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성우가 연기력으로 다 씹어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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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깡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9.11 12:00
최근연재일 :
2024.09.20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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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5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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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그 사람에게 맡기고 싶어요

DUMMY


멍했다.

귀가 먹먹하고, 시야가 뿌얘지는 느낌.

그러나 잠시 후.

내 귓속에 들리고, 눈으로 보이는 것은.

바로 사람들이 내게 박수를 보내는 광경이었다.


“아······..”


그러나.

마이크 앞에 서는 순간.

그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

장소만 다르지, 지난 5년 간 내가 방구석에서 해왔던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진 것이다.


연기를 끝낸 직후 찾아온 정적.

그 정적 이후, 대회장을 꽉 차는 박수 소리를 들으니.

편안해졌던 마음이 세차게 요동친다.

성우라는, 혹시나 했던 가능성이 새싹을 틔운다.


넙튜브 영상 업로드가 가진 의의는, 내 연기가 대중들에게 칭찬을 받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번 대회는.

실시간으로 내 연기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게 가능하다는 걸 확인한 것 같았다.


“짜식! 야, 진짜 지렸다! 미친. 나 팬티 좀 젖은 듯?”


물론 덕수 녀석의 천박한 말을 듣자마자 그 여운이 좀 가시긴 했지만.

결과 발표가 오늘이라는데.

대회는 끝났고, 시상식 전까지 덕수와 함께 결과 발표를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말 좀 예쁘게 해라. 지렸다가 뭐냐, 지렸다가.”

“그럼 오졌다?”

“말을 말자.”

“크크! 네가 <파놉티콘>을 골랐다고 했을 땐 진짜 미친놈인 줄 알았는데, 짜식. 넌 다 계획이 있구나!”


내가 굳이 <파놉티콘>이라는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분명했다.

토마스가 파놉티콘을 탈출한 뒤 느끼는 강렬한 해방감.

그게 바로 내가 더빙 연기를 할 때면 느끼는 자유로움, 해방감과 맞닿아있었으니.


현실의 나는 방구석에서 녹음을 하고 있지만.

연기하고 있는 나의 캐릭터는 세상을 구하기도 하고, 마법을 쓰기도 하며, 잔혹무도한 악당이 되기도 한다.

그때 느꼈던 해방감이, 파놉티콘을 벗어난 토마스의 것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어서.


“솔직히 걱정 많았는데. 시작 전에 긴장 오지게 하는 것 같아서. 근데 연기하니까 완전 눈빛이 바뀌더라? 너 뭐냐? 사람들 앞에서 연기하는 거 무서워하는 거 아니었어?”

“지금도 무서워. 그런데.”

“그런데?”

“사람들이 날 보고 있지 않잖아.”


연기를 하는 내내 느낄 수 있었다.

이 대회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내게 집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더빙 연기란 성우의 연기보다도.

화면 속 인물과 얼마나 잘 어우러지는지가 중요하니까.


그만큼 내 연기가 영화 속 주인공과 잘 어우러졌고.

그로 인해 높은 몰입감을 만들어냈다는 뜻이다.


즉.

내가 시선을 받지 않고도.

사람들에게 나의 연기를 보여줄 수 있다.


“야, 덕수야.”

“왜?”


이제야 확고한 결심이 선다.


“나, 다시 시작해보고 싶어졌어.”


그런 결심을 부채질 하듯.


우웅-!


내 휴대폰으로 날아온 문자 한 통.


[안녕하십니까, 제19회 한국예술진흥대학 주최 외화더빙대회 주최 측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성우현 씨가 대상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시상식 시간을 안내해드리오니, 시간에 맞춰 참석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미친, 대박!”


대상 소식을 듣자마자.

나와 덕수는 얼싸안고서 기쁨을 만끽했다.


“거봐, 너 연기 잘한다니까!”

“그러게. 나 좀 잘하는 걸지도?”

“무대 위에선 벌벌 떨던 찐따가 갑자기 그런 말하니 팍 식긴 하는데.”

“잘한다고 해서 좀 허세 좀 부려봤더니 바로 욕박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말도 모르냐?”

“난 익기는커녕 아직 싹도 트지 않은 상태 아니냐?”


아무튼.

음성 연기는 전혀 다른 영역이라, 큰 기대감은 없었는데.

이렇게 대회에서 상까지 받게 되다니!

뛸 듯이 기쁜 것이 사실이다.


“연기로 칭찬받고, 상받아 본 게 언제더라.”


아마 더블제이 엔터 시절.

월말 평가 때 이후 처음일 것이다.

5년도 훨씬 더 된 이야기.


“야, 야! 이모한테도 빨리 말씀드려라.”

“당연히 그래야지. 야, 근데 이 대회 상금 나오는 거 맞지?”

“그래, 이 돈미새야!”


대상 상금이 약 50만원.

이 정도면 아주 쏠쏠하다고 볼 수 있다.

5년 전, 내가 조단역으로 데뷔했을 때 회당 출연료가 40만원이었는데.

그보다 10만원 더 많은 액수라는 게 참 상징적이다.


“이모한테 톡 좀 보내야겠다.”

“전화 드리지 왜?”

“지금 일할 시간이거든.”

“아, 맞다. 너희 이모 주말에도 일하시지.”


나는 휴대폰을 들어 이모에게 톡을 보냈다.

대충 대회 나왔고, 열심히 연기했고, 대상을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랬더니 거의 5초도 걸리지 않아 답장이 왔는데.


[이모님 : 돈 나오는 거 맞지?]


음.

역시 내가 제대로 배웠지.


아무튼, 기쁘다.

드디어 이모에게 뭐라도 작게 선물해줄 돈은 얻은 것 같아서.

그것도 연기를 해서 번 돈이라는 게 더 값지게 느껴진다.


[이모님 : 대상이라니

이모님 : 그래 그게 성우현이지

이모님 : 이래야 내 조카지]


더블제이 엔터를 나온 이후.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 내게 뭘 하는 거냐, 돈이라도 벌어와라.

그렇게 채근한 적도 없는 이모다.


그래서 그럴까?

대상 소식을 들을 때보다.

그 소식을 이모에게 전해줄 때 더욱 떨렸다.

메시지를 보내는데 손이 벌벌 떨리더라고.


“그래서 대상 성우현 씨. 시상식은 언제야?”

“두 시간 뒤라고 하는데?”

“크, 그럼 남국민 성우님이랑 기념촬영도 하는 거 아니냐? 개부럽다. 나 사인 한 장만 받아다주면 안 되냐?”


거기다 남국민 성우님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다니!

이건 꼭 가보로 남겨야만······.


“잠깐만.”


기념 촬영?


*


다시, 외화 더빙 대회가 열리고 있는 아트홀.

그리고 그 내부에 위치한 회의실에선.


“정말 아닙니까?”


성우학과 학과장 임진석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남국민에게 물었다.


“그 성우현이라는 친구. 정말 프로 성우가 아닙니까?”


몇 번이고, 꼭 확인해야겠다는 듯 말이다.


“아닙니다.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


이에 남국민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 친구가 군대를 다녀왔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22살이라고 했죠? 다녀오지 않았거나 막 다녀온 상태일 겁니다.”


대한민국에서 공채 성우가 되려면 군대를 다녀오거나, 혹은 면제를 받아야 한다.

성우 활동을 하다가 갑자기 군대에 끌려가면 안 되니까.

그래서 남자 성우들의 경우 20대 중후반이면 아주 어린 편에 속한다.


“성우수첩에도 성우현이라는 이름은 없었습니다.”


성우수첩.

한국성우협회에서 해마다 발간하는 수첩으로, 모든 공채 성우들의 이름과 소속 방송국이 정리되어 있는 수첩이다.

해마다 발간하는 만큼, 새로 들어온 성우들의 정보도 끊임없이 갱신된다.

협회 소속 공채 성우들, 그리고 주로 녹음 관계자들이 성우 섭외를 위해 들고다니는 편.


“녹음실 관계자나 후배 성우들, 그리고 방송국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성우현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봤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직후.

임진석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이상하네요. 저런 실력이면 언더 성우로라도 활동한 경력이 있을 법 한데, 아예 없습니다. 그렇다고 성우 학원이나 아카데미 쪽에서도 이름을 들어봤다는 사람조차 없으니······.”


오늘 대회장에서 보여준 성우현의 연기력.

그건 프로 수준을 넘어서, 프로 성우들 중에서도 거의 톱티어의 연기력이었다.

저 정도라면 이미 업계에서 유명 인사여야 할 텐데, 그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다니?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걸까요?”

“그럴 지도 모르겠죠. 하하, 저도 제대로 한 방 얻어맞은 기분입니다.”


남국민이 웃으며 말했다.


자신의 앞에서 <파놉티콘>을 더빙한 것?

아무 상관도 없다.

어차피 지망생들이 참가하는 대회이고, 오히려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남국민으로선 무척이나 기대되는 부분.


‘다만, 내 연기를 그대로 답습했다면 좀 실망이 컸을 거야.’


장국민이 <파놉티콘> 속 토마스를 연기한지도 벌써 몇십 년이 지났다.

남들은 아직도 남국민 최고의 연기로 토마스를 꼽지만.

남국민 본인은 원숙해질 대로 원숙해진 지금, 그때의 더빙 연기를 다시 보자면.


‘많이 부끄럽고 부족함이 많지. 대체 왜 저렇게 연기했었던 건지, 참.’


아쉬움이 컸다.

연기자로서 자신의 연기에 만족하는 순간, 거기서 끝이다.

남국민이 그런 지론을 갖고 있는 것과 별개로, 실력과 경력 모두 더 쌓은 지금 보니.

과거 자신이 참 열정 하나로 부딪혔구나 싶다.


남들은 모두 극찬하며 떠받들지만.

정작 남국민 본인은 부족하다고 느꼈던, 그래서 많이 아쉬웠던 영화인데.


‘만약 다시 연기한다면, 그래. 그 성우현이라는 친구처럼 표현해볼 수 있겠지.’


그런데 그 아쉬움을.

아까 대회에 참가한 그 젊은 친구를 통해 어느 정도 해소한 기분이었다.


‘외화 더빙의 경우 캐릭터 해석이 제한될 수밖에 없어. 배우의 연기, 그 이상을 담아낼 수 없으니까.’


성우가 배우보다 연기를 잘 한다고 해서 칭찬받을까?

아니다.

오히려 시청자 입장에선 이질감만 더욱 커질 뿐이고, 업계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그러니 전설로 여겨지는 남국민의 더빙과 차별화하기 어려웠을 텐데.


‘성우현 그 친구가 표현한 토마스는, 훨씬 감정의 굴곡이 컸지.’


성우현은 그걸 해냈다.

남국민의 연기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연기를 해내면서도.

동시에 배우의 연기와의 싱크로율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특히 헛구역질을 하다가, 입을 다물고 기어가는 호흡의 그 리얼리티를 살린 건······당시의 나조차 놓쳤던 부분이야.’


당장 재녹음을 해서, SBC 외화 더빙으로 방영해도 될 정도 아닐까.

남국민조차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이런 실력자가 정말 어디 있다 나타난 거지? 어디서든 소문이 났을 실력인데.’


전조도 없이 등장한 의문의 실력자.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보게 만드는 미친 연기력.

원본, 혹은 기존 더빙한 성우조차 잊게 만드는 캐릭터라이징.


‘잠깐, 이 느낌을 최근에 또 느낀 적이 있지.’


바로 넙튜브 채널 ‘성우 현의 소리’.

순간, 남국민의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하나의 가능성.


‘설마, 성우현이 바로 그 넙튜브 채널의?’


이번에 미친 연기력을 보여준 성우현.

그리고 현재 넙튜브에서 심상치 않은 조회수를 기록 중인 ‘성우 현의 소리’.

둘 다 성우현이라는 글자가 들어가고, 예고도 없이 갑자기 나타났으며, 엄청난 연기력을 보여주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남국민이 확신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으니.


‘음색이 비슷하다면 확신을 가질 텐데, 그조차 아니었어.’


두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이건 단순한 우연에 지나지 않던가.

혹은.


‘성우현이라는 저 친구가, 말도 안 되게 다양한 변성이 가능하다든가.’


한편 임진석의 경우.


‘반드시 붙잡아야 한다.’


성우현을 떠올리며 열의에 불타고 있는 중이었다.


‘학력을 적는 란에 고등학교 졸업이 마지막이었어. 대학교 관련 정보는 없었지.’


즉, 저 성우현이라는 친구는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프로 데뷔도 하지 않고, 지망생들 사이에서도 아무런 인지도가 없어. 이건 무조건 잡아야 해!’


과연 프로 데뷔 의사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불쑥 이렇게 지망생들 대회에 참여했다는 건, 어떤 식으로든 연기를 할 생각은 있다는 뜻이리라.

그렇다면.


‘전액 장학금, 기숙사 지원, 뭐든 제시해서 붙잡아야 해.’


성우학과장 임진석이 이 기회를 놓칠 순 없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어떻게든 현장에서 녹화를 했어야 했는데!’


이번 대회는 외화 더빙 대회인데다, 참가자들이 가져온 영상은 모두 제각기 다르다.

이 때문에 저작권 문제로 녹화는 따로 하지 않았는데.

이게 이렇게 아쉬울 줄이야.


‘이번 시상식에서 한 번 슬쩍 이야기라도 꺼내봐야겠어.’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그게 바로 남국민, 임진석 모두 공통된 생각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임진석은 단상 위에 올라,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제19회 한국예술진흥대학 주최 외화더빙대회 시상식을 시작하겠습니다!”



*


같은 시각.

성남 판교에 위치한 수많은 게임 개발사.

그중 중소 게임사인 일루닉 게임즈.

신규 프로젝트인 <히어로즈 저니>를 담당하고 있는 김재민.

그는 부하 직원들과 주간 회의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 대충 더빙 성우진도 정해졌네요.”


기획팀 쪽에서 말이 나왔다.


“이제 몇몇 캐릭터만 픽스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들은 그간 언더 성우들을 대상으로 공모를 진행하였고.

주요 캐릭터들의 더빙을 맡길 사람을 어느 정도 정할 수 있었다.


다만.

김재민 디렉터가 턱을 쓰다듬으며 침음을 흘렸다.


“솔직히 퀄리티가 썩 마음에 들진 않긴 합니다만.”


공모를 통해 일루닉 게임즈 측이 선택하는 입장이었음에도.

그렇게 썩 마음에 드는 언더 성우는 없었다.

돈이 없다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을 내린 것.


“그치만, 더빙 문제로 더는 지체할 수 없지 않습니까? 계속 이 문제로 딜레이가 되면 일정에 차질이 생길 텐데요.”


기획팀 팀원의 그 말에, 마치 트리거가 눌린 듯.


“더빙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데! 캐릭터가 매력이 있고, 살아숨쉬어야 유저들도 기꺼이 돈을 내고 뽑으려 한다고요!”


김재민이 소리를 높였다.

그들이 개발 중인 <히어로즈 저니>는 수집형 모바일 RPG.

즉, 유저가 캐릭터들을 가챠로 뽑는 게 메인 수입원이다.


“캐릭터들에게 알맞은 목소리를 넣어주는 건 중요한 일입니다. 목소리를 갖기 전 캐릭터들은 단순히 움직이는 그림, 혹은 그래픽에 지나지 않지만. 성우의 연기와 목소리가 입혀지는 순간, 정말 살아숨쉬는 인물이 된다고요!”


그리고 그 캐릭터의 생동감을 불어넣어주는 존재들이 바로 성우.

드라마 영화에서도, 배우가 연기하기 전까진 단순한 텍스트에 불과하지 않은가.

캐릭터 외향이 밋밋해도, 목소리로 표현하는 캐릭터성이 잘 표현되면 순식간에 인기를 얻을 수 있다.

그건 곧 게임 자체에 대한 홍보로 이어지고, 이는 중소게임사 입장에서 놓칠 수 없는 부분.


“왜 윗대가리들은 그걸 모를까? 수집형 모바일 게임이 잘 되니까 밀어붙여놓고! 더빙 예산은 쥐꼬리만하고! 아오. 우리도 돈만 있었으면 당연히 프로 성우 쓰고, 장국민 성우님 쓰고 다 하지! 대체 그놈의 예산은 왜 맨날 부족한 거야!”


갑자기 히스테릭해지는 김재민.

현재 김재민이 <히어로즈 저니> 총괄 디렉터라는, 제법 있어보이는 직함을 달고 있긴 하지만.

결국 중소게임사에 소속되어 윗선과 예산을 가지고 씨름해야하고, 부족한 인력과 개발비로 최고의 아웃풋을 뽑아내야하는 월급쟁이인 건 달라지지 않으니까.

그리고 그런 모습을 익히 봐왔던 직원들은 놀라긴커녕, 그냥 ‘또 저러네’하는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디렉터님이 예산 부족으로 고통받고, 히스테리 부리는 게 하루이틀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어쩌겠는가?

결국 까라면 까야하는 게 월급쟁이의 운명.


“후우. 이래놓고 더빙 퀄리티가 왜이리 구리냐, 그런 소리만 해봐 진짜. 내가 사표 낸다.”


그렇게 이를 부득부득 가는 김재민.

그가 진정하기를 기다리던 팀원들은 곧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크흠, 네. 이제 마지막으로 살인마 잭 역할만 캐스팅 완료하면 될 것 같습니다.”


살인마 잭.

주요 SSR(스페셜 슈퍼 레어) 캐릭터 중 가장 강렬한 캐릭터성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만큼 더빙을 통한 캐릭터성 극대화가 중요한 캐릭터.


“이미 잭도 공모를 받았으니, 빠른 시간 내에 샘플들 추려서 플레이 어택 녹음실 측에 넘기도록 하죠.”


그렇게 마무리가 되어가던 찰나.


“굳이 공모받은 언더 성우들 중에서 픽해야할까요?”


김재민이 갑자기 그런 얘기를 꺼냈다.


“네? 그게 무슨······.”

“역시 그 방법 밖에 없겠어요.”


결단을 내린 듯, 입을 앙다무는 김재민.

그가 내린 결론은.


“’성우 현의 소리.’ 그 채널에 의뢰해봅시다.”


다소 허황된 이야기였다.


“어차피 그 채널 운영자들도 언더 성우라면, 그쪽에 맡기는 게 훨씬 낫죠.”

“네? 하지만 그 채널은 플레이 어택 녹음실에서조차 누군지 모른다고 했다던데.”


거의 모든 작업은 녹음실을 통해 이루어진다.

녹음실 쪽에서 성우 섭외와 녹음 일자 조정, 녹음실 대여 등을 한 꺼번에 패키지로 해주니까.

그러므로 녹음실 쪽에선 프로 성우, 언더 성우 모두를 아우르는 거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셈.


그런데 그런 녹음실에서조차.

넙튜브 채널 ‘성우 현의 소리’ 정체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다.

그런데 거기에 더빙 의뢰를 하겠다니?


“다른 건 다 제쳐두고서라도, 연락 수단 자체가 없지 않습니까?”

“정공법으로 가야죠. 넙튜브 댓글이라도 달아봅시다.”


비록 한정된 예산 속에서 아웃풋을 내야하는 입장이라, 매우 고통받고 있는 김재민이지만.

이 잭이라는 캐릭터만큼은 무조건 제대로 살려내고 싶었다.


“살인마 잭. 그 캐릭터만큼은 꼭 그 채널에 맡기고 싶어요.”


‘성우 현의 소리’ 채널에 올라온 <최고의 아이> 더빙을 본 순간부터.

이미 그는 그 연기력에 매혹된 상태였으니.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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