거에 비해서 언더들은 협의만 잘 하면 얼마든지 조정 가능하니까요. 어떻게든 그쪽 니즈에 맞는 목소리를 찾아봐야죠, 뭐.”


언더 성우.

아마추어와 동일한 말로, 공채 시험에 합격하지 않고서도 성우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한국은 성우 공채 제도가 있어서, 방송사에서 뽑아야지만 프로 성우가 될 수 있거든.


“그게 실은, 저희 니즈에 딱 맞는 목소리가 있긴 하거든요. 좀 광기 있는 캐릭터를 먼저 녹음하려는데, 딱 이거다! 싶은 목소리를 찾았어요.”

“그래요? 프로? 아니면 언더?”

“그걸 잘 모르겠어요. 넙튜브 영상 보고 알게 된 거라.”

“영상이라고요?”


순간, 장호중은 저도 모르게 콧방귀를 뀌었다.


‘더빙 업계에 대해 전혀 모르는구만, 이 양반.’


프로 성우들이라면 모를까.

언더 성우를 기용하는데 넙튜브 영상 하나 보고 덜컥 의뢰를 맡길 생각이라고?


“네. 엔지니어님은 목소리만 들으면 어떤 성우인지 잘 아시죠? 한 번 들어보실래요?”


그런 장호중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리 말하며 휴대폰을 내미는 김재민.

그를 가재눈으로 쳐다보던 장호중이 제목을 발견했다.

[<최고의 아이> 명장면을 혼자서 더빙해보았습니다]라는 영상.


‘뭐야. 흔해빠진 팬 더빙 영상이잖아?’


곧 장호중이 손을 휘휘 저었다.


“됐습니다. 안 들어봐도 될 것 같은데.”

“네? 그래도 한 번 들어봐주세요. 연기력도 대단하고, 음색도 엄청 좋던데. 혹시 프로 성우님이 취미로 하시는 건가 싶어서요.”​


그를 증명하듯.

이 영상은 업로드한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조회수가 5만이 훌쩍 넘었다.

프로 성우들의 샘플 영상도 조회쉬가 잘 나오기 쉽지 않은게 현실인데 말이다.


“게다가 이게 처음 올린 영상이더라고요.”


채널명은 [성우 현의 목소리].

김재민의 설명대로 영상은 달랑 그 팬더빙 하나 뿐이었다.


‘뭐, 그냥 아마추어 더빙팀이나 지망생이 올린 거겠지. 그러다 알고리즘 타고 운 좋게 조회수 좀 잘 나온 거겠고.’


이 업계에 훤한 장호중으로선 안 봐도 뻔했다.​

하지만 재차 김재민이 권하고 있는 상황이니, 안 들어보겠다고 버티기도 뭣한 상황.


“알겠습니다.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


영상이 끝났지만.

장호중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엔지니어님. 이 목소리, 누군지 아시겠어요? 연기력이 워낙 좋아서 프로 같기도 한데, 또 그러기엔 처음 듣는 목소리라.”

“······아뇨. 모르겠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경악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거 대체 누굽니까?”


이런 미친 연기력과 놀라운 음색을 갖고 있는 성우는.

사운드 엔지니어인 그조차 처음 듣는 것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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